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83화 (83/221)

83

도시치고는 그다지 크지않은 크기.

쩌저저저저저적...

오랜세월 은빛바다 위를 떠돌며 약해진 기반.

위에서 벌어진 거대한 폭발에 은빛 마수들의 난동까지.

감당할수 있는 충격량이 한계에 달한 섬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쩍쩍 조각이 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위태로운 모습.

아니나 다를까.

쿠구구구궁...

쿠구궁...

도시가 금이 가고 파편들이 미끄러져내려오며 은빛파도에 육중한 물결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작다고해도 오시리스는 비할바가 안되는, 거대한 질량덩어리들의 붕괴!

쿠구구구구...

강태석을 비롯한 사람들이 무거운 눈동자로 바다건너, 무너져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육중하다고는 해도 이 은빛또한 무거우니 해일이 발생해 자신들을 덮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리가 제법 멀리 떨어져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서서히 쪼개지며 바다로 흩어져가는 도시파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기던, 발디딜 대지들조차 이제 더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점점더 설곳이 없어져가는 이 기분.

정말로 몰리고 몰리며 인류 전체가 죽음속으로 향해가는 느낌.

잠시후.

쿠구구구구...

완전히 붕괴된 도시들이 파편화되어 은빛바다 사방으로 가라앉았다 떠오르길 반복하며 두둥실 흩어지기 시작했고.

쿠오오오오...

고오오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듣듯 그들이 탄 배 반대방향으로 몰려든 은빛 마수들이 질서정연하게 바다속으로 기어들어가며 저 너머, 또 다른 곳을 향해가는 광경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어 그들의 주변을 완전히 감싸기 시작하는 하얀 안개.

스르르르륵...

다시 적막해진 갑판속.

침묵에 잠긴 사람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주변을 향해 외쳤다.

"파편들이 좀 잠잠해지고 파도가 가라앉으면 다시 출발한다! 다들 가서 쉬고있어."

주변을 빙 둘러가자니 오히려 어떤 녀석들이 나타날지 몰라 찝찝하다.

적어도 눈앞의 전방은 델타가 이미 지나간 자리이니 차라리 속편할터.

섬들이 요동치는게 가라앉은뒤 정면을 조금 돌아 빠져나간다.

...

.....

그런 강태석의 말에 모여있던 이들이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웅성이며 객실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쿠르르르릉...

시동을 건 오시리스가 조용히, 천천히 안개와 은빛물결의 바다를 헤쳐나갔다.

주변,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것들은 거대한 섬들의 잔해.

스르르륵..

쿠구구구구...

스치듯 넘실거리는 타르늄과 도시조각들을 지난 강태석과 사람들이 갑판 사방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타르늄 조각이 붙어있는 도시조각들은 멀쩡한 편.

타르늄조각이 없이 바다에 떠오른 파편더미들은 이미 진즉에 타고 오른 기계벌레들에 갉아먹히고 있었다.

사가가각...

사가각...

뿌드드드득...

"으으..."

옆, 타고오른 은빛 물결에 뒤덮여 실시간으로 분해되고 있는 도시더미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옆에서 터져나온 신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보니 아직 안들어가고 있던 펠란이 우글거리는 은빛벌레들을 징그럽다는듯 사색이 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긴 저런건 처음봤겠지.'

강태석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쉽사리 잊기 힘들 기억이긴 하다.

애초에 저걸 보고있다면 대부분의 경우 저런 도시파편들과 함께, 통째로 저 벌레들에게 갉아먹히고 있을테니.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궁금한 것.

"왜 여기있니. 들어가라니까. 네 오빠랑 가서 놀아."

형태를 복구한 칠채영창을 기대고 난간에 서있던 강태석이 옆에 버티고 선 펠란을 향해 말했다.

어느새 아너스빌조차 좀 쉬겠다며 금발여인을 데리고 들어간 상황.

당분간 카스티라는 여자는 본인이 담당하겠다고 했고 강태석은 이에 동의했다.

이 배에서 벽을 넘은 자신과 아너스빌, 둘을 제외하면 수작을 부리려는 카스티를 쉽게 제압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하여간 그렇게 아너스빌조차 떠나고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굳이 안개에 뒤덮인 이 쌀쌀한 갑판에 버티고 있는 상황.

심지어 여기가 그렇게 안전한것도 아니다.

