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10화 (110/221)

110

웨일-엔진.

은빛 벌레들을 분해하여 코어를 섭취하고 에너지와 금속, 그에 더해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기관.

5층의 통로를 떠나 이곳으로 오면서 시카른에게 이것저것을 들은 강태석은 그 웨일-엔진들을 누가 구축하고 설치했는지 알수 있었다.

그자.

한때 집단, <플래그> 아래 콜로니를 통합했던 리더이자 초인.

그 자의 진두지휘하에 수많은 웨일엔진들이 만들어져 아래, 4층에 설치되고 이어 기존에 존재하던 콜로니의 에너지망을 통해 사방으로 생산된 에너지들이 뿜어져나갔다.

생존구역에 살아남은 이들이 에너지를 이용할수 있었던 것도 그때문.

거기에 생존구역에 공급되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분해한 은빛 나노벌레 안에 소량 포함된 유기물질과 수분을 포집해 만들어지는 영양액과 식수.

이 모든 것들이 콜로니 구석구석으로 뿜어져나가 고사했어야할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을 막았다.

그자, <찬>이 이 광대한 대지에 이루어냈던 첫번째 위업.

"<찬>이라."

철컥.

왼손엔 알레고리아, 그위 팔목에는 칠채영창을 뭉쳐만든 반투명한 토시.

그리고 오른손에는 크기 2m의 거검.

쪼르르륵..

후우웅!

임시거주구역, 한쪽.

작동을 의미하는, 미약한 붉은 빛이 깜빡거리는 밸브에서 황금빛의 걸쭉한 액체를 쪼르륵 컵에 받아 마신 강태석은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공적인 달달함에 입맛을 다신 뒤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거검을 살짝 휘둘러보았다.

딱히 특별한 기능이 있는건 아니다.

그저 저번, 고철선에 실려있던 수많은 물자중 어떤 생존자가 욕심내 챙겨온 물건중 하나.

그 생존자는 이 물건을 엑소슈트에 탄채로 휘둘러보려고 가져온것 같지만 애초에 엑소슈트의 외골격은 육중한 탄약과 배터리, 그리고 디스트로이어를 짊어진채 장거리 보행을 하기 위한 용도일뿐 격렬한 움직임을 소화해내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군파츠의 것처럼 바디슈트와 합쳐져 개조된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육체로 휘두를만한 무게도 아니었으니 자연스레 자신에게 흘러오게 된 물건.

.

:무중력 상태에서만 생산경제성에 도달가능한 특수한 금속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매우 단단합니다. 전장속 엑소슈트들의 포격에서 활동해야하는 검기사용자들의 임무수행상황을 상정하여 설계되었습니다.

터어엉!

강태석이 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급은 D-.

강도는 마르트의 닻과 비슷하거나 조금더 높은 정도이고 면적이 넓어 유사시에 몸을 숨기는 방패로 활용할수 있다.

계속해서 포격을 막아낼수야 없지만 그자리에서 맨몸으로 두들겨맞다 리타이어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터.

이로서 간단하게 준비는 끝났다.

<강태석>

>레벨 : 12(36.12%)

>직업 : 전마강갑지주(등급-?)

>스킬 : 전마강갑장착*해방(?)/영뇌수(D+)/무량검기(D+)

>스탯 : 흑선(D+)8/암흑회로(D+)8/짙은그림자(D+)8/어둠샘(C+)8/이상상념(D+)8.

>무장 : 전마강갑(?)/여의(S?)/칠채영창(B?)/오시리스(C-잠항중)/알레고리아(B)/L-43 타입 전투군형대검(D-).

후웅.

상태창을 확인한 강태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20m의 플로어 사이, 조금 넓은 공터.

<탐사>를 위해 떠날 준비를 마친 수백명의 이들을 향해.

잠시후.

"이제 위로 올라갑니다."

강태석이 모인 이들의 앞에서 천장을 가리켰다.

**

후웅...

위를 가리킨 강태석이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이들이 많이 보였다.

예전, 도시 아만테오에서 합류했던 구련장들이나.

아직 상황 돌아가는걸 잘 모르는듯 했지만 어찌 되었건 놀아 뭐하나 하는 심정으로 합류한 시카른들과 중년사내등이나.

동시에 완전무장한 아린과 군파츠, 아너스빌까지.

이곳 역시 안정화된 상황은 아니기에 카티, 페리트란이나 건설로봇으로 진지를 구축할 달리안등은 남고 무력 위주의 이들로 올라간다.

'좋아.'

그렇게 모인 이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숨을 후 고르고 가볍게 발을 구른 순간.

투우우우웅!

강태석의 몸이 그자리에서 곧장 솟구쳐 거진 10m 가까운 높이를 향했다.

