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67화 (67/221)

67

피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앙!

아까전 소녀를 향하려했던, 광선에 가까운 노란색의 화염이 칼을 든 강태석을 그대로 후려쳤다.

무슨 불길이 아니라 거대한 쇠망치에 후려맞는 느낌.

아니, 차라리 쇠망치면 다행이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고 강렬하다!

터어엉...

콰드드득...

빛을 간신히 튕겨낸 강태석이 바닥을 내리긁으며 착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안쪽으로 몰리고 몰려 구덩이 근처.

가장 오고싶지 않은 곳으로 오게되었다.

'환장하겠군.'

그때.

후우우웅!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날아든 금빛과 은빛, 두개의 기계초승달이 강태석을 향해 무언가를 쏘아보내려 했다.

시퍼렇게 충전된게 한눈에 봐도 심상치않은게 날아들 느낌.

하지만 강태석이 움직이기전, 그보다 한발 더 빠르게 움직인게 있었다.

정신없이 강태석을 몰아붙이던 청년의 붉은 화염.

콰아아아아앙!

"끼어들지마! 내가 처리한다!"

"으악! 저거 수리비가 얼만데!"

붉은 화염에 두들겨맞자 비명을 내지르며 부리나케 초승달을 회수하는 30대 남성을 보던 강태석이 그 옆, 팔짱을 끼고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 수가 아까전 세어보니 청년과 남성을 포함해 총 일곱.

슬금슬금 모여든 녀석들은 재미있는 광경을 보듯 관망하는 분위기.

물론 그렇다고 상황이 썩 좋은건 아니다.

구경만 하는것처럼 보이지만 빈틈을 찾아 빠져나갈라치면 기가 막히게 슬그머니 가로막아 자신들을 이곳까지 몰아넣은 주범들이니까.

답없는건 마찬가지인 상태.

그때.

'... 일곱 아니네? 여섯?'

날아드는 화염에 집중하던 강태석이 눈을 부릅떴다.

분명 일곱이던 녀석들이 어느새 정신차리니 여섯.

눈깜짝할 사이에 한녀석이 사라졌다.

이에 강태석이 반응하기도 전.

후우우우우웅!

화염에 의해 생겨난 자욱한 연기를 뚫고 소름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등장한건 한자루의 창.

이에 서린 강렬한 기세와 시퍼런 창끝.

막지 못하면 전마강갑이고 리틀비틀이고 그대로 치명타!

강태석이 다급하게 칼을 들어 가로막은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금속과 금속이 부딪쳤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굉음이 터져나오며 강태석의 몸뚱이가 허공에 뜬채 뒤로 훅 튕겨나갔다.

너덜거리는 손아귀, 징징거리는 벨페른의 칼.

물론 잘 막긴 했다.

잘 막긴 했지만...

"제기라아아아알!"

후우우우욱...

뒤로 훅 튕겨나가 절벽 아래로 밀려난 강태석이 그대로 한줄기 욕설을 남기며 아래로 주르르륵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강태석을 절벽 아래로 밀어내버린, 창을 든 말총머리 무인을 향해 날아든 날카로운 목소리.

"끼어들지 말라니까!"

화르르륵!

청년의 다섯손가락에서 피어난 적청황백흑의 화염이 사납게 어둠을 살라먹었다.

아벨에서 온 남성을 단번에 깨갱하게 만들었던 청년의 성질머리.

하지만 말총머리 무인은 주눅들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청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간끌 새가 없소."

쿠르르릉...

쿠릉...

말총머리 무인이 바라보는 서쪽방향, 어두운 밤하늘로 쿠릉쿠릉거리는 뇌전과 번개구름이 보였다.

아직 제법 거리가 떨어져있지만 한눈에 봐도 심상찮아보이는 날씨.

그런 말총머리 무인의 말에 청년이 이를 까득 갈았다.

청무국.

다른 놈들은 한수 아래지만 이녀석들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함부로 대하기 귀찮은 녀석.

이윽고.

"... 쯧."

혀를 찬 청년이 손끝에 화르륵 피어나던 화염들을 거둬들인채 한발 뒤로 물러섰다.

이로서 상황 종료.

