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22화 (12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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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밖, 황무지.

꾸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스르르르르륵...

"허억... 허억... 후우."

도시 저 너머에서 터져 나온 커다란 괴성과 폭음.

이어 먼지처럼 부스러져 대기 중으로 흩날리기 시작한 주변의 괴물들.

흐아아아...

한숨을 내쉬며 털썩털썩 주저앉는 피투성이 생존자들 속, 금속 쪼가리를 휘두르며 분전하던 마르트 역시 그제서야 긴 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에 들린 무기를 떨그렁 집어던졌다.

전신은 피투성이.

거기에 오른쪽 팔은 이미 잘려나간 지 오래.

"자네..."

다가와 말을 거는 카티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멈칫한 마르트가 이내 자신의 멀쩡한 왼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됐소. 기계 몇 놈 때려잡아서 부품으로 팔만 들면 되니까."

자신의 직업, 기계 포식자의 특성이 그것.

잘려 나간 팔은 기계 몇 놈, 혹은 저기 바닥에 쓰러져있는 사이보그 녀석들의 부품을 수급해 다시 복구하면 그만이다.

무기 역시 마찬가지고.

잘려 나간 팔과 이제는 덩어리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애병이 아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없어진 것에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이번 싸움으로 실력이 좀 더 올라갔으니 테크니컬인 ‘온’의 도움이 있다면, 돌아가서 아마 저번보다 더 강한 무기와 팔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살아남은 게 중요하다.

그리고...

"진짜 미친놈이로군. 어떻게 해결한 거지?"

황무지 저 너머, 이제는 평온하게 안정된 도시 건너를 바라보며 마르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세상을 일곱 번은 접었다 펴서 찢어발길 수도 있을 것 같은 무언가가 전신으로 뿜어내던 끔찍한 느낌.

거리가 멀어서 그랬지 가까이 있었다면 미치기 직전까지 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그런 놈을 막아냈다고?

4층에서 신위를 선보였던 귀족이란 존재가 도시로 달려갔다면 차라리 이해라도 갔을 것이다.

그 작자로도 역부족일 것 같긴 했지만 어쨌건 둘 다 이해 불가의 존재라는 건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녀석이 정말로 이를 해결하다니?

개미가 고래를 엎어 땅에 메쳐버렸다는 게 차라리 신빙성 있어 보일 지경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게 엄연한 현실.

"세상이 요지경이다. 요지경이야..."

"..."

뭔가 힘이 빠져 보이는 마르트를 안쓰럽게 보던 카티가 이제는 악의 기운이 거의 빠져나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르트의 커다란 허벅지 위, 허리춤을 토닥거려주려던 그 순간.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거대한 진동과 함께 도시, 아니 황무지를 포함한 이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도시, 지하.

콰르르르르르릉!

<후욱...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박살 난 틈새.

사라진 괴수들과 흉흉한 압도적 기운.

그 속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텅텅 뛰어온 군파츠가 수정 앞에 선 강태석을 보며 물었다.

어느새 수정을 휘감고 있던 보랏빛 기운은 모조리 사라지고, 그 표면을 영롱한 푸른빛이 휘감은 상태.

푸른빛으로 그득 찬 수정은 이전의 기이한 느낌은 사라지고 되려 신비롭다는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군파츠의 질문에.

"이 공간 자체가 무너지는 거지. 지금 수정에 과부하가 걸렸어."

키이이잉....

기운을 잃어가는 수정을 보며 강태석이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마법 같은 유물이지만 작동하려면 엄연히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저 너머 공허 존재의 기운으로 작동해왔지만, 녀석이 도망쳐 빠져나가 버린 지금 이건 배터리가 나간 밥솥 상태.

하물며 조금 전 무리하게 존재가 비집고 나오려고 한 탓에 과부하까지 걸렸다.

그리고 이 황무지의 세계는 수정 덕분에 지탱되고 있던 공간.

구체 밖 입구의 구조물들은 단지 이 공간으로 향하는 좌표를 고정하고 있던 시설들에 불과하며.

