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가슴팍을 꿰뚫을 목적으로 찔러진 묵직한 일격.
콰드드드득...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다.
쩌어어엉...
한계에 도달한 칠채영창이 유리조각처럼 상대의 심장을 꿰뚫지 못하고 그대로 파편이 되어 스러졌다.
강태석의 주변을 맴돌며 서서히 회복하려 했지만 당분간 창의 기능은 무리.
물론 아예 효과가 없는건 아니었다.
풀썩.
"커헉..."
창이 스러지자 이를 지탱하지 못하고 좌석 안으로 쓰러진 강태석의 옆자리, 심장팍에 강한 충격을 받은 사내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피분수를 토했다.
안그래도 충격받고 잔뜩 독가루를 들이마신데다 레일건 세례까지 당했는데 거기에 심장을 찌르는 일격까지 더해졌다.
창이 가루가 되어 그나마 살았지만 절대 정상적일수는 없는 상황.
실제로 그 죽여버리고 싶은 놈이 자신의 좌석 옆에 널부러져있는데도 손하나 까딱할수가 없다!
하지만 이윽고.
"흐하... 흐하하하하... 내 승리다."
띠디디딕...
<출발 10초전...>
<출발후 EMP탄, 투여합니다.>
콰르르르릉...!
미리 내려놓은 명령을 착실하게 수행하려는 민들레씨의 패널음성을 들으며 좌석에 앉은 사내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
EMP-141.
현존 사용가능한 EMP탄중 최강의 위력과 범위를 가진 녀석.
어지간한 방비가 되어있는 구조물도 이녀석에게 걸리면 어림없다.
반경 5km 안에 존재하는, 일정등급 이하 모든 전자기기와 회로를 불태워버리는 위력.
이게 떨어지면?
중앙플랜트고 뭐고 모조리 작동중지.
작동되던 동력은 끊기고 전파방해장치는 박살나며 생존하는 모든 이들은 기계병기들에게 민낯으로 노출된다.
이어 기다리는건 끔찍한 운명.
해일처럼 끊임없이 몰려드는 기계병기들에게 차례대로, 도망칠 곳도 없이 고통스럽게 찢겨나가는 것.
감히 자신들에게 반항하려한 녀석들의 최후로는 제격이라 할수있다.
쿠르르릉...
"으흐... 흐하하하!"
서서히 이륙을 준비하는 민들레씨, 그 밖을 보며 사내가 승리의 함성을 흘리던 그때.
"후우... 좀 꺼져봐..."
"?!"
털썩.
자신을 옆으로 힘겹게 밀어내고 좌석 한가운데 대신 앉는 강태석의 모습에 사내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도 힘없이 밀려났다.
하지만 강태석도 간신히 그게 끝.
"... 뭔 꼴이야 이게. 물자 좀 챙기려고 했던 땅에서."
간신히 의자에 앉아 긴 숨을 푹 내쉰 강태석이 눈앞을 바라보았다.
지원군은 없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다.
좌석 밖으로 보이는건 자신과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채 널부러져있는 여인.
그런 여인을 보던 강태석은 마지막 힘을 동원하여 자신의 손에 있던 <무언가>를 굴려보냈다.
데구르르르...
"...??"
"빌려간거... 갚는다고 그래. 그럼 알거야."
반쯤 힘겹게 뜬 눈으로 자신이 땅에 굴려보낸 베티의 머리를 바라보는 여인을 향해 중얼거린 강태석이 그대로 의자에 축 늘어졌다.
자폭전에 어떻게든 머리는 챙겼다.
덕분에 폭발력이 위로 솟구쳐 죽이는데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어우... 좀더 패줘야하는데.'
옆, 숨만 헐떡이고 있는 사내를 흘긋 노려보던 강태석이 마지막 힘을 주어 손을 뻗었다.
이미 작동한 탈출시퀀스나 EMP탄을 정지시킬수는 없다.
하지만 한가지 정도는 가능하다.
EMP탄의 투하를 막는것.
"이... 이 미친 놈아... 뭐하는 거야!"
"좀... 닥쳐봐."
강태석이 간신히 패널을 두드림과 동시에.
쿠구구구구구...!
바닥의 붉은 구체가 천장을 박살내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
타타타타탁.
"대체 뭔 일이 있었던거야..."