쿠구구구구...

터어어엉!

스치는 수백미터짜리 빙산처럼 거대한 파편, 비스듬한 벽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돌덩어리들이 간간히 투툭 소리를 내며 갑판 위로 떨어져내린다.

미처 미리 돌아가지 못하고 안개속에서 훅 튀어나온걸 간신히 빗겨나간 거대한 파편의 조각들.

대부분 부스러기들 뿐이고 레벨이 제법 높은 생존자들 입장에선 그리 위협적인 것들도 아니지만 일반인인 펠란은 맞으면 위험한 수준.

터어어어엉!

떨어져내리는 파편 하나를 칠채영창을 부웅 휘둘러 퉁겨내버리고 빤히 바라보는 강태석의 시선에 우물쭈물거리던 펠란은 이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마음을 다잡은뒤 입을 열었다.

"나좀 재워줘요 당분간. 당신 방에서."

"...????"

'재워달라고?'

아마 자신에게 반했다는 등의 싸구려 하렘물 설정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럴 사이도 아니고, 그런 표정도 아니고.

입술을 꾹 깨문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펠란을 강태석이 빤히 바라보던 그때.

"어어! 저기 있었네. 하하! 네일! 네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동생 저기있다!"

갑판 입구, 복도쪽에서 들려온 우렁찬 소리에 강태석의 고개가 돌아갔다.

**

저벅.

가장 앞에 선 사내, 더그와 무장병들이 힘차게 걸을때마다 갑판에 모여있던 생존자들이 슬쩍슬쩍 자리를 비켜준다.

더그.

전시장, 칼슨의 오른팔이자 쉘터의 새로운 리더.

비록 칼슨이 죽기는 했지만 그들의 쉘터는 모인 공업단지 내에서도 처음부터 맹주역할을 할만큼 강한 쉘터였다.

심지어 비록 화무십일홍, 찰나이긴 했지만 페리트란네 쉘터를 몰아내고 명실상부 NO. 1이 되기도 했던 이들.

그때 단기간에 훅 불려놓았던 세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 법.

배에 탄 이후로도, 두개의 도시를 거치면서도.

더그가 새로운 장으로 올라선 그들의 쉘터는 끊임없이 물자와 인원을 끌어모으며 이 배에서 수위권에 들 정도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다른 쉘터소속이나 피난민, 새로 합류한 이들은 눈치를 볼수밖에.

더그의 쉘터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이는 카티나 군파츠같이, 기존에도 1, 2위를 다툴만한 세력들을 자랑하던 쉘터들 몇개 정도.

그런 더그가 굳은 표정의 네일을 데리고 다가오는걸 본 강태석은 그제서야 대충 뭐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수 있었다.

'이래서 재워달라고 했구먼.'

사정 잘 모르는 강태석이 보기에도 노골적인, 펠란을 바라보고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더그의 시선.

그리고 거의 뭐 고양이를 만난 쥐마냥 창백해지며 슬금슬금 물러나는 펠란이 보인다.

이어 어느새 강태석의 앞까지 다가온 더그의 한마디.

"펠란. 뭐하니. 네 오빠랑 같이 돌아가야지. 이러면 내가 너희 아버지 볼 낯이 없잖아. 내가 너 딸같이 생각하는거 알지?"

"와우.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인데."

"...?"

혼자 중얼거리는 강태석의 말에 더그가 불쾌한 눈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고.

그런 더그의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직시에 강태석이 마주웃으며 말했다.

"눈 안까니?"

"..."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가야하긴 하지만 썩 좋은 사이는 아니잖아. 그래도 좋게좋게 가자고. 나도 막 함부로 대하고 싶진 않으니까."

강태석이 굳는 표정의 더그를 보며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라서 그런지 아주 그냥 하는 짓을 보니까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게 강태석 스스로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더그는 엄연히 배를 통제하고 질서를 잡고있는 쉘터장중 하나였으니까.

마음에 안드는것과 별개로 더그같은 쉘터들이 없으면 곤란해지는게 사실.

싸우고 무장하고 물자를 확보하고 새로 유입된 이들에게 새로이 질서를 잡고.

신입들이 들어올때마다, 혹은 배가 강적을 만날때마다 서로 싸우고 우후죽순 도망가는 등의 개판을 보고싶지 않으면 각 쉘터와 쉘터장들이 제할일을 잘해줘야하며.

