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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탁.
떨어져 내린 강태석이 연구단지, 혹은 무너진 관광단지처럼 보이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영화 <쥐라기 공원>의 일부와 같은 광경들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6층, 에코 지대.
그 정체는 실험, 관광, 연구 등 여러 가지를 위해 조성된 다목적 생태계.
어떻게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온실이나 정원, 동물원과 비슷하다.
그 규모가 차원이 다르고 바깥으로부터 빛마저 끌어와 완전히 독립된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게 다르지만.
"여기로 왜 오자고 한 거지? 겉으로 보면 별거 없어 보이는데. 좀 조용해 보이긴 하지만."
부우웅...
허공에 뜬 사옥선 아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숨죽이고 수림 사이의 유리온실들 사이에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카티의 말대로 별건 없어 보였기 때문.
유리온실이나 폐자재 등은 몸을 눕힐 정도는 되어 보였지만, 아까 전의 거대한 지렁이나 수림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생명의 기척들을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이들의 말에 강태석이 웃었다.
이 게임의 신기한 점, 그리고 인간의 강인한 점.
바로 그 어떤 환경에서도 결국 누군가는 반드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톡톡.
"다들 준비해. 슬슬 내려가 보자고. 인사는 해야지?"
강태석이 주변을 보며 땅을 톡톡 두드렸다.
**
G구역, 중앙 연구시설단지.
지하 15층.
쿠르르릉...
퀴퀴한 지하실, 깜박거리는 전등 아래서 팔 하나가 날아간 사내가 후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몬트라 그 녀석이 또 난리네요."
"흙 퍼먹는 거로는 성에 안 차나 보지. 놔둬. 또 몇 번 헤집다가 들어가겠지."
책상에 앉아 온갖 서류들을 수기로 처리하던 외눈박이 여인이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렸다.
현재 모든 것들이 최악의 상태였다.
기계 병기의 궤도 엘리베이터 습격, 이어진 붕괴와 대추락.
중력장을 극도로 가동시켜 떨어지는 순간 모조리 피곤죽이 되는 건 면했지만, 이 에코 지대를 유지하던 엄격한 통제시스템이 단번에 박살 나고 말았다.
덕분에 밥까지 줘가며 키우던 몬트라나 다른 짐승 녀석들에 갇혀,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고 이 기지에 3년째 꼼짝없이 갇혀있는 신세.
혹여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바깥에서 구조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거 나도 한 대 줘봐."
"피던걸요? 이거 새건데."
"좀 줘봐 임마. 한 모금만 피게."
"..."
후우우우우우욱...
"그렇게 들이마시면 죽는 거 아니에요?"
그런 사내의 말을 무시한 채 있는 힘껏 한 모금을 빨아들인 외눈박이 여인이 숨을 후 내뱉은 뒤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렇게까지 오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바깥세상은 망한 거겠지?"
"아니면 오는 길에 구조대가 다 죽은 걸 수도 있지요. 몬트라나 키갈한테 걸려서."
"그것참 희망찬 예측이네."
탁탁.
여인이 손에 떨어진 담뱃재를 털며 인상을 썼다.
차라리 구조대가 오는 도중 다 죽었다고 바라야 할 정도라니.
하긴 그 정도로 3년 전, 붕괴 당시에도 마지막 전황은 좋지 않았다.
그토록 영화로워 보이던 궤도 엘리베이터가 무너졌을 정도니.
덕분에 나름 잘 나가며 이곳의 소장직을 담당하게 되었던 자신도 이 모양 이 꼴 신세.
"... 그냥 저주파 발생 장치 다 꺼버릴까? 이렇게 하루하루 개미처럼 연명하느니?"
"나쁘지 않은 생각 같긴 한데 우르파 같은 놈들한테 걸리면 썩 호상은 아닐 것 같은데요. 차라리 몬트라 녀석한테 한입에 꿀꺽 삼켜지면 몰라도."
"..."
인간을 잡아다가 숙주로 삼고 근 십 년 가까이 살려두며 죽을 때까지 배에서 알을 까게 만드는 곤충형 생물 우르파를 언급하는 사내의 말에 여인이 이곳의 관리 생물들을 쫓아내는 저주파 발생 장치를 끄겠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손에 담배를 다시 바라보던 그때.
