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후우웅...
후웅...
털썩!
하늘에서 내던져진 수십개의 물체들이 150m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내던져진것들은 사로잡히고 기절한 볼츠의 인원들.
내던지는건 아타나엘과 고르그의 옆에 선 룬의 정장사내와 부르탄의 적발여인.
"아. 더럽게 많네. 뭐 이리 많이 왔어."
퍼어억!
퍼억!
발치에 우수수 쌓여있는, 기절한 이들이 적발여인이 발길질할때마다 퍽퍽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높이 150m.
아무리 강화된 인간이라고 해도 부담스러운 높이.
하물며 기절한 상태면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후우웅...
정장사내가 손짓할 때마다 떨어져내리는 이들의 속도가 쭉쭉 줄어들어 무사히 아래로 안착했다.
마치 깃털이 떨어지듯, 사뿐하게.
"못배운 티좀 내지 맙시다. 가주님들이 살려두라는 말 못들었어요?"
"음? 난 못들었는데. 그리고 살리고 싶으면 네가 계속 그렇게 살리던지."
퍽.
퍽퍽.
발치의 이들을 계속 걷어차 떨어트리는 적발여인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던 정장사내는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떨어져내리는 이들의 속도를 늦췄다.
이 와중에도 모두가 잠에서 깨지 않는걸 보니 공국, <루한>에서 온 그자의 수면향이 대단하긴 한 모양.
'그러고 보니... 다섯은 어디갔지?'
후웅...
후우웅...
마치 연주를 하듯 손을 휘저으며 속도를 늦추던 정장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들의 뒤에는 어느새 일곱가문에서 온 일곱가주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호위했을, 자신들과 같이 각나라에서 배정되어왔을 인재들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어디갔죠?"
정장 사내가 자신보다 먼저와 기절한 이들을 지키고 있던 적발여인을 향해 묻자 적발 여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네쪽에 쥐새끼 한마리 있는거같다고 쫓으러가던데. 그 <아벨>에서 온놈 말듣고 우르르 갔어. 심심하다고."
"...????"
후웅...
볼츠의 인원들을 아래 안착시키고 있던 정장사내의 미간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
저택 밖, 안전지대 경계.
허억... 허억...
"그건 내버려둬. 금방 추격당한다."
안전지대를 벗어날때가 되자 전파방해장치를 키려는 소녀를 막은 강태석이 손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약식 EMP.
치이잉...
약식 EMP가 걸린 순간 강태석과 소녀의 몸에 가벼운 전자기장이 걸리며 생체펄스를 차단했다.
안전지대가 아닌 도시밖은 여전히 기계병기들로 인한 무법지대.
소녀의 등에서 방해장치 배낭을 꺼내 내던진 강태석이 빠르게 저택 한구석을 벗어나 무너진 도시 폐허로 향했다.
"우리 어디로 가는거야...? 괜찮아? 저사람들 구해야하는거 아냐?"
더듬거리는 소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왠지 느낌이 정말 좋지 않다.
어지간하면 끼어들어서 싸워보겠지만 지금은 벗어나야한다.
특히 옆에 짐덩어리가 있다면 더더욱!
"너 이거 해제하는 방법도 모르지?"
"..."
울먹이려는 소녀를 본 강태석이 이내 피식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탈탈 쓰다듬었다.
당연한거다.
노예목걸이가 그렇게 쉽게 해제될 리가 있겠는가.
"됐다 됐어. 가자. 남쪽으로."
강태석이 덤덤하게 말했다.
일단 이 안전지대에서 최대한 벗어나 도시의 외곽 해안선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남쪽.
강태석이 소녀를 데리고 도시를 향하려던 그때.
후우우웅....
불길한 파공음이 강태석의 뒤쪽에서 솟구쳤고.
파악!
거의 본능적으로 소녀를 밀친 강태석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며 맹렬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어? 노예야!"
튕겨나 폐허 사이로 구른 소녀가 뒤에서 터져나온 거대한 화염을 보고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콘크리트를 그슬릴 정도의 강렬한 화염이 반경 십수미터를 넘실거리며 메운다.
