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30화 (1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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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잉...

강태석이 수정을 꺼내든 순간, 그 위로 작은 설명 창이 떠올랐다.

띠링!

<파일런>

> 초능을 통해 운영되던 고대 문명??? 의 파편입니다.

> 현재 건설/소환 가능한 물건 : 0

> 현재 당신은 이 문명 파편의 주인입니다. 특별한 존재들과의 계약을 통해 각종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 몇몇 존재들이 수정을 통해 공허의 너머에서 관심을 보입니다. 이들과의 계약을 맺을 경우 다양한 특전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현재 살피고 있는 이들의 수... 17.

강태석이 수정에 쓰인 설명을 보며 혀를 찼다.

일단은 자신이 이 수정을 통해 소환할 수 있는 병종이나 건물의 숫자가 0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 싶다면 특별한 존재를 통한 계약을 맺으라는 것.

특별한 존재라 함은 얼마 전, 수정을 집어삼키고 있던 공허 너머의 존재와 같은 녀석들이다.

현세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

이 중에는 선신의 계열도 있고 중립, 이종, 혹은 초월적 존재 같은 녀석들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 수정을 통해 녀석들과의 계약을 맺으면 그 즉시 전직과 각종 보상 등의 혜택이 생겨나고 녀석들이 부리는 각양각색의 고유물과 군대, 권속들을 이곳에 소환해낼 수 있다.

하지만 강태석은 애초에 녀석들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고삐를 쥐고 조종할 수 없는 말은 말로서의 가치가 없다.

선신이라 함도 마찬가지.

잔재주로 한번 쫓아냈을 뿐, 녀석들은 아직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녀석들이 아니다.

선신이면 넘어와 이곳을 온통 맹종으로 물들일 것이고, 중립 계열이라면 이 세계를 모조리 자신의 신전으로 뒤덮길 바랄 것이다.

악신이라 하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영혼과 육체를 뽑아 수확해 가려 할 것이다.

그 때문에 거래는 거절.

그리고 굳이 녀석들과의 계약으로만 무언가를 소환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은 이 수정을 다룰 재주가 없을 뿐, 다른 이들도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키이이이잉...

강태석이 품에서 꺼낸 수정을 꺼내어 내려놓자 수정이 점점 더 커지며 허공으로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5m, 10m, 15m. 어느새 30m 가까이 자라 천장과 바닥 사이를 메울 정도로 원래 크기를 되찾은 수정이 허공에서 빙글 한 바퀴 회전한 순간.

촤아아아아아악!

파지지직!

허공에서 뿜어져 나간, 예전의 보랏빛 권역과는 다른 청명한 영역이 퍼져나가며 지하를 포함한 연구단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어 사방, 지하의 전선에서 튀기 시작하는 스파크들.

파지지지직!

파직!

어어?

꺼져있던 전구들이 깜박거리고 전선에서 스파크들이 튀자 주변에서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는 파일런이 제대로 가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의미.

띠링!

<현재 파일런이 에너지의 공급원을 찾고 있습니다.>

<발견... 현재 가동률 0.014%.>

푸른 영역을 뻗어 그 속으로 지나가는 전선과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파일런을 보며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가동률이 형편없지만, 이 정도만 해도 아직은 충분하다.

이어 떠오르는 문구.

<기동 시작... 범위 내 아카식 레코드의 한정 접속자가 셋 감지됩니다.>

<현재 연구 가능한 병종/건물/기술이 하나씩 존재합니다. 위의 이들을 통해 해금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좋아."

"뭐가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강태석의 말에 옆, 홀린 듯 파일런을 쳐다보던 달리안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

파일런, 마법과도 같은 이적을 실현시켜주는 물건.

하지만 마냥 마법은 아니며 그 이면에는 철저한 등가교환이 있다.

원하는 게 있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띠링!

<건축물 : 프라다비아>

> 연구 시간 : 3,600,000초(100시간).

> 소환 시간 : 108,000,000초(3,000시간).

> 높이 305m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한 개 소환합니다.

