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81화 (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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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나? 그 카트란이라는 작자가 한 말에 대해?"

전시장, 죽은 칼슨의 쉘터.

죽은 시장의 아들과 딸, 네일과 펠란은 돌아온 대리인 사내의 말을 듣고 곰곰히 턱을 매만졌다.

현재 자신들 쉘터의 실권은 사실상 눈앞, 자신 아버지의 오른팔이던 더벅머리 사내가 잡은 상태.

무력이건 지도력이건 영향력이건 자신의 아버지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한참을 아버지 밑에서 철부지마냥 굴던 자신들에 비교될 자도 역시 아니었다.

순식간에 자신들은 밀려났고 아버지의 쉘터는 눈앞의 사내가 장악.

그나마 다행인건 상대도 마지막, 희생한 칼슨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을 나름 대접하며 챙겨주고는 있다는 거다.

그런 명분이 자신이 전 쉘터장, 칼슨을 대체하고 1인자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니 당분간 이 공생은 지켜질 터.

더불어 나름 시장의 아들딸로서 좀더 많은 것을 듣고 배운 자신들의 지식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쓸모있기도 하고 말이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스윽.

도시가 망한 와중에도 아버지 덕에 피부와 몸을 나름 잘 관리했던 동생, 펠란을 위아래로 스윽 훑는 더벅머리 사내, 더그의 눈길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쥘뻔한 네일은 애써 덤덤하게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닐겁니다. <벽>이라는건 분명 있고 아마 우리중 넘을수있는 사람은 드물겠지요. 정말 하나도 없을수도 있고."

예전, 인류가 멸망하기 전이고 도시가 멀쩡하며 아버지가 시장이던 시절.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들 둘을 방위도시 센트라에서 이루어지는 연방의 중앙교육이수 프로그램, <래더>에 부단히도 보내고 싶어했지만 신청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했다.

이유는 항상 원인불명의 자격사유조건 불충족.

연방은 떨어트리기만 할뿐,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장이라면 나름 높은 부와 지위가 있는 위치.

자신의 아버지가 그토록 남몰래 손을 부단히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애매한 기준으로 떨어트리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카트란의 말을 들어보면 앞뒤가 맞는다.

연방이나 귀족, 혹은 거대집단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재능, 혹은 한계나 혈통등을 확인할수 있었던 거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들만을 뽑아간것.

그런 네일의 말에 더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잘 대답해.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만약 우리중에 그 벽이라는걸 아무도 넘을수 없다면... 이미 이 배의 질서는 끝났어."

더그의 말에 주변에 서있던 쉘터민들이 동의하듯 네일을 바라보았다.

괴인이 기록된 영상등은 더그등 소수만이 확인했지만 갑판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쉘터민들의 제법 많은 이들이 확인하였다.

맨몸으로 하늘을 쪼가르는 일격.

수백미터 상공을 노니는 육체능력에 말도 안되는 괴력, 사방을 짓누르는 아우라.

보는 순간 알수 있었다.

<저건> 당할 방법이 없다고.

기갑투창, 레일건, 버프.

전도시, 카툰에서 새로운 병기들로 무장하며 나름 자신감이 충만해져있었지만 푸른 칼을 휘두르는 카트란을 본순간 모두가 기가 질리고 석이 죽었다.

이전까지 자신들이 뻗댈수 있었던건 말 그대로 자신들에게 무시할수 없는 힘이 있었기 때문.

한데 저건 자신들을 모조리 무시해버릴수있다.

말을 안듣거나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을 홀홀단신 짓누를수 있는 힘.

하지만 그런 더그의 말에 네일이 비웃듯 대답했다.

"그럴리가."

"뭐?"

"큼. 아니. 그정도까지 될리는 없어요."

"이유는? 너도 갑판에서 직접 봤으니 알텐데."

기분나쁜 표정을 짓는 더그의 모습에 애써 자신의 예전태도를 억누른 네일이 숨을 골랐다.

예전처럼 굴면 안된다.

진짜 수틀리면 쥐도새도모르게 목이 따이고 시체신세가 되어 버려질수도 있으니.

쓸모있게, 고분고분히.

그게 아버지가 안계신 지금 일단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취해야할 태도.

"간단해요. 예전 여러 구세대 국가들이 연방의 현대식 군대에 무너졌으니까. 그들중에 분명 벽을 넘었다 할만한 무인들이 있었음에도."

"... 그래. 그랬지."

연방이전.

<백국공존시대>.

그들이 살던 광활한 대지에 말그대로 수백개가 넘는 나라들이 각축을 벌어던 시기.

