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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수림.
쿠르르르릉...
쿠아아아앙...!
행여 뭔가에 걸릴까 봐 100m 높이로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들을 우드득 박살 내며 저공으로 날던 사옥선 아래, 뒤쪽에서 터져 나온 굉음에 움찔 몸을 돌린 이들이 이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광경을 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보이는 건 한참이나 멀리 떨어졌음에도 안보일 수가 없는, 아까 전의 거대한 지렁이 괴물.
콰아앙...
콰아아아앙...
아까 전 자신들이 있던 통로 코앞으로 솟아난 녀석이 그 비현실적인 크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면을 후려치고 꿰뚫으며 위아래로 파도마냥 넘나들고 있었다.
지면에 있는 생명체란 생명체들을 모조리 으깨버리며, 혹은 하늘로 높이 튕겨버린 채 한입에 수십 명씩 집어삼키며.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거기다...
"저게 여기 먹이사슬 정점이 아니라고?"
"카트란 말로는 저게 4등쯤이라는데. 그 위로 세 종이 더 있다고."
"... 끔찍하다 진짜."
옆에서 따라오던 아린의 말에 군파츠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듣자 하니 저런 게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아니며, 저런 걸 <집어삼키고> 사는 이종이 자그마치 세 종류나 더 있단다.
저거 한 마리만 있어도 당장 모두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전혀 희망적이지 않은 정보.
철그럭.
하지만 이내 군파츠는 정면의 숲을 똑바로 바라보며 장갑의 주먹을 매만졌다.
어떻게든 될 것이고 어떻게든 되어야 한다.
녀석도 그게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단은 먼저 가서 녀석이 말한 장소에 자리 잡아두는 게 우선이었다.
물론 이해 안 가는 건 여전히 있지만.
"그나저나 이거 너무 넓어. 거기에 곡률도 이상한데. 직경이 4km라지 않았어?"
군파츠가 양쪽으로 슬쩍 휘며 광활하게 펼쳐진 수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직경 4km, 반경 2km.
여기가 6층쯤 된다고 했으니 절반이라치면 반경 1km, 직경 2km쯤 되는 위치일 것이며.
아주 간단한 계산식에 의하면 이 원통의 둘레는 고작 6.28km 정도여야 정상이다.
한데 좌우로 지나치게 넓다.
길쭉하게 뻗은 세로 길이야 그렇다 쳐도 이 땅덩어리와 지표면의 완만한 곡률은 이해가 안 갈 지경.
"..."
그런 군파츠의 질문에 아린이 위아래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그건 군파츠만 느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사실 무기 특성상 거리와 각도에 훨씬 예민한 자신은 진작부터 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군파츠보다 훨씬 정확하게.
너무나 이상한 주변의 곡률, 이를 기반으로 한 현재 층의 추정 직경은... 예상치의 거의 10배 이상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직경 4km짜리 원통 안에 직경이 20km도 넘을 거 같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게?
'너무 이상해. 너무.'
하나부터 열까지 정상인 게 없다.
콰아아아앙...
저 뒤쪽,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지렁이 방향을 보며 아린이 조용히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이 쓰라챠같은 새끼가!"
"그건 어느 시대 어느 말이라니?"
천지가 뒤집어지는 상황에서도, 에너지소드와 단검 등을 들고 달려드는 여인과 검기 사용자들을 피해 강태석이 뒤로 몸을 날리며 칼을 휘둘렀다.
이어 순식간에 일어나는 번개 폭풍과 유리 구름.
파지지지지직!
쩌저저적!
이 @[email protected]$(&!*!!
찢어 죽인다!
"상투적인 녀석들."
유리 구름과 번개가 거슬린다는 듯 사방팔방으로 푸른 파괴의 빛을 뿜어내며 들이닥치는 녀석들을 보던 강태석이 한층 더 힘을 주어 거리를 벌렸다.
난장판이라지만 죽어 나가는 건 대부분 검기 사용자가 아닌 녀석들.
벽을 넘은 놈들은 때로는 한계까지 갈고 닦은 감각과 육체를 이용해, 때로는 자기 대신 주변의 녀석들을 집어던지며 재주 좋게 이 난장판 속에서 살아남고 있었다.
게 중 한층 더 여유가 있는 놈들은 이렇게 자신을 공격하고 있고!
