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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너머.

쿠르르르르릉...!

마치 철벽과도 같은 드높고 넓은 무언가가 운무를 헤치며, 은빛 바다를 밀어내며 서서히 그들이 선 배로 들이섰다.

오시리스의 높이는 후미, 상부객실쪽은 105m에 갑판쪽은 57m.

하지만 그렇게 갑판에 선 이들이 보기에도 성벽처럼 보일 정도로 높은 철벽이 안개속에 어두컴컴한 그림자를 들이밀며 다가선다.

이어 완전히 다가서자 드러난 외관.

후우욱...

밀려난 안개사이.

강철과 합금들이 덕지덕지 붙어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전면부가 갑판에 선 사람들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물위로 드러난 부분만 해도 얼추 150m가 훌쩍 넘어보이는 높이.

폭은 500m가 넘어보이는 크기.

배가 아니라 거대한 건축물, 혹은 작은 섬이 들이닥치는것같다!

심지어 그런 벽의 아래쪽에는...

콰드드드드드드득...

콰드드드득!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배아래, 직사각형으로 뚫린 검디검은 구멍.

폭400m, 높이 70m.

거대한 동굴처럼 생긴 입구가 은빛 바다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듯 빨아들이고 있었다.

도시파편, 건물조각, 콘크리트.

그위에 뜬 모든것조차 가리지 않고!

그리고 그 너머,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거친 파열음.

이에 눈을 껌뻑인 이들이 이내 깊은곳에 자리잡은 무언가를 보고 비명을 내질렀다.

"미치겠네 진짜... 분쇄기다!"

콰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칵!

콰가가가각!

입구만큼 거대한 분쇄기가 쩍벌린 아가리 깊은 곳에서 맹렬히 회전하며 거대한 원통톱니로 빨려드는 모든 것들을 쪼개고 으깨버리고 있었다!

금속, 콘크리트 구분없이.

은빛바다는 흘려보내고 그 위에 뜬 모든것들을 쪼개고 쓸만한 것들을 빨아들이며!

순간.

터어어어엉...

"카트란! 빨리!"

후미, 망을 보듯 가장 높은 곳에서 지켜보다 어느새 강태석의 곁으로 내려앉은 카티가 정면을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안으로 빨려들어가 갈려나가는 것중에는 타르늄조각이 붙은 도시덩어리들까지 보이고 있었다.

대체 저 그라인더가 뭘로 만들어져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도시덩어리의 타르늄금속기반마저 갈려나가는 상황.

즉?

빨려들어가면 타르늄외장을 기반으로 한 자신들 배도 모조리 토막난다!

그런 카티의 말에.

"... 하고 있습니다."

쿠구구구구...

정신을 집중한 강태석이 배의 통제권한을 한껏 발휘하여 방향을 틀었다.

안개를 가르며 튀어나온,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의 전면철벽.

어차피 온전히 빠져나가기에는 글렀다.

그나마 다행인건 후미, 105m에 달하는 배의 높이가 70m 정도로 보이는 고철선의 흡입구보다는 조금 더 높다는것!

가라앉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방향만 제대로 틀면 충분히 입구에 걸린다.

끄그그그극...

갑작스런 쇳덩이의 방향전환에 아래, 은빛바다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벌레들이 요동을 친다.

그렇게 강태석이 90에 가깝게 배의 방향을 틀어제낀 순간.

콰아아아아앙...!

와아아악!

앞쪽, 갑판부분과 후미의 높다란 부분이 각자 고철선의 오른쪽 가장자리와 입구 아래에 걸리며 커다란 충돌음을 토했다.

**

터어엉...

끼드드드득...

금속과 금속덩어리들이 부딪치며 발생한 거대한 충격.

심지어 각자가 건물과 건물이라고 할수있을 정도로 육중한 사이즈.

그 어마어마한 충격량에 갑판에 있는 이들이 모조리 튕겨나가고 미끄러진다!

하지만 각자에게 그정도는 감당할수 있는 범위.

타탁.

치이이이익...

꽈득.

누군가는 난간을.

누군가는 바닥에 칼을 꼽으며.

누군가는 미끄러지는 와중에 균형을 잡으며.

갑판위에 있던 이들이 각기 다른 재주들을 부려 밀려나가는것을 멈추고 그자리에 멈춰섰다.

물론 좀 재수없는 부류들도 있긴 했지만.

터어엉...

"...! 으."

선채로 훅 튕겨나갔다가 배의 왼편, 고철선의 철벽에 부딪쳐 튕겨나온 강태석이 등짝을 어루만지며 얼얼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를 조종하느라 마지막까지 정신을 집중하다가 튕겨나간것.

