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73화 (7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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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석이 하늘로 튕겨나가 사라진 날.

도시, 카툰.

<당신들, 지금 이상태로 가면 다 죽을겁니다.>

시장, 오토른의 말에 모여있던 이들중 누군가가 성을 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단언하느냐고.

이에 오토른이 간단히 말했다.

<배 주인이 여러분이랑 격이 달라요. 솔직히 같이 다니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건 실력 이전의 문제에요. 같이 다니면 수준차이나서 죽습니다.>

이에 누군가는 부정하듯 미간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심각한 눈으로 침묵을 지켰지만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모두 이를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폐허더미에서 말도 안되는 것들을 모아 배를 조립하고 하늘에서 내려든 푸른 폭풍을 정면으로 꿰뚫었으며 홀홀단신으로 일어나 플랜트에 내려든, 죽음 그 자체와 같던 괴인을 물리쳤다.

오토른의 말대로 이건 강함 이전의 문제.

상대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가진 것들을 모두 쥐어짜 차례대로 파도를 헤쳐넘어왔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럴수 있는가?

당장 영상속, 하늘에서 내려든 괴인이 눈앞의 플랜트가 아니라 자신들의 배로 내려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런 이들을 향해 오토른의 냉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계속 배를 몰겠지요. 그건 여러분들이 따라갈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 수준에 맞춰서 목적지를 정해도 죽어요. 지금 상황이 정말 심상찮으니까.>

그러며 시장, 오토른은 뻥 구멍뚫린 플랜트의 밖, 서쪽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뚫린 외벽 너머, 너르게 펼쳐진 도시의 폐허와 은빛 바다위로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진다.

멀리서도 보이는 먹빛 구름, 간헐적으로 보이는 번개줄기들.

그리고 그 안에서 뿜어져나와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흘러드는 흉험한 기세.

서쪽에서 거대하고 강렬한 폭풍이 불어오고 있다.

며칠전 남쪽, 이들이 온곳에서 터져나왔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

한가지 확실한것은 남쪽에서 몰아치던 폭풍은 채 자라나기도 전에 스러졌지만 서쪽에서 터져나온 폭풍은 그렇지 않다는것.

저 가운데 어떤 존재가 있는지 몰라도 저 재앙같은 존재는 착실하게 세상을 집어삼키며 그 힘을 불려나갈 것이며.

뒤쳐지는 이는 저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집어삼켜져 그 안 존재의 제물이 될 것이다.

너무 느려도, 너무 빨라도 죽는다는 이야기.

침묵을 지키는 이들을 향해 오토른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나는 생각이 있어 이곳에 남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 배에서도 남겠다는 이들이 있다면 남아도 되요. 하지만 만약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있다면 지금으로는 안됩니다. 더 강해져야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는 누군가의 말에 오토른이 말했다.

<일단 우리 무기고의 무기들을 가져가세요. 당신들에게 더 필요할 거니까. 그 대가로 우리 도시를 떠나고 싶어하는 이를 태워주고. 도시의 방위는 내 기계병기들로도 충분해요.>

어차피 결국 배팅이다.

남는것과 떠나는것, 둘중 무엇이 오래 살아남는 길일지 알수 없는 상황.

결국 스스로가 선택해야하고 그렇기에 일단 시장 오토른과 카티들은 거래를 했다.

플랜트와 배의 인원들중 떠날 이들은 떠나고 남을 이들은 남기로.

이런 섬들을 더 거쳐야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빠진 배의 몇몇 쉘터와 피난민들은 그대로 내려 중앙플랜트에 남기로 했고.

하늘에서 내려온 재앙이 언제 다시 강림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린 플랜트의 생존자들중 일부는 배에 타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어 오토른의 두번째 제안.

<이 탑을 짓는데는 정말 수많은 기술들이 필요했습니다. 붉은 구체에서 그것들을 얻어냈죠. 이걸 당신들에게 일단 적용할수 있는만큼 적용해주겠습니다. 중앙플랜트까지 모두 동원하면 최대한 시간맞출수 있을겁니다. 마침 도와줄 사람도 있어보이니까요.>

말을 마친 오토른은 고개를 돌려 달리안을 바라보았다.

**

배, 하부복도.

엔진실을 향하는 길.

슈우우우우우웅...

"...??"

두개의 초승달을 통해 푸른 광선들을 퍼부었던 셔츠차림, 무마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연기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크-레이>

근처 에너지를 강제로 끌어다 허공에 재배열한뒤 빔 형태로 퍼붓는 기술.

일월의 <마법>이란, 반쯤은 믿기 힘든 학문과 아벨의 최신작품인 <삼월>, 거기에 자신의 개인적 성과까지 더해져 탄생한 역작.

