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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네개의 눈이 빛나며 무언가가 저너머에서 기어나온다.
크르르릉...
크기는 대략 3m 정도, 형체는 호랑이의 그것.
이를 보고 처음 강태석은 콧김을 내뿜으며 칼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내가 만만하나. 거참."
한마리 정도에 크기도 얼마 되지 않는다.
몸이 만신창이라 해도 그정도는 싸울수 있으니.
하지만 이어 어둠속에서 번쩍이기 시작하는 눈동자들을 본 강태석이 조용히 한발 뒤로 물러섰다.
넷, 여덟, 열둘.
수백, 수천, 수만.
크르릉...
크르르르릉!
크아아아아아앙!
울부짖는 소리도 처음에는 작더니 이제는 겹치고 겹쳐 마치 천둥번개같이 들린다!
잠시후.
"튀자."
"어어?"
타타타타탁!
소녀를 옆구리에 들쳐멘 강태석이 그야말로 부리나케 왔던 길을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
크아아아아앙...
"후우..."
한껏 멀어진 괴성을 듣던 강태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안그래도 만신창이였던 전신이 더 욱신거리는 느낌.
"그래도 더 안쫓아와서 다행이야. 그렇지?"
"..."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을 뻘쭘하다는듯 받아넘긴 강태석이 목을 한번 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정선을 넘으니 녀석들은 더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석들을 돌파하고 그곳을 탐사하긴 힘들어보이는 상황.
'결국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이건데.'
어느새 자신들이 출발했던 갈림길에 도착해있던 강태석이 다시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대륙박물관.
자인 공방.
하지만 어디로 갈지 고민하기도 전.
"신입인가본데. 이리 와봐. 너희."
자인공방으로 향하는 길쪽, 부서진 대리석벽에 앉아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몇명의 모습에 강태석이 고개를 돌렸다.
**
키이잉...
남자 여섯, 여자 하나.
밸런스맞게 이루어진 사이보그화.
손에 들린 두 정의 레일건과 개인화기들.
위협적으로 레이져포인트를 자신의 위아래로 슥슥 스치던 이들이 이내 강태석과 소녀를 보고는 웃기지도 않다는듯 말했다.
"요즘 위쪽 먹고살기 힘들다더니 진짜인가보네. 뭐 이런 놈들이 들어왔데."
무장이라곤 떨렁 칼한자루, 총한자루.
사이보그화도 안되어있고 전투용배낭조차 없다.
키이잉...
위협적으로 이리저리 전신을 훑던 레이져포인트가 정확하게 자리를 잡고 멈춰선다.
하나는 강태석의 미간에.
하나는 뒤에 선 소녀의 심장에.
그렇게 레일건을 겨누고선 이들중 가장 앞에 쪼그려앉은 사내가 손에 들린 술병을 한번 들이킨뒤 씨익 웃었다.
"그래도 뭘 숨겨놨을지 모르니 말이야."
"..."
"일단 다 벗어. 팬티 한장 남기지 말고."
이어 저들끼리 재밌다는듯 웃는 일곱을 보던 강태석이 숨을 푸 내쉬었다.
사실 아까전부터 망가진 몸으로 움직이느라 관절이 쑤신다.
말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평소 자신이 낼수있는 출력이 100이라고 하면 지금은 5에서 10도 내기 힘든 상황.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또 싸워야하지 않겠는가.
옷만 벗고 끝날것같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강태석이 손가락을 까딱거린 순간.
키리리릭...
<전마강갑... <마리오네트>. 발동합니다.>
몸안을 흐르던 어둠이 꾸물꾸물 흘러나와 강태석의 몸, 사지육체를 마치 스프링처럼 휘감았다.
어두운 복도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이질적인 검은 선.
"... 야 쏴버려"
이를 눈치챈 상대가 인상을 쓰며 버럭 소리치기도 전.
퍼어어어어어억!
바닥을 으깨며 사라졌던 강태석의 육체가 마법처럼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
마리오네트.
전마강갑의 공격적 운용.
망가진 근육을, 인대를 어둠이 대신한다.
콰득!
"커헉..."
단번에 저들 사이로 뛰어든 강태석이 소녀를 겨누고있던 사내의 팔부터 후려쳐 제압했다.
물론 제일 위험한건 레일건이긴 하지만 지금 우선순위는 소녀.
키이잉..