> 이 오벨리스크 중심, 권역 내의 존재들을 초능링크로 연결합니다. 뇌내 기준점을 변화시키는 이 링크는 각 개인의 재능을 차츰차츰 끌어올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내부 구성원들이 누구나 레벨 10의 벽을 돌파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레벨 30-60-100의 벽 돌파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와 증축이 필요합니다.)

> 현재 자원이 다소 부족합니다. 추가적인 자원 확보 가능지역을 탐색합니다.

> 프라다비아의 소환 후 추가적인 건축물들의 연구가 가능해집니다.

<병종 : 파르스>

> 연구 시간 : 900,000초(25시간).

> 소환 시간 : 3,600초(1시간).

> 레벨 15, 체고 5.5m의 근접형 이족보행 기갑 전투병기를 소환합니다.

> 한 명의 탑승자를 탑승시킴으로서 외부의 해킹 및 간섭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해당 파일럿의 병기 운용 매뉴얼은 내부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 문명,??? 의 대우주 방위 병기. 행성 지표면과 함선 내부를 방어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자원만 충분하다면 동시에 소환이 가능합니다.

<기술 : 소입자 코팅>

> 연구 시간 : 3,6000,000초(100시간).

> 소환 시간 : 0(연구 즉시 적용).

> 현재 레벨 17 이하, 파일런의 권역 내 모든 존재들에게 소입자 코팅을 실시합니다.

> 강제로 마력과 입자를 충돌 시켜 변성 반응을 일으키는 소입자들이 권역 내 모든 금속, 병기, 존재의 피부와 전신에 깃듭니다.

> 구성 성분을 문명,??? 의 것들로 차츰차츰 바꾸어갑니다. ??? 보다 고위 문명에게는 독과도 같이 작용하겠지만, ??? 보다 하위 문명에게는 축복과 같은 진화와 번성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 1차 기대효과 : 촉진. 수복될 수 없는 신체의 훼손이나 파손된 병기 및 구조물들이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회복되며 육체 조직 및 기계 파츠들이 더 나은 컨디션을 유지합니다.

"아아... "

"으윽... 아으으윽..."

"후욱... 미쳤네 이거 진짜."

강태석의 앞, 파일런에 손을 대고 있던 달리안과 온, 그리고 소장 여인이 각기 다른 소리를 내뱉었다.

달리안은 황홀하다는 듯한 음성을.

온은 고통스럽다는 신음을.

소장은 믿기 힘들다는듯한 감탄사와 욕설을.

그도 그럴 것이 셋 모두 같은 것을 보며 다른 것을 느끼고 있을 테니.

달리안은 파일런을 통해 온몸에 휘몰아치는 신성한 기운과 저 너머의 광대함을 보며 황홀함에 젖고 있을 것이다.

온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불가해의 지식을 소화하느라 고통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것이며, 소장 여인은 강태석의 눈앞에 보이는 상태 창과 같은 형태의 정보를 받아들이며 지금 여러 가지를 계산해내고 있을 것이다.

각양각색, 같은 것을 받아들이며 다른 것을 느끼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

지식의 전수자인 테크니컬들은 자격자로서 이 수정의 가능성을 일깨워갈 수 있으며, 그들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일단 그만."

터억.

"후욱... 후우욱..."

"하아."

"..."

강태석이 어깨를 짚어 수정에 손을 대고 있던 셋을 일단 떼어내자 셋 모두가 각기 다른 소리를 토해내며 수정을 바라보았다.

아쉬움, 탄성, 호기심, 두려움.

그런 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시금 어깨를 톡톡 친 강태석이 고개를 돌린 셋을 보며 말했다.

"셋 중 뭘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음..."

강태석의 말에 셋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물론 세 연구 모두 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나하나가 그들 세력을 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려 줄 테니까.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시간과 자원.

그 두 가지는 항상 무한하지 않다.

아니, 현재 상황에서는 되려 한없이 부족하다.

시간이건, 자원이건.

일단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

잠시 후 셋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어놓았다.

"프라다비아요."

"파르스가 급 할 것 같습니다만."

