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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112화 (11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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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르르릉!

번쩍이는 구체 안으로 은빛 구조물 위에 서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진입한다.

이를 지켜보는 건 아래 서 있는 이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제정신이."

레일건을 허리에 둔 채 피라미드에 기대서있던 한 명이 고개를 들고 그 광경을 보며 혀를 끌끌 차댔다.

자신 같았으면 무력을 써서라도 여기 서 있는 이들부터 먼저 처박았을 것이다.

카트란이란 작자는 둘째치고 군파츠마저 현재 이 집단에서 그럴만한 힘과 세력이 있으니까.

한데 굳이 앞장서서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저 구체 안으로 들어가다니?

그런 사내의 말에.

"좀 닥쳐봐. 안 그래도 찝찝한데 뒤숭숭하게."

"뭐? 내가 틀린 말했냐? 혼자 착한 척이야. 결국 네놈도 안 들어갔으면서."

"이 새끼가 진짜."

양심에 찔린다는 듯 무겁게 앉아있던 누군가와 사내의 티격거림 속, 남아있던 이들이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내비치며 긴 숨을 푹푹 내쉬었다.

목숨이 중요하지만, 양심이 없는 건 아니다.

나중에 혹시 모를, 들이닥칠 불이익이 마음 한켠이 걸리기도 했고.

누군가 해야 하는 일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심지어 진 빚이 많은 이들은 더욱 그랬다.

"..."

"대장. 표정 좀 풀어요. 우리도 사정이 있잖아요."

모여있던 구련장, 그중 토닥거리는 소년의 말에 앉아있던 대장 사내가 쓰게 웃던 그때.

저벅.

"당신들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나랑 얘기나 좀 하지 않으려나?"

키이잉...

검기 사용자.

여유로운 기세를 휘감고 걸어오는 중년 사내의 말에 앉아있던 여덟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

쿠르르릉!

두 개로 쪼개진 수정.

그중 작은 조각, 십 분지 일은 군파츠에게.

그리고 큰 조각, 십 분지 구는 아니타에게.

작은걸 군파츠에게 준 이유는 간단했다.

군파츠는 이미 오랜 기간 포식 장갑에 가해진 자극으로 인해 벽을 넘기 직전이었으니까.

톡 밀어주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며 그게 아니더라도 조만간 넘어섰을 터.

콰르르르릉!

"끝내주는데."

구체 너머.

드넓고 황량한 평원에 선 군파츠가 전신에서 넘쳐흐르는 활력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열기 오른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키잉..

콰득.

주먹을 쥘 때마다 포식 장갑의 안쪽, 손아귀에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포식 장갑을 얻었을 때도 놀라웠지만, 지금은 좀 더 다른 느낌.

외부의 기물로부터 얻어낸 것이 아닌, 온전히 스스로 몸 안에 지닌 힘이 지극히 충만한 자신감을 부여한다.

세상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건 그 옆에 선 아니타도 마찬가지.

키이이이잉...

자신의 연검에 서린 푸른 기운을 차마 형용하기 힘든 눈으로 바라보던 아니타를 향해 강태석이 말했다.

"둘 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니 당분간은 익숙해지는 게 좋아."

철컥!

철커덕!

구체를 통해 차례대로 들어오고 있는 선발대의 무장병들, 그들을 보던 강태석이 군파츠와 아니타를 보았다.

둘은 온전한 힘으로 자신의 벽을 넘은 게 아니다.

군파츠는 포식 장갑, 아니타는 수정에 의해.

한계에 도달하여 꽃이 피어나듯 자연스레 성장하는 타 검기 사용자들에 비하면 이 둘의 각성은 한층 더 인위적.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벽을 넘은 건 넘은 것이다.

다소 어색하긴 해도 타고난 전투 센스가 있으니 금세 적응하여 남부럽지 않은 위용을 뽐내리라.

'이제 레벨 30까지는 별문제 없겠지.'

그렇게 구체를 넘어 대열을 갖추는 이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들어온 건 이질적이기 그지없는 광경.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뿜어내는 태양.

그 사방, 오직 흙색만이 드넓게 펼쳐진 광대한 황무지.