강태석만 그런것도 아니었다.

터어엉...

터엉...

아우... 허리.

커헉...

몇몇 운없는 이들이 충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훅훅 튕겨나갔다가 철벽에 텅텅 부딪힌뒤 다시 갑판 위로 떨어져내렸다.

아마 저들은 강태석보다 좀더 아플터.

육체가 한스펙 아래이기에 누군가는 피멍이 들었을수도 있고 누군가는 상처가 났을수도 있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고 은빛바다에 빠진이도 없으니 이정도면 선방한셈.

어디까지나 사람은 말이다.

쿠르르릉...

자리에서 일어선 강태석이 후미, 무럭무럭 희미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후미부를 바라보았다.

중앙대륙의 주파를 상정한 이 배는 모든 부분이 튼튼하게 만들어져있지만 무적은 아니다.

이정도의 갑작스런 충격이라면 타격을 받기 충분한 수준.

티딕.

<달리안. 어때?>

손목의 기계를 통해 선내통신을 보낸 강태석을 향해 이윽고 배 깊숙한 곳에 있을 달리안의 답신이 돌아왔다.

노란빛으로 선명하게 액정위에 떠오르는 메세지.

<구동축이 살짝 비틀렸어요. 큰 문제는 아니지만 수리전에는 한동안 움직일수 없을것같은데요.>

쿠르르르릉...

충돌과 동시에 함께 멈춰선 거대한 고철선의 벽을 보며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보아하니 저 거대한 배도 충격을 감지하고 멈춰선 모양.

안쪽에서 거칠게 작동하던 그라인더도 빨려들어오는 것들이 없자 자동으로 동작을 멈추고 정지한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되면 한동안 이 거대한 고철덩어리와 원치않는 동거를 해야하는 상황.

<얼마정도 걸릴것같아?>

<여덟시간 정도요. 그동안 누적된 피해까지 계산하면.>

이에 강태석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보니 페리트란에게 들었다.

칠국연합중 어떤 놈이 엔진실에 침입해서 아주 그냥 난장판을 만들어놨었다고.

수리시간은 아마 그 피해까지 계산한 것일터.

필요한 부분만 수리하고 떠난다면 좀더 빨리 떠날수 있을것같았지만 아마 그렇게 된다면 항해도중 중간에서 퍼져버릴수도 있는 노릇.

정확한건 달리안에게 물어봐야겠지만 말이다.

잠시후.

"카티. 쉘터장들좀 모아주세요. 일단 이거에 대해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러지."

쿠르르릉...

'득일지 실일지.'

웅성이는 이들속, 갑판에서 사람들과 함께 거대한 고철벽을 올려다보던 강태석이 짧게 콧김을 내뿜었다.

**

회의실.

길이 30m 정도, 가운데에 길쭉한 테이블을 둔 널다란 공간에 모인 100명 가량의 사람들을 앞에 선 강태석이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구성이 제법 많이 바뀌었다.

각 쉘터의 장 혹은 대리인들.

칼슨이 살아있던 시절 공업단지에서 만든, 피난민들 대표.

전전도시, 카툰에서 합류한 이들의 리더들.

전도시 아만테오에서 배에 탄, 살아남은 일곱가문의 군인이라던가 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현재 치료를 받는 중이라 참여하지 못했다.

아직 그들의 처우를 결정하기 전에는 함부로 움직이게 둘수 없으니 감시중이기도 하고.

다만 그들을 대표하는 아니타와 보르그가 참석해 이곳에서 들은 내용을 그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렇게 익숙한, 혹은 낯선 면면들을 주욱 훑어본 강태석이 입을 열었다.

"수리에는 여덟시간이 걸립니다. 출발에만 집중하면 다섯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지만 이상적인건 완전히 수리하고 떠나는 거죠. 당분간 거친 항해가 될수도 있으니."

말이 나온순간.

웅성...

"저 정체불명의 것들이랑 계속 붙어있어야 한다고? 여덟시간이나?"

웅성이는 사람들속, 그들을 대표하듯 더그가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이건 아까전 있었던 자존심 싸움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

이미 처음보는 거대하고 이질적인 문명의 등장에 자신들 쉘터를 비롯한 배의 모든 이들은 한껏 긴장한 상태였다.

지금도 갑판에는 수백명에 가까운 이들이 무장을 하고 혹시나 있을 금속철벽으로부터의 무력도발에 대비하고 있는 상황.

