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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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래. 너는 말리고 싶겠지. 역시 운하쪽에서 왔구나."

강태석의 말에 여인, 시카른의 눈썹이 치꺾였던 것도 잠시.

심증을 확증으로 굳히며 시카른이 크게 웃었다.

운하에서 온 녀석이니 운하를 공격하는 것을 꺼리는것 아니겠는가.

어쩐지 레멜른 그 뱀같은 놈의 섹터가 녹아내릴때 표정하나 안변하나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시카른은 더욱 득의양양하게 고개를 까딱이며 두번째 포격을 명령했다.

놈들이 뭔가 낌새를 차리기 전에 단번에.

중요시설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타격, 5번의 포격 안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고 차례대로 정리한다.

일단 목표는 정가운데.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녀석들이 가장 삼엄하게 방비하고 또 조심스레 여기던 곳.

무기저장고도, 함선항구도, 탄약고도 있지만 그곳이 가장 우선이다.

그렇게 시카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난 모른다."

불을 뿜은 포신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린 강태석은 몸속, 어둠을 들끓이며 자신도 나름대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

찰박.

"생명이 태어나긴 하는구나. 이 죽음의 바다에서도."

타르늄금속튜브.

그 안에서 생기를 잃고 고인 은빛벌레들의 바다.

그 물결이 고인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청년이 그 끝에 잡혀올라오는 자그마한 생명체를 보며 히죽 웃었다.

놀랍게도 흉성이 제거된, 물고기를 닮은 작은 기계생명체.

타르늄 금속에 의해 인간에 대한 적의를 잃고 꾸물거리기만 하는 작은 은빛벌레들은 그 와중에도 뭉치고 뭉치며 작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물론 이정도 고인 저수지에서 거대한 마수가 태어나는 일따위는 없겠지만 말이다.

'하긴. 지금 이 튜브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도 저 은빛바다 덕분이지.'

슬쩍 몸을 돌려 동쪽을 바라본 청년이 그 역설적인 사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고철선의 이동수단으로 발명된 웨일-엔진.

은빛 기계벌레들을 삼키고 분해해 금속재료와 에너지를 얻어내는 이 쓸만한 발명에.

이를 타고 이곳에 발을 디딘 어떤 누군가가 한가지를 더했다.

은빛벌레들에 포함된 소량의 생체성분들마저 웨일엔진을 통해 분리해내고 농축하는 방법을 만들어낸 것.

즉 그 엔진을 통해 금속과 에너지뿐 아니라 인간이 먹고살수 있는 용액마저 추출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하나하나당 그 양은 미미하지만 웨일 엔진 하나가 하루에 걸러내는 은빛기계벌레들의 양이 원체 어마어마하기에.

그렇게 차곡차곡 제작된 웨일엔진들이 현재 이곳, 은빛바다로 푹 잠긴 궤도엘리베이터의 1층부터 3층들에 수백개가 설치되어 작동하고 있기에.

각 생존구역이라고 지정된 비상대피지정소로 제법 상당한 양의 에너지와 영양액들이 쉴새없이 튜브의 플랫폼 시스템 인프라를 타고 흘러들어 이 고립된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운하와 구멍으로 빨려드는 흐름이 발생하는 것은 이때문.

자신이 손쓸수는 없지만 그런 식으로 저들끼리 나름 잘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게 기특할 지경.

"당분간은 적막하겠어. 나쁘지 않지만."

포옹.

은빛 기계어를 다시 고인 저수지에 던진 청년은 낚싯대를 드리운 뒤 제복여인이 주고간 장서중 하나를 펼쳐들었다.

제 1연방통합기.

1900년부터 1970년까지, 연방의 남대륙 통합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

"추억이다. 추억이야."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걸 이 난리통에 어찌 구했는지.

그때 그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장서를 쓰다듬던 청년이 제복여인을 향해 기특한 마음을 키워가던 그때.

찰나의 섬광.

이어.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 일격으로 한개의 성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포격이 그대로 사내가 앉아있던 자리를 직격했다.

**

"... 사람?"

