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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55화 (55/221)

55

시장님! 어떻게 합니까!

저새끼 뭐야.

지금 이거 어떻게 흘러가는...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적응하지 못한채 서로를 보며 웅성이는 이들.

그리고 이를 보며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들도 마냥 쓸모없다고 무시할순 없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급급해 발버둥치던 때라면 모를까, 일단 중앙플랜트로 안정을 확보하고 뭉쳤다면 스스로 자라나며 번영을 구가해갈테니.

누군가는 더 강해질것이고 언젠가는 이 섬을 벗어날 정도로 번성하고.

그쯤 되면 지금과는 달리 자신들도 무시못할만한 전력이 된다.

문제는... 그렇게 <무시>못하게 되는것 자체가 거슬린다는 거다.

자신들 편에 설지.

자신들 편에 서는 대가로 과한걸 요구할지.

수틀리면 대립적국에 가서 붙을지.

그도 아니면 떠돌며 약탈하는 난민이 될지.

대체 어떻게 할지 알수가 없다.

안그래도 이곳저곳 바쁜 지금 생각만 해도 골치아픈 상황.

아무생각없이 써먹기만 하면 되는 광자포 등과는 다르게 이놈들은 너무 귀찮다.

잠시후.

"재량대로 하랬지."

고민하던 사내는 손에 들린 길이 1m의 칼을 들어올렸다.

서서히 정신차리며 자신을 적대적으로 노려보기 시작하는 이들을 향해.

어차피 충돌은 정해져있는 상황.

그냥 편하게 가는게 낫겠다.

<저번> 기지처럼.

그렇게 사내가 칼을 수평으로 쫘악 휘두른 순간.

쩌어어어어억...

쩌적...

어어?

어?

수평으로 그어진 길다란 선.

이어 자신들의 가슴팍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음들에 모여있던 이들이 두손으로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

콰콰콰쾅...

쿠콰쾅...

우아아아아아악!

탑아래, 너른 금속광장 전체가 비명과 괴성으로 그득 들어찬다.

그런 광장의 바닥.

잘려나가 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십자가에서 눈을 뜬 베티의 기계안구가 순식간에 사방을 훑으며 상황을 캐치했다.

이어지는 한마디.

<저 괴물은 뭐죠.>

칼 한자루를 쥔채 플랜트 전체를 도륙내고 있는 괴인.

이에 옆에 묶인채 열심히 손목의 금속밧줄을 풀어내던 강태석이 짤막하게 말했다.

"전직한 녀석."

전직, 혹은 경지의 상승.

11레벨부터 30 사이.

<검기> 사용자.

체화 경험.

여러가지 말로 설명할수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그전까지가 인간같다면 벽을 넘어선 놈은 그냥 병기에 가깝다는 것.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이 이를 증명한다.

투타타타타...

우아아아악!

터터터터텅!

쏘아지는 수천, 수만발의 화망을 맨몸으로 무시한다.

콰아아아앙!

파아아아아앙!

강태석도 부담스러워했던 기갑투창의 폭팔과 레일건의 사격을 피하지도 않고 받아내고 걸어가 사람들을 쪼갠다.

콰드드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앙!

고작 70kg 정도 될까한 체구로 발가락을 금속바닥에 고정시키고 체구 10t에 가까운 기계병기들의 돌격을 받아내고.

콰지지지지직!

그것도 모자라 아무것도 없이 코뿔소를 닮은 기계병기의 머리통을 맨손, 두 양팔로 비틀어 뜯어버린다.

그야말로 괴력난신.

그 난장판 속, 바닥의 십자가와 결속된 금속밧줄을 풀던 강태석이 숨을 푸 내쉬었다.

"저정도면 거의 25에서 30이야. 잘못 걸린거지."

<... 인간같지가 않네요. 도시 밖에는 저런 놈들이 득시글거리나요?>

"그렇지. 너희들도 그렇고."

저런 이들이 득시글거렸음에도 기계병기가 이겼다.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난지 얼마 안된 베티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잠시후.

투툭...

"후우."

자신의 전신을 결박하던 특제금속섬유를 끊어낸 강태석이 몸을 뚜둑거리며 일어선뒤 손을 어딘가로 뻗었다.

이윽고.

키이이이이잉...

