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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아.
유명무가, 벨 알레고르의 상징과도 같은 병기.
비록 귀족들이 나타나고 귀족들을 위한 초광 범위 살상 병기, A등급의 무기들이 태어나며 다소 그 명성이 빛바랬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초강자와 구국가 세력 수준의 이야기이고.
강기 사용자의 손에서 꽃 피어나 전쟁터를 단번에 갈아버리는 B급 병기의 위용은 신국들이나 설쳐대는 이런 곳 <따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심지어 저건 여전히 저너머, 궤도 엘리베이터를 지키고 있을 알레고르 가문 전대 가주의 손에 있어야 하는 물건 아닌가!
한데 저게 이런 곳에 등장해?
"말... 말... 말이 안 되는데... 설마... 뺏었나? 그럴리는 없고... 훔쳤...거나... 아니... 면..."
어느덧 충격을 회복한 기갑보병대와 흩어지고 있는 파리떼들, 그리고 그 너머 알레고리아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를 보며 말더듬이 사내가 딱딱 손톱을 깨물었다.
흩어지고 있는 파리떼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중요한 건 저 사내.
첫 번째, 뺏었다는 가정과 두 번째, 훔쳤다는 가정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죽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세 번째.
인정받았거나.
혹은 후예이거나.
그 둘 중 첫 번째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두 번째면...
섬뜩.
순간이나마 <귀족>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퍼부어지는 상상을 한 말더듬이 사내가 저도 모르게 피부를 쓰다듬었다.
저도 모르게 떠올리고 말았다.
불타오르는 대지, 스러지는 문명, 모조리 녹아내릴 강철과 생명들을.
그 예전, 연방 통합 시절 귀족들의 발아래 스러졌던 여러 구국과 강대 세력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소름도 잠시.
"그... 그... 그럴 리가... 없지..."
자신은 겁은 많지만 바보는 아니다.
무슨 알레고르 전대 가주의 후예가 저렇게 돌아다닐 리가 있겠는가.
설령 진짜 후예라고 해도 상관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일... 일단... 사로... 잡아라..."
치직.
통신기를 통한 사내의 명령이 빠르게 어딘가로 전달되었다.
**
쿵쿵쿵쿵쿵!
쿵쿵쿵쿵!
콰아아아앙!
사방팔방, 뿌려지는 반응형 폭약 파편들을 피하며 대지를 내달리던 강태석이 흘긋 눈을 돌려 저너머를 바라보았다.
양쪽으로 갈라져 도시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고 있는 군파츠와 아니타의 팀.
그리고 자신을 사방에서 압박하듯 스크럼을 짜서 몰아붙이려고 하는 기갑화보병.
두텁던 장갑 군데군데 깊은 흔적들이 남았고 등 뒤에 매달린, 재생 금속의 양도 훌쩍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여력을 뽐내며 강태석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역시 기갑화보병 상대는 어렵진 않다.'
콰아아아아아앙!
달려들던 기갑화보병 한 명의 머리통을 강하게 걷어차 황무지에 처박아버리며 훌쩍 몸을 날린 강태석이 뽈뽈거리며 쫓아오려는 사방의 녀석들을 여유로이 훑었다.
물론 저 장갑 안에도 내장 근육이 있기에 무시무시한 속도가 나온다.
시속 30-40km 정도?
그 상당한 속도에 육중한 무게까지 감안하면 뽈뽈거린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녀석들은 그야말로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고 있었고!
그렇지만 자신이 더 빠르다.
쿵쿵쿵쿵쿵!
콰아아아아아앙!
콰콰콰쾅!
달려드는 녀석들과 사방의 폭약들을 슬쩍 피해낸 강태석이 손에 들린 거대한 전투군 형대 검을 휘둘러가며 차례대로 녀석들을 하나씩, 차례차례 찍어나갔다.
이는 상성의 문제.
기동성이 낮고 방어력이 높은 엑소 슈트는 떡 장갑으로 달려들어 고화력으로 사방을 쓸어버리는 기갑화보병에 약하고.
기갑화보병은 그런 장갑을 뚫을 공격력과 훨씬 높은 기동성을 가진 검기 사용자에게 약하며.
검기 사용자는 버티기 힘든 화력을 화망까지 구성해가며 뿌려대는 엑소 슈트에 약하다.