중앙플랜트에 도착한 아린이 주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따라 도착한 오시리스의 이들도 마찬가지.
갑자기 빛을 뿜어내던 붉은 탑.
이어 사방에 펼쳐진 붉은 장막.
그리고 터져나오던 폭발에 플랜트를 뒤흔들던 굉음들.
이에 놀라 장막이 걷히고 조심스레 들어와보니 상황은 난장판.
마치 무슨 공룡 한마리가 휩쓸고 지나간것 같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하다.
종잇장처럼 찢겨나간 금속구조물.
으깨지고 박살난 기계병기들.
사방팔방 반항도 못하고 무더기로 토막난 사람들의 시체들까지.
하지만 이내 아린등은 정신을 차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카트란! 카트란 어디있어! 빨리 찾아!"
아린의 말에 주변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흩어져 탐색을 시작하려던 그때.
쿠구구구구구...!
너덜너덜해진 중앙플랜트 위로 화염을 뿜어내며 솟구치는 붉은 구체에 모두의 고개가 하늘로 돌아갔다.
**
'내려야... 하는데...'
쿠구구구...
솟구치는 구체속, 간신히 의자에 앉아있던 강태석이 손을 떨었다.
이제 할일은 다 끝났으니 내리면 된다.
땅에 무사히 내려앉은채 하늘에서 터져나오는 EMP 불꽃놀이를 보면 상황종료.
제법 멀리 떨어진 EMP탄은 플랜트나 오시리스에는 영향을 못줄테니 여유롭게 EMP탄에 휩쓸려 추락할 붉은 구체를 바라보면 된다.
하지만 의자 밖으로 내릴 힘이 없다.
아니, 이제 내리면 안된다.
이 높이에서 이 몸상태로 떨어지면 죽는다!
콰르르릉...
닫히지 않은 문 너머, 어느새 수백미터나 멀어진 지상을 바라보던 강태석은 한숨을 푸 내쉬었다.
기껏 멋진 유람선 만들어놓고 좀 즐기나 했더니 이게 뭔 꼴인지.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운명이리라.
철컥.
"크흑... 거긴 내자리..."
"닥쳐 좀."
퍼억.
간신히 손을 들어 좌석의 안전벨트를 착용한 강태석이 발치, 버둥거리는 사내를 힘겹게 밀어낸뒤 심호흡을 했다.
이제는 운에 맡긴다.
EMP탄이 터지기전 구체의 비상착륙 시퀀스가 최대한 제기능을 다해주길 바랄수밖에.
키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앙!
안전벨트를 멘순간 적정높이에 도달한 구체가 맹렬히 가속하며 수평으로 내달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키이이이잉...
구체 아래, EMP탄이 서서히 작동하며 투명한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XXXX년, XX월 XX일.
민들레씨.
도시 카툰, 북서쪽 16km 지점에서 EMP 직격.
긴급착륙시퀀스 발동.
예정 목적지로의 방향고정후 활강추락.
배, 오시리스.
당황하며 일단 도시 카툰의 중앙플랜트에 잔류.
이후의 행방을 고민하기 시작.
**
도시, 카툰 북서쪽 107km 지점.
"어? 일어났다!"
"..."
폐허사이, 누가 봐도 허름해보이는 틈새 사이의 매트리스에서 눈을 뜬 강태석이 욱신거리는 가슴팍의 통증에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누웠다.
보이는건 어둑한 폐허, 무너진 건물더미 천장.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더라.'
누운 상태로 강태석이 곰곰히 기억을 더듬었다.
문조차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맹렬한 추락.
옆에 누워있던 녀석이 버티지 못하고 중간쯔음 떨어져내린 것까진 기억난다.
이어 추락하던 구체가 땅에 처박히기 직전 간신히 비상제어프로그램을 가동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
'역시... 귀한 물건이다. 그 거리에서 EMP 폭풍에 휩쓸리고 다시 재가동하다니.'
강태석이 누운상태에서 중얼거렸다.
비상제어프로그램 없었으면 그냥 죽었을 것이다.
설령 살아서 추락했어도 주변에서 몰려드는 기계병기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거나.
어찌 되었건 살아남긴 한듯.
강태석이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펴보려던 그때.
불쑥.
"아저씨. 내가 목숨 구해준거 맞지?"
"... 그렇겠지?"