"혹시나 하는데 한 모금 더 안 됩니다. 제가 피기에도..."
터엉!
"소장님! 소장님! 나와보십시오!"
"... 아 제기랄."
갑자기 열린 문, 헐레벌떡 뛰어온 생존자의 커다란 외침.
이에 손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담배를 보며 소장과 사내가 동시에 욕설을 내뱉었다.
**
우우우우웅!
강태석과 군파츠, 그 외 수십 명의 무장병들이 지하 15층의 엘리베이터 문밖, 내부시설을 바라보았다.
깜박거리는 전등, 칙칙한 회색빛 통로, 군데군데 갈라진 미로 같은 복도와 공간들.
마치 예전, 멸망한 도시에 갇혀 살던 시절 자신들의 섹터를 보는듯하다.
물론 좀 더 규모가 크고 깔끔해 보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많이 살아남아 있었단 말이야?>
치익.
내려온 자신들의 주변, 경계와 호기심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 바라보는 수백 명의 남녀노소를 보며 바이저를 쓴 군파츠가 혀를 내둘렀다.
잠깐의 경계태세 후에 그러모인 수만 해도 이 정도다.
이 연구시설이 얼마나 클지는 몰라도 아마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생존해있을 거라는 의미.
그런 군파츠의 말에 전령을 보내 놓고 묵묵히 서서 기다리던 강태석이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이 거대한 G구역을 모두 관리하던 곳이니. 어떻게 보면 생산능력은 플랜트 이상이지."
강태석이 시설을 주욱 둘러보았다.
먹을 것, 마실 것, 에너지, 그리고 자원.
이 중앙 연구시설단지는 멀쩡하던 시절 이 커다란 G구역의 모든 것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각종 생명체들을 통제하도록 설계되었다.
몬트라처럼 거대한 녀석들이 먹고 마실 사료는 물론 그런 녀석들을 통제하기 위한, 구역 전체를 덮을 만한 수준의 저주파 발생 장치에 공급될 에너지까지 말이다.
또한 대륙 내부에 생성된 생태계와 자원을 채굴하고 연구할만한 시설들과, 그런 시설의 연구원들이 지상으로 가지 않고 가족들과 머물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게 비상시에도 독자 운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비상시에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1층, 2층, 3층의 물자들까지 공급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그때.
타타타타탁!
“어디야! 저기?”
안쪽 복도 너머에서 달려오는 다급한 뜀박질 소리에 강태석과 모여있던 이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
아까 전의 소장실.
끼이익...
끼익...
강태석.
그리고 소장과 사내.
셋만 앉은 철제 테이블 중심으로 무거운 침묵이 자리 잡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여인, 소장의 실망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가 바깥에서 온 구조대나 연방 소속이나 이런 게 아니라 이거지?"
후우우욱...
탁탁.
손에 들린 담배를 바닥에 털어버린 여인이 손을 스윽 들어 뒤에 사내에게 내밀었다.
한 대 더 달란 의미.
"제 것도 별로 없는데..."
"..."
"..."
스윽.
고운 철제 담뱃갑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담배 하나를 꺼낸 사내가 여인의 손에 이를 올렸다.
찰칵.
후우우욱.
다시 한번 길게 연기를 들이마신 여인이 자세를 바로잡은 채 오른쪽, 멀쩡한 눈으로 강태석을 꿰뚫듯 바라보았다.
"정리해볼게. 세상이 망했고, 너희는 떠돌다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한배를 타자 이거지?"
"그렇지."
이에 여인은 흥미가 떨어진다는 눈으로 다시 한번 숨을 내뱉었다.
"우리가 왜?"
자신들도 눈이 있으니 바깥 돌아가는 상황에 아예 무지한 건 아니다.
가끔씩 저들끼리 우르르 뭉쳐 치고받느라 난리도 일어나고.
이곳에 어떻게든 들어오려는 이들도 있었고.
그들이 몬트라나 다른 괴물들에게 짓밟혀 도망가는 모든 과정을 안쪽의 몇몇 감지 시설과 정찰대를 통해 똑똑히 지켜보았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
무가치.
저들은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은커녕 자신들의 몸보신 하나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반면 자신들은 조금 답답하긴 해도 안전과 생존은 확보한 상태, 나아가 지상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은 위협적인 동시에 자신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생태의 방벽이다.