검기를 머금은 전투군 형대 검의 육중한 파괴력은 이미 알레고리아에 휩쓸려 너덜너덜해진 장갑 정도는 충분히 뚫고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수준!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이제 남은 숫자는 27기.
어느새 23기는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 치직거리며 거친 기계음만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남은 녀석들도 시간문제.
<빠르게 이곳을 마무리하고 아니타랑 군파츠가 양쪽을 흔드는 동안 들어가서 목표물을 확보한다.>
다시 한번 목표를 확인한 강태석이 다시 한번 손에 들린 군용 대검에 힘을 주었다.
검기 사용자에게도 장난감처럼 휘두르긴 제법 무거운 무게였지만 검체에서 한 단계 강화된 스탯, D+의 흑선이 전신에 힘을 불어넣는다.
끼기기기...
끼기기기긱...
몸 어딘가 어둠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검은색 선들이 스프링처럼 배배 꼬이며 근육을 강화하고 터질 것 같은 용력을 충전하던 그때.
후우우우우우웅!
어딘가에서 날아든 섬뜩한 소음에 주변으로 칼을 휘두르려던 강태석이 본능적으로 손에 든 대검을 휘둘렀다.
이어 터져 나온 폭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그렇지. 인체 개조를 했는데 저 정도도 있어야지."
눈앞.
전신이 사이보그화와 중장갑 병기로 마개조 된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검기 사용자> 여인을 보며 강태석이 손 안의 칼을 우득 쥐었다.
**
쿠르르르릉...
쿠르릉...
저 뒤쪽으로 들려오는 폭음에 걱정스럽다는 듯 돌아보던 아니타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트란은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중요한 건 지금 자기 자신이 맡은 임무.
도시를 살피고 흔들어 빈틈을 만들고.
여차 하연 요인 격살과 민간인 테러 등을 벌여서라도 시간을 벌어준다.
지금 필요한 건 인도주의가 아닌, 승리와 생존이니까.
애시당초 보자마자 폭약을 뿌려댄 놈들에게 무슨 손속에 정을 둔단 말인가.
촤르르르르륵...
품은 독심을 대변하듯 아까보다 더욱더 서슬 퍼렇게 빛나는 연검을 허리춤 아래로 휘휘 돌린 아니타가 눈앞, 어느새 도달해 우뚝 솟은 거대한 빌딩들을 보며 그 사이로 진입하려던 그때.
저벅.
"거기 잠시. 멈춰봐."
"?"
자신을 멈춰 세우는 뒤쪽 한 여인의 말에 아니타가 멈춰 서며 고개를 돌렸다.
군파츠를 따라간, 그녀의 기존 섹터 정예 세력들이 아닌 각 섹터당 두셋씩 차출해 만들어진 모임.
그런 이들을 대표하듯 한발 나선 여인이 아니타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알지? 이거 엄청나게 위험한 거. 굳이 우리가 저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여인의 말에 뒤쪽, 레일건으로 무장하고 있던 생존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의 동료나 오늘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면 이해라도 간다.
하지만 집단의 전체나 또 다른 거대세력과의 전쟁을 대비해 싸우고 준비한다는 건 영 직관적이지가 않다.
자신들 또한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뭘 그리 또 열심히 무장하고 준비하려 한단 말인가.
실세들이 시켜서 오긴 했지만 영 꺼림칙한 행위.
어지간하면 적당히 할 만큼 하고 돌아가고 싶다.
"다른 쪽은 군파츠네가 어련히 잘 흔들겠지. 우리는 그냥 돌아가자고. 솔직히 너희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은 거 아니잖아? 다른 여덟은 남았더만."
여인을 비롯한, 뒤에 선 이들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여유의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니타와 구련장들 또한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으니까.
굳이 오고 싶진 않지만 나중에 책임을 면하고 숟가락은 또 얹어야 하니까 세력 내 가장 만만한 녀석들을 보낸다.
그게 자신들.
아니타도 처음 봤을 때는 순종적이고 고분고분 존대를 하는 데다 구련장이란 작자들 중 제일 여리여리하고 만만해 보였다.
구련장들 또한 굳이 들어가고 싶진 않아 제일 만만한 아니타를 보냈다 싶은 것.
하지만 그런 여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콰직.
"꺼어어억..."
