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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더미 바깥으로 나온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벅.
얼핏 보면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풍경.
온통 가득한 폐허더미, 무너진 건물과 도로들.
그런 강태석의 뒤를 소녀가 쫄레쫄레 따라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진짜 겁도없이! 총은 들고가야지! 무슨 칼한자루 들고 나가."
철컥.
쫓아와 강태석의 손에 개인화기를 하나 건네준 소녀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내말 잘들어야해. 우리가 앞으로 할건... <보물찾기>야."
"보물찾기?"
"그래. 보물찾기. 아주 귀한걸 찾아야한다고. 인생역전할만한 거."
소녀가 넓게 펼쳐진 도시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
키이잉...
전파방해장치를 키고 걸어가며 소녀의 설명을 들은 강태석은 두가지를 알수 있었다.
첫번째, 자신이 떨어졌을때의 상황.
자신이 발견되었을때 붉은 구체는 어딘가로 다른 이들에 의해 실어날라지고 있었고 소녀는 간신히 폐허더미에 튕겨져있던 자신만 챙겨나왔단다.
어찌 보면 아주 감동스러운 이야기다.
자신의 목에 채워진 폭탄목걸이만 없었다면 말이다.
두번째, 이 섬의 이름.
도시, 아만테오.
도시의 이름을 들은 강태석이 걸으며 이 섬의 간략한 정보들을 떠올려봤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떠오르는건 없네.'
나라나 방위도시, 센트라 정도의 정보라면 외우지면 모든 계획도시들의 정보를 정확히 외우는건 무리다.
하지만 걸으면서 보이는 인상적인 것들은 몇개 있었다.
첫번째, 사방으로 군데군데 세워진 높다란 철탑.
도시 지하에 설치된채 여전히 작동되는 정체불명의 전력선들에 의해 이 제법 넓다란, 반경 1km에 가까운 구역 전체가 전파방해장치에 뒤덮여있단다.
덕분에 적어도 이곳, <안전지대>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개개인은 전파방해장치를 키고 다니지 않아도 안전.
두번째, 그런 안전지대의 군데군데, 어딘가의 통로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나오는 이들.
그런 이들을 가리키며 소녀가 탁탁 손바닥을 쳤다.
"자자. 다시 한번 복기시켜줄게. 네가 어디서 날아든 개뼉다구인지는 관심없고. 이제부터 내말 잘 들으면서 이 안전지대 <지하>에서 최대한 귀한걸 파내는거야. 이 지하가 원래 뭐였다고?"
"백화점."
"그래. 뭐 우리끼리 부르는 용도긴 하지만. 하여간 귀한걸 캐내면 저기 소형 플랜트를 차지한 일곱 가문들이 먹을걸로 바꿔준다고. 생필품도 주고."
반경 1km정도 된다는 원형구역, 안전지대.
대부분 건물이 과자부스러기마냥 부스러진 와중에 원형구역의 외곽을 따라 제법 커다란 형체를 유지한 일곱개의 건물들이 보였다.
고풍스러운 귀족가의 저택을 닮은 일곱개의 건물들.
여기에 지하의 백화점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강태석의 머리속에 뭔가 가물가물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떤 도시들에 이런 형식으로 <부촌>을 지었다고 들었던것 같기도 한데.'
세피로트 타워와 올림포스가 현대식으로 지어진 부의 정점이라면 뭔가 올드한 것들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부촌들.
첫번째, 도시 한가운데 원형의 커다란 부지를 확보하고 둘레에 멋드러진 저택들을 짓는다.
저택의 내외관은 고풍스럽게, 지하에는 소형플랜트를 설치해 필요한 것들의 공급에 부족함이 없게.
그야말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져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수 있게.
두번째, 그렇게 공동출자한 이들의 숫자에 맞춰 저택을 지은뒤 가운데 지상에는 그들의 가솔, 혹은 고용한 이들을 위한 건물을 짓는다.
사옥, 주택, 경비실, 기타등등.
그들의 고용인, 혹은 그들 본인 소유의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건물들을 지어놓고 그들이 거주할 집들과 필요한 편의시설들을 지어놓는다.
시공시 주의점은 절대로 주변, <주인>의 저택들보다 높이가 높아서는 안된다는 것.
이곳은 주인들이 보기에 마치 인형의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고 또 조막만해야하니까.
