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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3 자원기지라는 말에 강태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보아 하니까 여기 또 알아서 돌아가는 무인 자원 채취기지가 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어디에 자원줄 없나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다니.
아니나 다를까.
띠링!
<적당한 자원을 추가적으로 꾸준히 확보 가능한 자원기지를 확보했습니다.>
<이를 가동시켜 파일런의 권역 안으로 가져다 놓을 시, 프라다비아의 건축에 충분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에 강태석이 어두컴컴한 복도 안에서 휘파람을 불 뻔했다.
파일런의 좋은 점이 이거다.
그래도 나름 적확한 재료를 필요로 하는 팩토리 등에 비해 파일런이나 하이브는 자원의 종류와 상관없이 볼륨만 확보되면 이를 분해시켜 재료로 삼아 작동시킬 수 있다.
비록 귀한 특수자원들 같은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이 절벽 아래 무인기지를 제대로 손에 넣는다면 큰 도움이 될 터.
"한번 살펴나 볼까?"
강태석이 어둠 속 통로를 바라보았다.
본의 아니게 이곳으로 오긴 했지만 이건 제법 나쁘지 않은 기회다.
살펴보다 영 아니다 싶고 위험하면 그냥 위로 빠져나가 본진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면 그만.
'저 녀석들은... 알아서 따라오겠지. 알아서 잘하거나.'
뒤쪽으로 슬그머니, 하지만 착실하게 주변을 꼼꼼히 살피며 따라붙는 열셋을 보던 강태석이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내디딘 순간.
털그럭.
발치에 밟히는 무언가에 아래를 내려다본 강태석이 인상을 와락 썼다.
자신이 밟은 건 지뢰.
그것도 인간용이 아닌, 대전차 대중장갑병기용의.
"하 시작부터..."
그 말이 끝나기도 전.
키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화염이 발치부터 터져 나와 강태석과 통로의 어둠을 모조리 불살라 삼켰다.
**
통로, 깊은 곳.
자원 시설 심층부.
쿠르르르릉...!
"요즘 지진이 자주 나네?"
"어... 이거 입구 쪽에서 지뢰 터진 거 아냐? 그냥 지진 아닌 거 같은데."
서재와 고풍스런 가구들로 꾸며진 방안, 테이블을 중심으로 체스를 두던 사내의 한마디에 건너편에 앉아 자신의 말을 들어 올리던 여인이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여간 뭐가 밟았건 간에 이 깊은 곳까지는 못 들어올 거 아냐? 설마 누가 나가다 밟은 것도 아닐 거고. 게임에나 집중해."
"..."
타악.
자신의 폰을 이동시킨 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체스판만 바라보며 집중하는 여인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내가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아이오스. 우리 이제는 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여기 갇힌 지도 3년이 지났어. 천 명 가까운 사람들도 그렇고. 아직 늦지 않았으니 천천히 방도를..."
그런 사내의 말에.
따악.
"키르프. 넌 걱정이 너무 많아. 그리고 그게 현실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당장 G구역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
여인, 아이오스의 말에 키르프가 침묵을 지켰다.
제3 자원 채취시설.
본디 자신들을 비롯한 일천의 인원들은 이곳에 살아가던 이들도, 일하던 이들도 아니었다.
애초에 반자동으로 자원을 채취하고 운반하는, 너무나 단순해 인공지능조차 설치되지 않은 시설에 무슨 사람이 그리 많이 필요하겠는가?
자신들은 저 <7층>에 살던, 연방에서의 특별 이주 권한을 통해 부푼 꿈을 안고 제3 거주층으로 입주해 온 이들이다.
세계가 멸망해 가는 와중에도 설마 궤도 엘리베이터는 안전하겠지 하며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보내다가 끝나지 않는 전쟁과 연이은 패전 소식에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전, 거주 시민들을 위한 G구역의 단체 관광 코스가 마련되었다고 하여 큰 맘먹고 2,000인승 거대 수송선을 탄 채 이곳으로 관광차 방문했던 것이었다.
