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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으로 전해지는 진동, 주변의 요란한 소음.
쿠르르르르릉...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살아있나...'
정신을 차린 아니타가 눈을 깜빡였다.
칼휘두를 힘도 없이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 자신의 칼을 신입이 빼앗아가던게 기억의 마지막.
이어 사방으로 푸른 빛이 번득였던것같은데 무엇이었는지까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스윽...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아니타의 눈에 들어온건 일단은 옆에 함께 기절해있는 구련장의 동료와 볼츠, 그리고 몇몇 생존자들이었다.
그 수가 수십뿐이고 대부분이 피투성이긴 했지만 그 지옥구덩이 속에서 살아나왔다는게 신기할 정도.
그런 이들의 주변으로 보이는건 처음 보는 복장에 얼굴들을 한 낯선 이들이었다.
모두가 갑판으로 보이는 공간 가장자리에 서서 바깥,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러고보니 여긴 어디지.'
갑판?
배?
자신들이 살던 안전지대나 도시에는 있을리가 없는 물건.
힘겹게 아니타가 상체를 일으키자 바닥에만 국한되어있던 시야가 넓어지며 그제서야 사방의 광경이 온전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하게 생긴 배.
멀어지고 있는 적색의 하늘.
그 아래로 보이는 자신들의 도시.
그리고 그 한가운데...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니타가 도시 한가운데서 괴성을 내지르는 존재를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거대한 먹구름에 휩싸인 도시, 사실 보이는건 다리밖에 없었다.
쿤츠처럼 숭숭 털이 난 굵고 억센 다리.
하지만 그런게 여덟개.
거기에 거미같은 하체.
하체만 해도 키로미터 단위로 세야할것같은 거체가 쿵쿵거리며 도시를 짓밟고 상공을 둘러싼 태풍속, 구름의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아아아아아앙!
후우우우웅!
후우우우우우웅!
팔을 휘두르는듯 먹구름이 훅훅 갈라지며 보기만 해도 흉측한 손톱이 난 손들이 허공을 가른다.
그 사이로 보이는, 마치 모기같기도 하고 벌레같기도 한 무언가들.
확인하고 싶지만 그 크기가 워낙 작고 거리가 멀어 무엇인지 제대로 볼수가 없었다.
다만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는것 정도만 알수 있었을 뿐.
허어어어...
진짜 죽기 직전이었네.
간신히 살았네 이번에도.
주변, 갑판에 우르르 둘러서 이를 구경하듯 바라보며 탄성, 혹은 탄식을 내뱉는 이들을 바라보던 아니타가 절뚝거리며 자세를 다잡고 일어섰다.
기절해있던건 기절해있던 거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 약세를 보이고싶지는 않았다.
거기에 범상치 않아보이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쿠구구구구구...
은빛바다를 가로지르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거대한 배.
이런건 본적도 없다.
이런걸 가진 이들이라면 필시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대하고 여유있는 이들일터.
그런 이들이 왜 자신들 도시를 방문하고 자신들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툭툭.
"야야. 일어나봐. 야야."
아니타가 바닥의 구련장들을 비롯한, 보르그와 볼츠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깨우던 그때.
저벅.
"일어났습니까?"
"..."
"이리 오십시오.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 당신들 처우도 이야기해야하고."
무장한 십수명의 남녀들을 이끌고 나타난 사내 하나가 아니타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한눈에 봐도 만만찮은 느낌.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무기도 없고 몸은 만신창이.
끄으으으응...
서서히 정신차리며 깨어나는 동료들을 흘긋 본 아니타가 양손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
저벅.
사내들을 따라걷던 아니타와 구련장, 그리고 볼츠의 다른 이들이 벽면의 복도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박살나있다.
격전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는 배.
이들도 마냥 순탄한 행적을 거쳐온건 아니라는게 여실히 보인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신기한건 이 배 전체.
콰르르르릉...!
"이런건 대체 어떻게 만든거야."
"만들었겠어? 구했겠지."
서로 속삭이며 걷던 볼츠중 누군가가 톡톡 앞장서 걷던 아니타의 등을 건드렸다.
대장사내.
