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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웅크린채 빗발치는 탄환을 모조리 튕겨내고 있는 검은 생물체.
투콰콰콰콰콰콰!
지금이야 포화속에서 얌전하지만 조금만 틈을 보이는순간 뛰어들어 갑판의 모든 생명체를 찢어발길 살의가 충만하다.
그리고 콕핏 속에서 이를 보던 아린이 아까전 아빠의 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이전의 세계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무대였다면 이곳의 세계는 전장과도 같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바다의 짐승들, 산처럼 커다란 고철선.
이와 맞서싸우고 있는 국가단위의 세력들과 그 사이사이를 그득메운 정체불명의 생명체들.
생존자들 사이에서 조금 빛나던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제 이 전장을 제압할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강해져야한다!
하지만...
'이걸 부순다고 뭐가 돼?'
키리리리릭...
두개의 팔을 돌려 거태도와 기갑창을 앞으로 꺼낸 아린이 눈앞의 5m짜리 쇳덩어리들을 보며 고심했다.
아빠가 맡겨둔 물건.
위기상황이라고 하지만 부순다고 하니 망설여지는건 사실.
거기다 뭐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면 더더욱!
하지만 상념은 거기까지.
투타타...
콰아아아아아앙!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두개의 무기를 꺼내드느라 비어버린 두개의 팔.
이로 인해 화망이 약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거대한 짐승이 빗발치는 섬광속에서 도약해 센티널을 향해 날아들었다.
금속바닥이 우그러질 정도의 충격, 단번에 거리를 좁혀오는 포물선의 괴수.
붙으면 불리하다 못해 으깨질지도 모르는 상황!
"아 몰라!"
이를 본 아린이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으며 콕핏 손잡이에 힘을 준 순간.
쩌저저저저저적...!
센티널의 금속촉수 안에 쥐어져있던 두개의 병기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부스러져나갔다.
**
고철선, 후미 어딘가.
터어엉...
"후우."
미친듯이 내달리던 강태석이 어느 한적한 곳, 복도 구석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녀석들의 추격을 뿌리친건 아니었지만...
그르렁...
키이이잉...
자신의 몸을 감싼 유리의 장막 너머, 그르렁거리며 복도 사이를 카득카득 걸어다니는 괴물들을 보던 강태석이 허공의 잔잔한 유리파편구름들을 매만졌다.
주변을 일렁거리는 은은한 일곱빛 장막.
단순히 시야만 가려주는게 아니다.
이를 보는 대상의 정신에 간섭하여 이곳에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기능.
사람이나 기계병기들에게는 되려 잘 먹히지 않겠지만 애매한 지성을 가진 녀석들이라 이런게 잘 먹히는것 같았다.
"그래도 마냥 오래 시간끌수 없지."
키이이잉..
장막속, 벽면에 주저앉아 숨을 돌린 강태석이 지금쯤 난리가 났을 바깥상황을 떠올렸다.
오래 끌어서 좋을게 없다.
여왕을 처리하면 더좋지만 주변에 정예병들이 득시글거릴걸 생각하면 딱히 기대하진 않는다.
녀석들의 산실, 혹은 여왕의 거처에 들어가 어느정도 놀래키고 빠져나오는 것 정도면 성공.
문제는 이 넓은 벌크선에서 정확한 위치를 어떻게 찾느냐이다.
차악.
"이건... 여유있을때나 하는거고."
강태석이 벨페른의 칼을 세워 넘어트릴까말까 하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말 그대로 시간낭비 좀 해도 상관없을때나 쓰는 방법.
심지어 적중률이 그다지 좋은거같지도 않았다.
강태석이 숨을 고르던 그때.
저벅.
저벅.
키이이이익...
순식간에 비켜서는 괴물들.
그 너머로 보이는 사람의 형체에 강태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시체와 괴물들의 배 안에서 사람이라니?
그런 강태석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피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앙!
"아 좀!"
섬광처럼 날아들어 자신에게 꽃힌 푸른 빛.
사람의 형상과 괴물의 얼굴.
크기 2m.
주변괴물보다 오히려 조금 작지만 그 위력과 기도는 압도적이다!
콰르르르릉!
온몸을 검은 갑옷으로 감싼듯한 갑각존재, 어느새 달려들어 손아귀의 푸른 빛으로 자신을 짓누르려는 그 압력에 결계가 박살낸 강태석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마주댄 벨페른의 칼에 힘을 주고 전마강갑을 끌어올렸다.
**
복도, 중간.
"저거! 입고 가면 안돼?"
