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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90화 (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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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르릉...

기관실.

이미 제법 너른 안쪽은 깨끗하게 정리된 상황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지저분하게 정리되었다고 해야하나?

원래는 검게 물든 갑피와 기계장비들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을것같은 커다란 두팔 두다리의 짐승.

하지만 5m가 훌쩍 넘는 녀석은 이미 심장이 뽑힌채 체액을 줄줄 흘리며 구석에 혀를 내밀고 널부러진 상태.

그리고 그런 녀석의 뒤에는 죽어가면서도 지키고 싶어했던 어떤 한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미 머리가 통째로 으깨진채로.

"이건... 여왕이군."

저벅.

걸어들어온 강태석이 거대한 특이종의 시체 뒤, 평범한 사람사이즈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날아가있기에 얼핏보면 인간같아보이기도 하지만 그 목줄기 사이로 보이는 시커먼 체액과 기괴한 단면이 녀석의 이질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디바우러 앤츠의 여왕의 핵심적인 역할은 부하들이 잡아온 <특별한 종>들의 뇌수를 뜯어먹어 그 기억과 특별함을 흡수한뒤 액기스를 만들어 다른 평범한 개체들이 만든 알에 불어넣는 것.

굳이 커다랄 필요가 없다.

여왕이 먹어치운 음식들의 종류가 다양하고 질이 높을수록 정수의 순도는 높아지며.

그렇게 불어넣은 정수가 특별할수록 더 강한 일반병종들과 더 특별한 특이종들이 알에서 자라나고.

이렇게 만들어진 강력한 군대들이 더 많은 먹이를 잡아오고 이를 정수로 삼키는 과정을 반복하며 디바우러 앤츠의 군락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딱히 인간만을 먹는것은 아니지만 먹어치우는 대상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여왕의 외관 또한 이를 닮아가니 족히 수천, 수만은 먹어치웠을 녀석의 외관이 인간과 거진 흡사하다고 하여 이상한건 없다.

중요한건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는 거지만.

'군파츠가 한건 아닐거다.'

고개를 돌린 강태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바디슈트째 멍하니 선 군파츠를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심장이 뽑힌 특이종.

사방, 모조리 박살나고 으깨져있는 수백개의 알들.

머리가 날아간 여왕까지.

벽을 넘은 자신이나 아너스빌이라면 모르지만 현재 특이종은 군파츠가 상대하기 버거운 녀석.

그리고 그런 시선속.

후우우우웅...

군파츠가 자신의 옆, 넘실거리는 은빛 물결을 드러내고 있는 커다란 기관실 외벽의 구멍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까전의 일을 떠올렸다.

**

10분전, 기관실.

콰드드드득...

<너... 너?>

군파츠가 눈 앞의 광경을 보며 눈을 꿈벅였다.

군파츠가 보았던건 강태석이 보았던 것 그대로의 광경.

박살난 특이종.

부숴진 수백개의 알들.

머리가 박살난 여왕.

다른게 있다면... 군파츠가 왔을때는 그 범인이 명백히 현장에 존재했었다는것.

그리고 심지어 그 상대는 군파츠가 아는 녀석이었다.

적발여인.

붉은 문신을 휘두른채 전섬, 오르테오에서 자신과 배 안에서 충돌했던.

그런 군파츠의 말이 떨어진 순간.

"엉? 누구?"

콰득...

마지막 알을 으깨어 바숴버리며 정말 모르겠다는듯 바라보는 적발여인의 말에 군파츠가 발끈했다.

<이 새끼가! 슈트 보면 몰라! 슈트! 내가 누군지!>

"뭔 소리야. 바디슈트가 이 세상에 어디 한두개야? 네가 누군지 그걸보고 어떻게... 아 설마?"

어이가 없다는듯 군파츠를 바라보던 적발 여인이 이내 웃긴다는듯 말했다.

"설마 너 그 년이야? 얼마전에 나랑 한판 붙었던?"

<... ....>

"아하하. 세상 진짜 좁네. 고철선이 왜 멈춰있나 했더니 앞에 너희 배가 들이받았었나보구나."

그런 적발여인의 말에 군파츠는 녀석이 <찢어발기고> 들어온것처럼 보이는 기관실 외벽, 넘실거리는 은빛바다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녀석이 뚫고 들어온건 오른쪽 후미.

