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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떨어져 내린 강태석과 아린들의 앞, 거의 수십에 가까운 이들이 저벅저벅 폐허가 된 구조물들 사이를 지나 웃으며 걸어왔다.

"눈을 떠보니 요지경이긴 한데, 다른 생존자들 만나니 또 반갑네? 너희들이라면 이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가장 앞에 선 사내가 자신의 눈앞에 선 이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숫자는 어림잡아 열 명 정도.

숫자가 적은 데다 검기 사용자는 고작 둘.

거기에 저 거슬리는, 아니 사실 말하면 덤벼들기 부담스러운 전차들도 없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이상한 슈트 같은 걸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

슈트도 없는 맨몸이면 좋지 않냐고?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러면 자신들과 똑같은, 냉동 참치 신세였던 녀석들일 것 아닌가.

자신들은 지금 이 세계를 떠돌았을, 정보원 역할을 해줄 놈들이 필요하다.

겸사겸사 부려먹을 노예도 좀 구하고.

저런 걸 가지고 있는 걸 보니 필시 돌아다니던 <일반인>, 지금 눈앞의 녀석들 정도라면 딱 좋은 상대.

콰르르르릉!

비릿하게 웃은 사내를 비롯한 몇몇의 손안에서 거친 검기가 피어올랐다.

에테르 속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던 것인지 빌어먹게 약해지긴 했지만, 눈앞의 녀석들 제압하기엔 아주 충분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

"..."

그리고 그런 녀석들을 보던 강태석과 아린이 서로 두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긁적이던 그때.

쿠우웅!

쿠웅!

쿠우우우웅!

“야 뭐야?”

“빨리빨리 내려와! 급해!”

“뛰어내려!”

"....!!!!!!!"

위쪽.

뚫린 구멍을 통해 본격적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한 카티를 비롯한 검기 사용자들과 수십 대의 엑소 슈트, 그리고 수백에 달하는 인원들을 본 범죄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

"뭐야 이 머저리들은?"

퉤엣.

바닥에 침을 뱉은 군파츠가 주먹을 탈탈 털며 혀를 찼다.

결착은 순식간에 끝났다.

덤벼들려던 검기 사용자 녀석들이 가장 먼저 부리나케 도망갔다.

나머지 벗어나려던 놈들은, 그렇지 않아도 흩어진 자기 쉘터가 걱정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군파츠와 간신히 살아남아 예민함이 최고조로 올라있던 몇몇 생존자들의 손에 걸려 흠씬 두들겨 맞다가 뛰어갈 다리만 건진 채 뒤따라 도망갔다.

이제 남은 건 5층 심부에서 표부로 온전히 넘어온 수백의 생존자들.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아. 너무 흩어져 버렸어."

군파츠가 사방을 휘둘러보며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대충 게릴라전을 하기로 한 상황을 들었지만, 생각보다 아래가 더 격전지다.

말하자면 시가전이 벌어진 도시 곳곳에 자신들의 병력이 흩어져있는 상황.

그걸 뚫고 오는 건 둘째 치고, 그들을 어떻게 그러모을지 또한 문제다.

흩어져있는 그들이 지금 자신들의 위치를 알 방법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군파츠의 말에.

"걱정 안 해도 된다네. 다 방법이 있으니."

"방법?"

반문한 군파츠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카티가 옆을 보며 고개를 까딱거린 순간.

하암.

뒤에 서서 하품을 하던 크란이 앞으로 걸어 나와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는 숨을 후욱 들이켰다.

**

5층 표부, 어딘가.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키이이이잉!

"흐아... 이런 미친 진짜!"

그야말로 귀신같이 타타 타탁 어둠 속을 가르고 등장해 자신들 머리통 위에서 포신을 겨누는 거미 전차의 기동음에 싸우던 생존자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슨 저렇게 커다란 기계 덩어리가 금속 공간 사이를 뛰어오는데 사람 뛰어다니는 정도의 발소리밖에 나지 않는단 말인가?!

심지어 다가오는 속도가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더 빠르다.

공포 영화도 이렇지 않을 것 같은 느낌.

키이이이잉...!

머리 위쪽에서 그러 모이는, 푸른 방사형 화염에 모여있던 생존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걸 상대로 발악하는 건 그야말로 헛짓거리다.