파아앗!

근처, 어딘가에서 날아든 칠채영창을 오른손으로 받아든 강태석이 이를 휘둘러 베티의 육체를 결박한 금속섬유들도 잘라 제거했다.

이어 일어서는 베티, 그리고 날아드는 네개의 철창.

촤르르륵...

<이근처에 같이 보관해뒀었나보네요. 십자가에 태울때 같이 태우려했을수도 있고. 그나저나 이제 어쩔건가요?>

쿠쿵...

쿠쿠쿠쿵...

눈앞에서 벌어지는 재앙들을 보며 베티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끼어들고 싶지가 않다.

그야말로 압도적.

마치 전차가 사마귀를 깔아뭉개듯.

인간이 개미를 짓밟듯.

보보 걸음걸음, 사내가 휘적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반경 수십미터의 인간들이 사방으로 토막나고 덤벼드는 기계병기들이 박살이 나고 있었다.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을때 도망치는게 어찌보면 최선.

하지만 그런 베티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

"도망치고 싶어도 힘들걸."

<???>

"우리 다 갇혔어."

우우우웅...

우우웅...

뒤쪽,

어느새 다시 붉게 타오르는 금속의 탑을 중심으로 퍼져나와 플랜트 전체를 감싼 은은한 붉은 장막에 베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우우웅...

마치 장막처럼 플랜트 전체를 감싼 얇고 붉은 빛의 장막.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치 하나의 장식품을 보는듯하다.

안쪽에 갇힌 이들에겐 전혀 아니겠지만.

아아아아악! 내보내줘!

투타타타!

장막벽에 달려가 탕탕 두드리고 매달리는.

혹은 손에 가진 총기를 투타타탕 쏘아갈기다가 절규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베티가 기계눈살을 찌푸렸다.

<못나가게 해놨군요.>

"뚫으려고 작정하면 못뚫을것도 없지만..."

<그러면 더 난리가 나겠네요.>

강태석의 말에 베티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저 장막은 개인화기 정도는 무시하지만 또 못 뚫을 정도의 내구도를 자랑하는건 아니어보였다.

광자포는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지만 저정도 출력으로 사방을 커버하기에는 장막의 범위가 너무 넓었으니까.

기갑투창들의 화력을 집중하거나 자신들 둘이 전력을 내면 빠져나갈 구멍 정도는 만들수 있다는 의미.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장 저기에서 느긋하게 걸어다니며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녀석이 득달같이 달려오리라.

이 장막은 <벽>의 역할과 동시에 신경쓸만한 놈들 걸러찾는 <체>의 역할도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지금 <저기서> <저런>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놈이 온전히 자신들에게 집중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온다?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

쿠어어어엉...

우아아아아악!

투타타타타!

기계병기와 생존자들을 착실히, 하지만 빈틈없이 으깨버리고 있는 사내를 보던 강태석이 하늘을 보며 장탄식을 토했다.

사실 아까전엔 사로잡혔다고 해도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탈출할수 있었다.

자신에겐 그럴만한 무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건 사이즈가 다르다.

그렇지만 답은 정해져있는 상황.

"어떻게든 잡는다."

<저걸요?>

"그나마 지금이 기회야."

강태석이 도망치기 시작하는 생존자들을 쫓아 중앙플랜트로 걸어가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지금 방심하고 있고 같이 힘을 합칠 생존자들도 있다.

지금이 지나면 기회마저 사라지는 상황.

그뿐이랴.

아마 이곳 생존자들을 통해 습격받던 오시리스의 존재까지 알게될테니 이어 배까지 절단이 난다.

"일단 간을 좀 볼까."

손끝의 창을 휘휘 돌린 강태석이 저너머 상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콰아아아앙!

사람들을 쫓아 중앙플랜트 쪽으로 향하던 사내를 향해 거구의 기계인형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아까전 강태석과 베티의 십자가를 지탱하던 5m의 기계병기.

콰드드드드득!

네개의 팔을 자랑하며 달려든 기계병기가 자신의 근력과 체중으로 상대를 통째로 뭉개버리려 하였지만 헛수고.

우드드드득..

쾅쾅!

두개의 깍지낀 손이 되려 기계인형의 손을 밀어붙인다.