개인적인 인성등과 별개로 더그는 칼슨이 사라진 자리를 잘 수습하고 쉘터를 정리해 제몫들을 하게만든, 나름 훌륭한 2인자이자 새 리더였다.

다섯, 열 죽을 것들을 하나, 둘 죽어가며 잘 막았다는 의미.

물론 거듭 말하지만 그렇게 할일 하는것과 또 개인적인 호불호는 별개의 이야기.

키이이잉...

시퍼런 눈으로 더그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그 눈 그대로 옆의 펠란을 바라보았다.

"난 네 아빠가 아냐. 널 보호해줄수도 없고 너만 따로 챙겨줄수도 없지. 너때문에 얽혀들어 분란만들고 싶지도 않고."

"... ...."

강태석의 말에 펠란이 이를 악물었다.

그 말대로.

상대가 잘나가긴 하지만 또 굳이 자신 하나때문에 쓸데없는 악연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잘나가는 더그와 이제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버린 자신.

둘중 누굴 골라야할지는 자신이 봐도 명확해보였으니까.

이에 펠란이 눈을 감고 더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던 그때.

"하지만."

"...?"

"그것과 별개로 내가 범죄자들을 아.주.아.주 싫어하는건 사실이야. 특히 위력에 의한 성행위같은건 뭐 알지? 그냥 내 개인적인 호불호니까 굳이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알아둘 사람들은 좀 알아두라고. 아 물론 맞아야할 놈은 좀 맞아야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시퍼렇게 안광을 번득이며 주변을 바라보는 강태석의 말에 주변이들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신경쓰지 말라고?

저따위 눈으로 바라보면서 어떻게 신경을 쓰지말란 말인가.

거기에 상대는 이 배의 실직적 주인.

가장 강한 쉘터들인 군파츠와 카티들의 핵심인물.

지금 자신들의 운명을 건 행보를 결정하는자.

그리고... 다 떠나서 본신의 힘으로 걸리적거리는건 모조리 때려잡을수 있는 무력의 소유자.

개인적 호불호를 신경쓰지 않아도 될 수준을 지났다.

아니, 생각같아서는 선물이라도 개인적으로 가져다바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

물론 다 그런건 아니었지만.

"... ....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법따위가 어딨다고."

사람들 속.

미소를 지운채 굳이 한마디를 내뱉는 더그의 모습에 강태석이 한번더 웃었다.

"내 기준에 그렇다고. 내 기준에. 굳이 신경 안써도 돼. 하고싶은대로 해. 말맞따나 법도 없는데. 나도 하고싶은대로 하면 되지 뭐."

"..."

불편한 적막이 더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 사이에 흘렀다.

이제는 단순히 여자문제 따위가 아닌 자존심 싸움.

하지만 침묵은 짧았다.

"잘 기억해두지. 아주 잘. 가자. 네일. 네 동생 챙겨오고."

휘릭.

누군가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이들의 시선속에서 벌어지던 해프닝은 더그가 돌아서며 끝이 났다.

그렇게 돌아서는 더그의 뒤, 따라붙는 펠란과 그런 펠란을 챙기는 네일이 강태석을 향해 작게 고개를 꾸벅인건 덤.

꾸벅.

그런 네일을 향해 마찬가지로 작게 휘휘 손을 내저은 강태석이 한숨을 푸욱 쉬며 고개를 돌리고 난간 밖을 바라보았다.

어째 그 잠깐 사이에도 계속 일들이 생겨난다.

좀 쉬어볼까 했는데 배앞에서 난리가 나고 갑판에서는 뭐가 딸려와서 투닥투닥거리고.

오늘 왠지 액땜을 해야하는 날인가 싶을 정도.

이쯤되니 이제는 안개 속에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할것같지 않은 느낌이다.

'하하. 쓸데없는 생각이지. 난 걱정이 너무 많아.'

고개를 휘휘 저은 강태석이 마치 빙산사이를 지나는 유람선에서 관광을 즐기듯 난간에 팔을 기대고 스쳐지나는, 나름 장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도시파편들을 유빙마냥 바라보려던 그때.

쿠구구구구구구구....

"아 진짜. 좀 봐줘라."

저 멀리, 안개속에서 마주다가오고 있는 압도적이고 거대한 무언가의 등장에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

범죄국가.

부르탄 명물.

<고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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