수많은 국가들이 수많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각자의 형태를 이루었다.

어떤 국가들은 현대식 문물을 받아들이며 고도의 번영을 이루었지만 어떤 국가들은 전통을 고수하며 구시대의 형태를 보존했던.

그럼에도 뒤의 국가들이 무너지지 않았던건 말그대로 국가를 지키던 <초인>들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지금까진 조금 애매했는데 카트란을 보니 알수 있었다.

그런 국가들의 형태를 지켰던건 자신같은 벽 이전의 초인들이 아닌, <벽>을 넘은 진짜 초인들이었다는걸.

나라를 지탱할만한 무력의 소유자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일개 연방의 양산형 군대에 무너져내렸다.

연방은 이런 변두리 지역을 점령하는 군대에는 초인조차 포함 안시켰음에도 말이다.

결국 초인이라 해도 무적은 아니라는 의미.

"벽을 못 넘어도 상관없어요. 지금 우리들이 갖지 못했을뿐, 그런 무기들을 손에 넣으면 되니까. 우리 아버지가 배 후미에서 썼던 것처럼."

"빌어먹을. 다음 섬에서도 쉴틈이 없겠구먼."

투덜거렸지만 그와 별개로 더그의 표정은 다소 밝아져있었다.

더그뿐아니라 주변이들 역시.

어차피 개고생은 도시가 멸망한 이후로 항상 해오던거다.

지금 중요한건 자력구제의 희망이 생겼다는 것.

"그나저나 인생 더럽게 불공평하네. 그여자, 독학으로 1년밖에 안됬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넘었지? 나는 그 벽이라는게 있는줄도 몰랐구만."

"으하하! 배운집 여식이 너랑 같냐? 듣자하니 귀족가니 뭐니 하는 소문도 있던데."

"야씨 그건 헛소문이겠지. 애초에 귀족가라는게 진짜 있는거였어? 나는 본적도 없다고."

안방마냥 투닥거리는 더그 패거리.

그에 네일이 주먹을 꾸득 쥐었다.

저 멍청이들은 몰라서 그렇다.

진짜 괴물은 그 여자가 아니다.

진짜는 한달도 안되어 벽을 넘은...

"..."

예전, 배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카트란을 떠올린 네일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자신이 우스웠을까.

우물안 개구리도 아닌, 올챙이던 자신이 들이대는걸 보면서.

'그래. <벽>을 넘는 법이 그것만은 아닐거야.'

오독.

감았던 눈을 뜬 네일이 손에 쥔 호두 두개를 오독 오독 돌렸다.

앞으로 더 바쁘게 움직여야한다.

이제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그시절이 아니기에.

네일이 눈앞, 흥에 겨워보이는 더그를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던 그때.

터어엉.

"어? 야 어디가?"

갑자기 방을 나서는 동생, 펠란의 돌발행동에 네일이 따라 일어서며 소리쳤다.

**

오시리스, 강태석의 방.

"만만찮았을텐데. 어떻게 잡았지?"

"이상한 수를 쓰더군. 아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던데... 평범한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어찌저찌 다 제압하고 풀어줬으니 지금쯤 이 배에 있겠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감호치료소쪽에 보내뒀지만."

감호치료소.

섬들을 거치고 배로 새로운 이들이 유입되며 신설된 곳.

치료해야하지만 아직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경우 이곳에 보내 치료 및 감시를 동시에 진행한다.

새로이 배에 올라탄 볼츠와 안전지대의 생존자들이나 일곱가문 군대소속 탑승자들도 현재 이곳으로 보내진 상황.

말을 마치고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아너스빌의 눈초리에 묶여있던 카스티가 멋쩍게 웃었다.

"하하. 너무 그렇게 보지마세요. 후유증은 없으니까. 오히려 더 건강해졌을거라고요."

"..."

그런 카스티를 보던 아너스빌은 허리춤의 에너지소드를 만지작거렸다.

일단 뭔가 알고있을것같긴 해서 잡아오긴 했는데 득보다 실이 많아보이는 녀석.

숨기는게 많아보여 어느새 또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네가 괜찮다면 처리하지."

"아냐 아냐. 일단은 들어보고."

털썩.

카스티의 앞에 주저앉은 강태석이 빤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전직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지만 지금 급한건 이녀석이다.

가장 궁금한건 현재 이 주변의 상황.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벤트 보스>들이 얼만큼 치고 올라왔는지.

"지금 몇단계 경계령이야."

"..."

