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열받은 군파츠의 옆, 아린과 카티와 페리트란등이 민망한 표정으로 이마를 집었다.
콰아아아앙...
그 심정이 이해가기는 했으니까.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랐던 카트란.
한데 준비를 끝마치고 막 출발하려던 순간 갑자기 배, 오시리스가 목적지를 설정하고 자신들을 그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가기 싫어도 거의 반강제적인 결정.
어느정도의 통제권이 달리안을 통해 넘어오긴 했어도 결국 대부분의 권한은 이 모든 것을 주도해서 건조한 카트란에게 있었다.
만약 가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이 격동의 망망대해에 멈춰선 배와 함께 섬들에 표류하는 신세가 될수도 있는 상황.
한데... 목적지가 이정도로 흉험한 곳일줄은 몰랐다.
설마 그 살벌한 기운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대한 태풍의 한복판이었을 줄이야!
자신들조차 혹시 카트란이 다같이 죽자고 관짝 안으로 불러들이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후욱... 후우. 좋아 뭐 좋아. 그래그래. 부른건 그렇다 쳐. 이놈은 어딨는거야?"
수천명을 배와 통째로 끌어와놓고 코빼기도 안보이다니.
성질을 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군파츠를 향해 한 소녀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응?"
"저... 내 노예가 이쪽으로 가보라고 했는데."
"... 가지가지한다 진짜. 뭔 짓을 하고 다니는거야."
군파츠가 기가 막힌다는듯 허허 웃었다.
거두절미된 내용이었지만 소녀의 노예라는게 누군지는 단번에 알수 있었으니까.
그런 군파츠와 사람들을 향해 들려온 작은 통신음.
치직...
<잘 도착했어?>
"아오."
<너무 화내지 말고.>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군파츠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
강태석이 목걸이를 통해 전한 내용은 간단했다.
도시 한가운데 갇혀있으니 좀 구해달라는 것.
<저택을 부수면... 치직... 될...>
치지지직...
"어어 이거 왜 이래?"
이야기를 하던중 치직거리기 시작하는 무전기에 소녀가 탁탁 내리쳤다.
하지만 허사.
무언가에 방해받는지 전파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 소녀를 향해 내뻗어진 고운 손길.
"잠시만요."
"음?"
손을 내뻗은 이는 달리안.
달리안이 무전기를 몇번 만지작거리며 안에 마력을 불어넣은 순간.
키이이잉...
깜빡거리던 무전기의 붉은 불빛이 꺼졌다.
"뭐한거야 지금?"
"폭탄해제메세지를 보냈어요. 이제 풀렸겠죠. 어차피 통신은 더 이상 못쓸것같았으니까."
"??!!!"
이어 달리안으로부터 무전기를 돌려받은 소녀의 얼굴이 복잡함으로 물들었다.
아쉬움, 후련함, 의문.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과 뭔지 모를 아쉬움, 동시에 왠지 모를 후련함이 공존하는 표정.
하지만 이윽고.
"푸흐... 그래 뭐. 욕심 안부리는게 낫지."
콰직.
돌려받은 무전기를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투덜거리며 구석 어딘가로 물러난 소녀를 보던 달리안은 고개를 돌려 주변 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쩔거에요? 이야기 들어보니 시간이 많이 없는데."
콰르르르릉...!
도시 저너머, 한가운데에서 점점 더 허공으로 강하게 분출되는 붉은 기운을 가리키는 달리안의 말에 카티가 턱을 매만졌다.
그 말대로.
도시 한가운데서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깨어나고 있고 저게 깨어나면 자신들은 모두 다 죽는다.
아니, 그 이전에 서쪽에서 폭풍을 만들며 다가오는 수수께끼의 존재에게 휘말려도 죽는건 마찬가지.
하여간 살고 싶다면 빠르게 카트란을 구해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를 방해할 존재들이 문제.
이곳, 일곱가문이 부리는 군대.
그리고 이들을 돕는 칠국연합의 인물들.
듣자하니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다.
군대도 무기고로 무장했고 칠국연합 녀석들도 나름 한가락하는 모양.
하지만 딱히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 해야할건 정면돌파.
"다시 타자. 너도 이리 오고."
쿠르르르르릉...
카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다시 배로 올라탈 준비를 했다.
이미 달리안에 의해 배는 준비완료.
이대로 저택을 향해 직진한다.
어엉? 너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왜 반말이... 어어?
...