"등신아. 해봤어! 충전안되있다고! 도망쳐!"
콰콰콰콰콰쾅!
다급한 와중에도 컨테이너 안쪽, 엑소슈트에 눈을 못떼는 동료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버럭 소리친 사내가 복도 너머를 바라보았다.
보이는건 날카롭고 강대한 힘과 힘의 충돌.
아너스빌.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한쪽은 황금빛을, 한쪽은 적색빛을 휘감은채 그야말로 사방팔방 철판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둘을 본 사내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원하고 싶어도 탄자는 바닥났으며 레일건의 에너지도 동났다.
아니, 애초에 자신 실력으로는 저 둘중 적만 골라맞힐 수도, 유효타를 먹일수도 없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속도와 움직임.
지금은 빠져주는게 도와주는 것.
빨리... 빨리 배로 모두 달려!
투타타타타타타!
빗발치는 총탄과 괴성속, 복도를 따라 사내가 내달렸고.
"..."
그렇게 사내마저 사라진 자리에서 뒤를 살피던 아너스빌이 그제야 정신을 집중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몰아치는 검은 갑각과 흉험한 붉은 빛!
콰가가가가각!
손에 들린 칼에 황금빛 검기를 휘둘러 발톱을 막아낸 아너스빌이 숨을 고르며 눈 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아까전 통로를 박살낼듯한 기세로 달려들던 커다란 놈은 진즉 베어죽였다.
단단한 두개골, 날카로운 꼬리.
크기는 고작 2.7m 정도.
주변 짐승놈들과 형상과 외양은 비슷하지만 전투력이 아까전 큰놈보다도 훨씬 압도적이다!
가장 거슬리는건 녀석의 몸을 감싼 붉은 타투들.
키이이이잉...
어딘가 눈에 익숙한 붉은 문신.
예전, 배의 기록영상중 군파츠란 여인이 상대했던 붉은 적발여인의 전신을 감싸던 그것과 형태가 유사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안그래도 단단해보이는 갑주, 차원이 다른 육체에 붉은 문신까지 더해지니 영상속 여인과는 한층더 궤를 달리한다는 것.
거기에 강철촉수마냥 움직이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일곱개나 되는 날카로운 꼬리가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네가 정예병같은 느낌이라 이거구나. 이 배에 몇놈이나 있을지."
터터터터텅!
터어어어어어엉!
캬아아아악!
콰지지직!
아너스빌이 손에 들린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괴수가 뒤돌려차기처럼 빙글 몸을 돌린순간 일곱개의 꼬리들이 컨테이너선 복도를 모조리 찢어발기며 질주한다.
사이보그 육체건 버프건 감당할수 없는 위력!
다른 벌레녀석들이라면 몰라도 이런 놈이 배 안으로 들어가면 피해는 겉잡을수가 없다!
콰지지지직!
터터터터터터터텅!
유려하게 칼을 휘두르며 황금빛 칼로 꼬리를 튕겨내던 아너스빌은 공격을 받아낸 기세 그대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배안의 다른 이들, 특히 어디선가 왠지 또위험한 짓을 하고 있을것같은 카트란 그 작자가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걱정되는건 오시리스 그 자체다.
최대한 생존자들을 이 배에서 탈출시킨뒤 그대로 오시리스 옆면과 고철선 접촉부를 폭팔시켜서 밀어내던가 해야한다!
엔진을 고치던가 옆면이 날아간걸 땜질하던가는 그다음의 문제.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들 배가 멀쩡해야하는 상황.
'카트란 그 작자는 솔직히 걱정안돼. 지옥에 던져놔도 살아돌아올거같으니. 중요한건 지금 갑판이다.'
아린의 센티널이 있다지만 아까전 거대괴물같은 녀석만 달려들어도 쉽지않을것같았다.
하지만 쉽사리 빠질수도 없는 상황.
터터터텅!
터어어어어엉...!
집요하게 자신의 빈틈을 노리는 일곱개의 꼬리를 쳐내던 아너스빌이 눈매를 좁히며 칼을 쥔 손잡이에 힘을 주던 그때.
"신경... 쓰이나... 보지...?"
키륵...
"...?!"
터어어어어엉!
쩍 벌어진 이빨주둥이, 그 사이에서 흘러나온 인간의 비웃는듯한 목소리에 칼을 휘두르던 아너스빌이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일곱꼬리의 짐승을 바라보았다.
**
일곱꼬리의 짐승이 눈앞, 황금빛으로 빛나는 미녀를 바라보았다.
아아, 너무나 탐스럽다.