또 한판붙나 하여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다섯도 입맛을 다시며 흥미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나오는 정장 사내.

"자자. 이제 다 끝난거같으니까 자리 양보해드리죠. 이곳의 주역은 우리가 아니니까."

사내가 가리킨 주역들은 명확했다.

그들 뒤에 서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일곱 가문의 가주들.

잠시후.

저벅.

차례대로 걸어나온 이들이 구덩이가에 서서 아래, 위를 바라보고 있는 수천명들의 앞에 섰다.

**

콰드드드득...

터엉...

"... 후우."

균형을 잡으며 착지한 강태석이 뻐근하게 몸을 일으켰다.

전마강갑이 대부분의 충격을 흩어내줘서 다행.

피해가 없는건 아니지만 안죽은게 어딘가.

'그나저나... 난리났네.'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래쪽은 이미 분위기가 살벌했다.

자신이 떨어진 쪽에 모인 일백 정도의 볼츠와 그들을 둘러싼 수천명의 사람들이 갈라져 대치중.

그리고 주변이들의 아우성을 들어보니 대충 왜 성질내고 있는지는 알수 있었다.

이 새끼들아! 너희가 무슨 사고쳐서 이렇게 된거 아냐!

그게 아니면 갑자기 왜 이러시냐고? 오늘 축제까지 열어줬는데!

숫자는 적지만 악명이 악명이다보니 충돌이 일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심상찮아보이는건 사실.

그런 강태석을 향해 아니타가 다가왔다.

"하하. 장관이지? 썩 보기 좋은꼴은 아니지만."

아니타의 표정은 뭔가 해탈한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딱히 희망따윈 없었으니.

이정도 준비, 이정도 격차.

놈들은 아예 하늘 위에서 모든걸 내려다보며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으며.

이제는 문자그대로의 의미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자신들의 승리라고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일순의 착각이었을뿐.

그리고 이제 모든것이 끝이다.

저녀석들이 자신들을 살려둘리가 없었으니.

자신같아도 절대 안살려둔다.

자신들 너머, 아우성치는 이들의 모습을 아니타가 허탈하게 바라보던 그때.

후우웅...

하늘에 거대한 영상이 떠올랐다.

은빛과 금빛의 초승달이 좌우로 교차하는 빛을 쏘아보내 만들어낸 허공의 거대한 홀로그램.

그곳에 나타난건 일곱 가문의 주인된 이들의 얼굴.

이윽고.

<보기좋네요. 여러분들의 지금 모습이.>

암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던, 일곱의 가장 앞에 선 아타나엘의 목소리가 아래로 우렁우렁 울려퍼졌다.

**

콰르르릉!

콰르릉!

점점 더 폭풍우와 천둥소리가 커져갔다.

저멀리에 보이던 번개구름이 서서히 도시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뜻.

후우웅...

이제는 조금씩 허공에서 흩뿌려지기 시작한 빗방울 속, 구덩이 가장자리에 선 아타나엘이 덤덤한 눈동자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비에 옷자락이 젖고 있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드디어 모든걸 끝낼 때가 되었으니까.

갑자기 우리한테 왜 이러는겁니까!

제기랄! 미쳤어?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던 아타나엘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지난 2년은.>

아래를 보며 말하고 있지만 혼잣말에 가까운 말.

그래, 그들 일곱가문의 가주들에게 있어 지난 2년은 정말 힘든 세월이었다.

자신들을 지탱해주고 승리하게 만들었던 모든 시스템들이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야했으니까.

돈, 인맥, 영향력, 인재.

모든것들이 무너지고 무의미해졌다.

그나마 믿을 것은 그나마 작동하는 저택 지하의 소형 플랜트.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고용했던 저택 내부의 호위부대.

반면 자신들이 맞서야할것은?

수천을 넘어 수만에 가까운, 아차하는 순간 폭도로 변할지 모르는 생존자들.

세상을 멸망시킨것도 모자라 도시마저 고립시킨 기계병기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이 조합되어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찾아올 종막.

플랜트의 물자는 당장은 풍부해보이지만 결국은 동이 난다.

자신들이 쓰기엔 그나마 넉넉하지만 바깥의 생존자들에게 약탈당하기 시작하면 끝장.