어찌보면 폭탄이 터진것과도 같은 현장.
하지만 그와는 다르다.
불길이 살아있는 것마냥 넘실거리며 주변을 삼킨다!
그때.
쫘아아아악...
"후욱... "
칼로 단번에 불길을 쪼개며 걸어나온 강태석이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소녀를 보며 작게 손짓했다.
빨리 빠져나가라는 이야기.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적에게 발견됐다.
소녀까지 지키며 싸우거나 도망칠수 있는게 아닌 상황.
리스크는 하나라도 줄여야한다!
그런 강태석의 손짓에 소녀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싸아아아악...
저 너머, 불꽃이 날아왔던 어둠속에서 다시한번 소름끼치는 불길이 일렁였다.
이번에는 푸른색.
그렇게 마치 도깨비불처럼 일렁이던 어느순간.
쫘아아아아악...!
"빨리 가!"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덮쳐온 시퍼런 불길의 선을 칼로 쪼갠 강태석이 뒤를 향해 버럭 소리쳤고.
"...!"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이내 이를 악물고 빠르게 어둠속, 도시너머로 내달렸다.
**
콰아아아아앙!
"잘막네?"
화르륵...
오른손 검지손가락 위에 푸른 불꽃을 피워올리던 청년이 저너머의 상대를 보며 이채를 띄었다.
<아벨>에서 온 녀석이 뭔가 이상한 파장이 감지된다고 하길래 따라와보긴 했지만 별반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기에 녀석이 가진 기계뭉치들은 영 고장도 잘나고 신뢰도 안갔으니까.
한데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녀석.
"야 너네 나라는 약한데 이런거 잘만든다?"
"아하하하..."
금속시계를 차고있던 30대 남자가 자신의 시계를 두드리는 청년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자신들, 아벨이 어디 가서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 이 <일월>의 놈들은 정말 무식하게 강하니 뭐라 입을 못열수밖에.
그때.
"저기... 하나 도망가는데요?"
"어어? 그러네?"
타타탁...
사내의 뒤, 폐허사이로 도망가는 작은 소녀를 본 청년이 푸른 불을 피워올린 검지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잡을지말지 고민하는 눈길.
잠시 생각하던 청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라도 많으면 더 좋다고 했으니까. 다 잡아가지 뭐."
이해할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청년의 손가락 끝에 있던 불이 노란 색으로 바뀌었다.
이어 형체도 일렁이던 형태에서 반딧불처럼 은은하고 동그란 형태로.
어찌보면 따스한 형상.
하지만 옆에서 보던 아벨의 30대 남성은 되려 형상이 바뀌자 껄끄럽다는듯 한발 뒤로 물러섰다.
"자... 다리."
키이이잉...
서서히 한점으로 응축되기 시작하는 노란 불빛을 손가락 끝에 매단 청년이 저멀리, 도망가는 소녀의 다리를 검지로 겨누던 그때.
후우우웅...
쫘아아아아아아악!
"!!!!!!!!!!"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거친 파공음에 기겁한 청년이 겨누던 검지를 빠르게 거두고 정면을 조종했다.
**
전마강갑.
어둠을 휘감고 단번에 50m 거리를 좁힌 강태석이 청년을 향해 그대로 오른손, 벨페른의 칼을 휘둘렀다.
푸른 마력을 머금은 황금빛의 칼날.
하지만 이 칼날이 청년을 후려치기 전.
쩌어어엉...!
허공을 가로막은 무언가가 벨페른의 칼과 부딪치며 육중한 소음을 떨어울렸다.
길이 1m, 초승달 형태의 은빛 금속체.
놀랍게도 기계병기마저 성둥성둥 썰어버리는 벨페른의 칼에 부딪히고도 흠집 조금 나는 수준에 그친다!
'이정도면 그냥 생활기스인데.'
터엉.
어쨌건 소기의 목적은 달성.
목표로 했던 청년의 시선이 소녀가 아닌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것을 본 강태석은 한발 물러서 눈앞을 살폈다.
