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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102화 (10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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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갑자기 뭔..."

쿠르르릉...

떨떠름해보이는 여인, 시카른과 다섯 남녀를 뒤로 한 강태석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긴급시퀀스의 발동.

발동조건은 다수결에 의한 찬반투표 통과.

그리고 별일없다면 이는 통과될 것이다.

이 거대한 콜로니 속에서도 투표조건의 자격을 갖춘 이는 자신밖에 없을 터이니.

최소 <센트라>급인 이 콜로니에서 투표자격을 가지려면 상급시민, 그중에서도 제법 권한이 높은 자여야한다.

남은 시간은 200초.

'이제 시작이다.'

쿠아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열기의 지옥속을 뚫고 내달려들어온 황소 모양의 괴수 하나를 후려쳐 퉁겨낸 강태석이 온몸의 어둠을 한층더 강하게 끌어올렸다.

비록 청염을 막아내느라 대부분의 어둠이 산산히 흩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만하다.

괴물 녀석들이 자신들에게만 달려드는것도 아니고 녀석들도 놀라 흩어지느라 바쁠테니.

단 한순간에 지옥같던 온 사방의 생태계를 뒤집어놓은 이.

귀족이란 본디 이런 존재들이란 것이다.

강대하고 강대하여 스스로의 존귀함을 본인들 맨손으로 확보한 자들.

그렇기에 더욱 오만하고 고고하다.

"그냥 넘어가면 좋겠는데... 그럴리없나."

"?"

허공, 여전히 남은 푸른 화염의 잔재를 바라보는 강태석의 말에 옆에서 싸울 준비를 하던 여섯 남녀가 움찔했다.

**

쿠르르릉...

<현재 남은 시간 : 150초>

<현재 투표인원 : 1명>

<추가투표인원이 없을경우 그대로 찬반이 결정됩니다. 각구역 시민장들은 서둘러 투표를 마쳐주십시오.>

저멀리, 서쪽방향.

포격에 맞아 녹아내린 운하의 한켠에 서있던 청년역시 저 너머 떠오르고 있는 문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너머, 혼란에 빠져있을 수없이 많은 생명들과 마찬가지로 청년 역시 이 문구에 대한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긴급 시퀀... 뭐? 하여간 최신기술이란... 뭐 이리 헷갈리는게 많아."

청년이 보기만 해도 거대한 궤도엘리베이터, 그 내부 전경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연방통합전쟁의 종료.

이후 자신이 바깥으로 나서지 않은게 어언 수십년.

세상이 엄청나게 뒤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건 기계병기들과의 전쟁때문에 세상에 다시 나섰을때가 처음이었으며.

궤도 엘리베이터나 <센트라>같은, 자신이 살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기힘들었던 초거대문물들은 산전수전 다겪은 자신이 보기에도 감탄사를 토하기 충분한 물건들이었다.

당연히 자신도 세상이 멀쩡하던 시절에는 센트라 한두개쯤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모두 파악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

하물며 연방직속으로 운영되었던 궤도 엘리베이터는 한층더 베일에 쌓인 물건이어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살아남은 놈들이 제법 많구나. 너무 힘조절을 했나."

수십키로 너머를 꿰뚫어보는 시야로 4층의 플로어 전경을 훑어보던 청년이 중얼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청년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그중 한가운데, 온통 녹아내린 생존구역의 성벽 한켠.

이제는 숫제 고철더미가 되어버린 공성병기 옆, 꾸물거리며 싸울 준비를 하는 일곱.

사실 녀석들이 자신이 엉덩이를 들게 만든 주범이라 할수있다.

한데 아무리 연좌제라고 한들 다른 녀석들은 모조리 졸지에 휘말려 불벼락을 맞았는데 녀석들이 살아있는건 좀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자그마치 일곱이나 살아있다니.

'한번만 손쓰기로 했는데.'

머리를 긁적이던 청년이 이내 차갑게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수평으로 세웠다.

한번만 손쓰기로 한 약속을 어기자니 너무 품위가 떨어지고.

그렇다고 녀석들을 살려주자니 마찬가지로 자신의 격이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괜한 고민.

생각해보니 아직 끝난게 아니지 않은가.

원래... 자신이 부리는 푸른 꽃은 두번 피니까.

"이것까지 막아내면 정말로 그냥 놓아주마."

아니, 어쩌면 너무 기특해서 상을 줄수도?

중얼거린 청년이 손바닥을 뒤집은 순간.

휘리릭!

마치 대기가 뒤엉키듯 허공에 머물러있던 푸른 화염의 잔재들이 다시끔 요동치기 시작했다.