"이 썅! 무슨 짓이야!"
철컥!
철커덕!
주먹질 한방에 배를 부여잡고 나뒹구는 여인.
그리고 그렇게 여인을 한방에 때려눕힌 아니타의 주먹질에 거의 반사적으로 레일건을 들어 겨눈 이들은 이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타의 얼굴에 그야말로 흉신악살 같은 미소가 어려있었기 때문.
더불어 전신과 칼날을 휘감은 시퍼런 검기.
그걸 본 순간 모인 사십 명은 본능적으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를.
벽을 넘은 자.
레일건 따위로 무장한 자신들은 백이건 이백이건 혈혈단신으로도 모조리 베어 죽일 수 있는 존재.
"이 새끼들이 내가 만만하지. 야. 내가 니들 신경 쓰여서 존대하고 있는 걸로 보여? 그리고 뭐? 도망쳐?"
퍽!
퍽!
"아욱... 아윽..."
"엄살 부리지 마. 힘 빼고 차고 있는데 무슨. 안 일어나?"
바닥에 쓰러져 배로 발을 차이던 여인이 아니타의 발끝에 시퍼렇게 서리기 시작하는 기운을 보고서는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기에 차이면 말 그대로 배부분이 불타오르고 지워져 사라질 테니까.
"..."
"... ...."
그제서야 군기가 빳빳하게 들어 굳은 표정으로 선 이들을 본 구련장, 아니타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피워 올렸다.
그래, 너무 답답했다.
카트란 하나 보고 참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속이 좀 뻥 뚫리는 느낌.
본모습을 드러내니 그제야 후련한 느낌이다.
'그래. 군파츠란 여자도 보니까 성격 더러워 보이는데. 굳이 조신한 스타일을 안 좋아하는 타입일 수도 있잖아?'
촤르르르르륵.
손에 든 연검을 휘둘러 단번에 깊숙한 홈을 패어버린 아니타가 눈앞의 이들을 보며 말했다.
"명심해.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의 혼을 빼놓는다. 걸리적거리는 건 다 부수고 치워야 할 건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죽이고 불태우고 겁에 질리게 한다.
설령 그게 남들 보기에 좋지 않을지라도.
그게 예전 자신들, 볼츠가 했던 일들.
그리고 구련장인 자신이 가장 앞장서서 벌였던 행위.
이윽고.
"가자."
잠시후.
타타타타탁.
앞장선 아니타의 뒤로 이를 질끈 악문 무장병들이 레일건을 들고 차례대로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자신이 선 자리를 내리찍어버리는 여인의 일격을 피한 강태석이 으깨진 자리를 보며 혀를 찼다.
기계 덩어리를 덕지덕지 붙여 거진 3m에 달하게 변해버린 육중한 몸뚱아리.
거기에 그런 몸도 부족해 보일 정도로 전신에 주렁주렁 매달린, 온갖 중장갑과 대형 냉병 기와 화력 병기들.
하지만 그런 육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살아생전에는 아름다웠을 것 같은 여인의 이목구비와 조막만 한 얼굴이 기괴함을 더했다.
마치 강제로 뜯어지고 개조된 인형 같은 느낌.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고.
키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땅바닥에 내리찍은 망치를 버려두고 허리춤의 사슬을 꺼내 휘두른 여인의 일격에 시퍼런 검기가 매달려 강태석을 향해 질주한다.
검기에 기계 육체에 기갑화장비.
아주 그냥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삼위일체가 된 상황.
심지어 그 세 가지가 서로 폭발하듯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기갑화병기의 방어력에 사이보그의 파괴력에 검기 사용자의 기동성!
콰아아앙!
콰득!
대검으로 사슬을 막아내자마자 사슬을 놓아버리고 미친 듯이 질주해 자신에게 주먹을 꽃아 넣는 상대의 일격을 전마강갑으로 막아낸 강태석이 미간을 좁혔다.
둘이 시간 끌어주는 동안 도시 안으로 진입하기도 바쁜데 여기서 시간 끌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
심지어 주변에 기갑화보병 녀석들도 남아 끼어들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다.
잠시 후.
'한방에 끝내야겠다.'
알레고리아는 현재 사용시간 충전 중.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키이이잉...!
숨을 들이킨 순간 강태석의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검은 샘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