훙훙훙훙!
칠채영창의 구름 너머, 커다랗고 맹렬한 파공음이 대기를 쩍 가르며 질주하는 게 들려온다.
이에 물러서던 강태석이 전마강갑을 휘두른 양손을 교차 시켜 막아낸 순간 커다란 금속판이 시퍼런 기운을 두른 채 그대로 강태석을 향해 내리꽂혔다.
이어지는 굉음.
콰아아아아아앙!
'쓰읍.'
전차의 외장으로 쓰일 정도의 무게와 강도를 지닌 철 덩어리가 검기마저 두른 채 팔을 후려쳤다.
아무리 전마강갑이라고 해도 팔이 부러질 정도의 통증.
하지만 그 덕에 한층 더 빠르게 전장에서 후퇴한 강태석을 향해 철판을 집어 던진 범인의 우렁찬 괴성이 들려왔다.
"절대 도망 못 간다! 산 채로 잡아주마! 그리고 도망간 녀석들을 따라잡아서 같이 찢어 죽일 테다!"
그런 여인의 말에.
후우우웅!
파스스스슥...
밀려나며 자세를 잡은 강태석이 어이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누가 들으면 내가 가해자인 줄 알겠다. 강도질하다 잡혔다가, 또 강도질하러 온 놈들이 뭐 이리 당당해?"
자세를 다잡고 바로 선 강태석은 번개와 안개를 헤치고 시린 눈으로 모여드는 녀석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숫자가 총 서른일곱.
너머는 여전히 난장판이긴 해도 녀석들은 그런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다.
거기에 그 너머, 다시 한번 진동을 토해내며 열리기 시작하는 통로.
키이이이잉...
“썅! 뭐야?”
“다들 흩어져! 뛰어!”
검은 통로의 사방으로 열린 입구는 수십 개.
이를 통해 올라온 이들이 마치 개미 새끼마냥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여전히 커다란 지렁이, <몬트라>는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날뛰고 있지만, 이는 마치 사람이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과 같기에 여전히 살아남아 흩어진 이들의 수는 많았다.
몬트라가 그럭저럭 목적을 달성하고 배부르게 돌아간다면 녀석들은 다시 사납게 뭉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는 여기까지, 이 정도면 됐다.
카득.
콰드드득.
사납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이들을 보던 강태석은 눈을 한번 짧게 감았다 뜬 후.
터어어엉!
후다다다다닥!
발을 크게 굴러 잽싸게 수림 안으로 도망쳤다.
**
"저 새끼 지금 도망간 거야?"
구오오오...
날뛰는 괴수를 배경으로 흙먼지 사이에 멈춰 선 여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찌나 날래게 뛰는지 잠시 멍한 사이 저만치 숲속으로 들어가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
무슨 이 자리에서 괴물을 불러 끝장을 볼 것처럼 싸우더니 갑자기 도망이라니?
그런 여인을 향해 뒤쪽,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고 있던 소녀가 버럭 소리쳤다.
"뭐 어때? 그 녀석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다들 대충 그러모아서 살아남은 놈들 쫓아가자. 아 <죽은> 놈들도."
쪼르륵...
처음에 휘말려 죽은 재수 없는 검기 사용자 둘의 시체, 그 입에 검은 액체를 불어넣어 채워 넣고 있는 소녀를 보며 여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소녀가 손가락 끝에서 새어 나온 검은 액체가 입으로 들어감에 따라 으깨진 허리 절단면이 꾸물거리며 마치 기생충마냥 촉수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어 그렇게 뻗어 나간 촉수가 바닥에 있는 시체 덩어리들을 끼릭 휘감아 끌어당기자 이윽고 잘려 나간 시체 단면들이 촉수에 의해 융합되듯 이어 붙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저벅.
"아하하하 좋아. 드디어 두 개 만들었다. 이제 두발로 안 걸어 다녀도 되네."
우뚝 선 시체 중 하나의 어깨에 무등을 탄 소녀를 보며 애써 기분 나쁜 티를 감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위로 먼저 올라왔던 놈들이 어디 멀리까지 간 건 아닐 거야. 차라리 아래 녀석들이 차례차례 올라온 다음에 전력을 모아서 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여인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이유는 뒤쪽에서 서서히 날뛰는 속도가 줄어든 괴물 때문이었다.