반면 자신들의 배가 들이받혀있는건 왼쪽 전방.

고철선의 크기가 크기이니만큼 녀석은 자신들의 배를 확인하지 못한 모양.

그런 군파츠를 향해 적발여인이 싱글벙글 웃었다.

"카스티 고 계집애는 잘 데리고 있지? 하하. 세상높은줄 모르고 까불더니 잡혀갔을줄 누가 알았겠어. 우리도 깜짝 놀랐지 뭐야 배에 돌아가서."

<...>

"하여간 잘 감시해. 원체 잔재주가 많은 년이거든. 하하! 틈날때마다 참교육좀 해주고."

<...?? 너 지금 뭐하냐?>

"뭐하긴? 볼일 다봤으니 돌아가야지?"

뻥 뚫린 구멍너머, 자신의 개인용 마력엔진 제트스키를 타고 돌아가려던 적발여인이 되려 왜 그러냐는 눈으로 물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디바우러 앤츠 여왕의 처리.

혹시 모를 <비상용 패>로 놔뒀던 거지만 상황이 하수상하니 변수를 늘릴수없다는 상층부의 판단에 이근방에 온겸 겸사겸사 처리했다.

이 안에 있는 <물자>들도 대충 알고는 있지만 그것까지 끌고가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패스.

즉 이제 돌아가면 끝이다.

한데 왜 그런단 말인가.

잠시 고민하던 적발여인이 아 하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쳤다.

"설마 우리가 동료한테 너무 매정한거 같아서? 으하하! 동료고 뭐고간에 각자도생하는 거지. 얼간이처럼 단독행동하다 잡힌 놈이 바보 아니겠어? 그러니까 고 계집은 너희가 삶아먹던 말건..."

<그게 아니라! 너 그냥 간다고? 나를 무시하고?>

키이이잉...

군파츠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버럭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상대가 동료애가 있건 없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지금 저녀석이 한때 맞붙었던 자신을 개무시하고 떠나려한다는 것.

한때 자신들은 서로를 죽일 것처럼 한판 붙었던 사이다.

혹여 자신이 공격이라도 하려면 어쩌려고?

키이이잉...

그런 군파츠의 의지에 따라 어깨 양쪽에 달린 두개의 레일건이 키잉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그런 군파츠의 움직임에 멈칫한 적발여인이 이내 입꼬리를 시리게 끌어올리며 웃었다.

"아서라. 그만 둬. 인연이 신기해서 살려주는 거니까."

<...>

"알지? 그때야 그럭저럭 붙었지만... 지금 붙으면 죽는거."

콰르르르릉...

적발 여인이 흉흉한 기도를 뿜어내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전과 달리 붉은 문신도 감싸지 않은 평범한 상태.

하지만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사납고 육중한 기도가 군파츠를 찍어누른다.

그걸 본 순간.

<너도... 벽을 넘었구나.>

"응? 뭐 당연한걸 가지고. 넘을때 되서 넘은거지. 하여간 오늘 살려주는거니까 지금 내가 가는 방향보고 하루에 일어나서 세번씩 절해. 아 그리고 너희 배에 전에 그놈! 다시 만나면 나한테 죽는다고 꼭 알려주고. 치사한 새끼가 얍실하게 좀더 빨리 벽 넘은거 가지고 후드려팬다음에 도망가?"

그 말을 마친 적발 여인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들어왔던, 찢겨나간 외벽 구멍을 향해 훌쩍 뛰어내렸고.

부아아아앙...

이어 작은 제트스키가 투타타타 소리를 내며 북쪽의 어딘가로 은빛 벌레들을 헤쳐발기며 바다 위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 남은 자리.

<개 썅... 진짜.>

홀로 선 군파츠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

다시 현재.

"아 그 녀석이 왔다갔다고? 벽을 넘었고?"

<... 그래.>

"음 뭐. 그럴수 있지. 이제 이해간다."

군파츠의 절망서린 말을 듣던 강태석이 대수롭지 않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 아귀가 들어맞는다.

부르탄 입장에서는 이게 적당한 <폭탄>정도였겠지만 난리가 난 틈에는 어디에 떨어져 문제일으킬지 모르니 처리한것.

적발 여인이 벽을 넘은것도 이해가 간다.

어차피 벽을 넘을수 있는 녀석이었고 벽을 넘을 때가 되어보였으니까.