레일건은커녕, 디스트로이어의 탄자도 버텨내는 말도 안 되는 내구력에.

근거리는 방사형으로, 원거리는 레이저 형태로 모두 대응 가능한 공격 형태.

심지어 인간의 육체는 물론 어지간한 구조물마저 통째로 녹여버리는 파괴력까지!

왜 카트란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로 들어가면서까지 기갑화를 주장했는지 마주치는 순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늦었지만 말이다.

화르르륵...

포신 너머로 넘실거리는 화염이 단번에 터져 나왔다. 모여있던 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직전, 찰나의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화르르륵!

황금빛 선을 그리며 뛰어든 무언가가 단번에 포신을 걷어차며 그 방향을 돌려버렸다.

이어 터져 나오는 화염.

그리고 아래쪽에서 함께 터져 나온 탄성.

"아너스... 그 뭐시기?"

"임마! 아너스빌이라고!"

화르르르르르르륵!

터져 나온 화염 방사 속, 간신히 그 범위를 피해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탄성을 뱉었다.

"... 잠시 피해라."

근처에 있어봤자 방해.

혀를 차며 뚜둑 주먹을 푼 아너스빌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부여잡으며 등 뒤에 매달린 상인 여인, 카스티에게 말했다.

"무기."

"으아... 이거 다 갚을 수 있어요?"

"싸구려밖에 안 주고 있는 거 안다. 추궁하지 않을 테니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그거라도 내놔."

"..."

이에 꾹 입을 다물었던 카스티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을 벌렸다.

이윽고.

쑤우우우욱.

그 안에서 쫘아악 마법처럼 뽑혀 나온 창을 뽑아 움켜쥔 아너스빌이 전체에 휘황찬란한 휘광을 두른 채 다시 한번 자신을 겨누려는 거미 전차의 포신, 그 너머 본체를 바라보았다.

목표는 저 안에 타고 있을 구동자 녀석들.

키이이이이이이이 잉!

터질 것처럼 창 전체에서 빛나던 휘광이 순식간에 창을 타고 쭈욱 밀려 올라가 단번에 창끝, 한 점에 모였다.

마치 흩어져있던 반딧불들이 단번에 모여 전구처럼 빛나듯.

"흡!"

그렇게 찬연하게 빛나는 한 점의 황금빛을 본 아너스빌이 단번에 힘을 주어 창을 전차 표면에 꽂아 넣은 순간.

콰드드드득...

팡...!

무언가 콰득거리며 우그러지고 밀려나는 소음과 함께,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렸다.

이어서 그 작은 구멍 너머로 대단히 미약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으면 듣지도 못했을 정도로 미약한 소리.

하지만 그걸로 끝.

키이이이잉...

덜그럭.

기동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져버린 거미 전차를 본 아너스빌이 숨을 내쉬며 손안에 있던 창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이미 창대 전체가 안쪽부터 타버린 지 오래.

"나쁘지 않고, 나쁘기도 하고."

터덕.

거미 전차 아래로 뛰어내린 아너스빌이 습관처럼 자신의 얼굴 상처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은 건 자신의 결과물.

모든 기운을 모아 한 점에 집결 시켜 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딱 맞는 구멍을 정확하게 장갑 표면에 뚫고 그 안에서 여력을 폭발시켰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흐트러졌다면 장갑을 뚫지 못했거나 더 울퉁불퉁한 구멍이 뚫렸을 터.

나쁜 건 교환비 그 자체.

고작 전차한대 잡을 때마다 자신의 검기 전력을 창끝, 한 점에 그러모아 뚫어내야 할 정도다.

그 정도로 전차의 장갑은 지나치게 단단하고 두꺼운 상황.

심지어 그 기동성이나 사이즈를 보면 정말 <내구도>나 <화력>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 아닌, 경전차로 추정되는 물건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오래는 못 버틸 거 같은데. 거기에 이 녀석들이 지나치게 도움이 안 된다.'

아너스빌이 살아남아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자신을 믿음직한 눈으로 바라보는 생존자들을 흘긋, 냉혹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싸움에 지나치게 도움이 안 되는 걸 넘어 되려 신경 써서 싸워야 하니 발목을 잡는다.