소녀의 말을 무시하고 들쳐업은 카티가 위로 뛰어오르려던 그때.
쿠르르르르르...
피이이이이이잉!
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앙!
저 멀리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수많은 공격들.
기갑투창부터 시작해서 레일건, 각종 장갑차의 대인투사체까지.
그야말로 온갖것들이 수키로미터 밖에서부터 그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 주변을 순식간에 포화더미로 만들어버리는 화염의 폭풍들!
콰콰콰쾅!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하는 공격에 뛰어오르려던 카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카트란의 말에 의하면 일곱가문의 군대는 도시 외곽에 주둔해있는 상황.
아직 사태파악이 안되었어야할텐데 공격이라니?
잠시 고민하던 카티는 금방 답을 내렸다.
"도청당했군."
콰득...
바닥, 소녀가 떨어트린 무전기를 짓밟은 카티가 혀를 찼다.
**
중앙지대.
치직...
"씁. 걸렸네요."
적색의 반달을 허공에 레이더마냥 빙글빙글 돌려대던 아벨출신의 30대 남성, 무마드가 아쉽다는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상황.
"뭐야. 별것도 아니었잖아. 남쪽에서 온 놈들이었다니."
"거기도 생존자가 있긴 있었어? 도시는 어떻게 벗어난거지?"
무마드의 주변을 둘러싼 여섯 남녀들의 얼굴에는 이미 여유가 한껏 되돌아온 상태였다.
설마설마했는데 고작 칠국연합의 경계에서도 더 남쪽으로 가야하는 놈들이었다니.
거긴 정말로 뭣도 없다고 판단되어 자신들도 딱히 신경쓰지 않았던 동네.
그곳에서 어떻게 저런 배를 만들어냈는지가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그뿐.
결국 중요한건 <배>가 아닌 그 안에 누가 타고 있느냐이다.
"저기... 그래도 최대한 살생은 안벌이는게 좋지 않을까요? 자카르 신께서는 인류끼리 서로를 아끼라고 했어요."
"저 새끼들이 항복하면 아무런 문제없지. 그리고 곧있으면 항복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입을 여는 어린 소녀의 말에 적발 여인이 이죽였다.
무시안하려고 해도 무시를 안할수가 없다.
남쪽에서 온 놈들이라니.
무기고는 털 전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반면 일곱 가문의 군대는 완전무장.
저 너머에서 내달리는 배를 향해 쏟아지는 거대한 화염의 비들이 이를 증명한다.
"내기 어때? 나는 반쯤 오다가 외장이 뚫린다에 마파란의 비전서를 걸지. 이거 저기 암시장에서 흘러들어온건데 아주 쓸만하다고. 다른 녀석들 없어?"
적발 여인이 몸을 돌리며 다른 국가의 이들을 보고 웃던 그때.
콰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한 굉음이 적발 여인의 등 뒤에서 터져나왔다.
쏟아지던 화염들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진동.
이어 적발여인의 등 뒤쪽을 바라보던 아벨의 남성, 무마드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까지 도착한다에 걸죠. 그런데 지금 즉시 지급하는거 맞죠?"
무마드의 얄미운 말투에 뒤를 돌아본 적발 여인이 이내 저 멀리서 펼쳐지는 광경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렸고.
그와 동시에.
"나도 도착한다에 걸지."
"저도요."
"저도 걸겠습니다."
"나도 걸지."
"크흐. 무르는거 없겠지? 나도 도착에 한표."
"... 쓰앙."
앞다투어 말을 토해내는 다른 녀석들의 태도에 적발 여인이 기어이 쌍욕을 내뱉었다.
**
콰콰콰쾅!
우아아아아악!
도시를 질주하는 오시리스 위로 온갖 공격들이 쏟아져내린다.
중앙플랜트를 집어삼킨 군대의 공격.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적발 여인의 판단대로 오시리스는 그대로 진격을 멈추고 화망을 피하기 급급했을 것이다.
바로 전도시, 카툰에서도 그들은 오토른의 병력이 지닌 화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머리를 숨겨야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다 쏟아부어! 얻은거 모조리! 그 시장 놈들이 가져다준거 몽땅!"
텅텅텅텅!
내부 복도를 거닐며 벽면을 탕탕치는 군파츠의 음성이 우렁차게 각 객실, 하나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쉘터의 무장병들을 향해 전해졌다.
이어지는 거대한 포성들.