설마 자신들이 내려온 그 순간, 그렇게 타이밍 좋게 궤도 엘리베이터가 무너지고, 이후 G구역의 통제 시설들이 모조리 박살 나 날뛰기 시작한 짐승들을 피해 이런 지하로 허겁지겁 들어오게 될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다행히 지하 대피소를 겸하게 설계되어서 그런지 내부에는 전력과 영양액, 식수가 공급되었고 그 덕에 당장 연명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렇게 한숨 돌리던 사이 이 지하 시설의 외곽 구역 전체가 <볼크스>라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에게 장악당하고 말았다.
덕분에 당장 G구역은커녕, 이곳 제3 시설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말이다.
쿠궁...
쿠구구궁...
간헐적으로 그들이 있는 내부구역을 통해 지뢰가 펑펑 터지는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참지 못하고 빠져나가려던 누군가가, 혹은 외곽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볼크스가 방어 목적으로 설치된 지뢰들을 밟아대고 있다는 의미.
전자는 이제 거의 없어진 지 오래이므로 아마 후자일 것이다.
설마 외부인 일리는 없으니.
쿠르르릉...
"맘 편하게 가지라고. 그래도 수송선에서 책 많이 가져온 덕에 읽을 건 많잖아? 이곳에서의 우리 지위도 썩 나쁘지 않고 말이야."
"하아."
안심시키는 듯한 아이오스의 말에 키르프가 숨을 후 내쉬었다.
그래, 결국 아이오스의 의견이 맞다.
자신들은 선택권이 없는 처지.
잠시 후.
따악.
"... 이런."
키르프가 옮긴 말에, 패색이 짙어진 아이오스가 헛바람을 토했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환장하겠네! 진짜.”
후욱!
터져 나온 폭염과 먼지구름을 훅 통과해 짓쳐 나온 강태석이 전신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열기에 인상을 썼다.
아주 그냥 사방팔방, 가는 갈림길들마다 지뢰들이 박혀있다.
검기 사용자의 기척으로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의, 고도의 은폐장이 내장된 지뢰들이 말이다.
이런 지뢰를 이 정도로 깔아댈 수 있는 물건은 하나뿐이다.
<랜드마이너>.
야전 대중전차용 경장갑 이동식 병기.
자원만 공급된다면 내장된 초소형 한정 해금 생산시설에서 끊임없이 지뢰를 만들어내고 돌아다니며 곳곳에 이를 매설할 수 있는.
다행히 핵심 재료들이 모자라 그런지 파괴력이 썩 대단하진 않았지만 한 번 밟아댈 때마다 마력을 훅훅 깎아 대기엔 충분했다.
가볍게 산책 겸 살펴볼까 했던 시설에 이딴 것들이 잔뜩 깔려있다니!
이래서야 단순히 위로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거슬리는 상황이다.
거기에 사실 더 큰 문제는 다른 것.
꾸르르르르륵...
꾸륵...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폭음들과 함께 어두컴컴한 갈림길과 통로들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꾸륵거리는 소리.
그 특유의 비음을 들은 강태석은 상대의 정체까지 추측해낼 수 있었다.
볼크스.
광물을 먹진 않지만, 광물을 채취하는 시설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열기와 소음, 그리고 공간 자체의 아늑함을 좋아하여 종종 지반을 뚫고 침투하여 자리 잡곤 하는 녀석들.
식육의 성향이 강한 놈들은 아니지만, 특유의 영역을 보호하고자 하는 성향이 굉장히 강하기에 일단 녀석들이 파고들어 둥지 취급하기 시작했다면, 안쪽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는다고 보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강태석을 향해 성큼 다가오기 시작하는 비음들.
꾸르르르륵...!
꾸르륵!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마치 사람이 뛰는 것처럼 무언가가 빠르게 달려오는 게 먼지구름 자욱한 통로 너머로 느껴진다.
이어 훅 뛰쳐나오는 검게 쪼그라든 피부의 시체.
아니, 시체처럼 생긴 괴생명체!
콰드드드드드드득!
"... 죽었으면 그냥 관짝에 들어가 있을 것이지 진짜. 그나저나 이놈들은 또 어디로 사라졌데! 인솔자 안 따라오고!"
볼크스.
인간의 시체가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감염되어 졸여지고 강화되어 태어난 괴생명체.
타타타탁!
콰드드드득!
타타탁!
콰득!
사방에서 달려들어 그 크기 때문에 휘두르기도 힘든 NO. 111을 밀어붙이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막아서던 강태석이 어느새 귀신같이 사라진 꼬맹이들을 둘러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자원시설, 통로.