아니타의 등에 살짝 그린건 8자의 무늬.
이에 앞서 걷던 아니타가 작게 아래 뻗고있던 왼손을 까딱였다.
사내가 보낸 신호는 간단했다.
혹시 모를 전투의 대비.
말로 잘 풀리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모르는게 세상일이다.
하물며 이정도로 힘의 격차가 나보이는 상황에서라면 상대가 정말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하지만 지금 만나러가는게 배의 높은 사람같은건 분명 좋은 상황.
방심을 노려 여차하면 상대를 인질로 잡는다.
그 수신호가 따르던 볼츠의 이들 사이로 퍼졌고 이내 구련장을 비롯한 이들이 암묵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를 마쳤다는 뜻.
이어 복도가 끝나고 어딘가 공간이 나오자 자신들을 앞장서 데리고 가던 사내가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카트란. 데리고 왔다."
도착했다는 의미.
이에 전신의 위협적인 기운을 죽이며 넓은 객실로 보이는 어딘가에 도착한 아니타는 이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신입...?"
"어. 왔어?"
수십명, 강렬한 기세를 풍기며 선 이들.
한눈에 봐도 만만한 이들이 하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우뚝선 이들 사이.
"들어와. 앉으려면 앉고. 바닥밖에 없지만."
그 한가운데의 침대에 홀로 앉아 인사하는 익숙한 얼굴에 아니타를 비롯한 볼츠가 눈을 꿈벅였다.
**
쿠르르르릉...
"..."
"......"
바닥에 앉은 아니타와 구련장들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자신이 데려온 신입이 설마 이 배와 연관이 있었다니.
하물며 포진을 보니 엄청나게 중요해보이는 인물로 보이는 상황.
그렇지 않고서야 신입을 가운데두고 저 한가락하는 녀석들이 주변에 주욱 둘러서있을리가 없다.
그렇기에 찾아든 침묵.
그런 이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뿌득 풀고 그들의 앞으로 갔다.
아직 몸상태가 성치않고 정신은 몽롱하지만 대화를 못할 정도는 아니니.
"일단 이거. 빌려서 잘썼어. 기억없을때 조금 부숴먹긴 했는데... 나중에 필요한거 있으면 말하고. 고칠수 있으면 고쳐줄거고."
촤륵.
이에 건네진 연검을 챙겨받은 아니타가 자신의 연검을 바라보았다.
기억속, 마지막에 누군가 연검을 받아갔다 생각했는데 그게 누구였나 했더니 신입이었던 모양.
과연 살펴보니 끝부분, 연검의 마디 몇개가 뜯어져있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 그게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안에서 살아돌아오면서 끝부분 좀 깨지고 끝난게 신기할 지경이었으니까.
궁금한건 다른것.
"신입, 어떻게 된거야."
"뭐긴. 어떻게든 살아서 탈출한거지."
그런 강태석의 말에 사방에서 강태석을 향해 몇개의 곱지 않은 눈초리가 꽃혔다.
군파츠를 비롯한, 개고생한 몇몇들과 각 쉘터들을 맡고 있는 쉘터장들중 일부.
정말 목숨걸고 들어갔다 살아나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는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정말 제대로 항의할만한 문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입술만 꾸득꾸득 깨물며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까전부터 강태석의 몸 주변을 휘도는 기묘한 기도.
그야말로 사방을 홀로 제압할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강자만이 흩뿌릴수 있는 여유가 넘친다.
몸상태가 성치 않음에도, 아직 정신이 몽롱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번데기가 나비로 우화한듯한 변화.
그렇기에 그중 하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 그 괴인과 같은 종류가 된건가? 그거 어떻게 한거지?"
주변이들.
아니타와 볼츠, 그리고 쉘터장과 아린등을 비롯한 모두가 지금 이자리에서 가장 궁금해하던 것.
그런 이들을 대변한, 아니타들을 따라들어온 군터의 질문에 강태석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일단 알고 있긴 알고 있어야할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경계선을 넘어 칠국연합들의 영역에 들어가게 될테니 말이다.
마침 적합한 이들도 대충 다 모인것같고.
스윽.
