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91화 (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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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무너졌다. 우리를 버린 나라에서 쫓겨나 자리잡은 곳마저 안식처가 될수 없다니.

>그나마 다행인건 이곳의 모두가 힘을 합쳐 거대파쇄기를 개조하고 있다는 것. 운이 좋다면 기계병기들이 몰아닥치기 전에 이곳을 떠날수 있을것이다. 얼마나 떠돌아야할진 몰라도.

<****.**.**>

>대단히 운이 좋다. 부르탄의 어떤 미치광이 연구팀이 해냈다는 이 고철선의 개조는 정말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우리는 지금 은빛바다 위로 떠올라 잠겨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중. 엔지니어 출신인 나로서는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 사람들이 우겨 타느라 이 거대한 고철선엔 물자를 얼마 싣지 못했다. 귀한 물건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사치. 나와 내 동료들은 이제껏 경험으로 알수 있었다. 이제 곧있으면 수만명이 탄 이 거대한 배에 초유의 피바람이 불어닥칠수도 있다는걸. 모두가 배고픔속에서 서로를 죽이고 뜯어먹는 꼴을 보고싶지 않다면... 빠르게 방도를 찾아야한다.

<****.**.**>

>결국 우리가 생각한 방도는 하나였다. 북쪽으로... 북쪽으로 향하는것.

>북쪽 저 먼곳에는 방위도시, <센트라>들이 존재한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지만 아직 그 위대한 문명들은 건재할 터.

>그곳으로 가면 살수 있다. 한참이나 걸리겠지만... 가진걸 아껴가며 버틴다면... 사람들간에 대학살이 일어나기 전에는 도달할수 있으리.

<****.**.**>

>... 신은 우릴 버렸다.

>거대한 장벽. 너무나 거대한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강태석이 여기까지 읽은 순간.

!!!!!!!

!!!

반사신경에서 뇌속, 뇌속에서 암흑회로로 진화한 감각계가 저 멀리, 바깥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을 잡아냈다.

현장은 상당히 요란스럽겠지만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는 아주 간신히 들려올 정도로 작은 소리.

그리고 이는 오른쪽, 바다를 타고 뻥 뚫려있는 구멍으로부터 흘러들고 있었다.

집중이 깨진 강태석이 고개를 돌린 순간.

쿠구구구구구구....

"... 저게 뭐야."

옆에 서있던 군파츠가 안개가 스러진 바다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를 보며 탄식을 토했고.

그런 군파츠를 향해 강태석이 덤덤하게 말했다.

"궤도 엘리베이터지. 서있을때랑은 느낌이 좀 다르지?"

쿠구구구...

안개너머.

수평선 근방 바다를 마치 장벽처럼 가로막은 높이 수키로미터, 양쪽으로는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원형의 검은빛 구조물을 강태석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

궤도 엘리베이터.

별칭은 바벨.

신에게 도전했다 무너진 구조물이니 정식으로 그런 재수없는 이름을 붙일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지상에서 우뚝 솟아 천공으로 수만키로미터를 뻗어나가는.

지상을 정복한 연방이 우주로 뻗어나가기 위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지은 핵심구조물.

나노머신, 증식배열, 타르늄 금속, 반중력기술, 차원좌표지정기술, 은폐장.

온갖 연방의 최첨단기술에 마법과도 같은 신비들까지 더해져 만들어진 불가지, 불가해의 건축물.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그 사이즈가 이를 증명한다.

"저게... 일부분이라고?"

쿠르르릉...

마치 우뚝선 대륙과도 같이 은빛바다 너머의 시야를 막아선 검은 장벽을 보며 군파츠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크기.

자신도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거의 보지는 못했다.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다보면 맑은 창공 사이로 마치 금성마냥 일부가 드문드문 비추다가 금방 사라지던게 전부.

아니, 애초에 연방내 도시이주권한이 없는 대부분의 일반시민들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 멀리서 드문드문 보이긴 하지만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해본 이는 없는.

한데 실로 눈앞에 이렇게 넘어져있는 걸 보니 정말로 거대하다.

