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36화 (13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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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기기기긱!

"이 고물 덩어리가 진짜... 됐다!"

콰르르르릉!

구식 반부유 바이크의 우렁찬 시동음에 환호성을 내지른 거프가 그대로 가속을 가하며 뒤쪽의 커다란 지뢰 생산 장치에서 투투투툭 지뢰 네 개를 모조리 떨궜다.

이 부유바이크는 지뢰를 안 밟지만, 뒤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놈은 반드시 밟을 것이다.

다만 지금 왜 자신이 도망가려고 하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갔지만 말이다.

자신이 바라보았던 흉험한 광경 때문에?

아니면 거침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위협적 발걸음 때문에?

하지만 생판 일면식도 없는 상대로부터 부리나케 도망가려는 이유로는 조금 부족하다.

그렇지만 생각은 거기까지.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냐?'

부아아아앙!

가속이 붙은 랜드마이너를 붙잡으며 거프가 고개를 숙이려고 했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자신이 본능이 지금 도망가라고 했다는 것.

하지만 그런 거프의 탈출이 성공하기도 전.

쿠우우웅!

콰드드드드드드득!

무언가에 강제로 잡아 뜯겨지듯 붙잡혀 그대로 멈춰선 바이크.

이어 뒤쪽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

"너구나. 지뢰 박고 다닌 놈이."

"아...."

그제서야 거프가 깨달았다.

왜 자신이 도망가야 하는지.

자신이 깔고 다닌 지뢰를 밟아 저 지경에 된 녀석이 자신을 이쁘게 볼 리가!

눈을 질끈 감은 거프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푹 숙인 순간.

"길 안내 좀 부탁하자."

"...????"

터엉!

일순간 바이크 뒷부분이 내려앉을 정도로 묵직한, 거의 쇳덩이에 가까운 톱니칼을 들고 그대로 랜드마이너 뒤에 올라탄 상대의 말에 거프가 슬쩍 고개를 든 채 앞을 보며 눈을 꿈뻑꿈뻑거렸다.

**

쿠르르르릉!

랜드마이너 뒤에 올라탄 채 스쳐 지나가는 통로 벽들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체크했다.

잽싸게 도망친 꼬맹이 녀석들은 일단 잊었다.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건 하나.

볼크스.

"상대할만하다 이거지."

"..."

부우우웅!

거친 진동음을 내며 랜드마이너를 모는, 자신을 거프라고 소개한 이의 침묵 속에서 강태석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점차 육체가 예전 폼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몸이 가볍고 생각하는 대로 주먹과 칼이 휘둘러진다.

잠깐의 충돌 속, 정확히 57마리의 볼크스를 찢어발긴 끝에 강태석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정도면 오늘 이 시설 안에 있는 볼크스 정도는 다 찢어발길 수 있겠다고.

애초에 볼크스가 위험한 건 두 가지.

첫 번째, 상처의 감염으로 인한 육체의 비가역적 변이.

두 번째, 사망자에 대한 완전감염을 통한 동료의 재생성.

즉 이놈들한테 상처 입으면, 녀석들의 몸을 장독마냥 졸여버린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감염되어 그 부위가 통째로 썩어 문드러진다.

만약 죽게 되기라도 하면 육체의 주도권이 온전히 녀석에게 넘어가 시체가 볼크스로 다시 태어난다.

다수가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차례대로 녀석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이내 역전되니 아무리 생존자가 많아도 위험한 것이다.

애초에 이 녀석들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장갑병기로 밀어버리는 것이지만 선호하는 거주지가 이런 깊숙한, 파괴되면 곤란한 지하 시설들이니 이또 한 곤란하다.

하지만 싸워보니 알 수 있었다.

이 녀석들 정도로는 전마강갑의 내구도를 뚫지 못한다는 걸.

전마강갑의 어둠을 피워 올리는 마력이 모두 소모된다면 모르겠지만 어둠샘이 받쳐 주는 한 녀석들이 장갑을 뚫는 속도보다 자신이 녀석들을 모두 찢어발기는 시간이 훨씬 빠를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시간 끌 이유가 없다.

<다 털어버리고 경험치도 쌓으며 겸사겸사 자원시설도 확보한다.>

듣자 하니 생존자가 일천 가까이 있다는데, 설마 이런 자신의 행동을 싫어하기야 하겠는가?

자신이 이에 성공하면 그들 또한 자유의 몸이 될 텐데.

잠시 후.

"자원시설로 바로 가. 근처에 도착하면 떨궈주고 도망치고."

톡.

톡톡톡.

랜드마이너 뒷부분, 지뢰 생산창을 열어 쌓인 지뢰 세 개를 톡톡 털어내 허리춤에 챙긴 강태석이 아까부터 입꾹 다물고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거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긴 하다.

"그런데 지뢰는 왜 깐 거야? 필요도 없는 거."

볼크스의 특징.

영역주의.

바꿔 말하면 굳이 지뢰 같은 걸로 통로를 방어하려고 하지 않아도 녀석들은 굳이 생존자들이 있는 곳으로 기어들어 가지 않는다.

녀석들은 그저 자원시설의 안락한 보금자리에 만족할 테니 말이다.

그런 강태석의 말에.

"... ...."

부우우우웅!

안 그래도 굳게 닫혀있던 거프의 입이 더욱 강하게 앙다물렸다.

**

지하 시설.

정확히 말하면 제3 자원 채취시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자원을 채취하는 채취시설.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지어진, 관광객들을 위한 비상 대피소.

현재 점령당한 채취시설은 외곽과 상층부.