칙칙한 금속의 대지와 누가 봐도 우주선 내부 같던 디자인은 어디에도 없다.

멸망 전에서야 볼 수 있었던, 자연과 세계 그 자체.

그리고 그런 황무지 너머.

"... 누가 봐도 이상하긴 하지?"

대략 20km 너머.

멀쩡한 외관을 자랑하며 우뚝 선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는 강태석의 곁으로 그제서야 정신 차린 군파츠가 다가와 중얼거렸다.

**

쿠르르릉...

황무지 한가운데.

구체 앞으로 모인 이들이 강태석과 함께 저 너머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들어오기 전 걱정했던 갑작스러운 습격은 없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눈앞에 펼쳐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산혈해의 지옥도도 없었고.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건 완전 예상 밖의 풍경.

도시.

빌딩이 서 있고 가로수와 도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예전,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나 볼 수 있을법해 보이는 그런 무언가.

어찌 보면 모인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익숙한 단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 그럴 수 없는 장소에서 이를 마주치니 이토록 기괴할 수가 없다.

차라리 시산혈해나 기계 병기들을 마주치는 게 덜 어색했을 지경.

"저것도 연방에서 지어놓은 건가요?"

"그건 모르겠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존대니?"

"... 그냥 그게 편하네요. 연장자기도 하고."

이곳에서 카트란 스스로가 밝힌 나이는 스물일곱.

반면 언젠가 들었던 아니타의 나이는 스물여섯.

나이가 썩 의미 있는 세상은 아니지만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스윽.

왠지 우물쭈물하는 아니타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이내 고개를 돌려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질적인 건축물.

연방이 지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느낌에는 아닐 것 같았다.

연방이 굳이 차원 관문 너머에 저런 걸 지어놓을 이유가 없었다니.

거주용이었다면 바깥의 걸로 충분하고 다른 목적이 있다면 굳이 저렇게 도시 형태로 지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

자신이 찾는 무언가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도시 안에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해야 할 건 하나.

부딪혀 보기.

"어떻게 된 건지는 가보면 알겠지."

그런 강태석의 말에.

철커덕.

철컥.

군파츠와 아니타, 그리고 뒤에 서 있던 선발대의 무장병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손안의 레일건을 장전했고.

스르륵.

주변. 그들을 감싼 반투명한 <무언가>를 보던 강태석이 손짓을 해 허공으로 흔들었다.

**

영뇌수.

그림자 안에 사는, 강태석이 새로이 부릴 수 있게 된 짐승 중 하나.

외양은 잉어의 비늘을 전신에 가득 두른 늑대.

크기는 작은 강아지부터 최대 집채만 하게.

부릴 수 있는 숫자는 현재 한 마리.

원래대로라면 번개를 둘렀어야 할 녀석은 그림자와 뇌기가 뒤섞여 번들거리는 묘한 광택과 반투명한 육체를 자랑했다.

그 광택의 정점은 몸을 휘두른 수천 개 혼옥색의 비늘.

그리고 지금 녀석의 최고 장점은...

스윽.

"이거 진짜 안보인 다는 게 신기하네."

구체에서 도시로.

황무지를 관통해 걷던 군파츠가 신기하다는 듯 허공, 자신들을 둘러싼 장막을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늑대의 육신과 비늘.

스르르륵.

늑대의 몸 주변 커다란 육각형 비늘들이 모조리 흩어져 태양광 발전판처럼 사방에 뜬 채 자신들을 감싼 반투명한 늑대의 몸 주변, 온갖 빛들을 굴절시키고 튕겨내고 있었다.

그 범위가 제법 넓었기에 비좁긴 했지만 돌입한 80명가량이 몸을 감출 수 있는 수준.

그 속, 가장 앞에서 걷던 강태석이 머리 위 같이 걷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르릉...

아까부터 낮게 그르렁거리며 투덜거리는 게 지금 상황이 영 마음에 안 드는듯하다.

하긴 자다 끌려 나와 자신의 배아래 생판 모를 인간들을 넣고 슬금슬금 기어가야 하는데 마음에 들 이가 누가 있겠냐마는.