"빨리 말해. 너희같은 햇병아리들 그냥 내보내진 않았을거 아냐."

강태석이 금발 여인을 보며 말했다.

이들을 비롯한 배의 일곱은 재능이 있다.

소위 벽을 넘을수 있는 이들.

그렇기에 세트로 묶어서 이런 변방으로 경험차 보낸거다.

임무도 수행할겸 여러 일들을 겪으며 성장해오라고.

하지만 바꿔말하자면 아직 재능은 있지만 실전에 투입하긴 모자란 이들.

자신들이 보기야 하늘위 존재지만 저쪽에서 볼때 벽을 넘지 못한 녀석들은 아직 1인분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물어보는 것.

그리고 그런 강태석의 말에 이제까지 실실거리던 금발여인의 표정 역시 가라앉았다.

가늘어지는 눈, 직시하는 동공.

"뭐지. 촌동네 출신이 경계령은 어떻게 알아."

칠국연합 공통, 영역을 중심으로 한 12345단계의 경계령.

영토근방에 위험분자가 나타나면 1단계.

영토안으로 위험분자들이 들어오면 2단계.

본색이 드러낸 여인을 보며 강태석이 귀를 팠다.

"알거 없고. 이거 하나만 알고 가자. 앞으로 물어보는걸 순순히 대답하면 유혈사태없이. 만약 알아서 귀한 정보를 내뱉으면 나름 대접. 그리고 물어보는걸 말안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배 뒤에 매달고 가기. 간단하지? 아 말은 편하게 해도 돼."

"..."

강태석의 말에 금발여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배 뒤에 매달고 간다고?

이 아래 나노머신들의 바다는 은빛 기계병기들이 꿈틀거리는, 말 그대로 날붙이와 쇳물의 바다.

거기에 빠져 배에 끌려간다는건...

"그냥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다고 하지 그래?"

"그정도 사이즈는 없어서. 배에 탄 애들 교육에도 안좋고.그리고 좋게좋게 가면 아무 문제 없을거잖아?"

"..."

그 말에 강태석의 눈을 직시하던 카스티는 이내 눈을 감았다.

보니까 사람을 직접 막죽이고 할 놈은 아니어보였다.

하지만 또 할거 못하거나 죄책감을 오래오래 느낄 놈도 아니어보인다.

배뒤에 매달아놓으면 자기가 안죽였다고 금방 까먹어버리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릴것같은 타입.

설령 이놈이 그렇지 않다고 한들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주변에서 가만히 있을리없다.

저뒤, 당장이라도 칼을 꺼내들고싶은 것처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흉터여인도 그렇고.

잠시 고민하던 카스티가 툭 입을 열었다.

"첫번째로 가지. 물어보는것만 대답하는거. 나도 보험은 필요하다고."

"보험?"

"그래. 너희들이 개박살나고 내가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때 순순히 협조한 배신자 취급 안당할 보험. 배신자취급 받느니 차라리 지금 배뒤에 매달리는게 나을거거든."

"..."

강태석과 아너스빌을 보며 시리게 웃은 카스티가 이내 묶인채 앉은다리로 자세를 똑바로 한채 대답했다.

"2단계다. 봐서 알겠지만 이미 녀석들이 경계를 넘기 시작했어. 우리가 나온것도 경계근방의 섬부터 대책을 마련해두기 위해서고."

이에 강태석이 한숨을 푸 내쉬었다.

2단계라 함은 간단하다.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칠국연합 영역의 모든곳이 태풍에 휩싸여있을거라는 것.

"3단계가 아닌걸 고맙게 생각해야하나. 아니지, 어쩌면 기회일수도 있지."

강태석이 혼자 중얼거리던 그때.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소름끼치는 괴성이 배의 바깥에서 들려왔다.

심신을 뒤흔드는 고음.

"...!!!"

벌떡.

이에 자리에서 급히 일어선 강태석과 아너스빌이 열린 객실 쪽창을 바라보았지만 안개가 넘실거리는 은빛바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소리가 나온 곳이 전방이라는 의미.

"갑판에 나가서 확인해야겠네."

"이녀석은 내가 챙기지."

터엉...

"악! 좀 잘 대해."

"닥쳐라."

발로 금발여인을 걷어차 축구공처럼 벽에 튕겨 어깨에 걸친 아너스빌을 뒤로한 강태석이 먼저 문을 열고 나서려던 그때.

터엉.

"헛!"

"...?"

'얘는 왜 여기있어.'

문앞에 서있다 마주치며 놀라는 여인, 펠란을 보며 강태석이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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