자신의 얼굴 위로 머리를 불쑥 내민 소녀의 말에 강태석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마 추락해서 구체 주변에 튕겨나와있었을 자신을 주워 챙긴게 이 소녀인 모양.
'그래도 다행이군. 착한 아이에게 걸려서.'
하지만 그런 강태석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
철컥.
"그러면 이제 내 노예해도 불만없지? 내가 주운거니까?"
"... ...."
자신의 목에 철컥 채워진 금속목걸이에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푸 내쉬었다.
**
"말세야 말세."
"뭐라고?"
"아니다."
매트리스에 상체만 일으켜앉아 벽에 기대있던 강태석이 소녀를 보며 대답하고는 손안의 죽그릇을 들어마셨다.
후루룩...
상태는 뭐 말할것도 없다.
박살난 칠채영창은 여전히 유리가루 상태로 주변을 떠다니는 중.
전마강갑은 꿈틀거리며 몸 안에서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지만 사용하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듯했다.
블루블러드의 여파로 마력은 바닥까지 바짝 말랐고 황금순록의 왕관을 한계까지 버텨내야했던 육체 역시 만신창이.
말하자면 완전무장해제상태.
이런 상태에서 강태석이 집중할건 하나였다.
육체의 회복.
후루루룩!
"더 없어?"
"아니 무슨... 걸신들렸어? 이거 내가 잘못 주운거 아닌가."
띠딕...
띠익...
죽을 모조리 들이키고는 한그릇 더 달라며 내미는 강태석을 뻔뻔하다는듯 쳐다보던 소녀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죽 한그릇을 더 퍼주며 자신의 손에 있는 메모장을 들어올렸다.
"죽 네그릇... 폭탄목걸이 하나... 이거 다 적어둘 거야. 몽땅 갚아야하는거 알지?"
"이 목걸이도 내가 갚으라고?"
"당연하죠. 내껀데 아저씨가 쓰고있으니까."
"... ..."
아주 그냥 어찌나 잘자랐는지 머리를 한대 꿍 쥐어박아주고 싶다.
하지만 어찌됐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것도 사실.
후루룩...
죽을 들이키는 강태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열살배기 소녀가 아 하는 표정을 지으며 구석을 뒤졌다.
"아 맞다. 그래도 아저씨 무기는 내가 주워왔으니까 고맙게 여겨야돼. 여기."
"내 무기?"
강태석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칠채영창은 박살나 재생중이고 다른 무기는 들고온게 없다.
한데 자신의 무기라니?
그런 강태석의 말에 구석을 뒤지던 소녀가 이윽고 폐허 아래에서 칼 한자루를 꺼내들었다.
스르렁...
"이건 그냥 공짜로 쳐줄게.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야? 이런 날칼하나 들고?"
"..."
자신에게 건네진, 누런 빛의 1m 길이 칼날을 자랑하는 도를 받아든 강태석이 눈을 꿈벅였다.
이거 그거다.
그놈이 사용하던 칼.
그녀석은 중간에 떨어졌는데 이건 용케 안떨어지고 추락지점까지 함께 온 모양.
"진짜. 내가 좀있다 총이라도 한자루 줄게. 거렁뱅이도 아니고 뭔지 참. 아 그리고 허튼생각 말고. 내가 죽으면 그 목걸이 터지는것 정도는 알지?"
"..."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불쌍하다는듯 바라보는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알까.
지금 소녀가 무시하는, 허접한 날붙이로 보이는 이 칼이 어지간한 도시 한구역을 팔아도 구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물건이라는걸.
마력금속, 아르카나.
초중금속, 아르카둠과 함께 국가핵심자원으로 뽑히는 귀금속.
검기사용자에게 들렸을때 이 칼은 그야말로 살벌한 위력을 발휘한다.
'뭐. 틀린말은 아니지. 내거 맞지. 내가 이긴거니까.'
말하자면 이건 전리품.
"고맙네."
허리춤에 칼을 차며 조심스레 일어나는 강태석의 모습에 소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어? 어디 일어나려고. 좀더 쉬어. 그래야 써먹으니까."
"이미 어느정도 나았어. 걸을 정도는 된다."
"????"
이해할수 없다는 소녀의 시선속.
쿠르르릉...
몸속, 어둠을 맹렬하게 돌려 구석구석을 휘감던 강태석이 조심스레 바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