아무리 육체가 강해졌어도 한달음에 10m를 넘게 뛰어오르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갓 비기너의 스탯을 가진채, 육중한 금속덩어리의 군형대검마저 지녔다면 더더욱.

스르르륵...

아니나 다를까, 강하게 솟구쳐 위로 향하던 강태석의 육체가 중력에 의해 발목을 잡히며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20m 지점까지는 채 절반밖에 못온 상황.

그렇게 점점 더 멈춰서는 강태석의 모습에 바닥에 있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움켜쥔 순간.

스르륵.

멈춰서던 육체가 간신히 10m 높이를 넘기자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빙글.

금방이라도 멈춰서 아래로 추락할것같던 강태석의 육체가 반바퀴 빙글 돌더니 서서히 가속도가 붙으며 위로 빨라지기 시작한것.

어어?

이를 아래서 지켜보던 이들이 엇 소리를 토했다.

아래로 떨어지는 게 멈춘걸 넘어 점점 더 빨리 위로 솟구치다니.

심지어 아래서 보고 있자니...

"그냥 <위>로 떨어지는것 같은데?"

누구가의 중얼거림속, 말 그대로 천장을 향해 <떨어지던> 강태석의 육체가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위에 안착했다.

쿠우우우웅!

짤막하고 둔탁한 소리.

이어 안정된 착지.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 강태석이 사방, 너르게 펼쳐진 바닥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천장이었지만 지금은 바닥.

심지어 자신에게는 저 아래, 아니 저 위 모여있는 이들이 모조리 천장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력이 역전되어있기에 만들어진 또다른 바닥.

그리고 이곳이 이제 새로운 <5층>.

떠어엉!

후루루루룩!

미리 가져온, 금속밧줄이 묶인 정을 손에 들린 대검으로 때려 바닥에 박아넣은 뒤 저 <위>로 밧줄을 던져 늘어트린 강태석은 웅성거리면서도 넘어올 준비를 하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기사용자가 아니라면 단번에 10m를 뛰어오르긴 힘들지만 밧줄을 타고 올라와 추가적으로 설치하면 금방 모두 넘어올 것이다.

이제 중요한건 그 다음.

이 새로운 <5층>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것.

잠시후.

"그렇지. 여기네."

가로세로 3m의 금속타일들, 그중 묘하게 이질적인 틈이 난 금속타일 하나를 보며 강태석이 웃었다.

**

터엉!

텅텅!

천장에 난 타일을 뜯어내고 나온 직경 2m 원형의 지하통로, 그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던 시카른이 발아래의 강태석, 그 너머를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전혀 몰랐네. 이런게 있을줄은."

대략 5m가량밖에 안되는 짧은 통로.

그 너머 직경 2m의 구멍 아래로 보이는 것은... 수십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새로운 층.

후우우우웅...

그들의 발 아래로 구멍으로 4층보다도 더욱 높아보이는 새로운 광활한 층이 존재했다.

즉 저게 이제까지 5층, 자신들 머리 위에 중력이 역전된 상태로 숨겨져있었다는 의미.

어찌나 높은지 검기사용자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그정도 수준은 아닌 시카른이나 다른 생존자들이 뛰어내리면 큰 부상을 입을 것 같았다.

대략 6-70m 정도 높이.

그리고 그런 시카른의 아래.

텅텅!

후루루루루룩!

금속밧줄을 사다리 아래 단단히 동여맨뒤 당겨 강도를 확인한 강태석은 그대로 밧줄을 늘어트린뒤 한손으로 잡고 주우욱 그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그냥 뛰어내려도 죽지야 않겠지만 괜히 위험부담 감수할 이유는 없었기에.

잠시후.

터덕.

아까전, 그냥 뛰어내렸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게 밧줄을 잡고 착지한 강태석이 다시한번 위를 올려다보았다.

높이 65m.

드넓게 펼쳐진 천장.

그 아래로 또 다시 질주하는 새로운 층이 보인다.

이게 바로 5층의 진짜 정체.

20m로 된 플로어만 구성되어있는게 아니다.

천장 너머, <표부> 20m.

그리고 천장 아래, 자신이 선 곳 <심부> 65m.

중간에 지나온 금속천장 5m를 합쳐 총 90m가 진정한 높이.

그리고 그렇게 떨어져내린 5층 심부에는... 그야말로 커다란 녹색 피라미드들 완만한 원통형의 바닥을 따라 수백, 수천개가 올올히 들어차있었다.

하나하나의 높이가 거의 65m, 천장에 닿을

한변의 길이는 300m 가량.

터엉.

"이 기분나쁜 공간은 뭐야."