한데 기어들어 와서 힘을 합치자고?
"지금 내 눈앞에는 총 들고 군홧발로 현관까지 걸어 들어와서 앞으로 거실에서 살겠다고 하는 놈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내가 이 스위치 끄기 전에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해주실래?"
소장이 자신의 오른 검지에 자리 잡은, 작은 반지 형태의 스위치를 살살 엄지로 매만지며 물었다.
저주파 발생 장치의 온•오프 장치.
이게 꺼지는 순간, 안전구역은 사라지고 주변을 맴돌던 온갖 짐승들이 이곳을 덮칠 것이다.
몬트라부터 시작하여 온갖 놈들이, 위에 우르르 몰려있는 무장 난민 놈들부터 시작해서 아래의 생존자들까지 가리지 않고 골고루 찢어발기며.
물론 자신들도 다 죽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수틀리면 무뢰배로 돌변한 이놈들에게 보여줄 의지.
그런 소장의 말에.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딱히 먹고 잘 곳 없어서 온건 아냐. 내가 원하는 건 아래 <자원부>지."
"엉? 그걸 어디에 쓰게?"
자원부.
현재 이 시설에서 가장 쓸모없는 시설.
강태석의 말에 소장이 한눈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
**
지하, 22층.
키이이이이잉...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쿠릉 소리와 함께 어두운 지하에 멈춰 섰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린 엘리베이터 문밖은 아까 전, 15층보다 훨씬 더 어두운 상황.
어찌나 칠흑 같은지 아무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들어가는 전력조차 아까워 모든 에너지 공급을 차단한 상태였으니까.
그렇게 내려온 강태석과 군파츠, 그리고 소장 여인과 사내의 곁에는 그들 소속의 무장병 몇몇에 새로운 얼굴이 추가된 상황이었다.
테크니컬 사내, 온과 달리안.
그렇게 대략 서른 명과 함께 도착한 강태석이 앞장서 내리자 뒤에 있던 여인이 고개를 까딱했고, 이어 사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옆의 벽면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터엉...
터엉...
텅텅텅텅.
몇 개의 조명이 켜지자 눈앞의 광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법 넓은, 높이는 40m 정도에 주변으로 운동장 크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지하 공동.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수십 가지 제법 커다란 굴착 장비들과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만든 것 같은 연구시설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하 공동 사방으로 난, 온통 커다란 강철 납땜으로 덕지덕지 막힌 크기 10m 정도의 동굴 입구들.
이를 조망하듯 둘러보는 강태석의 옆으로 소장이 다가와 말했다.
"멀쩡하던 시절에야 열심히 돌아가던 곳이었지. 귀한 자원들이 엄청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쓸데없지?"
여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연방 소속에서 열심히 일했다고는 하지만 이 6층은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가장 이해 안 갔던 곳이 이 자원부.
이 생태지대의 땅, 바다, 하늘.
모두 연방이 직접 묻고 채워 넣고 만들어낸 것이다.
한데 왜 자신이 묻은 것들을 캐내서 반출하라고 했을까?
그럴 거였으면 차라리 묻지 말고 바로 썼으면 그만 일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조차 필요 없다.
이곳 연구시설에는 광물자원을 활용할만한 시설도, 필요한 시설도 없었다.
쓸데없이 돌아가던 자동화 시설들은 멸망 후 에너지만 잡아먹었고, 열심히 광물을 캐 나르던 통로들은 통제를 벗어난 괴물들의 출입구가 되었으니까.
덕분에 이곳 22층은 완전 폐쇄, 자동화 시설도 끄고 통로는 틀어막았으며 인력은 빼냈다.
그나마 남은 건 그때 당시 캐냈던, 그냥 여기 먼지 쌓이게 놔둬버린 처치 곤란의 광물 자원들뿐.
"혹시 망치로 두들겨서 칼이라도 만들려고? 그런 거면 내가 그냥 통째로 다 넘겨주지. 단 직접 들고 올라가야겠지만."
여인의 진지한 말투에 사내가 저도 모르게 웃을뻔한 그때.
스윽.
"그럴 필욘 없지."
"?"
강태석의 품에서 나온 작은 수정 모양에 주변 이들의 시선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