순식간에 갈곳잃고 천장으로 솟구치는 레이져포인트를 확인한 강태석이 이어 손에 들린 칼을 휘둘렀다.
마력을 머금은 황금빛 칼날.
그 칼날이 어둠속에 유려하게 노란 궤적을 그리며 레일건괴 기계화된 신체들을 스친다!
평소라면 금속합금에 퉁겨나갔어야할 일격.
하지만...
스르르륵.
스륵.
"!!!!!!!!!!!!!!!!!!!!!!"
순식간에 잘려나가며 뎅겅뎅겅 떨어져나가는 레일건과 신체파츠 일부들을 보며 모여있던 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육중한 기계병기들에게 두들겨맞아도 형체를 유지하는 파츠가 무슨 두부마냥 잘려나간다니?
그러거나 말거나 어둠에 강제적으로 조정되는 강태석의 전신이 착실하게 그들을 향해 날았다.
턱, 명치, 관자놀이.
기계화되지 않은 부분부터 하나씩, 차례대로.
콰드드득...
콰득...
"...!"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비명조차 울려퍼지지 않았다.
일곱번의 공격에 일곱번의 충격.
콰직!
단번에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이들중 비틀거리며 반격하려는 누군가의 턱마저 후려찬 강태석이 정리된 상황을 보며 숨을 내쉬었다.
상황 종료.
그리고...
스르륵...
<마리오네트, 해제합니다.>
순식간에 풀려나가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자신의 사지를 휘감았던 검은 선들을 보던 강태석이 허리를 펴기도 전 전신에 극통이 엄습했다.
우드드득...
"흐억... 아이고..."
강태석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뼈에 금이 가고 근육관절인대가 구분할것 없이 사납게 요동친다.
안그래도 너덜너덜한 신체를 평소처럼 끌어다썼기 때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에 발맞춘것만으로 몸뚱이가 마치 절벽에서 호수로 떨어져내린 것마냥 비명을 내질렀다.
"... ... 이거 자주는 못쓰겠다."
기절할것같은 표정을 짓던 강태석이 간신히 숨을 고른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수확은 있다.
바로 눈 앞에 모조리 기절한채 널부러져있는 일곱.
'안그래도 하나 안걸리나 했는데. 이건 정당방위니까.'
흐뭇하게 웃은 강태석이 뒤쪽, 눈을 꿈뻑거리고 있는 소녀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와."
"... 응? 응? 왜?"
"왜긴. 벗겨야지."
강태석이 전신에 뭔가를 바리바리 두른 일곱을 보고 흥얼거리며 팔을 빙빙 돌렸다.
뭔가 가진게 많을테니 싹다 털면 일당정도야 나올터.
하지만 그런 강태석을 향해 소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아 진짜... 미치겠네. 이 사람들 일곱가문 직속이라고!"
"음."
듣기만 해도 불길한 단어들의 연속에 강태석이 입맛을 다셨다.
**
일곱가문 직속.
생존자들중 스스로의 쓸만함을 입증한 이들은 일곱가문의 직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말하자면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
안정적인 보급은 물론이요, 일반 생존자들에게는 절대 지급되지 않는 무장에 일곱가문의 비호라는 방패까지 얻는다.
일반인들에게는 범접불가 사신과도 같은 이들.
'어쩐지. 이런걸 구할수 있을리가 없는데.'
강태석이 발치 아래 두토막난 레일건을 보며 혀를 찼다.
눈앞의 녀석들이 강하긴 했지만 레일건은 무기고 정도는 털어야 나올 물건들.
"어쩔거야. 어쩔거야 이 바보야!"
쪼그려앉은채 자신의 뒤통수를 투닥거리는 소녀의 외침을 듣던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뭐 잘못 건드리긴 한거같은데 딱히 잘 못 건드린것같지도 않다.
그리고...
"노예 잘못은 주인 책임 아냐?"
"뭐 임마?!"
"아니 공은 자기거라면서. 원래 이런건 다 세트로 가는거라고."
버럭 소리지르는 소녀를 뒤로한 강태석은 목을 우득 풀었다.
방금전 말은 농담이고 어차피 지금 자신들 둘은 운명공동체.
보아하니 이놈들 털어서 일확천금 챙기겠다는건 그른것같다.
하지만 수확이 명확한건 사실.
촤르르륵...
총 스물일곱개.
강태석이 녀석들로부터 털어낸 각종 상중하급의 치료제와 고양제들을 바라보았다.
**
제 3저택.