세번째, 그렇게 <지상>을 메꿨다면 그다음에는 <지하>.
멀리 나가지 않고 코앞에서도 모든 것들을 즐길수 있는 지하콜로니, 혹은 종합공간을 짓는다.
이곳을 얼마나 깊게 파고 얼마나 많은 것을 집어넣는지가 이 곳에 공동출자한 <주인>들의 부를 드러내는 관건.
백화점, 특별관, 동물원, 지하정원.
이는 <주인>이 위에 사는 가신들을 위해 만든 배려이자 이 부촌의 주변인들이 즐길수있게 오픈한 문화생활공간.
깊으면 깊을수록, 뭔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주변 많은 이들이 혜택받을수록 그들 가문에 덕행이 쌓인다고 믿는다.
물론 진짜 <귀족>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시 내에서는 그런 행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
'한마디로...'
"돈지랄도 그런 돈지랄이 없었지. 하지만 뭐 그덕에 우리야 이렇게 먹고 사니까. 세계가 망했어도 이곳은 나름 살만한 것 같지않아?"
"..."
싱글벙글 웃은 소녀가 끼익 한곳의 철문을 열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발을 디뎠다.
그 말대로.
지상은 나름 안전하고 룰도 있다.
일곱 가문의 통제 하에 서로 싸우지 않으며 약탈하지도 않는다.
지하는 반쯤 무너지긴 했지만 여전히 귀한 것들이 있으며 운좋으면 한동안 먹을 생필품을 확보하는데도 지장없다.
단점이라면 하나.
이제는 정말 <안전한 구역>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파냈다는 것.
"... 이제는 다들 좀 팍팍해졌지. 그거 꽉 쥐고. 여차하면 다 갈겨버려. 무슨 말인지 알지?"
철컥.
장전을 마치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소녀의 말에 강태석이 손안의 총을 바라보았다.
**
1층부터 7층, 지하 80m.
소녀의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발걸음은 중간에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소녀가 발걸음을 멈춘 구간은 지하 8층.
<관계자 외 출입금지>
"원래는 중간창고층 같은 곳이야. 여기부터는 좀 위험해. 전파방해장치가 잘 안닿거든. 개인용을 써야지."
키이잉...
등뒤에 멘 전파방해장치가 무겁다는듯 어깨를 푸는 소녀의 모습에 옆에 조용히 서있던 강태석이 물었다.
"내가 들어줄까?"
"응? 아냐아냐. 이건 내가 들어야지. 아저씨는 여차하면 앞에서 나대신 싸워야하는데."
"..."
"뭐해. 앞장 안서고."
할말이 없다는듯 입맛을 다신 강태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철문을 열었다.
전신 내외로 조용히 전마강갑을 불러낸채, 안쪽으로는 육체의 회복을 가속화하고 바깥으로는 어둠을 두르며.
어둠속, 폐허가 된 공간 안으로 들어가니 긴장은 바짝 섰지만 그와는 별개로 앞으로 어찌할지에 대한 생각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일단 오시리스는 크게 걱정할거 없다. 대충 권한을 남겨놓고 왔어.'
이 먼거리에서 오시리스를 조종하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베티의 머리속에 마력코드의 일부를 심어놓고 왔다.
달리안이 베티를 수리하게 된다면 그 마력코드를 발견해 배를 어느정도 조종할수 있을터.
그렇게 되면 좋건 싫건 그들은 재정비를 마치고 자신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게 될 것이다.
재정비와 출발, 그리고 이곳의 도착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몸상태.
'최대한 빠르게 회복해야지.'
콰직...
물자보관장소로 보이는, 하지만 천장에 금이 쩍쩍가고 진열대들은 모조리 비어있는 폐허 사이를 걷던 강태석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강태석>
>레벨 : 10(45.64%)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
>스킬 : 약식 EMP(Active/Passive)(등급-E)//황금순록의 왕관(Active/Passive)(등급-B/UNIQUE)
>스탯 : 근력8/반사신경7/체력7/마력7(*)/기술7.
>무장 : 전마강갑(?)/여의(S-역량부족)/오시리스(C-수리중)/칠채영창(B-재생중)/벨페른의 칼(C-).
<벨페른의 칼(C-)>
>추천이용레벨 : 11-30.