차라리 모조리 버리고 혼자 돌아다니는 게 훨씬 도움이 될 지경.

<정말로 그럴까?>

하지만 고민은 잠시.

"다들 채비해요. 일단 움직여야 하니까."

타닥!

아래, 생존자들에게 시간을 준 뒤 한걸음에 위로 뛰어올라 주변을 경계하며 둘러보던 아너스빌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딱히 인간적인 정 때문은 아니다.

다만 자신은 그래도 나름 오랫동안 가문의 대소사를 살피며 한 가지를 깨달았기 때문.

<인간은 어떻게든 살려두면 도움이 된다.>

그게 노동이건, 역할이건, 혹은 다른 무언가 이건.

공룡에게 개미의 무력은 의미가 없듯, 귀족이던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평범한 인간들의 힘은 굳이 큰 의미가 없었음에도 귀족가를 만들고 인간들을 보살핀 이유.

"쯧."

아너스빌이 작게 혀를 찼다.

그토록 싫어해서 거부했던, 어릴 적부터 익힌 귀족가의 생활 태도와 사고방식이 언젠가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 점차 자신을 물들인다.

무력이 강해지고 상황이 급박해질수록 더더욱.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자신이 그닥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마치 몸속의 피가 이를 반기듯, 그제서야 걸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카트란. 너도 나랑 같은 이유로 이들을 살려두고 있는 건가?'

아너스빌이 지금쯤 어딘가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을 카트란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어찌 보면 위의 이유보다 자신이 이렇게 결심한 더 중요한 이유.

녀석이 이걸 원할 것이기에.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녀석은 과연 왜 그리 사람들을 살리려고 하는 걸까?

자신처럼 머릿수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마냥 선한 마음과 인간다움의 발로로?

“…”

아너스빌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저기... 그런데 그 <신호>라는 건 언제 오는 겁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아래에서 채비를 마치고 올려다보며 묻는 무장병의 목소리에 아너스빌이 멈칫했다.

그리고 보니 그랬다.

집결할 때 약속된 신호를 보내겠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 건가?

그건 자신이라도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아까 전 들은 <신호>의 정체를 떠올리며 아너스빌이 미간을 좁히던 그때.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터져 나온 쩌렁쩌렁한 굉음.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온 원통을 타고 우렁우렁 울려 그들의 귓가에 정확하게 박힌다.

도무지 인간이 인간의 목으로 터트려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함성!

'아니지. 인간이 아닌 건가? 하핫. 진짜. 세상이 넓고 신기하구나.'

"갑시다!"

촤아아아앙!

카스티를 툭 쳐 무기 하나를 받아 든 아너스빌이 기분 좋아진 듯 굉음이 터져 나온 방향으로 향할 준비를 하며 웃었다.

**

크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앙...

앙앙.....

"으윽..."

"크으으윽..."

온 사방을 향해 쩌렁쩌렁 터져 울리는 포효.

이를 바로 옆에서 들은 생존자들은 물론, 마찬가지로 귀를 막고 있던 마르트와 민트라들마저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들 앞, 우렁찬 포효를 토해낸 뒤 콜록거리며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 소녀를.

키는 크지만, 고작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애모에 여전히 마른 팔다리.

대체 저 몸의 어디에서 저런 목청이 터져 나온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 건가?

그들이 아무리 검기 사용자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그들은 조금 더 강한 인간이지, 무슨 슈퍼맨이 아니기에.

그리고 소녀가 보여준 신기는 명확히 후자.

목청을 터트려 이 광대한 플로어 전체를 우렁우렁 울려버리는 건 자신들이 봐도 초능력에 가까운 기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효과는 확실.

타타타탕...

타타탕...

응답하듯 사방에서 간헐적으로 피어오르는 총소리와 함께.

쿠쿠쿠쿵..

쿠쿵...!

전장 속, 가까이 있던 이들부터 이쪽을 향해 차츰차츰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모두가 신호를 대기하던 그들 섹터의 생존자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갑시다."

앞장선 강태석의 말에.

쿠구구구구...

하늘에 뜬 사옥선을 시작으로, 아래 모여드는 모든 이들이 뒤를 따라 콜로니 쪽으로 북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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