이런걸 인간이 지었다고?

거기에... 이게 미완성이라고?

그런 군파츠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궤도엘리베이터는 미완성.

아래에서 차곡차곡 위로 쌓아올려가며 끝없이 그 높이를 올려가긴 했지만.

그리고 지어진 그 부분은 나름대로의 몫을 해내긴 했지만.

원래 목표로 한, 궤도엘리베이터로서의 기능을 하기위한 높이까지 지어지지 못한채 그대로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지금 바다를 정면으로 모조리 가로막아버린 장벽들이 그 파편.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있고 우그러져있긴 했지만 말도 안되는 기술력이 적용되었다는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혹은 은빛바다가 무너질때의 충격을 받아주기라도 했다는듯 이 멸망한 세상속에서도 거대한 엘리베이터는 원통 형태 그대로를 은빛 바다 속에서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러면 정면으로 가도 의미없는거 아냐? 다 막혀있는거같은데."

걷힌 안개너머.

사선으로 그야말로 끝도 없이 뻗어 바다를 가로막은 원통형의 장벽을 보며 군파츠가 걱정스레 묻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라면 통과할수 없다.

이 장벽의 끝이 어딘지는 강태석조차 짐작하기 힘드니까.

그렇기에 몇가지 <방법>중 하나를 택해야한다.

하지만...

'일단 이거부터 마저 읽고.'

강태석이 기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정면, 저 거대한 장벽에 대한 힌트가 이 안에 들어있을수도 있기 때문.

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법.

강태석은 고철선의 힌트를 마저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

>... 눈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 떨어져가는 물자. 우리는 이걸 돌아서 향할 시간도, 목적지도, 여유도 없다. 그전에 물자는 모조리 떨어지고 배 안은 난리가 벌어지리라. 심지어 안개가 짙고 은빛 바다가 온 감각을 뒤틀어 다른 섬마저 찾을수 없는 상황.

>다만 한가지 남은 방법은 있다. 눈 앞의 무너진 궤도 엘리베이터 그자체.

>무너지며 거대한 궤도엘리베이터에도 겉부분이 파손되고 구멍이 생겼다. 그곳을 통해 배가 지날수는 없지만 안에 들어갈수는 있는 법.

>저 거대한 건축물... 건축물 안에 어쩌면 우리가 살아날지 모르는 희망이 있을수도 있는 상황.

>우리는 이제...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저 거대한 벽 안으로 들어간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배. 1년반만의 기록을 남긴다.

>저 안은... 지옥이었다. 비록 우리는 저 안에서 많은 것을 얻었으나 이제 끝.

>급하게 저 안에서 얻은 물자를 싣고 부랴부랴 탈출했지만 이제 끝으로 보인다. 이미 배는 저 안에서 넘어온 괴물놈 하나때문에 난리가 났으니까.

>기관실에 숨어있던 놈을 몰랐던게 패착. 하지만 배는 이미 떠났고... 지금 배의 살아남은 모두는 무차별적으로 녀석이 낳은 새끼들에 의해 사냥당하고 있다.

>지금 급하게 사이보그화 무장을 하고 있지만 늦은것같다. 지금 우리가 숨은 강철문이 실시간으로 우그러지며 찢겨나가고 있으니까. 아마 이게 마지막 기록이 될터.

>빌어먹을 세상. 거지같은 신. 모두가 죽었으면 좋겠다. 나만 죽으면 억울하니까.

<****.**.**>

>왠지 모르겠지만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아마도 이성이 흐려지는게 더이상 기록할것같진 않지만.

>... 기록을 읽어보니 후회가 된다. 내가 왜 모든 사람들이 죽으라고 저주했을까. 그래서는 안됐는데.

>최대한 많은 이들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여왕님께 가져다바칠 특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여기까지가 기록의 마지막.

"..."

이를 모두 읽은 강태석이 혀를 찼다.

어떻게 된건가 했더니 고철선의 난민들이 바벨 안으로 들어가서 살다가 버티지 못하고 도망나왔지만 안에서 따라나온 <재앙> 한녀석에 모조리 죽게 된것.