"이쪽으로 가면 될 거 같아."
"잘했어."
키이이잉...
반투명해진 눈동자로 통로 사방을 살피며 안내하던, 열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에게 반말을 한 열 살 외형의 소녀가 앞장서 달리며 야무지게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려 보이는 외형에 어울리는 고사리 같은 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후우우우우웅!
꾸르르륵...!
앞장선 소녀가 두 팔과 두 손을 기이하게 휘둘러 가로막으려는 검은 피부 시체들의 머리통과 배를 후려친 순간.
퍼퍼퍼퍼펑!
파아앙!
마치 북이 뜯겨 나가듯 볼크스의 배와 머리가 안쪽으로부터 부풀어 그대로 뻥 터져나가며 그대로 털썩 땅에 주저앉았다.
이어 지나치는 소녀와 뒤따르던 열두 남녀.
타타타탁...
"그래. 분명 이렇게 작동해야 하는데 말이야."
내경이 안쪽으로부터 터져 나와 목표를 박살 내는, 익숙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확인한 소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유는 아까 전, 뒤에 남겨놓고 온 사내 때문.
수림에서 싸울 때 처음에는 사로잡으려는 목적이었지만 뒤이어 수세에 몰렸기에 어쩔 수 없이 발경까지 사용해가며 몰아붙여야 했다.
하지만 모조리 적중했음에도 상대의 육체는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술뿐만 아니라 뒤쪽 동료들의 기술들까지 모두 말이다.
"..."
그때의 당혹스럽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달리던 소녀를 향해 뒤쪽, 청년의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대로 그 사람 버려두고 가도 될까? 아무리 수상쩍어도..."
타타탁!
예의 그 반투명해진 눈동자로 지뢰를 슬쩍 피해낸 청년과, 그런 청년의 발자취를 따라 타타탁 지뢰들을 피해내며 쫓아오는 이들을 흘끔 바라본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을 맞춰 둬야 해. 우리 임무는 연구시설을 지키는 거니까."
숲에서 마주친 녀석들이 말이 아니었더라도 녀석들을 본 순간 소녀는 이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균형이 형편없이 무너진다고.
평상시 그런 것에 훨씬 더 민감했기에 보는 순간 알 수 있었을지도.
상대가 공평하고 싶어도 데리고 온 입이 많다면 마냥 그렇게만 할 수 없다.
보통 힘에서 밀리면 당연히 아끼는 이들보다는 낯선 이들이 더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일을 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줄여둘 수 있을 때 줄여둔다.
이렇게 명분과 득실까지 깔끔하다면 더더욱 망설일 것 없이.
<녀석이 죽은 건 괴물 때문.>
<미끼로 쓰면 우리 피해도 줄고.>
<녀석만 없다면 이 자원시설을 자신들만 독점해 사용할 수 있다.>
이게 아까 전 자신이 내린 결론이었다.
잠시 후.
"빨리 살펴.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일단 벗어나야 하니까."
쿠구궁...
쿠궁...
꾸르르르륵!
저 먼 곳의 갈림길, 자신들이 지나쳐 온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과 충돌의 현장으로 몰려드는 검은 시체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소녀의 명령에 청년이 굳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쿠궁...
쿠구구궁...
"... ...."
7층 출신, 랜드마이너 조종사인 거프는 눈앞의 광경을 보며 눈을 꿈뻑였다.
웬 얼빠진 볼크스 놈이 지뢰를 밟았나 하여 신경질적으로 빈자리를 메꾸려고 랜드마이너를 몰고 왔고.
그 자리에서 웬 외부인 하나가 미친 듯이 볼크스들에게 덮쳐지는 것을 보곤 웬 구경거리인가 싶어 150m 정도 떨어진,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거리의 통로에 길이 3m 반부유 바이크 형태의 랜드마이너를 댄 체 질겅질겅 오징어를 씹으며 턱을 기대고 관람객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콰드드드드득...
후우.
"어어...?"
키기기기긱!
저 멀리.
달려들던 수십 마리 볼크스를 모조리 맨손으로 찢어발겨 버리고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하는 상대를 본 거프가 당황하며 다급하게 랜드마이너의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