고르그 가.
"쯧. 언제 한번 쫙 쓸어내고 재정비하는게 낫지 않을까. 영 보기 안좋은데."
정상의 집무실에 앉아있던 한 사내가 사방, 유리창 너머의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사내가 앉은 집무실의 위치는 높지 않았다.
저택높이로 대략 5층정도 되었을까.
하지만 집무실 전체를 감싼 통유리창 벽면들 너머로는 도시 전체의 광경이 더할나위없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내외로 사내가 앉은 자리보다 높은 건물들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
안전지대 밖, 저택의 우측으로는 모조리 가루가 되고 무너진 도시.
안전지대 안, 저택의 안쪽으로는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폐허들.
안쪽의 상황은 명백히 안전지대, 바깥보다 나았지만 사내가 보기에 지저분한건 영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불평도 잠시.
끼이이익...
의자 뒤로 몸을 눕힌 고르그 가의 가주, 사내 고르그가 손톱을 줄로 다듬으며 앞에 선 비서에게 물었다.
"다른 가문 녀석들은 분위기가 어때?"
"여전히 고민중인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 쪽으로 붙을지."
"그렇겠지."
고르그가 자신의 엄지손톱을 슥슥 갈며 중얼거렸다.
각기 다른 국가, 각기 다른 특색.
그렇게 잘난척하는 연방은 이제 이 근방에 손톱만치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멸망한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건지.
이 근방의 패자들은 이제 새로이 일어난 일곱의 국가, 일곱의 연합들.
말이 칠국연합이지 서로가 경쟁하고 제갈길 가는 관계.
그렇기에 제대로 골라야한다
어디에 몸을 의탁할지를.
부르탄.
아벨.
마슬룬.
룬.
루한.
청무국.
일월.
"... 그래. 굳이 재정비까지 할필요야 없겠지. 어차피 빌건데."
어딜 선택하건 어차피 떠나야한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
......
저택 집무실, 높은 의자에 오롯히 앉은 고르그가 감정없는 눈으로 폐허 사이를 개미떼마냥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중급 회복제를 사용합니다. 미량의 체력이 회복됩니다.>
<상급 치료제를 사용합니다. 상처가 느린 속도로 아뭅니다.>
<중급 전투보충제를 섭취합니다. 필수영양소가 빠른 속도로 보충됩니다.>
<하급 전투고양제를 사용합니다. 통증은 줄어들지만 교감신경 활성화로 회복을 저해할수 있습니다.>
...
'전투고양제는 조금만 쓰는게 낫겠다.'
눈 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창들을 보며 강태석이 긴 숨을 내쉬었다.
수많은 실험들을 통해 만들어진 이곳 세계 연구의 산물들.
그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자신의 뼈를 이어붙이고 끊어진 근육을 채운다.
그렇게 되니 강태석의 표정에 한결 여유가 돌았다.
다급해보이는건 옆의 소녀뿐.
"아씨 진짜... 아아. 로산 말이 맞았어. 아무거나 주워먹으면 탈난다고 했는데. 왜 저런걸 주워서."
딱딱딱.
손톱을 딱딱 깨물던 소녀가 이내 결정한듯 강태석의 앞으로 다가섰다.
"나가자."
"나가? 어디로?"
"안전지대 밖으로."
소녀가 눈을 감았다.
안전지대 밖은 안전지대 안보다 훨씬 살기 힘들다.
일곱가문의 통치도 없고 전파방해장치도 없으며 물자도 부족하다.
사실상 도시의 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제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와 생활하는 상황.
보물찾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몇몇 이이 먹을것을 구하러 안팎을 왔다갔다하긴 하지만 그들조차도 베이스는 이곳에 둔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권이 없는 상황.
그런 소녀의 말에 강태석이 이채를 띄었다.
"나만 나가도 될텐데? 너는 여기 있으면 되잖아. 네가 사고친것도 아니고."
"... 또 어떻게 그래. 내가 주인인데. 내가 책임져야지. 나만 잘 따라다녀. 안전지대 밖은 그래도 내가 빠삭하니까. 어휴 속터져."
가슴을 탕탕 치는 소녀의 말에 강태석이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던 그때.
저벅.
"아냐. 너희는 안나가도 돼. 우리가 받아주지."
"...?!"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
자인공방과는 다른 방향.
대륙박물관 쪽에서 걸어나온 한 여인의 말에 강태석과 소녀의 시선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