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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앙!
"살다살다... 저건 또 뭔데! 여긴 또 뭐고!"
꾸어어어어어엉!
상상도 못 한 크기의 지렁이를 보며 군파츠가 주먹을 꽈득 쥐었다.
몸뚱이만 지렁이지, 크기나 형태는 전혀 다르다.
우둘투둘한 이빨들에 빌딩보다 거대한 크기.
튀어나온 길이만 해도 300m.
심지어 하늘로 솟구친 뒤 뭔가를 우적우적 씹어 삼키는데,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조차 어마어마하게 컸다.
단지 저 커다란 지렁이 녀석보다 작았을 뿐.
구어어엉...
고오오오오오!
군파츠를 비롯한, 새로운 대지에 도달해 차례차례 통로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대지였는데 귀를 기울여보니 들린다.
저 너머 펼쳐진 넓은 수림과 대륙을 그득 메운 웅혼한 괴성과 비명들이.
"... 굳이 선택지가 여기밖에 없는 거였어? 보통 위험해 보이는 게 아닌데."
군파츠가 뒤쪽에서 목을 풀고 있는 강태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온이라는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알겠다.
이곳은 6층이라는 세계에서도 특별히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반면 자신들은 초행의 방랑자.
굳이 가장 위험한 이곳으로 올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 군파츠의 말에 강태석이 짧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위험하니까 온 거지. 덕분에 우리가 아직 포격을 안 맞고 무사히 여기 있는 거고."
"..."
강태석이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자신이 여기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위험해서 아직 자리 잡은 세력이 없으니까.
두 번째,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많은 광물과 자원, 대지가 있으니까.
이 6층, <생태지대>에서 자신이 선 G구역은 SABCDE의 대륙 분류 중 S에 해당하는 아주 좋은 지역이다.
시작하기에 이곳만 한 장소가 없다는 의미.
제대로만 한다면 대부분 A나 B등급의 구역을 나눠 먹고 있는 다른 11개 세력들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갈 수 있다.
단점은 위험등급마저 S.
타 대륙을 가볍게 압도하는 수준이라는 것.
'하지만 할 건 해야지.'
목을 우득 푼 강태석이 차가운 눈으로 수림을 바라보다 군파츠와 카티들을 보며 말했다.
"모두 채비해주세요. 우린 이제부터 다들 서쪽 수림으로 들어갑니다."
수림의 한가운데. 그곳이 앞으로 자신들이 자리 잡을 공간이다.
그런 강태석의 말에 군파츠가 물었다.
"서쪽으로 들어가는 건 둘째치고 이제 올라오는 녀석들은 어쩌게? 우글우글 몰려올 텐데."
쿠르르릉...
천천히 기동을 준비하는 통로를 보며 군파츠가 되물었다.
지금은 아래 녀석들도 위에 자리 잡은 자신들이 껄끄러우니 망설이고 있겠지만, 아마도 그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점차 모여들어 자신감과 굶주림이 걱정을 넘어설 정도가 되면 이는 광기가 되어 해일처럼 이곳으로 몰아치게 될 테니까.
그런 군파츠의 말에.
"..."
통로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했으면 저런 녀석들도 적당히 품고 가겠지만, 지금은 힘이 부족하다.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내가 말해주는 좌표로 먼저가 있어. 해결하고 뒤따라갈 테니."
이왕 하는 거 혼자가 편하다.
여럿이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니까.
그런 강태석의 말에 군파츠와 카티들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
쿠르르르르릉!
쿠우웅!
쿵!
투콰콰콰콰!
콰드득!
저 너머, 수림을 헤치며 사라져 가는 섹터의 인원들과 사옥선을 바라보며 강태석이 몸을 뿌득 풀었다.
온갖 요란한 총성이 벌써부터 요란하게 터져 나오고는 있지만 잘 해낼 것이다.
일단 가르쳐준 곳의 좌표는 이곳과 멀지 않은 데다 주변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해당했으니까.
말하자면 지뢰 찾기를 하듯 신중히 내디뎌야 하는 이 생태계 속, 몇십 칸이나 지뢰가 없는 지역에 해당하는 황금스팟.
만약 몸으로 헤쳐가며 수색하려 했다면 인원이 십 분의 일 토막으로 두 번은 나고서야 찾을 수 있을, 그런 장소이다.