쿠르르릉...
녀석은 짧은 시간 동안의 식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구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속도를 줄여 땅으로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먹을 만큼 먹었다는 듯 말이다.
짧은 시간 피해가 크긴 했지만 대부분 검기를 못 쓰는 놈들이었던 데다 그마저도 일천을 넘지 않았기에 치명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아래에서 꾸역꾸역 계속 올라올 놈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전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방금 자신의 말대로 모아서 쫓아가면 끝날 상황.
그리고 그게 지금 여인이 가장 거슬리는 이유였다.
놈도 그걸 알았을 테니까.
'분명 이걸로 부족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렇게 빨리 도망갔다고?'
손을 쓰려면 더 써야 했고 수가 있다면 뭔가 더 있어야 했다.
어설프게 자극했다가 열 받은 자신들에게 생존자들 전체가 더 고통스럽게 고문당할 게 아니라면.
여인이 새파란 눈동자로 수림 속, 상대가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던 그때.
구르르릉...
키르르르르륵...
높게 자란 거목들 사이에서 심상찮은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땅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거대 지렁이와의 포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낮고 조용했지만, 훨씬 더 가까이서 위협적으로, 그것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이.
순간.
"크흐. 그래. 차라리 아니까 속 편하네. 와라 이 새끼들아."
이윽고.
쿠아아아아아아앙!
몸길이가 20m가 넘는, 늑대와 호랑이를 뒤섞어 놓은 짐승들이 욕지기를 내뱉은 여인을 비롯해 숨을 돌리고 있는 생존자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콰득!
<카르소 거미를 처치하셨습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3(7.67%).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높은 나무의 중간.
위에서부터 스르륵 자신에게 기어 오던 크기 5m짜리 거미의 목을 베어 죽인 강태석이 검은 통로 주변, 한층 더 아수라장이 된 벌판을 바라보았다.
지렁이, 몬트라가 쓸고 지나간 자리를 핥아먹기 위해 수림 사방에서 몰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시체 청소부 녀석들.
마력을 품은 인간은 녀석들에게 각별한 별미이니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을 것이다.
"역시 잘 싸우긴 하네 그래도."
오른손과 왼손을 동그랗게 말아 그 사이로 칠채영창의 유릿가루를 모아 각기 오목렌즈와 볼록렌즈처럼 만든 채 망원경처럼 살피던 강태석이 중얼거렸다.
몰려든 괴물들의 숫자가 만만찮지만 살아남은 녀석들 역시 이대로 죽어줄 순 없다는 듯 각자 분전하며 숲으로, 강으로, 혹은 몬트라가 만들어 놓은 지하 통로로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래에서도 계속해서 올라올 테니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태석은 일단 한숨을 내돌렸다.
어차피 초기의 목적도 몰살이 아니라 저 녀석들을 6층, G구역 곳곳에 흩어 놓는 거였으니.
녀석들은 뭉치면 위협적이지만 아래층에서처럼 수십, 수백 명 단위로 쪼개 놓으면 충분히 방어할 만한 수준이다.
아마 <배식구> 같은, 인간을 토해내는 통로가 다시 작동되기 시작했다는 걸 알면 이 근방은 한동안 괴물들로 계속 득시글거릴 테니 올라오는 족족 흩어질 터.
"다들 한동안은 숲에서 좀 먹고 자라. 얼씬거리지 말고."
콰드드드득!
아아악!
손에서 칠채영창의 렌즈를 거둬들인 강태석이 여전히 비명이 울려 퍼지는 들판에서 고개를 돌린 후 나무를 타고 아린 등이 도착해 있을 약속 지점으로 향했다.
**
서쪽, 2km.
"오고 있겠지?"
"그렇겠죠."
"... 빨리 왔으면 좋겠네. 대체 여기가 어딘지 설명 좀 해달라고."
쿠르르릉...
수림 사이, 깨진 유리창과 얼기설기 자란 덩굴과 잡초.
그사이 폐허가 된, 유원지 같기도 하고 연구시설단지 같기도 한 구조물들을 매만지는 달리안의 곁에서 군파츠가 중얼거린 순간.
터턱.
나무를 타고 온 강태석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려 그들 사이로 착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