콰콰콰콰콰콰쾅!
파파파파팡!
쏟아부어지는것만큼의, 아니 어찌 보면 그 이상의 화력들이 객실에서 밖을 향해 뚫린 객창을 통해 쏟아부어진다.
기갑투창, 레일건, 고폭장약.
육중한 거체와 단단한 외장을 기반으로 더욱 사납고 거칠게!
콰콰콰콰쾅!
...!!!!!!!!!!!!!!!!
쿠르르르릉!
"으하하하하! 좋아좋아! 이래야지!"
고개를 숙여 작은 창 너머, 기세좋게 몰려왔다가 놀라 기겁하며 장갑차들의 머리를 돌리는 상대를 본 군파츠가 탕탕 무릎을 쳤다.
사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전법이다.
누가 이런 고화력들을 지니고 정면으로 달려들어 부딪친단 말인가.
다만 서로의 급한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
자신들은 빠르게 저택에 도달해야하고 저들은 급하게 이걸 막아내야한다.
그리고 이런 정직한 충돌은 방어력높고 화력높은 쪽이 장땡.
화력은 비슷했지만 이 거대한 육상장갑차가 기동력과 방어력에서 비할수없이 상대를 압도한다!
하지만 군파츠의 미소가 채 끝나기도 전.
콰콰콰쾅!
콰드드득...
우아아아아아악!
몇칸 옆의 객실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짓이겨지고 뜯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들리는 비명소리는 분명 자신의 수하녀석들의 것.
"뭐야! 이놈들아! 설마 창밖으로 머리라도 내밀었어?"
촤르르르륵!
바디슈트를 둘러메고 다급하게 복도를 나간 군파츠가 순간 멈칫했다.
어느새 복도로 나와있는 한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
슈우우우욱...
"이 새끼들아. 너희들때문에 다 털렸잖아. 어쩔거야."
전신을 적룡의 문신으로 둘러싼 적발의 여인.
이에 군파츠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
쾅쾅쾅쾅!
콰아아아아아앙!
객실 복도를 발로 우그러트리며 질주해온 여인이 그대로 군파츠를 후려쳤다.
**
갑판, 천장, 객실, 복도.
구멍이 뚫린 곳이라면 가릴것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무언가>들이 새어들었고.
그렇게 새어든 곳에서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는듯 동시다발적인 폭음이 터져나왔다.
콰콰콰쾅!
콰쾅!
"남의 배에서 아주 대놓고 난동을 부리는구나."
키키키킥...
어딘가에 이상이 생겼는지 단번에 느려지는 배의 속도에 하단부, 질주하는 배옆으로 작게 열린 쪽철문에서 대기하던 카티가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 봤을때는 지나치게 두텁고 육중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나마 이정도 되니까 이 난장판 속을 견뎌내며 내달리고 있는 것.
후욱...
숨을 고른 카티가 거대한 전투창을 들고 저 멀리, 아직 거리가 남아있는 도시 너머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면 역시나 <예상대로> 시간이 모자란다.
이 느려진 속도로는 도착한다고 해도 제시간에 저택을 부술수 있을지 없을지 알수없는 상황.
결국 방법은 하나.
"준비됐지?"
카티의 말에 옆에 서있던 아린과 달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거대한 배 전체가 미끼.
이 배가 격전에 휘말려있는동안 자신들이 내달려 저택을 박살내고 카트란을 구해낸다.
다만 카티의 표정이 영 좋지는 않았다.
이유는...
"나는 나쁜 아빠다... 전장에 딸을 데리고 간다니."
풀이 죽은 카티의 어깨를 센티널에 타려던 아린이 토닥였다.
"너무 그러지 마요. 원래도 엄청 좋은 아빠는 아니었는걸?"
"..."
"그래도 좋은 대장이니까 아빠는. 가자."
"... ......."
잠시후.
키이이이이잉...
터어어어엉!
크탄과 센티널에 올라탄 아린과 달리안이 내달리는 배에서 뛰어내려 미친듯이 저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 하."
한숨을 푸욱 내쉰 카티가 자신의 거창과 거태도를 챙겨든뒤 훌쩍 뛰어내려 그 뒤를 따랐다.
**
구덩이, 지하.
상황은 여전히 개판오분전.
크아아아아아아앙!
우아아악!
여전히 밀려드는 쿤츠의 해일과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털커덩...
"목걸이... 풀렸다."
자유로워진 강태석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퍼져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