망원경을 들어 저 너머를 보던 여인, 시카른이 눈매를 좁혔다.

분명 사람이 서있었던것 같은데...

하지만 이내 시카른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별일 있겠는가.

어차피 잿더미가 되었을 터.

무슨 시설이 있었는지 몰라도 주변 구조물이 모조리 찢겨나가고 화염에 녹아내리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차례대로 2파 준비.

"준비!"

시카른이 뒤를 향해 소리치던 그때.

어어?

이 새끼! 머리 안내밀어?

꾸물꾸물 금속 상자 안으로 머리를 쑥 집어넣고 있는 포로를 보며 당황하는 수하들의 외침에 시카른의 시선이 고정되었지만 이는 정말 길지 않았다.

고개돌린 뒤쪽, 자신이 원래 바라보고 있던 서쪽에서 터져나온 한줄기 격풍때문.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터져나온 삭풍이 자신들을 휘감은 순간 시카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람에는 속칭 이야기속에서나 등장하는 살기도, 흉험한 기세도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느낄수 있었다.

전조.

생명체라면 마땅히 눈치채야할.

거대한 태풍, 폭풍, 재앙, 핵폭발.

마치 그런 것들이 터져나오기 일보직전의.

온 생명을 위협할 그런 무언가가 터져나오기 직전의 기운을.

그런 이들에게.

"너희도 빨리 이런거 하나 구해. 될지 모르겠지만."

퉁!

머리를 숨기다못해 숫제 반대방향으로 넘어트려버린 강태석이 상자안에서 중얼거렸고.

"... 저건 뭐지?"

저 너머, <무언가>를 가리킨 시카른의 질문에 강태석이 덤덤히 대답했다.

"느낀 그대로지. 핵폭탄같은거."

전략병기.

단번에 하늘을 누르고 대지를 흔들고 국가를 무너트릴.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그런 전략병기들을 이렇게 부른다.

<귀족>이라고.

그런 강태석이 말이 끝나기도 전.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쓰나미가 몰아닥치기전 해일이 빨려들어가듯.

사방, 50km에 달하는 전역의 마력이 저 멀리 한군데로 쫘아아아악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후하. 하하하하."

녹아내린 금속의 구조물과 대지 사이.

펄펄 끓는 금속용액속에서도 옷자락 하나 타지 않은 사내가 놀랍게도 허공을 밟은 채로 웃었다.

하지만 멀쩡한건 본신뿐.

주변의 장서도, 음식도, 기호품도 방금전 포격으로 모조리 타버린 상황.

"내가... 너무 <서쪽>에 집중하느라 몰랐구나."

입꼬리는 올라가있지만 눈꼬리는 더할나위없이 차갑다.

키이이이이이잉...

마치 뻥 뚫린 구멍이 사방의 물줄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듯.

사내의 손가락 끝에 만들어진 작고 푸른 구체가 사정없이 사방의 마력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장구하면서도 미약하지만 워낙 광대한 범위에서 빨아들이고 있기에 실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흐름.

그렇게 개울이 모여 강이 되고 강들이 모여 바다로 흘러드는듯한 거대한 물줄기가 손가락 끝의 한점으로 모조리 빨려들어 응축된다.

그리고 그 속.

쿠르르릉...

푸른 구슬을 손가락끝에 빙글빙글 띄운 청년이 동쪽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대초인을 따른지 어언 100년 가량.

그분들중 하나께서 자신에게 이곳을 지키란 명을 내리셨고.

그분들의 행방이 묘연해진 이후에도 자신은 이곳을 계속해서 지켜왔다.

정확히 말하면 넘어진 궤도엘리베이터의 위쪽, 이곳의 방위로 말하면 <서쪽>에 해당하는 부위를.

한데 너희를 아끼는 대초인의 뜻을 이어받아 이곳에 선 자신에게 이런짓을 하다니.

"선을 넘었구나. 아이들아."

몰랐다고 하여 용서해야 하는가?

안타깝지만 청년은 그런 인생을 살아본적이 없다.

자신은 감히 범접할수 없이 고귀한 자.

태어나면서부터 그랬고.