그렇다면 배 안에 있는 수많은 물자들도 모조리 설명이 된다.

이는 생존자들이 이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을테니.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자신들도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

"위로 올라가지. 해야할 말이 있으니까."

강태석의 말에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던 군파츠가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

오시리스, 회의실.

"정면의 장벽을 다들 보셨을 겁니다. 다들 모이시라 한 이유는 그것때문입니다."

"..."

강태석의 말에 모여있던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말도 안되는 것을 본터라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은빛 바다에 수많은 섬들만 해도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제는 바다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까지?

그런 이들을 향해 강태석이 덤덤하게 말했다.

"방법은 다섯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여기 적어둔대로."

그러며 강태석이 앞의 칠판을 가리켰다.

말대로 지금 가능한 방법은 다섯가지.

첫번째, 그냥 벽을 안 넘고 이쪽 바다에 눌러앉는다.

두번째, 이 거대한 벽을 그대로 넘어간다.

세번째, 이 거대한 벽이 끝나는 지점까지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배를 타고 끊임없이 항해하다 지난다.

네번째, 칠국연합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동쪽 저먼곳의 <운하>를 이용한다.

다섯번째, 이 고철선의 생존자들이 타고 들어갔을 남쪽의 구멍으로 들어가 북쪽의 구멍이 뚫린 곳까지 배를 타고 이동한다.

그리고 강태석이 적어둔 방법 순서의 기준은 간단했다.

불가능한 순서대로.

첫번째는 당연히 기각.

여기 앉아서는 그냥 죽는날만 기다리는 것이니 말이다.

섬과 섬 사이들을 돌아다닌다고 한들 결국 멸망의 때를 기다리는것밖에 되지않는다.

두번째는 불가능.

이 거대한 원형의 장벽을 배로 타고 넘는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이고.

넘어가려면 이쪽의 벽과 저쪽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저건 지금 자신들이 부술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기록을 남긴 기존의 생존자들은 궤도엘리베이터의 일부가 <추락>의 충격때문에 부서졌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소리.

그건 애초에 그정도 <사고>로 부서질 재질이 아니며.

그 벽을 부숴놓은건 다른 <존재들>이다.

어찌보면 저 거대한 궤도엘리베이터가 무너질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기각.

세번째는 미친짓.

이 거대한 장벽의 파편이 대체 얼마만큼 이어져있을지는 강태석조차 모르고.

그 벽을 따라가는 길고 길며 무의미한 여정속에 어떤 과정과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신조차 알수없다.

심지어 타고 타고 타고가다 물자가 떨어지고 아무섬도 찾지못해 배위에서 모조리 굶어죽을수도 있는 상황.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수는 없기에 이또한 기각.

그리고 이제는 네번째와 다섯번째가 남는데...

"서쪽으로 가면 칠국연합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운하가 있긴 합니다. 한데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군요."

강태석이 덤덤히 말했다.

운하.

말하자면 아주 운좋게 궤도엘리베이터 벽면의 이쪽과 저쪽이 깔끔하게 뚫린.

그렇기에 배를 타고 이 바다와 저 바다를 건널수 있는.

저번 섬 아만테오에서 보았던, 칠국연합의 인재들이 타고 건너온 배가 그런 운하를 통해 건너온 케이스에 해당하며.

그들 칠국연합은 그 운하를 통해 이쪽의 세계와 그들의 영역을 오고갈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 운하를 통한다면 별 문제없이 저쪽 세계로 건너갈수 있을터.

하지만...

'가만히 놔둘리가 없지.'

강태석이 네번째 보기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위험한 궤도엘리베이터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설물, <운하>

당연히 그곳에 주둔하며 지키고있는 칠국연합들 병력의 질과 양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며.

이런 조각배 하나 끌고 갔다가는 그대로 나포당해 모조리 해체될 게 뻔하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제기랄. 보기가 처음부터 하나였어?"

칠판 앞, 다섯번째의 보기를 보며 모여있던 사람들이 쌍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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