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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치, 죽은듯 발랑 뒤집어져있는 은빛기계벌레 액체들로 이뤄진 물결.

촤르르르륵...

이 거대한 금속튜브 역시 타르늄 금속으로 만들어져있으니 이녀석들 역시 작동을 멈추고 나자빠져있는건 이상할게 없다.

문제는 대략 30cm 정도로 쌓여 찰랑거리는 녀석들의 흐름.

촤르르륵...

촤르륵...

아주 미세하지만 은빛 물결을 이루고있는 녀석들이 찰그락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흘러들어가는게 느껴진다.

마치 어딘가가 이 물결을 빨아들이듯이.

이곳은 대략4층정도 높이.

이곳이 이정도라면 아래, 은빛나노머신에 푹 잠겨있을 1-3층들은 좀더 상황이 심할터.

잠시 고민하던 강태석이 탄식을 내뱉었다.

"D 타입이구나."

"엉? 뭐?"

무장을 재점검하고 떠나려던 더그가 뒤에서 물었다.

**

상황, 장소, 시기, 구성.

여러가지에 따라 세계관내, 같은 장소와 비슷한 시간대라도 여러분기로 갈리는 장소가 존재한다.

이곳, 게임내 통칭 <대륙진입로>라고 불리우는 장소도 그중 하나.

궤도엘리베이터에 수많은 주변국가, 격동하는 괴생명체와 여러 생존자들이 맞물려 이 광대하면서도 격리된 공간은 여러가지 타입으로 분화한다.

크게 A부터 E까지.

A타입, <부화>.

관내부, 모든 생명체가 격동한 끝에 폭발하듯 자라난 <무언가>들에 사멸하고 그렇게 태어난 <무언가>는 이곳을 떠나 북쪽으로 향하는 케이스.

마치 이 거대한 관이 재앙을 잉태하는 알이자 둥지가 되듯.

이 안의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키고 자란 무언가가 북쪽으로 나아가며 또다시 모든것을 삼키는.

만약 강태석들이 이안에 있었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을 케이스지만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이보다 좋은게 없다.

위의 디바우러앤츠고 뭐고 모조리 죽어있을 것이기에 그냥 유유자적 관을 통과해 반대쪽으로 지났으면 되니까.

하지만 생명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에 이는 패스.

B타입, <내란>.

모여든 수많은 생존자들이 강해지고 강해져 모든 괴물들을 쓸어버리고는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이는 상태.

아주 특수한 인물들이 각 생존자집단들의 지도자 자리를 움켜쥐었을때 이런 일들이 벌어지며.

그렇게 자라난 집단들은 생존에 방해되는 괴물같은 것들은 진즉 저들끼리 다 쓸어버리고 저 바깥, 칠국연합 저리가라하는 무력과 세력을 자랑하며 이 좁은 관 안에서 전쟁을 벌인다.

어찌보면 이또한 최악이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아직 이런 케이스는 아닌것같다.

만약 이정도였다면 당장 원거리에서 <포격>이 날아들었을테니까.

이도 패스.

C타입, <제국>.

한 세력이 다른 모든 세력을 집어삼키고 본격적으로 바깥을 향한 야망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케이스.

이 거대한 궤도엘리베이터는 음산하고 삭막해보이지만 잘만 활용해낸다면 <자립> 자체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뛰어난 인재들과 세력을 가진 누군가가 시설들을 복구하고 세력을 일통하면 이 거대한 공간 자체가 훌륭한 국가의 기반이 될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럴경우 칠국연합의 운하가 진즉 박살나있을테니 이것 또한 패스다.

이렇게 태어난 이들은 안쪽, 여전히 폭발할듯 들끓고있는 불만과 문제들을 억누르기 위해 그 힘을 바깥으로 발산하기 마련이니까.

E타입, <관짝>.

A타입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시스템의 오작동, 환경의 비틀림, 자기정화기능, 기타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생명을 위해야할 이 거대한 공간이 반대로 생명체를 공격하는 환경으로 변해 내부생명체를 단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것.

극한의 생존력을 가진 몇몇 진짜 <괴물>들만이 살아남아 안을 배회하며.

위와 아래가 합쳐져 이 거대한 공간은 어지간한 생명체는 절대 살아남지 못하는 데스필드로 변한다.

만약 이 케이스였다면 강태석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운하를 돌파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배를 버리고 이 거대한 산을 타넘던가.

하지만 이경우 멀리서 봐도 살벌한 기운이 느껴지니 패스.

그리고 마지막.

D타입, <잉태>.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각축을 벌이는 상태.

살아남은 생존자들, 번성하려는 괴물들, 여전히 기능이 남은 시스템과 곳곳의 유물들.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살아남기위해, 자라나기위해, 혹은 집어삼키기 위해 발버둥치며 카오스를 만든다.