한데 그런 것과 여덟시간을, 그것도 볼맞대듯 부대끼며 딱 붙어있야아한다고?

이건 껄끄러운걸 넘어 너무 위험하다.

그런 더그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아까전과는 다른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어쩔수 없습니다. 수리가 안된 배를 몰고 나갈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지만 이해합니다. 여차하면 바로 출발해야겠지요. 폭탄을 터트려 밀어내고 표류하듯 떠도는 한이 있어도. 그래도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최소 다섯시간정도는 이곳에 머무른다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동안 뭘 할지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지요."

"고슴도치처럼 바짝 날세우는거 말고 우리가 뭐 할게 있나."

더그의 퉁명스런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원래는 저 말이 맞긴 하다.

빈건지, 탄건지.

도무지 알수없이 침묵을 지키는 저 거대한 고철선 앞에서 자신들이 할수있는건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하는것 뿐.

하지만 고철선의 특수성이 그들에게 다른 보기를 제공한다.

툭툭.

"음... 말해? 지금?"

발로 툭툭 건드리는 강태석의 행동에 바닥, 꽁꽁 묶인채 앉은다리 자세로 앉아있던 금발여인 카스티는 흠흠 목을 풀었다.

좀 자존심상하긴 하지만 지금부터 내뱉는 정보는 배신자 취급당할 정도야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은 이녀석들이 잘해줘야 자신이 살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

기묘한 눈빛으로 눈앞, 모인 사람들을 한번 차례대로 쭈욱 훑은 카스티는 본론을 내뱉었다.

"저거 별명이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물창고야 보물창고. 제대로만 하면 대박을 건질수도 있다고."

"...?"

그 말에 회의실 각자리를 지키던 이들이 팔짱을 풀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등 자세를 고쳐잡았다.

**

부르탄 명물.

고철선.

국가, 부르탄은 주변국가로부터의 신뢰가 바닥이었던 곳.

오랜세월 이뤄진 독재, 부족한 자원, 척박한 인프라, 무법에 가까운 도시.

연방이 대륙을 일통한 후에도 이들은 나름 자치를 인정받았지만 그건 연방에서도 굳이 이런 곳까지 완전흡수해 행정력을 낭비하고싶지 않았던 이유가 더 컸다.

말하자면 연방조차 놔버린 거대한 쓰레기통.

가진것도, 자랑할것도, 내다팔것도 없이 연방은 물론 인근 부분자치국들에게조차 고립된 국가.

이대로라면 자치를 인정받았다해도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고.

이에 오랜 독재를 끝내고 나라를 차지한 신군부세력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한 끝에 몇가지의 국가사업들을 준비한다.

평판이 이미 최악인 자신들이 할수 있는 것.

다른 나라들이 필요로 하지만 차마 대놓고 할수 없었던 것들.

초거대암시장.

대리교도소의 운영.

불법실험의 무제한 허용.

다른 나라라면 절대 받기 싫어할 범죄자 및 난민들의 포용적 흡수.

거대한 <도시 분쇄처리기>를 통한, 연방 및 자치국들의 신계획도시 구축을 위해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하는 구도심지역 붕괴 및 제거 외주 등등.(이들의 최고강점은 알박기나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이주하지 않고 도시에 남으려던 소수의 누군가들을 <미처 모르고 도시째 갈아버리며> 최단시간내 맡은바 외주작업을 끝낸다는 것에 있었다.)

검은 돈, 검은 피, 검은 힘.

검은 국가는 더욱 검게, 더더 검게 물들었고.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는걸 넘어 나름 주변에 악명을 떨치게 된 이들은 어느정도 여력이 생겼었기에.

연방이 무너지고 온세계가 기계병기들에 휩쓸리던 그 재난의 날에도 살아남았다.

초거대 도시분쇄처리기에 타르늄장갑을 두른채 허겁지겁 개조해 커다란 <배>를 만들고.

암시장의 보물.

교도소의 일급 범죄자.

불법실험들의 결과물.

살아남은, 온갖 잡기와 재주를 익힌 수많은 범죄자와 난민.

기타 등등.

그 거대한 쓰레기처리선들에 자신들이 가지고있던 모든 귀한것들을 뒤섞어 담은채 탈출하며.

"고철선은 보오통~ 안에서 지들끼리 치고받느라 모조리 죽고 그냥 작동만 하고있는 거대한 공동묘지인 경우도 많거든. 그러면 그 안에 남은 것들은 어떻게 될까?"

빙글빙글 웃는 카스티의 말에 모여있던 모든 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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