**

<남은 투표시간... 61초.>

<60초 이후 투표가 완료됩니다. 서둘러 투표에 참가해주십시오.>

콰아아아아아앙!

"구아아아악! 망할! 야! 저게 뭔지 몰라도 투표 완료되면 살수 있는거냐!"

커다란 닻을 휘두르던 사내가 힘들어죽겠다는 표정으로 옆, 함께 싸우는 강태석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현재 녀석을 제외한, 자신들 파티 여섯중 실질적으로 전투가 가능한건 자신과 수인소녀 둘뿐.

시카른이야 장의 역할이지만 직접전투에 그닥 강하다고는 할수 없었고 이는 테크니컬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적검 여인은 그런 시카른과 테크니컬을 보호하느라 전력을 다한 탓에 거진 탈진해버렸고 화기전문가 소녀는 자신의 화기가 녹아버렸다.

그나마 수인소녀가 제몫을 해주고 있는게 다행이라면 다행.

캬아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저녀석은 또 언제 저렇게 자랐데. 야! 멀리가지마!"

전갈을 닮은 괴수를 앞발의 발톱으로 후려쳐 둘로 쪼개버린, 샛노란 눈동자로 흉성을 뿜어내며 전장을 질주하는 수인 소녀를 향해 버럭 소리친 닻사내가 이내 정신차리고 다시 무기를 휘두르며 자신을 바라보자.

쩌어어어억!

그 옆에서 칼을 휘두르던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투표 끝난다고 우리 생사랑은 관련없어. 여기서 살아남는건 또 다른 문제야."

"뭐? 아씨...!!!!!"

콰아아아앙!

망했다는 표정으로 닻을 휘두르는 사내를 흘끔 본 강태석이 이내 사방을 훑어보았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

멀쩡하다면 모를까, 이미 자신을 비롯한 옆의 여섯 모두 청염에 휩쓸려 심각하게 전력이 손실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피해를 보긴 했지만 인간보단 훨씬 생명력이 강한 각종 괴물녀석들의 난동속에서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건 허공에서의 일렁거림.

후우우웅...

아직 닻사내를 비롯한 이들은 바빠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대기중의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 착실하게 흩어져가던 푸른 화염의 마력과 잔재들이 다시끔 반전하여 차츰차츰 모여들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광대한 범위를 따라, 마치 폭풍을 일으키기 위해 몰려드는 미세한 열풍처럼.

작은 알에서 터져나왔던 막대한 기운이 드넓은 범위로 터져나오며 그 밀도가 옅어졌고.

그렇게 드넓게 퍼져나갔던 기운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자 또 한번의 태풍으로 느껴질 정도로 서서히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닻사내는 물론, 평범한 축에 속하는 시카른마저 그 이변을 눈치챘을 정도.

콰르르르르릉!

"이런 쓰벌... 저건 또 뭔데!"

허공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천둥소리, 그와 더불어 사방에서 넓게 파지직거리기 시작하는 푸른 스파크를 보며 욕설을 내뱉은 닻 사내의 말에 강태석이 짧게 대답했다.

"이파."

두번째 파동.

강환의 특성을 보니 어느 귀족가인지 대충 알아차릴수 있었다.

벨 알레고르.

연방통합 이전에도 유서깊은 역사와 강대한 힘을 자랑하던 어떤 왕국, 어떤 귀족가의 성명절기.

두번피는 푸른 꽃.

터져나온 푸른 화염이 첫번째로 사방의 모든 생명체를 휩쓸고.

그 안에 깃든 살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 마력과 뒤엉켜 꿈틀거리며 다시한번 내리꽃힐 준비를 한다.

첫번째 타격이 광역기라면 두번째 타격은 핀포인트.

푸른 화염이 금속, 괴물, 생물을 가리지 않고 휩쓸었다면.

저 꿈틀거리며 모여드는 푸른 스파크들은 정확하게 살의를 반영해 살아남은 생명에게 내리꽃힌다.

그리고 그 타겟이 될건 당연히... 대포를 쏘아보냈던 자신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은 억울하지만 강환의 주인이 그런것까지 고려하진 않으리라.

"씁. 다음부터는 앞뒤 분간 잘해. 아무데나 저딴거 갈기지 말고."

"????"

핀잔을 준 강태석이 심호흡을 한뒤 자신의 몸 주변을 감싼 어둠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지금은 도박을 해야할 순간.

쿠아아아아아앙!