그 모습이 퍽 귀엽다는 생각을 한 강태석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도시를 바라보았다.

안이 텅 비어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저 번들거리는,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도시가 저절로 혼자 지어졌을 리는 없을 테니.

그렇기에 일단은 몸을 숨겼다.

저 도시 안에 살고 있을 이들이 자신들을 적대할지 아닐지 알 수 없기에.

일단은 적당히 근거리까지 다가가 살핀 후 흩어져 본격적으로 안을 살펴볼 생각.

'안으로는 어떻게 들어가느냐가 문제인데.'

멀리서 보면 티가 안 날지라도 가까이서는 들킨다.

그르릉...

강태석이 머리 위 늑대의 비늘을 매만지며 중얼거리던 그때.

쿠르릉...

쿠릉...

저 멀리, 너른 황무지 너머에서 쿠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상찮은 변화가 시야에 들어왔다.

살짝 낀 먹구름, 몰아닥치는 뿌연 장막.

그리고 그 아래로...

쿠르르르르릉!

"좋은데."

보기만 해도 살벌하게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황토색으로 세상을 뒤덮어오는 저 너머의 해일에 강태석이 작게 웃었다.

**

콰르르르르릉!

순식간에 몰아닥친 희뿌연 해일은 순식간에 강태석 들을 휘감으며 온 사방의 시야를 가렸다.

그뿐만 아니라 태양 아래 찬연하게 빛나고 있던 도시 전체도.

이 정도면 아까 보이던 도시 안으로 훨씬 더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까이 가면 흩어져서 조사를 해봐도 될 것 같은데."

군파츠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후우우웅...

후웅...

저벅.

저 너머.

흙먼지 구름을 뚫고 도시 방향에서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사막처럼 전신을 감싼 베일, 눈만 내어놓은 외관.

누군지 몰라도 이 거친 환경에 굉장히 익숙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외양임에도 강태석을 비롯한 이들은 무기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위장막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아직 수백 미터는 넘게 떨어진 상대가 이 두터운 먼지구름을 뚫고 정확히 자신들을 향해오고 있었기에.

"그냥 지나치는 길이면 좋은데... 아니겠죠?"

그르릉...

아니타의 말에 그르렁거리는 영뇌수, 그 속에 있던 이들이 한껏 긴장을 끌어올리던 그때.

저벅.

저벅.

후우우웅...

"... 후우."

자신들의 50m 곁을 지나쳐 걸어가는 베일의 상대를 보며 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는데 괜한 긴장이었던 모양.

하지만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

훙!

훙훙훙훙!

"아 제기랄."

"설마 이거 내 한숨 때문이에요?"

흙먼지 속에서 날아드는 무언가의 소음에 터져 나온 군파츠와 아니타의 한마디.

키이이이잉!

철컥!

촤르르르르륵!

찰나의 순간 군파츠는 머리의 포식 장갑 투구를, 아니타는 허리춤의 연검을 장착 완료했다.

그리고 그건 강태석도 마찬가지.

쿠르르르릉!

강태석의 오른손 아귀가 빠르게 번개를 머금어 터져나갈 듯 번쩍임과 동시에.

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흙먼지 구름의 일부를 잠깐이나마 훅 날려버릴 정도의 강렬한 폭발이 날아든 수십 개의 작은 구슬에서 터져 나왔다.

**

도시, 한가운데.

마천루, 115층.

쿠르르르르릉!

흙먼지 구름이 그득 들어찬 통유리창 밖을 내다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모래폭풍 너머, 도시 밖.

정확히 말하면 도시와 구체 사이에 존재하는 황무지 평야의 어딘가쯤.

!!!!!!!!!!!!

!!!!!

마력과 문명을 머금은 수십 개의 대 마력 사용자용 병기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며 모래폭풍 사이에 불꽃을 피워낸다.

"..."

그 모든 광경을 사내가 침묵으로 지켜보던 그때.

끼이이익.

"맞... 맞맞... 맞지요? 이제 이곳도 더... 더이상... 안전할 수 없다니까요."

"..."

뒤쪽에서 문을 열고 걸어들어온 사내의 더듬거리는 말에 사내가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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