불꽃을 감은 청년.
은빛의 초승달을 부리는 30대의 남성.
자세히 보니 초승달은 한개가 아니다.
쫘르르륵...
쫘르륵...
한개, 두개, 세개.
남성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세개의 금속달.
은빛, 금빛, 적빛.
두개의 초승달, 한개의 반달.
이를 본순간 강태석이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벨?"
"어? 우리 나라 알아요? 어떻게 알지? 반갑네요. 아니지 우리가 기업이던 때를 아는건가?"
이채를 띄는 청년의 반응에 강태석이 혀를 찼다.
기업국가, <아벨>.
초국적 군수기업에서 세계의 멸망을 틈타 군사독립체, 이어 국가의 형태로 발전한 곳.
그리고 칠국연합중 한곳.
상황이 썩 좋지않다.
한녀석도 버거운 상황인데 둘이라니.
그나마 소녀가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리고 둘이라면 상황을 봐서 자신도 벗어날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강태석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저기... 둘이서 상대하면서 이런말하는거 미안한데..."
"?"
"기왕 하는거 안전하게 갈게요."
말을 마친 30대 남성이 멋쩍게 웃으며 적빛 반달에 손짓한 순간.
키이이이잉...
퍼어어어엉!
"..."
'쓰벌.'
적빛 반달에서 쏘아보내져 하늘높은 곳에서 터지는 신호탄에 강태석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
안전지대, 구덩이.
쾅쾅!
이게 뭐야!
내보내줘!
우르르 볼츠의 사람들이 떨어진 곳으로 몰려든 수천명의 사람들이 철벽을 두드리며 아우성을 질렀다.
누군가는 벽을 부숴보려고, 누군가는 어느새 우그러진 계단출입구를 뚫어보려고 했지만 모두 허사.
150m에 달하는 금속의 철벽은 스스로의 굳건함을 과시하며 절벽 위에 있는 자와 아래 있는 자들의 입장을 명백히 갈라놓고 있었다.
심지어 벽면이 어찌나 단단하고 미끄러운지 누군가 올라가려고 해도 무리.
그 속.
"..."
난장판속, 어느새 정신을 차린 아니타가 주변을 기가 찬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토록 오래 이곳에서 머물렀음에도 이런 구조였다는걸 알지 못했다.
이런 대개조가 몰래몰래 이루어졌을리도 없으며 자신들 하나 잡겠다고 만들어졌을리도 없다.
애초에 처음부터 이곳을 지을때부터 이런 구조였다는 의미.
'대체 왜? 어째서 이런 형태를?'
아니타가 이해할수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그저 돈좀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때.
"끄으응..."
"허억... 후으으."
아니타의 주변, 기절해있던 볼츠의 인원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부상을 입긴 했어도 다들 크게 다친것같지는 않은 상황.
"다들 멀쩡해? 상태는?"
"멀쩡해는 보이네요. 왜 살려뒀는지는 모르겠어도..."
다가와 묻는 아니타의 말에 앉아있던 소년이 패배감에 물든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련장 3위.
도시에서 자라며 패배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적이 없던 소년에게 있어 더할나위없이 굴욕적인 기억.
심지어 자신을 제압했던 <소녀>는 자신보다 더 어렸다는게 치명적이었다.
자신에게 이제까지 유일하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구련장의 둘은 그나마 자신보다 나이라도 많았으니까.
"아니타도 실패했군요. 그나저나 그 신입은 어디있어요? 죽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다 묻는 소년의 말에 아니타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다른 볼츠의 인원들은 대부분이 잡혀온것처럼 보이는데 그 신입은 이곳에 없다.
실력을 보니 쉽사리 죽을것같지도 않은 상황.
'설마... 밖에서 뭘 하고 있나?'
아니타가 혹시나 하는, 희망어린 표정으로 철벽의 절벽구덩이 위를 바라보던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아래에서도 느껴질 후끈한 화염이 구덩이 위쪽, 가장자리에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