사방팔방, 달려드는 괴물들 앞에 놓인 강태석의 몸이 숫제 그림자마냥 검게 물든 바로 그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쾅!

마치 먹이를 발견한 푸른 뱀장어마냥.

허공을 떠돌며 덩치를 키워가던 수백, 수천줄기의 푸른 번개줄기들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지상, 강태석과 주변이들이 선곳을 향해 내리꽃히기 시작했다.

**

!!!!!

!!

!!!!!!!!!!!!!

"좋아. 아주 좋아."

저멀리.

꿈툴거리다 한군데를 향해 내리꽃히는 푸른 번개줄기들을 보며 청년이 흡족하게 웃었다.

자신이 뿌린 마력이 자신의 의지를 품은채 살아있는 것마냥 움직인다.

어찌보면 강기와 강환의 가장 큰 차이.

그리고 강기와 강환사용자의 가장 큰 차이.

스친 사물과 마력에마저 의지가 깃들어 스스로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경지.

유명한 무인들이 사용하던 병기들이 신병이기, 혹은 마병이 되었다는 소문들이 여기서 나타난 것.

실제로 오랜기간 사용한 무기에는 저렇게 스친 것들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진한 사념이 깃들기에 마냥 거짓이 아니다.

'이녀석도 제법 오래 썼지.'

후우웅...

자신의 손에 끼어져있던 작은 반지를 보던 작게 웃은 청년이 이내 고개를 들어 플로어, 저너머를 바라보았다.

이제 꿈틀거리는 번개들도 거진 사라진 상태.

깃든 사념도, 허공에 펼쳐진 마력도 무한한건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면 아래있는 녀석들이 잿더미가 되기엔 충분했을터.

"원망하지 마라. 원래 인생이란 대가를 동반하는 법이니."

중얼거린 청년이 빙글 몸을 돌려 원래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로 향하려던 그때.

키이이잉...

파아아아아아앗!

"??"

뒤쪽에서 터져나오는 새하얀 빛, 그와 함께 울려퍼지는 파공음에 청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온 사방을 밝게 물들이는 새하얀 빛이 터져나오며 주변을 비추었다.

아니, 단순히 비추기만 한게 아니다.

콰가가가가각!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터져나온 하얀 빛이 스칠때마다 달려들던 괴물들이 종류와 크기를 가리지않고 가로세로높이 1cm, 큐브단위로 토막이 나서 썰려나가고 흩어진다.

모든 것을 감싸안을것마냥 포근한 느낌과는 다르게 살벌하기 그지없는 행태.

심지어 이 괴현상이 빛이 닿는, 반경 500m 전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

"... 허억... 후우욱..."

새하얀 빛에 휩싸여 숨도 못쉬고 몸을 벌벌 웅크리고 있던 시카른과 생존자들이 눈 앞의 기현상을 보며 이를 꾹 악물었다.

이 빛이 터져나오고 있는 곳은 바로 자신들의 눈 앞.

온 몸을 어둠으로 감싼채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던 사내.

콰콰콰콰콰콱!

마치 집어삼킨 모든 것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쏟아치는 번개도, 주변에 깃들어있던 화염의 잔재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삼키던, 블랙홀같은 사람 형상의 검은 구멍이 이제는 온 사방을 토막내는 새하얀 빛을 뿜어대고 있다.

어찌나 괴물들이 썰려나가는 형태가 살벌한지 자신들은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그속에서 몸을 벌벌 떨수밖에 없었다.

이 정체불명의 빛이 언제 자신들조차 썰어버릴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

<... 이화접목. 종료.>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를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육체와 마력회로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짧은 기간동안 무량검기를 119,113회 사용했습니다. 무량검기의 숙련도가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창을 확인해주십시오.>

촤르르륵...

무릎꿇은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강태석의 눈앞으로 쉴새없이 상태창이 주루룩 올라갔다.

전마강갑과 이화접목을 극도로 활용하여 흩뿌려진 마력을 모조리 삼켰고.

이를 몸안에서 돌려 모조리 무량검기로 사방팔방, 끊임없이 내뿜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마력에 자신의 몸이 풍선처럼 뻠 터지기 전에!

그리고 다행히 자신의 몸과 전마강갑, 나노머신들이 버텨주는데 성공.

레벨도 오르고 제 2파로부터도 살아남았으며 주변 괴물들도 모조리 정리해버렸다.

그리고 더 중요한것.

<투표 종료.>

<투표 결과... 찬성 1/반대 0>

<긴급시퀀스, 발동합니다.>

동시에.

쿠구구구구구구!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수없는 거대한 진동이 콜로니 전체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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