밧줄을 타고 따라내린 시카른의 말에 강태석이 짤막하게 말했다.

"냉동고."

"...?"

강태석의 말에 시카른이 눈매를 좁혔다.

**

연방.

남대륙 전체를 손에 넣은 초강대집단.

이런 연방 전체를 컨트롤하는 <행정부>는 한가지 고민에 빠진다.

인권이니 나발이니 주절거리는 녀석들 눈을 피해 강력범같은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자신들도 인권 좀 챙겨주고는 싶은데 연방을 지배하는 일곱 대초인들중 <한분>이 그런 버러지들 권리를 챙길 시간에 다 갈아버려 공기 한톨이라도 아끼라니 방법이 있나.

대초인들의 말은 곧 법.

그런 의견이 나온순간 범죄자 놈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냥 갈아버리기엔 또 뭔가 좀 아쉬운 상황.

개똥도 찾아보면 쓸모가 있고.

쓰레기도 재활용되는 마당에 쓰레기같은 놈들이라도 또 재활용할 구석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던 중 행정부의 중간직 한명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궤도 엘리베이터 거주구는 어차피 비상시에 독립콜로니용 아닙니까. 그거 분리되면 노예용으로 쓸 녀석들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부하직원의 한마디에 수천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결정권자 하나가 무릎을 탁 쳤다.

말 그대로.

궤도엘리베이터에 존재하는 일곱개의 거주구들은 두가지 목적으로 쓰인다.

첫번째, 말 그대로 당장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며 이것저것 써먹을 용도.

두번째, 또 다른 우주공간 혹은 <차원너머>에서의 인류영역확충 및 생존을 상정한 전초독립기지.

여기서 중요한건 두번째.

만약 이 콜로니가 어떤 행성이나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은 기계가 해결한다지만 사람이 해야할 것들도 분명 있으니.

무언가 짓거나 나르거나, 혹은 미끼로 던지거나 고기방패로 쓰거나, 혹은 노예강화병으로 쓰거나.

무엇이 됐건 말이다.

그렇게 수백억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던 연방속, 전범을 포함한 체류중범죄자 수십, 수백, 혹은 수천만(정확한 숫자 추정불능. 행정부에서 밝히지 않았기에.)들의 운명이 정해졌다.

차폐에테르공간에 꽁꽁 얼려진채, 언젠가 찾아올 그때를 위해 거대한 콜로니의 층과 층사이에 갇혀있도록.

아무도 모르게, 기약없이 말이다.

저벅.

"이 피라미드 하나당 오만명인가 갇혀있을걸. 빈것도 있겠지만. 뭐 그것도 나중에 채우려고 했겠지."

"..."

피라미드 사이를 걷던 강태석의 말에 따라걷던 이들이 섬뜩하다는 눈으로 자신들 옆, 거대한 녹색의 경사진 피라미드 벽면을 바라보았다.

반투명한 재질로 되어있지만 안에 녹색의 짙은 운무가 그득 차있어 안쪽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 말대로라면 이 안에 꽁꽁 언 범죄자 놈들이 수천 수만명씩 갇혀있단 소리 아닌가.

"... 그럼 부르탄은 뭐야?"

"그런게 있어야 이런짓을 하고 있는것도 숨기지. 겉으로는 범죄자 별로 신경 안쓰는척 하고 일단 잡힌 놈들은 모조리 이쪽으로 보내 처박는거야."

"..."

강태석의 말에 질문한 아린은 물론, 뒤따르던 이들 모두 섬뜩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연방시절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군파츠는 더더욱.

여차하면 그냥 부르탄으로 도망쳐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정해진 선을 넘고 연방에 잡혔다면 꼼짝없이 이곳에 와서 처박혔을거란 의미 아닌가.

치익.

<어우... 제기랄. 근데 그러면 이상한데. 그 말대로라면 여긴 범죄자들밖에 없는거 아냐? 뭘 구하겠다고 온거야?>

소름돋는다는듯 포식장갑의 머리부분을 닫아버린채 말하는 군파츠의 기계음에 주변 모두가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렇다.

자신들도 이녀석들을 노예로 데리고 나갈게 아니라면 이 층으로 온 의미가 없는 상황.

그런 군파츠의 말에.

"또 그런 용도로만 쓰는게 아니니까."

여기 이 <냉동인간>들은 그런 용도로만 쓰는게 아니다.

그리고 그게 이곳, 5층 심부로 온 진짜 이유.

쿠르르릉...

피라미드 사이와 사이 그 너머.

발을 내딛자 그들 왼켠으로 온전히 보이기 시작한, 피라미드와는 전혀 이질적인 형태의 직사각형 거대한 구조물을 바라보며 강태석이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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