레일건만큼은 화력이 안나오지만 뭐하러 그렇게 그런 고화력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쏘는 주체인 사용자들만 구워버리면 간단한 노릇.

그리고 레일건이나 여타 화기보다 훨씬 더 넓은 파괴범위를 자랑하는 아크-레이는 그에 딱 맞는 공격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치이이이이익...

통로를 메운 연기가 서서히 스러지며 그 너머로 멀쩡하게 선 이들이 보인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건 반투명한 붉은장막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방패.

높이 1.8m, 폭 1m.

빛으로 이루어진 그 방패는 얇은 금속재질장갑을 낀 이들의 십자형태로 교차한 양팔에서 뻗어나와 개개인의 전신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런 이들의 주변, 어느새 복도 바닥과 벽면 전체를 질주하듯 이어진 붉은 빛의 회로.

키이잉...

키이이이잉...

복도 주변의 깜빡이는 붉은 빛이 점멸할때마다 그들이 낀 금속장갑의 금속회로와 붉은빛의 방패가 연동되듯 함께 깜빡인다.

이를 본 무마드가 당황하며 뒤로 허둥지둥 물러섰다.

"아 큰일이네. 이거 상정 외인데... 왜 대체 이런 동네에 <버프>까지?"

**

버프.

사방팔방 에너지잡아먹는 괴물같은 병기와 신기술들때문에 생겨난 고민.

바로 출력에 비해 지니고 다닐수있는 에너지량이 적어 항상 온전한 전투력을 낼수 없다는것.

당장 개인화기에 비해 뛰어난 위력을 보이는 레일건만 해도 이게 문제였다.

탄환이 있어도 레일건 내부의 축전에너지가 다 떨어지면 이건 고철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핵융합엔진이나 중앙플랜트같은 초강력 발전시설이라면 몰라도 개개인이 지니고 다닐수 있는 에너지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아이디어.

<근방에 강대한 에너지원이 있다면 이를 전송하여 사용할수 있지 않을까?>

발전된 과학기술.

거기에 아직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신비에 가까운 여러가지 무언가들.

그 모든것들이 한데 모여 탄생한 역작.

키이이이이잉...

핵융합엔진에서 뻗어나온 에너지가 복도의 붉은 회로들을 타고 질주하며 혈관마냥 구석구석으로 고출력의 에너지를 공급했고.

그렇게 뻗어나간 에너지가 복도사이에 선 이들의 장갑으로 흘러들어 붉은빛의 방패를 만들어내고 레일건의 에너지바를 터질것처럼 끝까지 채워낸다.

이어 터져나온 페리트란의 외침.

"앞열, 방패 유지하고. 뒤는 퍼부어!"

투콰콰콰콰콰콰콰콱!

콰카카카카칵!

"우아앗! 우아아아앗!"

폭포수같은 레일건 세례에 황급히 두개의 달을 겹쳐 푸른 장막을 만들어낸 무마드가 반사적으로 몸을 수그리며 비명성을 내질렀다.

제기랄, 아무래도 자신은 이런 실전업무는 잘 안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아크-레이도 잔인한 꼴은 보기 싫어 모조리 증발시키려고 만든 기술인데 이런 곳에서 이런 꼴이 되다니!

파파파파팡!

파파파파파파파팡!

아벨의 역작, <삼월>의 두 초승달에 내장된 자동전투알고리즘이 스스로 복도 너머의 적을 파악하고 아크레이를 퍼부었지만 그때마다 가장 앞에 선 이들의 붉은 방패가 번번히 푸른 섬광을 막아내고 튕겨낸다.

방패 자체가 고출력은 아니었기에 공격을 얻어맞을때마다 색이 살짝 흐려지긴 했지만 그야말로 잠시뿐.

키이이이잉...!

언제 그랬냐는듯 주변에서 공급되는 넘치는 에너지에 순식간에 예의 붉은 빛을 되찾아버리는 방패에 무마드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무리 역장이라고 해도 퍼부어지는 총알세례에는 답이 없다.

심지어 에너지가 바닥날 기미도 안보이는 레일건들이 뿜어내는 화력들이라면 더더욱!

쩌저저적...

쩌적...

금이 가기 시작한 푸른 방패를 보던 무마드가 기어이 장탄식을 토했다.

"아아 망할 진짜! 나중에 일월 그 재수없는 꼬맹이가 또 개지랄할텐데!"

하지만 망설일때가 아니다.

"적월! 이리 와라!"

무마드가 뒤쪽을 향해 버럭 소리침과 동시에.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파파파파파파팍!

엔진실 안쪽에서 날아든 붉은 금속반달이 빠르게 분리되며 그 형태를 바꾸었다.