당연하지만 더럽게 위험한 상태.

<내란>이나 <제국>은 각자가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기에 말이라도 통하지.

이 케이스에 접어들면 이 공간 내부 모든 이들이 여유가 없기에 서로가 어마어마하게 살벌한 대치상태를 유지한다.

발 아래 흐름은 <시스템>이 작동하여 은빛물결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의미.

괴물들이 있다는 것은 A나 E는 아니라는 의미.

이 경우 높은 확률로 D.

이 상태에서 45km를 지나친다?

각종 생명체들의 군락과 군벌화되어있을 생존자들을 지나쳐서?

'다 죽겠는데.'

강태석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현재 자신들은 이 먹이사슬 생태계에 있어서 가장 약한 집단에 가깝다.

이 가장 끝자락, 생태계 외곽범위까지 밀려났을 <디바우러 앤츠>들과도 제법 바쁘게 싸워야할 정도로.

자신이나 아너스빌, 아린, 군파츠 등과 소수 생존자들은 살아남아 도착할지 몰라도 피해가 어마어마할터.

이 상황에서 강행돌파를 해야하나?

잠시 고민하던 강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이제까지 해온게 너무 아깝다.

최악의 선택지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까지 보류.

<050041-F>

천장에 커다랗게 쓰여있는 섹터의 위치를 확인한 강태석은 뒤의 더그를 향해 말했다.

"돌아가서 045515-H로 이동하라고 그래. 모두 다."

"엉? 거기가 어딘데?"

이에 강태석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성."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야할수도 있는.'

강태석이 숨을 길게 내쉬며 너른 우주선 형태의 기계벌판을 바라보았다.

**

궤도 엘리베이터, 거주구 5층.

콰아아아아아아앙!

<끝도... 없이 몰려오는구나!>

거대한 에너지소드를 휘둘러 크기 3m의 괴물들을 쪼개버린 군파츠가 버럭 소리쳤다.

내용은 다급했지만 표정은 반대로 자신감이 넘쳤다.

새로 얻은 무장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 때문.

'엄청나잖아.'

키이이잉...

크기 4m, 희미하게 푸른 빛이 걸려있는 거대한 칼을 보며 군파츠가 포식장갑의 손에 힘을 꾸득 주었다.

기존 에너지소드와는 출력 자체가 다르다.

배, 오시리스를 통해 꽉꽉 충전한 축전팩의 에너지를 모조리 활용할수 있는 단분자코팅소드.

거기에 이를 폭발적으로 활용할수 있는 강화된 근력까지.

사실 엑소슈트의 강화근력 자체가 어마어마한건 아니었다.

딱 무거운 탄약을 짊어지고 지형지물을 어느정도 타넘을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애초에 엑소슈트란것 자체가 원거리 전투형태를 위해 설계된 것이다보니 근거리의 폭발적인 움직임이 필요없는건 당연했다.

지금 눈앞에서 달려드는 개미떼들을 모조리 찢어발길수 있게 도와주는건... 양손, 자유로이 움직일수 있는 포식장갑의 힘.

투타타타타타타!

콰아아아아아앙!

쉴새없이 레일건을 쏘아대는 탄약과는 별개로 자유로운 두개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이며 뒤쪽, 생존자들을 덮치려는 괴물들을 사정없이 토막내고 찢어발겼다.

거기에 안쪽으로 쉴새없이 가해지는 온갖 자극.

'크으윽...'

치이이익...

안쪽에 타고 있던 군파츠가 전신을 감싼 포식장갑으로부터 들어오는 온갖 종류의 자극에 이를 악물었다.

강제로 움직이는 사지, 필터링없이 뇌리로 밀려드는 온갖 확장센서의 감각들, 끊임없이 자신의 마력을 끌어다쓰는 회로.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고있는건 거침없이 썰려나가고 있는 적이 아닌, 자신을 감싼 포식장갑 그 자체였다.

자신의 뇌와 신경, 마력회로와 근육이 모두 타버릴 정도로 강렬하게.

하지만 결코 죽지는 않을 정도로.

그 속에서 군파츠가 희열어린, 아니 광기에 가까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였구나.

이래야만 벽을 넘을수 있다니 카트란 그녀석이 자신들은 벽을 못넘는다고 했을수밖에.

평생 이 세계를 헤멘다고 한들 결코 맛볼수 없었을, 강렬한 생명근원에 대한 자극.

자신을 감싼 장갑은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쥐어짜며 목숨과 육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벽을 넘어서라고 압박을 하듯.

하지만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

그러니 사랑스러울수밖에!

물론 모두 마음에 드는건 아니었지만.