애초에 거기 모여있던 일곱녀석들 모두 벽을 넘기 직전의 녀석들.

그냥 재능있는 녀석들을 때가 되어 겸사겸사 일도 시킬겸 바깥으로 내돌린거니 어찌보면 당연한거다.

'아마 남은 녀석들도 지금쯤 다 넘었겠지.'

뭐 녀석들에 대한 고민은 딱 거기까지.

사실 강태석이 궁금한건 이 <배>에 연관된 사연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에 들린 작은 USB.

이는 지금 머리가 박살난 특이종의 허리춤에서 나왔다.

아마 인간인 시절의 기억이 드문드문 남아있기에 보관했을 터.

띠딕...

강태석이 손목의 USB를 끼우자 패널 위로 데이터가 떠올랐고.

이를 본격적으로 읽어보려던 강태석을 향해 군파츠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넌 뭐 아무렇지도 않아? 그놈이 왔다 갔다니까? 벽을 넘었고?>

"군파츠."

<... 엉?>

"나 집중좀 하자."

"... 개새끼 진짜."

치이이익...

슈트를 벗고 나온 군파츠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쌍욕을 내뱉은뒤 힘빠진듯 슈트에 털썩 기대 주저앉았다.

**

오시리스, 갑판.

"후우... 대충 끝난거같은데."

"아마도요."

치이익...

어느새 밖으로 나온 카티의 옆, 남은 다섯개의 꼬리와 머리를 쪼개버린 아너스빌이 그 시체를 끌고나오며 갑판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고철선은 만신창이 상태.

두줄기 섬광과 수천줄기 섬광들이 후려치고 관통한 고철선은 온통 구멍이 숭숭 뚫리고 녹아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게 많아보였다.

이유는 그런 폭발과 화염 속에서도 멀쩡하게 모습을 유지하고있는 엑소슈트들 때문.

한 컨테이너에 여덟개 정도.

전체 컨테이너들을 모두 합치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도 힘들어보였다.

거기에 다른 물자들까지 감안한다면 더더욱 대박!

"거기다 이제는 위험요소가 없겠군요. 그 괴물 놈들은 방금전 포화로 다 쓸려나간거 같으니."

"다 우리 딸이 잘한 덕분이지. 장하지?"

카티의 말에 아너스빌이 어깨를 으쓱하며 갑판 한가운데, 지쳐 널부러진 와중에도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아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아린의 곁에는 두개의 기묘하게 생긴 무기가 둥둥 주변을 비석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

'대단하군. 진짜로.'

아너스빌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딸바보같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카티의 말이 맞았다.

좋은 병기에 핵융합엔진이 있으니 가능했다고?

어릴적부터 여러가지를 보아왔던 아너스빌은 진실을 안다.

<과한 병기>에 <넘치는 힘>은 <어울리는 자>만이 사용할수 있다는 걸.

비록 폭주 조금 했다고 해도 그걸 모조리 소화해낸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그리고 지금 가부좌를 틀고 있는 현재 아린의 상태가 이를 버텨내고 소화해낸것에 대한 보상.

아린은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벽을 넘었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다시 뜰때쯤 그녀의 눈 앞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있을 것이다.

얼마전, 벽을 넘은 자신처럼.

"그나저나 카트란 이 친구는 어딨는거야."

"글쎄요. 들어가서 수장을 처치한거같긴 한데."

카티의 말에 아너스빌이 고철선을 바라보았다.

중간에 폭격에 맞아죽던 와중에도 흉성을 드러내며 사람을 물어뜯으려던 괴물들이 어느순간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며 괴성을 내지르는게 느껴졌다.

아마 머리를 잃고 당황한 것일터.

이로서 상황은 깔끔하게 종료된 것처럼 보였다.

다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있지만.

'이 배에 실린 것들... 이거 대체 어디서 온거지?'

무기고 수준도 뛰어넘은 무장들.

아너스빌이 눈을 갸름히 뜨고 고철선 안쪽, 신나서 각 쉘터들이 들고오는 물자와 엑소슈트들을 바라보던 그때.

쿠구구구구...

안개가!

안개가 걷힌다!

갑판에 선 이들의 외침에 아너스빌이 고개를 돌렸고.

이윽고.

"... 맙소사."

쿠구구구구...

안개너머, 드러나기 시작한 광경에 아너스빌이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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