팔, 다리, 가슴, 머리.

전신을 감싸는 갑주의 형태로.

그렇게 날아들어 분리된 붉은 갑주가 단번에 무마드의 전신을 둘러쌈과 동시에.

쩌저저저저정!

퍼퍼퍼퍼퍼퍽!

쿠르르르릉...!

푸른 장막이 박살나고 깨어지며 느려졌던 배, 오시리스의 속도가 원상태를 향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

안전지대, 저택가.

좌측은 아린의 센티널.

우측은 달리안의 크탄.

원래는 양쪽으로 흩어진 둘은 각자의 저택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야했지만.

의외로 그들은 현재 오른쪽 저택에 둘 모두 모여있었다.

이유는 하나.

콰아아아아아앙!

"아아 진짜. 일월의 그 치만 도와줬어도 벌써 끝났을건데. 약한게 죄고 강한게 벼슬이에요. 그죠?"

한손으로 부웅 거대한 센티널을 내던져버린 정장 사내가 눈앞, 뒤엉켜 저택가의 벽면에 함께 처박힌 기계인형을 보며 한탄성을 내뱉었다.

말 그대로.

그 말많고 탈많은 질풍노도의 청년은 스윽 도시 전체를 훑어보더니 어딘가로 그냥 사라져버렸다.

짤막한 한마디만 남긴채로.

<끼어들 가치가 없군. 나는 그냥 쉬도록 하지. 내 할일은 다 한거같으니까.>

"설마 아까전에 기륜이 끼어들어서 삐진건가 모르겠어요."

기륜.

청무국 출신 무인.

<쿠하압!>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창을 든 사내의 이름을 언급하며 혼잣말을 하던 정장사내의 머리 위로 쾅쾅쾅쾅 달려온 크탄의 거대한 태도가 휘둘러졌다.

크기 10m의 기계인형이 휘두르는 특수중합금제 15m짜리 금속칼의 내리찍기.

하지만...

우우우웅...

정장사내가 손을 들어 칼에 가져다댄순간 그 속도와 운동에너지가 어디갔다는듯 순식간에 그 거대한 칼이 멈춰섰다.

마치 손으로 가볍게 수수깡을 막은듯한 모양새.

이어 정장사내가 가볍게 그 거대한 칼을 살짝 쥐고 휘두른 순간.

<.........!!!!!!!!!!!>

콰아아아아아아앙!

검째로 가볍게 휘둘러진 크탄의 육체가 공중으로 붕 뜬뒤 강렬하게 바닥으로 처박혔다.

마치 아까전 센티널처럼 말이다.

들어올려질땐 깃털처럼, 내리찍힐때는 산악처럼.

<커헉...>

쿠구구구구구...

바닥에 처박혀 쿠르륵 밀려난 기계인형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만들어낸 정장사내가 반쯤 박살난 저택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할까요? 사실 저택만 포기하면 저도 숙녀분들한테 손대기는 좀 그래서."

"..."

"솔직히 이거 보고 더하고 싶어요? 차이가 압도적인데."

곤란하다는듯한 정장사내의 말에 서있던 달리안과 센티널 안, 아린이 눈을 감았다.

사내의 말이 맞다.

차이는 압도적.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이며 자신들을 밀어붙인다.

마치 이전 도시에서 보았던 영상속의 그 괴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달리안. 알지? 저건 가짜야.>

키잉....

센티널 속에 탄 아린의 말에 달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저건 <가짜>.

겉으로 보면 비슷할지 몰라도 영상속에 보았던 괴인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똑같이 현실을 무시하는듯한 괴력으로 보여도 뭔가 근본부터 다른 상황.

물론 그와 별개로 상대하기 까다로운건 사실.

눈앞에 괴인이 있었다면 자신들은 진작에 두동강이 났을거라는 거지, 저 사내가 만만하다는건 아니었다.

둘이 가라앉은 눈으로 정장사내를 바라보던 그때.

쿠구구구구궁...

도시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진동에 셋의 시선이 동시에 어딘가로 돌아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건… 어느새 원래의 속도를 되찾고 맹렬하게 질주하고있는 거대한 배!

순간.

키이이이잉…!

놓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한 달리안에 의해 질주하던 배가 살짝 방향을 틀었다.

그들이 선 저택을 향해, 정확하게!

쿠구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역도를 자랑하며 해일처럼 몰려드는 은빛 거선!

“이런…!”

<저것도 막을수 있나 한번 보자고.>

당황하는 사내를 보며 작게 웃은 아린이 빠르게 달리안을 잡고 뒤로 뛰어오름과 동시에.

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배가 거침없이 정장사내가 서있던 자리와 저택을 통째로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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