"경험이란 게 좋아."
중얼거린 강태석이 이제는 고개를 돌려 통로를 바라보았다.
우우우우웅!
모든 물자와 인원들을 끄집어낸, 대지와 천장의 하늘을 연결하는 육중하고 굵은 통로가 다시 한번 우웅 소리를 토해내며 제 역할에 충실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통로는 독점할 수 없다.
테크니컬인 온을 통해 잠시 막아뒀지만, 다시 한번 기동을 시작하려는 것.
이제 저기서 물밀듯 몰려와 깽판을 치려고 들 텐데 그래서야 곤란하다.
"게임 시작하고 지금 얼마 만에 첫 <멀티>를 먹는 건데."
투타타타!
어느새 수림 상당히 깊숙이 들어간, 자신이 건네준 파일런을 들고 향하고 있는 카티와 페리트란들을 떠올린 강태석이 숨을 골랐다.
지식을 알고 있어 좋은 점 하나 더.
지뢰를 피할 수도 있으니 원할 때는 <밟을> 수도 있다는 것.
잠시 후.
쩌저적...
크르르르릉...
"옳지 옳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홍옥색 비늘의 늑대, 영뇌수를 쓰다듬으며 강태석이 웃었다.
**
5층, 통로 바닥.
"이제 올라가면 되는 건가?"
"아니 이건 왜 이렇게 작동이 느려!"
텅텅!
수많은 사람들 속, 사나운 인상의 이들이 벽면을 텅텅 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야말로 바글바글.
현재 엘리베이터 안을 메운 이들의 숫자는 수천 명.
꾸역꾸역 사방에서 모여든 범죄자들이 그득 들어 탔다.
총전력은 검기 사용자들의 수가 많은 자신들이 유리하지만, 따로따로 올라가면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놈들의 총알 세례에 각개격파가 될 수 있기에 서로의 껄끄러움을 감수하고 내린 선택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공평한 처지는 아니다.
"자자. 다들 협력해야 할 시기입니다. 모두 입구 쪽에 빼곡히 서세요. 옳지. 뺏은 것들 그렇게 잘 챙겨 들고."
칼을 빙빙 휘두른 여인이 입구 쪽, 겁먹은 표정으로 웅성거리며 선 수백 명을 보며 시리게 웃었다.
각기 다른 입구에 선 그들의 손에는 큼지막한 몇 미터짜리 금속판들이 들려있었다.
바로 그들이 아래층에서 격침시켰던 기계 거미들의 외장 금속.
저거라면 그 엑소 슈트인지 뭔지 하는 장난감들로부터 효과적으로, 혹시라도 모를 사방에서 퍼부어질 화망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앞에서 들고 있는 놈들이야 놓치거나 휘말려 곤죽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자신들이 알바 아니고.
약한 놈들은 약한 놈으로서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그 대가로 자신들이 나가 모조리 죽여 복수해주면 그만 아니겠는가?
잠시 후.
쿠르르르르릉!
거친 소리와 함께 금속 통로가 작동하며 자신들을 위로 쭉쭉 밀어 올리는 걸 본 여인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자신이 붙잡히고 에테르장에 처박힌 뒤로 몇십 년이 흐른 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대단히 바뀐 것 같기는 하다.
이런 기술력이라니.
만약 5층에서 사로잡아 정보를 쥐어짜 낸 놈들이 없었다면 이해하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을 것 같은 변화들.
그런 여인의 옆, 소녀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위로 가서 어쩔 거야?"
"어쩌긴. 예전에 했던 거랑 똑같이 하는 거지."
20m, 50m, 100m.
쭉쭉 올라가는 바닥, 그들의 머리 높은 곳에서 위층에서 새어든 걸로 보이는 빛들이 내리 쬈다.
이제 곧 있으면 목적지.
이를 보며 시리게 웃은 여인이 소녀의 머리를 벅벅 휘저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뭐 있겠는가?
강자로서 약자를 뜯어먹으며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더 강해지면 좋고.
재수 없어 죽으면 그만이고.
"..."
여기까지 떠올린 여인의 표정이 슬쩍 가라앉던 그때.
띠이이잉!
굉음과 함께 그들을 밀어 올리던 직경 300m의 반투명한 원형 바닥이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쿠르르르르릉...