>특이금속, 아르카나 합금으로 만들어진 칼입니다.(1.18% 함유)
>검기를 머금을시 강도가 극단적으로 증가합니다.
>주변의 마력을 끌어모아 증폭효과를 부여합니다.
>주변의 마력을 끌어모아 마력소모감소효과를 부여합니다.
특이할건 없지만 거슬리는건 역시 무장해제에 가까운 현재상태.
그나마 귀한 물건인, 사내의 무장이었던 벨페른의 칼을 얻은건 다행이었지만 이건 말 그대로 검기사용자가 사용해야만 제대로 된 빛을 발하는 물건이다.
아직 자신의 레벨로는 온전한 효과를 끌어내기 부족한 녀석.
이거 들고있다고 원거리공격 되는것도 아니니 화기를 사용하는 녀석들을 만나면 상성상 유리할것도 없다.
그렇기에 강태석이 정한 일차목표.
이곳 분위기를 보며 회복에 집중한다.
소형플랜트가 있다고?
생필품 외에도 분명 전투고양제나 회복제가 보관되어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최대한 얻어내어 회복에 박차를 더하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배를 기다린다.
여차해서 경로가 엇갈린다면 자신이 배를 찾아나서도 되고.
'이 목걸이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자자. 열심히 찾아보자."
"음? 묘하게 열심이네. 체질에 맞나봐?”
“…”
“하긴 사람 잘봤어. 내가 또 홀대하고 그러지 않거든. 뭔가 많이 찾으면 또 잘해줄..."
순간.
"아 진짜... 숨어."
"?"
자신을 훅 잡아당기는 소녀의 손길에 강태석이 진열대 한쪽 뒤켠으로 끌려왔다.
그렇게 몸을 숨긴 소녀와 강태석의 귓가로 들리는 소리는...
으하하하...
좋아좋아. 이정도면 술이 몇병이야!
진열대 작은 틈 너머, 피범벅이 된 전신을 자랑하며 걸어가는 몇몇 남녀들의 웃음소리에 강태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
상당히 진행된 사이보그화.
제법 강해보이는 무장들.
모인 이들이 예전 센티널 사건때의 사내, 구스트와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사이보그화는 덜 되었어도 무장은 훨씬 더 특별해보였다는 것 .
그중 몇명의 허리춤에는 레일건마저 걸려있었다.
"저놈들은 뭐야?"
"뭐긴. <아래층>을 전문으로 돌아다니는 녀석들이지. 아 뭐 주워먹을게 있다고 여기까지 와."
작게 속삭이며 욕설을 내뱉는 소녀의 말을 들은 강태석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전 지도를 보았던것같다.
1층부터 7층은 백화점이나 복합몰같은 평범한 구간.
지하 8층은 그런, 1층부터 7층에 공급할 물건들을 쌓아놓는 창고층.
그리고 지하 9층부터는...
'VIP 전용공간이라고 했지.'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워낙 위험해 소녀는 들어갈 엄두조차 못내본곳.
기계병기들도 기계병기지만 워낙 강한 생존자들이 돌아다녀 뭔가를 찾아도 걸리면 꼼짝없이 탈탈 털리고 위로 쫓겨난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이 돌아다니는 이유.
그만큼 아래 <귀한 것>들이 있기 때문.
스르륵...
웃고 떠들며 안방마냥 활보하던 이들이 스르륵 멀어지는 걸 본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은 종이책자를 내밀었다.
"자자. 이게 일곱 가문에서 만들어준 <카탈로그>야. 각 층마다 있는 비싼 것들 정리되어있으니까 눈에 띄면 절대 놓치지마. 그리고 폐허사이 잘 뒤지고. 예전에 무너질때 도망치던 녀석들이 자기 물건들도..."
하지만 카탈로그를 바라보던 강태석은 이미 소녀의 말을 반쯤 흘려버리고 있었다.
강태석의 시선을 잡아끈건 카탈로그, 그 뒷장.
9층 이하의 물건들이 적혀있는 부분.
잠시후.
"아래로 가자."
"뭐?"
"아래로 가자고."
"... 정신 못차렸네. 아 진짜 아저씨. 내말 안들었지?"
소녀가 복장 터진다는듯 고사리같은 손으로 강태석의 가슴팍을 꾹꾹 눌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