뿌드드드드드득!

<으. 이건 정들려나 모르겠네.>

칼을 휘두르던 오른손과 반대로, 달려들던 괴물의 머리통을 왼손으로 뽑아버린뒤 입을 쩌억 벌려 우걱우걱 삼켜버리는 흉부전면의 장갑을 내려다보며 군파츠가 혀를 내둘렀다.

전투중에도 끊임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 제멋대로 움직이는 흉부의 입.

마치 너랑 상관없이 스스로가 중요하다는듯 끊임없이 달려드는 개미놈들을 뜯어버리고 집어삼키기 바쁘다.

물론 이는 군파츠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쮸르르르륵...

전투 시작과 동시에 몸을 파고든 수십개의 관들로 밀려드는 정체불명의 액체들.

더불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재생력, 줄어드는 고통, 늘어나는 체력.

그렇게 강해진 회복력에 더욱 강해진 자극과 압박이 들어오며 육체를 파괴하려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압박이 벽을 뛰어넘으려는 과정에 가속을 더한다!

한치라도 어긋나는순간 온몸이 붕괴되어버릴것같은 외줄타기의 행보.

투콰콰콰콰콰!

콰아아아아아아앙!

'더더... 더더더더더!'

<아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그야말로 광전사처럼.

가장 선봉에 선 군파츠가 미친듯이 달려드는 괴물들을 썰어제끼며 그야말로 뛰어들다시피하며 앞으로 향하던 그때.

텅텅.

<뭔... 더그?>

자신의 다리를 두드리는 무언가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칼을 휘두를뻔한 군파츠가 자신의 발치에 선 상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몰입이 깨져 짜증이 치솟은것.

그러거나 말거나 발치에 도달한 더그가 짜증을 버럭 내며 소리쳤다.

"미친 년아! 어디까지 들어가려고! 넌 방어통솔조잖아!"

<...>

뒤를 돌아보니 주춤하면서도 밀려나는 다른 엑소슈트의 생존자들이 보였다.

앞서가는 군파츠를 차마 따라잡지 못하고 밀려드는 괴물들에 의해 차츰차츰 뒤로 밀리고 있던것.

<... 미안하다.>

"됐어. 그나저나 카트란 그녀석이 시켰어. 방향 틀래. 045515-H로."

<엉? 거긴 여기서 조금 서쪽이잖아.>

콰아아아앙!

투타타타타타!

자세를 자리잡고 전열을 지키기 시작한 군파츠가 칼을 휘두르면서도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근방 지리는 진입 전 대충 입력해두긴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헷갈린다.

자신들이 향해야 할 입구는 북동쪽.

한데 서쪽으로 가라고?

멀진 않기는 해도 완전 반대방향.

그런 군파츠의 말에 더그가 인상을 팍 썼다.

"몰라. 빨리 움직여. 언제 그놈이 제대로 말해준적이 있어야지."

<이대로는 못 빠질텐데.>

"여왕은 다른 요격조 놈들이 맡기로 했어. 흔드는 사이 빠지면 될거야."

<다른? 카트란은?>

이에 군파츠의 발치에서 달려드는 괴물놈을 슬쩍 피하며 정수리에 에너지소드를 꽃아넣은 더그가 투덜거렸다.

"그것도 몰라. 플랜 BBBBBBBBBBBBBBBB라나 뭐라나. 바쁘니까 나중에 합류해서 얘기하잰다."

콰드드드득...!

<...>

더그의 말에 군파츠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갑자기 계획이 바뀌었는지 알수없는 상황.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제까지 그놈 말 들어서 뭔가 다 죽을뻔한적은 없었다는 것.

<하... 모르겠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달려드는 괴물놈을 썰어버린 군파츠가 서쪽으로 방향을 돌림과 동시에.

투타타타타타!

양 어깨에서 진군할 방향을 알리는 녹색 조명탄이 사정없이 서쪽 천장을 향해 쏘아졌다.

**

궤도엘리베이터거주구. 4층.

투타타타...

쿠쿠쿠쿵...

쉴새없이 울려퍼지는 폭음들이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낀 강태석이 숨을 후 내쉬었다.

통솔은 군파츠와 페리트란들이 해줄거고 여왕은 자신과 함께 요격을 맡은 아너스빌이 대신 해줄것이다.

아린의 지원사격까지 있다면 큰 피해없이 해당구역까지는 대피할수 있을 터.

자신은 그동안 플랜 B를 실천해야한다.

정확히 말하면 BBBBBBBBBBBBBBBB.

어지간하면 하고싶지 않았던 짓거리를.

<퀘스트 : 리틀월드. 실행 가능합니다.>

<착수하시겠습니까?>

리틀 월드.

작은 세상.

이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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