수정이 작동을 멈췄으니 공간 전체가 통째로 무너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는 빠져나갈 시간.

"준비해. 생존자들 다 챙겨서 나가야 하니까."

입구 쪽이야 알아서 빠져나가겠지만 도시 안에는 아직 함께 들어왔던 무장병들이 있다.

군파츠를 향해 짧게 말한 강태석이 자신은 수정에 집중하기 위해 빙글 몸을 돌리려던 그때.

터덕.

입구, 강태석이 뻥 뚫고 들어온 지하 공동을 통해 들어온 아니타가 통통 뛰어 들어오더니 짧게 외쳤다.

"다 모아 왔어... 요. 여긴 다 끝난 거야... 요?"

"?"

요상한 말투에 강태석이 미간을 좁혔다.

존대할지 아닐지가 헷갈려 보이는 듯한 모습.

편한 대로 해도 상관은 없지만, 굳이 갈팡질팡할 이유가?

다만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지 옆에서 피식거리는 군파츠를 흘긋 본 강태석이 이내 짤막하게 대답했다.

"다 끝났어. 다들 데리고 먼저 빠져나가. 난 마무리만 하고 갈 테니까."

"마무리?"

아니타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챙겨갈 건 챙겨가야지."

자신이 여기까지 온 근본적인 이유.

키이이잉...

파지직...

강태석이 힘을 잃고 허공에서 짧게 스파크를 토해내고 있는, 크기 30m의 푸른빛 거대한 수정을 바라보았다.

**

황무지, 구체 근방.

빨리!

빨리 빠져나가라!

구체 근처,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엑소 슈트들을 향해 카티가 버럭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

자신들이 여길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공간 전체가 쭈그러들고 있었기에!

콰지지지지지직!

콰지직!

고개 위, 드높던 창공의 하늘이 마치 콰득콰득 구겨지며 천천히 땅을 향해 가까워진다.

마치 누군가가 위에서 커다란 종이 우유갑을 짓누르는 것처럼!

지평선 너머도 마찬가지.

후우우우우웅...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어 더욱 황량해 보이던 황무지의 지평선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수천만 마리 황소 떼의 돌진처럼 빠르게 자신들을 향해 내달리며 줄어들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내달린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기 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뻔한 노릇.

그렇게 스러져가는 공간 속, 모두가 부상자와 남은 물자를 챙기며 분주히 구체를 통해 빠져나가던 가운데.

철컥.

"들어가려고?"

"혹시 쓰러져있을지도 모르니까."

나갈 채비를 하던 마르트가 두 개의 장갑을 챙기고 구체 반대편, 도시로 뛰어갈 준비를 하는 카티의 대답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세계.

빠져나가기도 빠듯할지 모르는데 도시로 들어가 녀석들을 찾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한데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겠다니.

잠시 후.

철컥.

"?"

"나도 같이 찾지. 빚도 있고."

마르트가 걸치고 있던, 팔과 무기의 재료로 쓰려고 챙겨 놨던 사이보그 파츠들을 모조리 내던지고 몸을 가볍게 한 뒤 카티의 곁에 섰다.

이미 민트라와 크란 등의 주요 전력은 무장병들 이전에 바깥으로 먼저 내보낸 지 오래.

그들이 더 귀중해서가 아니라 밖의 상황도 개판이었으니 혹시 모를 기습 등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남은 검기 사용자는 둘 뿐이지만 하나보단 훨씬 나을 터.

그런 마르트를 바라보던 카티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시 쪽으로 뛰어가려던 그때.

키이이이잉...

파아아앙!

도시 쪽에서 작은 폭죽이 피어올라 터짐과 동시에.

타타타타타타탁...

파파파파파팡!

저 멀리, 도시 아래서 뛰어오기 시작하는 이들을 발견한 카티와 마르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

도시부터 구체까지의 거리, 대략 1km.

멀다면 멀지만 검기 사용자가 아닌 초인이라도 뛰어서 금방 주파할 수 있는 거리.