역장이 풀리기 시작한 입구 쪽, 금속판을 들고 있던 수백 명의 고기 <방패 조>들이 숨을 죽이며 온몸에 힘을 주었지만, 그들이 예상한 공격들은 날아들지 않았다.
이에 입구에 선 이들의 표정이 의아해졌고, 그건 뒤쪽의 화망속에서 뛰쳐나갈 준비를 하던 여인과 대기조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격을 안 한다고? 절호의 기회일 텐데?"
절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상대에게는 지금이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유일한 찬스였다.
자존심이 상한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칼을 쥐고 성큼 앞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뭐해! 이 새끼들아! 빨리 앞으로 안 나가? 지금 투어 관광 왔어?"
금속판 사이의 틈새로 흘끔흘끔 바깥을 살피던 이들을 향해 여인이 흉흉하게 살기를 뿜어내자 입구에 서있던 이들이 이를 악물었다.
여인뿐 아니라 소녀, 그 뒤의 일백에 달하는 녀석들.
자신들이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지 않으면 단번에 칼을 휘둘러 모조리 갈아버릴 기세.
우당탕탕!
터텅!
“커헉... 밟지 마!”
일련의 소란이 있었지만 마치 밑동이 깨진 그릇의 죽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순식간에 바깥으로 몰려나왔다.
이윽고.
"뭐야, 너. 혼자?"
밖으로 나온 여인이 나무를 썰어내고 그 위에 앉아 하품 중인 상대 하나를 기가 찬다는 듯 바라보았다.
**
'하나, 둘, 셋... 백스물여덟. 많기도 하다.'
총인원의 숫자는 세는 게 의미 없을 정도.
그중 포함된 검기 사용자의 숫자만 세어본 강태석이 푸 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압도적이라는 표현도 미안할 정도의 전력 차이다.
정면으로 붙었으면 그냥 믹서기에 휘말린 토마토처럼 갈려 나갔을 지경.
그런 강태석의 앞, 금속판을 든 이들을 옆에 두고 여유로이 앞에 선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항복 의사를 표하려고 남아 있던 거면 좋은 선택이다. 뒤에 올라올 녀석들보다 우리가 잘해줄 생각이거든."
쿠르르르릉!
사람들이 내리자 다시 작동을 위해 울리는 검은 통로의 앞, 여인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나 하는데 대화로 풀 생각은 없지? 우리 아래로 들어와서 말 잘 들으면 앞으로 나름 공평하게 잘 대우해줄 자신이 있는데."
"...?"
강태석의 말에 100m쯤 거리를 두고 있던 여인과 소녀, 그리고 그 뒤로 선 이들이 이해를 못 한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뭔 소린가 싶었기에.
잠시 후.
으하하하하하!
터져 나온 웃음 속, 모두가 유쾌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강태석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일들의 연속이라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웃는다 싶었다.
그중 가장 크게 웃은 건 앞의 여인이었다.
"아하하하! 좋지 대화. 이리 와봐. 이야기 좀 나눠보게. 좋은 생각이네! 그거."
손가락을 까딱이다 못해 이제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걸어오기 시작하는 여인을 본 강태석이 나뭇등걸에서 눈을 감았다.
하긴 뭐 입 터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서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는 건 말보다 행동인 법.
"그래 뭐. 그럴 줄 알았다. 같이 좀 편하게 가면 좋겠다 했는데."
"?"
눈살을 찌푸리는 여인을 보던 강태석이 이내 마음의 준비를 끝마치고 손가락을 딱 튕긴 순간.
크르르르르릉...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쩌어어엉!
저기 수림 너머 1km쯤 어딘가.
손동작과 터져 나온 영뇌수의 짤막한 포효 성과 함께 이를 단번에 지워버리는, 천지를 어울리는 괴성과 더불어 영뇌수와의 링크가 일순간에 소멸해버렸다.
마치 뒷목을 후려치는듯 한 불쾌한 통증 속, 강태석이 인상을 쓰며 나뭇등걸에서 일어났다.
"!!!!!!!!!!!"
쾅쾅쾅 쾅!
콰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악!
포효에 기겁한 여인과 사람들 사이, 단번에 수백 미터씩 지면 위아래로 넘나들며 솟구친 거대한 지렁이 괴수가 수십 명을 동시에 입에 털어 삼키며 검은 통로를 부숴버릴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