"흠... 마지막. 소입자."

달리안, 온, 소장.

공교롭게도 고민 끝에 동시에 내뱉은 셋의 의견이 모두 달랐다.

이에 서로가 눈을 마주친 이들이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시작은 온부터.

"당장 병력이 시급합니다. 바깥의 11 권세도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데다 이 주변엔 범죄자들 녀석도 돌아다니지요. 거기에 G구역 괴물 녀석들도 언젠가는 밀어내야 할 테고. 기갑 병력의 보충이 가장 급해요."

"하지만 프라다비아만 무사히 건설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 연구 시간에 소환 시간도 오래 걸리니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게 낫고. 그리고 대부분이 벽에 막혀있는 상황이니 일단 탑만 건설되면 검기 사용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고... 각자의 생존 확률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거예요."

온은 당장 군대의 건설을, 달리안은 조금의 시간을 들여 생존자 전체 전력의 강화를 원했다.

각자가 일단 하나를 진행하면 다른 하나는 당분간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문제.

의외로 조용한 건 소입자 코팅을 주장한 소장이었다.

"거기 그쪽은 할 말 없습니까? 소입자 코팅도 나름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온이 조용히 선 소장을 보며 물었다.

소입자 코팅은 자신의 생각엔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리긴 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연구다.

결국 프라다비아니 파르스니 하는 건축물과 병기는 ???문명의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것.

어떤 문명인지야 모르지만, ???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저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을 테니 그런 이들과 비슷한 존재로 변모해가는 건 어찌 보면 기본이자 핵심인 것이다.

인간의 순수성이니 뭐니 하는 것 따위는 집어치우고 말이다.

원래도 그런 것에 큰 관심 없었을뿐더러 온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 문명, ???은 명백히 자신들 인류보다 상위의 존재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한 것도 할 수 있는 판국에 몸 좀 변해가는 것 따위야!

심지어 더 나은 걸로 바꿔준다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온의 말에.

쯧.

혀를 짧게 찬 소장 여인이 온이 아닌, 강태석을 향해 대답했다.

"일단 말은 했는데 뭘 이런 걸 물어보고 있어. 어차피 이거 결정하는 거 너잖아? 주인이 너구만. 클릭도 안 돼."

띡띡.

허공을 집어보는 소장의 행동에, 달리안과 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눌러봤어요? 같이 결정도 안 하고 혼자?"

"하하. 여러 가지 하네요, 진짜."

"큼흠. 그냥 궁금해서 눌러본 거지. 그리고 뭔 여러 가지야. 가지가지라고 해도 돼. 망할 자식아."

투닥거리는 셋을 보던 강태석이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대로 연구는 셋이 필요하지만, 결국 뭘 진행할지는 강태석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수정의 현 주인이 자신이니까.

이윽고.

"내 의견인가 보군요."

온의 대답에 그를 바라보던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

쿠르르릉...

어둠 속, 강태석이 수정 앞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는 셋을 바라보았다.

파르스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말 그대로 당장의 대처 역량을 키워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연구는 중요도로 치면 파르스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지만, 자원도 모자라고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연구뿐만 아니라 변화가 차근차근 진행된다는 의미.

반면 파르스는 연구 시간도 짧고, 일단 연구만 끝내 놓으면 자원이 되는대로 쭉쭉 찍어낼 수 있다.

소환하는 데 1시간이 걸리지만, 차례대로 소환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대를 소환할 수도 있으니까.

범죄자도, 바다 너머 다른 군세도, 이 대륙의 괴물들도.

시간만 벌어 놓았을 뿐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 녀석들에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기갑 병력이 필수다.

키이이이이잉...

원을 그리며 선 셋의 가운데, 허공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수정의 푸른빛 표면을 보던 강태석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저 셋은 차원 너머 공간에 고정되어 무적이 되니 딱히 걱정할 필요 없다.

다른 무장병들도 이곳에 서있으니, 그동안 자신은 할 일을 하면 그만.

일단은...

"좀 쉬자."

강태석이 저릿저릿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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