거기에 자신들이 부리고 있는 호위부대들도 언제까지 믿을수 없다.

자신들에게 힘이 없어지고 권위가 없어지는걸 알게되면 저택 내부의 그들이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할터.

아니, 사실 위의 것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당장 찾아올 생존자들의 폭력과 야만이 문제.

힘은 부족한데 가진건 많으니 얼마 안가 그들은 반드시 살해당하고 모든걸 빼앗길 것이고.

그 속에서 아타나엘을 비롯한 일곱 가문의 주인들은 스스로들을 지키기 위해 결정을 내렸다.

부유해보이기로.

강해보이기로.

여유를 부리고 권위를 세워 이곳에 있는 모두를 통제하기로.

안전지대를 세웠다.

그곳에 모여드는 이들중 통제가능한 이들을 골라 군대를 꾸렸다.

물자를 펑펑 쓸 여유는 없었지만 억제력을 만들기위해 이는 꼭 필요했으니.

다행히 그들이 평소 베풀었던 선행과 명성이 힘을 발휘했다.

이어 시선을 끌었다.

<보물찾기>라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물자를 그냥 풀었다가는 만족을 모르고 더더 많은 것을 원하게될 이들에게 모조리 뜯어먹힐터.

일자리를 만들고 물자를 풀기위해 굳이 쓸데도 없는 물건들에 포인트를 메겨가며 사람들에게 구해오라고 했다.

배는 고프지만 굶어죽진 않을것이니 더더욱 아래 집중할 것이고.

서로가 경쟁하느라 자신들에게 끌릴 시선이 줄어들 것이며.

추가적으로 자신들이 사치부릴 여유가 있는줄 착각한 이들중 몇몇은 스스로 고개숙여 복종하기를 원했다.

첫번째힘, 호위부대와 두번째힘, 군대에 이어 세번째 힘, 가문직속들이 생겨난것.

물론 진짜 강한 놈들은 거의 강도마냥 뻗대며 자리를 잡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딱히 거슬리지도 않았다.

다른 생존자놈들이나 이놈들이나 쓸모없는데 먹을걸 축내는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니, 열배 강해도 열배를 처먹지는 않으니 오히려 기특하다.

그런 놈들이 욕심부리지않고 지하에 처박혀있으니 감사할 정도.

물론 이 모든 것들에는 한계가 온다.

당장의 위협으로부터 균형을 잡았지만 결국 가장 처음에 고민했던 종막이 다가온다.

평온을 위해 수도꼭지를 틀어야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

하지만 결국 그들은 성공했다.

버티고 버틴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

물자가 바닥나고 폭동에 휩쓸리기전 그들이 생각한 <희망>이 도착했으니.

칠국연합.

그들은 말했다.

자신들 가문을 얽매어오던 <사명>을 안다고.

자신들을 도와 협력하면 그 대가로 자신들을 각국의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겠다고.

그때부터 서서히 준비했고.

오늘 모든것들이 마무리된다.

나태해지는것도 모자라 가문사정을 잘알았기에 점점 더 주인을 만만하게 보고 슬금슬금 선을 넘으려던 호위부대 녀석들은 모두 방패로 세워 죽였고.

정말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힘이 되어줄 군대는 미리 그들의 가솔들을 데리고 도시 바깥, 자신들을 위한 배가 도달할 곳으로 보내두었으며.

이제 아래, 쓸모없이 밥만 축내는 식충이들과 염치없이 집안으로 쳐들어온 강도 놈들도 지금 정리할 것이다.

<...>

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던 아타나엘이 입을 달싹였다.

설명하면 속이 후련할것같아 실행하기전 아래 모아놨는데 막상 입을 열려니 모든것이 허무했다.

자신이 뭐하러 저런 것들을 위해 일일히 설명한단 말인가.

하지만 한가지는 말해야겠다 싶었다.

자신들, 일곱 가문이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사명.

이곳에 모여 자리를 잡고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지어야했으며.

지금 아래 사람들을 이곳에 모아놓은 이유.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연방이 존재하기 전에도 나라가 있었고 그들이 사악한 존재들을 물리쳤기에 평화가 찾아왔다는걸?>

아타나엘의 말에 아래 모인 이들이 술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