나머지 두개의 팔이 자신을 두들겨패고 있는데도 무시한다.

태연하게 선자리에서 기계인형의 두손을 밀어붙인 사내가 그대로 힘을 준 순간.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앙!

금속바닥에 고정된 발끝부터 손끝까지.

말그대로 전신 근육을 휘둘러 금속바닥에 기계인형을 내다꽃아버린 사내가 그대로 한손으로 기계인형을 끌어당긴 후 턱을 향해 발길질을 내질렀다.

그걸로 마지막.

콰드드득...

단번에 턱이 돌아간 기계인형을 심드렁하다는듯 바라본 사내가 재차 허리춤의 칼을 움켜쥔뒤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지지지직...

지직!

"?"

갑작스레 흔들리는 붉은 장막의 불빛에 멈춰선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한 공격을 받아 그런건가 했는데 가만보니 그런 것이 아니다.

파지지직...

파직...

거칠게 흔들리는 장막.

그와 동시에 명멸하는 검은 금속의 탑, 광자포의 붉은 회로.

외부에서 흔들리는게 아니다.

지금 광자포 자체가 내부에서 데미지를 받고 있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사내가 콧김을 내뿜었다.

"머리가 그래도 돌아가는 놈이 있군."

사내가 칼을 빙글 돌렸다.

탑 자체는 내구도가 높아 잘 부서지지 않는다.

공격받는 곳이 있다면 바로 지하.

탑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전선들을 누군가 끊어내고 있는 것이리라.

장막을 공급하는 에너지를 끊어내고 사방으로 도망쳐 도시로 숨는다.

나름 괜찮은 판단이라 할수 있다.

자신은 이 플랜트 하나를 박살 내놓는 것까지는 하겠지만 이 도시 전체를 뒤지는 귀찮은 짓은 못하니까.

하지만 잘못 생각한게 있다면 그놈은 이제 자신을 만나야한다는것.

키이이이이잉...

사내가 정신을 집중한순간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력이 금속의 칼 끝에 그러모이기 시작했다.

이어 쭉 뻗어나온 시퍼런 칼날.

길이 1m에 불과하던 칼날이 쭉쭉 자라 순식간에 2m에 달하는 길다란 빛의 날을 형성했다.

이를 바라보며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던 사내가 칼날을 바닥으로 내리찍은 순간.

콰자자자자자작!

쩌어어어억!

지하와 지상을 구분하던 금속바닥이 말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며 사내에게 내부의 은밀한 통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터어엉...

가볍게 발을 구른 사내의 신형이 지하, 뻥 뚫린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

콰자자작...

콰작...

"..."

자신의 옆.

사방 벽면의 전선들을 뜯어내고 있는, 이제는 셋밖에 남지않은 자신의 직속기계병기인형들을 바라보던 오토른이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창을 쥔채 어둠을 휘감고 팔짱을 낀 사내와 사로잡았던 기계인형.

아까전 이곳을 지키고자 기계인형과 치고 받았던 자신이 스스로 이곳의 전선을 뜯어내고 있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심지어 자신이 사로잡았던 이들과 협력하여!

하지만 원한이나 심정과는 별개로 손잡아야한다는 상황에만큼은 굳게 공감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재앙과도 같은 놈은 정말 답이없어보였으니까.

콰지지지직...

"이러면 이길수 있는거겠지요?"

그런 오토른의 말에 팔짱끼고있던 강태석이 입을 열었다.

"모르지. 그래도 일단 변수는 유리하게 해야하는거니까."

어차피 이정도 손상, 플랜트의 반자동복구프로그램이 돌아가면 금방 재생된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광자포의 작동을 멈춰놓는게 중요하다.

장막을 걷어 혹시모를 퇴로를 확보하는 것 외에도... 싸우던 와중에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는건 막아야하니까.

애초에 광자포는 인간이 아닌 대함대전 병기.

광자포의 공격이 중앙플랜트를 후려치면 상대는 몰라도 자신을 포함, 대부분 생존자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다.

그런 강태석의, 어찌보면 무책임한 말에 오토른의 턱에 꾸욱 힘이 들어가던 그때.

쿠쿠쿠쿠쿵...

콰아아아아앙...

"왔다."

지척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폭음에 강태석이 손에 든 칠채영창을 꽈득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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