주변, 아린등을 비롯해 형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본 강태석이 입을 열었다.
"소위 <벽>이라는걸 넘는다는 거야. 그리고 이걸 넘으면 그때부터 완전 다른 존재가 되는거고."
말을 마친 강태석이 손가락을 들어올린 순간.
키이이이이잉...
형용할수 없는 푸른 빛이 수정처럼 맺혀 손가락 끝에 피어오르며 방 전체를 밝혔다.
**
세계관적 법칙.
레벨이 오르면 강해진다.
하지만 이 레벨이라는건 사실 양날의 검과 같다.
강한 근육, 드높은 폐활량, 말도 안되는 재생속도.
공짜로 주어지는게 아니다.
생명체가 스스로 내부에서 이를 만들어내고 지탱하고 유지해야하는.
정말 말도 안되는 노력과 자원의 비효율적 소모를 필요로 하는 것들.
보디빌더가 남들 2배정도의 근육량을 얻기 위해 평생을 무거운 쇳덩이를 들어야하듯.
빠르고 강한 스포츠카가 그 대가로 말도 안되는 연비와 가격을 필요로 하듯.
크기 수십미터가 넘는 거인이 현실적으로 내장이 무너져 죽기 때문에 존재할수 없듯.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이유가 없고 존재하기도 힘든 것들.
그렇기에 레벨이 올라갈수록 이를 구현하기 힘들어하는 육체를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은 경험치, 더 많은 수련을 투자해야하고.
이는 로그그래프처럼 투자대비 점점더 완만해지는 성장곡선을 그려내며 어떤 한계치를 향해 수렴해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수렴하는 어떤 점, 혹은 <선>이 벽이다.
생명이 수련을 통해 넘어설수 없는 한계치.
"그냥 계속 수련하면 되는거 아냐?"
군파츠의 질문에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각 세계관의 한계가 다르지만 보통 이 <벽>이라는게 생기는 이유는 결국 태어난 종의 한계때문.
계속 수련해서 더 강해질수있냐고 묻는건...
"평범한 사람이 계속 운동하고 풀먹으면 코끼리가 될수있어?"
"..."
"애초에 노력 이전의 문제지."
그렇다.
결국 벽이라는건 인간이라는 종의 육체이자 생명의 한계.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는 훨씬 더 그 커트라인이 낮았기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프로운동선수, 레벨로 치면 1-2정도이며.
이 세계는 그 선이 좀더 높기에 노력하면 총알을 피해내고 칼로 대리석을 쪼갤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10정도.
하지만 이러면 또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코끼리가 된거지?"
페리트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강태석에게 집중되었다.
그렇다.
말이 되지 않는데 이걸 이뤄낸 이들이 있다.
전의 괴인이 그렇고 눈앞의 카트란이 그렇고.
그리고 믿기지야 않지만 연방 어딘가에 존재했었다는 대초인들이 그렇듯.
인간의 몸으로 코끼리, 고래, 그걸 뛰어넘어 용과 같은 존재로 거듭난 이들이 버젓이 현세에 존재한다.
그런 페리트란의 질문에 강태석이 덤덤히 대답했다.
"그게 벽을 넘는거야. 종으로 치면... <다시> 태어나는거지."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의 육체로는 안된다?
그러면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면 되는것 아니겠는가.
더 나은 근육, 더 나은 신체, 더 나은 심장.
더 강한 것들을 쌓아올릴수 있는 더 강한 기반.
그리고 그게 지금 강태석의 전신을 새로이 메꾸고 있는 모든 것들.
<강태석>
>레벨 : 11(0.00%)
>직업 : 기계사냥꾼(등급-E)>>>전직이 필요합니다. 선택해주세요.
>스킬 : 약식 EMP(Active/Passive)(등급-E)//황금순록의 왕관(Active/Passive)(등급-B/UNIQUE)
>스탯 : 검체(D)8/뇌속(D)7/기심(D)7/감염된푸른피(C)7/기예(D)7.
>무장 : 전마강갑(?)/여의(S-역량부분적합)/칠채영창(B)/오시리스(C-수리필요)
강태석이 눈 앞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