자신이 인간이던 시절이었다면 반드시 범하고 싶었을 정도의 미인.
얼굴에 상처가 있지만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황금빛 숨결과 고귀함에 비한다면 저정도 흠은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인간의 몸을 버리게된 지금.
그때의 난장판과 스스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조차 안나던 지금.
모든게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그곳>에서 간신히 탈출하며 가져온 온갖 무기들도.
이제는 기억조차 안나고 모조리 밥이 되어버린 동료들도.
한때는 함께 황금빛 미래를 꿈꾸던 이들.
하지만 지금 머리속을 메우는건 하나다.
아아, 눈앞의 여인을 먹어치우자.
배 너머의 녀석들도 먹어치우자.
그리고 그렇게 모두 먹어치우고 강해진 후.
이 고철선의 원래 목적지인 <루츠>, 그곳으로 내려서.
그곳에 살고있을 수많은 이들도 모조리 먹어치워버리자.
"너희... 운명... 정해져있... 다... 우리... 처럼."
"..."
"함께... 하자... 우리와..."
이미 중과부적.
녀석들의 배는 통째로 삼켜지고 눈앞의 여인 역시 결국은 버티다 지쳐 자신의 입에 들어오리라.
일곱꼬리 짐승이 기괴한 주둥이를 쩌억 벌리며 유쾌하게 웃던 그때.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치이이이이익...
"아악... 끄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인간의 비명과 괴물의 괴성.
아너스빌과 괴물의 사이.
아래에서 사선으로 솟구친 굵은 빛줄기에 단번에 두개의 꼬리가 잘려나가고 소멸된 괴수가 뒤틀린 비명성을 내질렀다.
**
오시리스, 갑판.
치지지지지지지지직...
"..."
...
........
갑판에서 사선으로 고철선을 향해 뻗어나간 두줄기 강렬한 빛.
키이이이익...
콰드득...
가운데가 뻥 뚫린채 상하체가 분리되어 갑판에 나동그라진 괴물의 사체 앞.
그 빛을 발사한 장본인인 아린이 자신이 만든 광경을 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건 주변이들도 마찬가지.
갑판에서 싸우던 이들의 시선이 모조리 아린이 만들어낸 파괴의 흔적을 향했다.
두꺼운 고철선을 갑판쪽부터 하늘까지, 안개마저 모조리 흩어버리며 시원하게 구멍을 뻥 뚫어버린 두줄기 빛.
그리고 그 두줄기 빛은 아린, 센티널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던 두개의 길다란 무기로부터 시작되었었다.
아니, 이제는 센티널의 손에 쥐어져있다고 보기도 힘들었지만.
콰드드드드득...
콰드드득...
"이거... 이거 뭐야!"
아린이 센티널의 양쪽손 끝, 센티널의 촉수를 착실히 집어삼키고 있는 하얀 두줄기의 무구를 바라보았다.
길이 3.5m, 폭 50cm 가량.
마치 하얀 질감을 자랑하는 고대종유석과 같은 외양을 자랑하는 수상쩍은 무기.
얼핏 보면 총처럼 보이긴 했지만 두루뭉실하게 생긴 것이 현대화기와는 그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끝부분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끝에서 두줄기 파괴의 빛이 뿜어져나오지 않았다면 이게 화기인지도 몰랐을 터.
아니, 아린 입장에서는 진짜 화기인지도 수상했다.
총이 그 표면을 증식시키며 주변의 것을 집어삼킨다는 말은 들어본적도 없으니까!
콰지지직...
두줄기 무기의 하얗게 부풀어오른 표면이 마치 부글거리는 거품처럼 줄기를 뻗어 착실하게 센티널의 촉수들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금속촉수를 집어삼키고 압착해삼키던 과정을 반복하던 거품줄기가 센티널의 코어에, 그리고 핵융합엔진의 버프반응회로에 연결된 순간.
키이이이이이잉...
<고에너지원 포착.>
<1단계 전투모드 작동가능여부 판별중...>
<작동 가능 확인. 지금부터 적대개체의 자동 전방위 소멸을 실시합니다.>
눈 앞에 불길한 문구가 떠오름과 동시에.
키이이이이이잉....
"어어! 피해! 피해애애애애애!"
통제가 안된다!
기겁한 아린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우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악!
두줄기 무구 표면에 떠오른 수십개의 구멍, 그곳에서 뿜어져나온 수천줄기 포물선과 같은 레이저가 그야말로 노도와 같은 기세로 갑판과 고철선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며 구멍을 숭숭 뚫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