살아온 인생이 그랬으며.

지금에서도 변함이 없다.

다만 녀석들의 무지와.

대초인의 아끼는 마음과.

자신과의 격차.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며 손속에는 한치의 자비를 둘 생각.

"4층계의 녀석들이 그런듯하니... 4층에만 죄값을 물으마."

더불어 녀석들도 한번의 실수를 범했으니 자신도 한번만 심판을 내리리.

"운이 좋구나. 두번은 안쏜것이."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린 청년이 손끝을 가볍게 털어낸 순간.

포로로롱...

마치 물방울이 흩뿌려지듯 푸른 구슬이 영롱한 소리를 토해내며 저 너머, 너르게 펼쳐진 4층의 대지로 주욱 내달렸다.

**

포로로롱...

포롱...

처음에는 느린것같이 움직이던 푸른 구슬이 점차 가속에 가속을 더하더니 숫제는 마치 한줄기 빗살처럼 쏘아져 4층, 그 천장과 바닥 사이를 내달렸다.

1km, 10km, 30km.

달리고 달리던 구슬이 어느순간 쩌적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팽글팽글팽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강환.

검기에 강기를 뛰어넘어.

레벨 61-100에 달하는 강자들의 상징.

그 힘의 조각이 내달려 40km 지점에 달한 순간.

!!!!!!!!!!!!!!!!!!!!!!!!!!!!!!!!!!!!!!!!!!!!!!!!!!!!!!!!!!!!!!!!!!!!!!!!!!!!!!!!!!!!!!!!!!!!!!!!!!!!!!!!!

성을 불사르던 붉은 화염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청백의 섬광이 수평으로 터져나오며 4층 전역을 휩쓸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

푸른, 먼지에 가까운 점이 날아드는순간 시카른은 알수 있었다.

오늘 자신들이 모두 죽을수도 있겠다는걸.

"닫아!!!!! 그리고 최대한 깊은 곳으로 숨어!!"

시카른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 이미 창백해져있던 테크니컬 사내를 비롯해 성 안의 모두가 미친듯이 움직일 준비를 마친 뒤였다.

터어어어어엉!

터어엉!

시원하게 열려 전망을 비추던 서쪽측면의 성벽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닫혔고.

텅텅텅텅!

우아아아아아악!

엑소슈트를 타고 있던 이들이 다급하게 이를 벗어던지고 뛰어내려 안쪽으로 내달렸다.

모두 본능적으로 안것이다.

엑소슈트의 얄팍한 장갑따위는 도움이 안된다는걸.

차라리 성의 더 깊숙하고 깊은 곳으로 숨어드는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걸.

사슬닻 사내나 적검 여인등은 각자가 가진 병기나 기술등을 몸에 둘러볼까 일순 고민했지만 그야말로 잠시.

터어어엉!

타앙!

둘마저 자신의 무기를 내팽개치고 테크니컬 사내와 소녀, 수인소녀들을 챙겨 부리나케 더 깊은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안것이다.

그들이 평소 자랑하던 검기나 병기, 가전독문무공따위.

이제 불어닥칠 해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태풍을 칼로 찢어보겠다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어 광장에 남겨진 것은... 강태석 혼자.

"아 이 정없는 것들."

꾸득.

최대한 상자에 머리를 쑤셔박은 강태석이 한번이라도 데굴 굴러보려다 포기하고 전마강갑의 어둠으로 전신을 모조리 감쌌다.

채우고 채우고 채우고.

감싸고 감싸고 감싸고.

어둠이 체조직을 그득메워 밀도를 극대화하고.

피부의 주변을 두르다못해 갑각처럼 메우고.

그 위를 나노머신들이 흘러나와 마치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만들고.

이렇게 준비를 마침과 동시에.

쿠구구구구구...

!!!!!!!!!!!!!!!!!!!!!!!!!!!!!!!!!!!!!!!!!!!!!!!!!!!!!!!!!!!!!!!

성벽을 모조리 녹여버린 청색의 화염이 미친듯이 강태석을 지나 성 전체를 휩쓸며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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