타타탁.

아니타와 군파츠, 그 외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살아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카티가 순간 멈칫하며 물었다.

"카트란은?"

가장 있어야 할 상대가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런 카티의 말에 군파츠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데. 그게 묫자리 파는 건 아닐 테니 알아서 잘 빠져나오겠지. 아 그리고 녀석이 부탁한 게 있었는데."

"부탁?"

"응응. 어디 보자... 아 저기 있네. 어이 거기!"

군파츠의 외침에 구체 근처, 팔짱을 낀 채 주섬주섬 다시 사이보그 파츠를 주워 담고 있던 마르트의 곁에 서있던 시카른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 시카른의 발치로 보이는, 기절한 말더듬이 사내.

텅텅!

사내와 시카른을 확인하고 단번에 발을 굴러 그 앞으로 다가간 군파츠가 시카른을 보며 말했다.

"이놈 좀 받아 가도 되나?"

"어디다 쓰게."

"음. 이놈을 깨우면 알 거라던데."

포식 장갑을 입은 채 그 큰 키를 숙여 이리저리 푹 주저앉아있는 사내를 바라보던 군파츠는 잠시 고민하다 손을 들어 사내의 머리통을 가볍게 후려쳤다.

악감정이 담기지 않게, 그래서 불의의 사고로 머리통이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

따아아악!

????!!!!

머리통을 후려 맞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자리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사내는 이내 무너지는 하늘과 질주하는 땅을 둘러보다, 그 사이의 한 방향을 바라보며 커다랗게 고함 성을 내질렀다.

"우아아악! 안... 안 돼...! 사... 사옥선...! 챙... 챙겨가야 하는... 데!"

"아하."

띡띡띡띡!

쿠르르르르릉!

다급하게 사내가 손목의 패널을 조정하자 허공에 뜬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거친 소리를 내며 바깥, 구체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걸 본 군파츠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씨익 웃었다.

보니까 이제 이놈만 챙기면 저 사옥 선인지 뭔지는 알아서 끌고 갈 수 있을 터.

그러면 할 일도 다 끝났으니 자신들도 빠져나가면 된다.

수수수수숙!

커다란 구체를 통과해 넘어가는 금속 덩어리를 본 군파츠가 자신도 구체를 향해 몸을 날리려던 그때.

쿠르르르릉...

쿠쿠쿠쿠쿠쿠쿠쿵!

"?"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에 뒤쪽을 돌아본 군파츠가 이내 혀를 내둘렀다.

도시 전체가 무너지듯 빨려 들어가며 꺼져 내리고 있었기에!

"... 저게 할 일이라고?"

쿠르르르르릉!

쿠르르릉!

도시.

모조리 지하로 집어 삼켜지고 있는 융숭한 마천루들을 보며 군파츠가 머리를 긁적였다.

**

도시, 지하.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콰르르르르릉!

깜빡이는 수정의 주변으로 생겨난 푸른빛 소용돌이, 그 권역이 껌벅거리며 지상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도시, 도로, 가로수.

수정의 권능으로 생겨난 것들을 모두 다!

그리고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강태석이 숨을 후 내쉬었다.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은 가져가야지."

비록 인간을 제물로 바쳐졌던 것들이 꺼림칙하긴 하지만, 어쨌건 도시 자체는 중요한 자원이다.

앞으로 기갑화를 이루려면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며.

당장 <위층>으로 가면 쓸만한 자원 구하기가 당장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쿠르르르르릉!

남은 에너지를 모조리 소모해가며 도시를 빨아들이고 있는 수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강태석이 얼추 드러나기 시작한 천장 밖, 하늘을 보며 시간을 계산해보고 있던 그때.

저벅.

"끄으윽... 끄으으윽... 안 돼... 안돼... 내 도시를..."

"음? 안 죽었네?"

뒤쪽.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난, 이전 수정의 계약 자였던 걸로 추정되는 사내를 보며 강태석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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