그리고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비상 대피소는 그 아래, 좀 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비상 대피소에서도 가장 깊은 곳.

우와아아아아!

와아아아!

<후우. 좋아. 오늘도 힘내자 힘.>

키이이잉...

아무것도 없는 원형의 회백색 방 안에 서 있던 여인, 아이오스가 방의 네모난 입구 바깥에서 들려오는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을 들으며 가쁜 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자신의 양손부터 시작하여 가슴, 발끝까지 내려다보는 아이오스의 상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완전무장.

고출력 에너지소드에 전투피복, 두터운 강화판갑 보호대에 각종 수치를 표기해주는 바이저까지.

전신을 감싸는 포근함.

그 안으로 피어오르는 고양감.

이에 아이오스가 들뜬 표정으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온몸을 감싼 무장이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이제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이들을 향해 이를 표출해 내야 할 때.

그렇게 무장한 아이오스가 바깥,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입구를 향해 한발 나선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

나왔다!

아아아아아악!

콰드드득!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입구 밖으로 선 아이오스가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비명, 파열음과 광경에 크게 웃었다.

한 변의 길이만 50m.

비상 대피소의 층 세 개를 터서 만든 너른 공간.

아래는 높이 5m의 벽으로 막힌 정사각형의 광장이 자리 잡고 있고.

뻥 뚫린 천장 위로 자리 잡은 두 개의 층이 객석 역할을 하며 위에 선 이들을 향해 아래의 광경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살육.

인간이 인간을.

정확히 말하면 아이오스 본인처럼 무장을 마친 수십 명의 이들이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서른에 가까운 맨몸뚱이의 남녀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냥당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간단했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무능력하고, 지적능력이 낮고.

말하자면 이곳 공간에서 명백히 열등한 종자로 분류된 이들.

반면 자신은?

텅텅.

우와아아아아!

치이이이익!

"아하하하하! 반가워요! 오늘도 힘낼게요!"

두터운 장갑으로 둘러싸인 손으로 자신의 허리와 엉덩이 부분을 통통 쳐본 아이오스가 위쪽, 더욱 강하게 쏟아지는 갈채 소리에 응답하듯 바이저를 내리고는 사방을 향해 크게 웃어주었다.

아름다운 자신.

몸매도 완벽하고 얼굴도 아름다우며 지성 또한 높다.

명백히 이곳에서도 상위 1%.

그렇기에 오늘처럼 <사냥꾼>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는 이들.

반면 상대는?

치익.

우악... 우아아아악...

<... 진짜 더럽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되었는지 피가 굳어 딱딱해진 벽면에 몰려 공포에 질려있는 사내를 보며 바이저를 내린 아이오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런 게 자신들과 같은 7층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유전적 다양성의 확보라느니 뭐라느니.

대체 저런 녀석들의 유전자를 확보해서 어디다 쓴단 말인가?

아니, 오히려...

'도태되어 주는 게 맞지 않나?'

치이잉.

한껏 에너지를 머금은 소드를 들고 벽면의 사내에게 다가가며 아이오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런 유전자가 아이를 낳아 인류의 후대에 전파된다는 것 자체가 민폐.

예전처럼 수백억, 수천억 살았다면 저런 녀석들도 조금쯤은 용납되었겠지.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다.

인류는 얼마 남지 않았으며 폐쇄된 이곳의 숫자는 더더욱 적고 귀하다.

지금이야 에너지와 영양액이 공급되고 있다지만 언제 끊기거나 줄어들지 모르는 지금, 한정된 자원을 저런 녀석들에게 쓴다는 것 자체가 사치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아이오스의, 칼을 쥔 손에 떨림이 멈췄다.

긴장이 아닌, 흥분 때문에 생겨났던 손의 떨림.

이것이 멈췄다는 건 으레 해오던 대로 이제 휘두를 준비가 끝났다는 뜻.

후웅!

“우아아아아아악!”

울부짖는 것 마저 못생긴 상대의 모습에 혀를 찬 아이오스가 피라도 샐까 한층 더 바이저를 강하게 내려쓴 뒤 그대로 손에 들린 칼을 내리 치려던 그 순간.

키이이이이잉!

키이잉!

<?>

갑작스레 대피소 전체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경보음에 치켜 올라가 졌던 아이오스의 팔이 멈췄다.

**

대피소, 상층부 입구.

자원시설과 지하 대피소를 연결하는 부분이며,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하층부에서는 약 10층, 50m 높이 가량 떨어져 있는 장소.

하지만 입구를 중심으로 펼쳐진 광경은 아래층과 위층이 대동소이했다.

그야말로 피투성이.

"흐억... 허억... 너희 도대체 뭐야...!"

다짜고짜 쳐들어와 입구 주변의 사람들을 쳐 죽이기 시작한 열세 명의 소년, 소녀들을 보며 바닥에 쓰러진 사내 하나가 벌벌 떨었다.

자신은 이제 여유롭게 한숨 자고 일어나 아래층의 처형식을 관람하러 갈 예정이었다.

한데 입구 쪽에서 소란이 생긴 거 같아 슬쩍 지도부에서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했나 싶어 구경 왔는데 이게 웬걸?

분명 처형당해야 하는 쪽과는 거리가 먼, 상위 계층인 자신들이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

콰지직!

"... 쯧."

더럽다는 듯 손수 앞장서서 사내의 머리통을 부숴버린 소녀가 텅 비어버린 눈앞의 대피 시설을 바라보았다.

서른 정도 죽였으니 도망쳐서 비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 이전에도 제법 휑한 상태였었다.

아래층에 모여 있다는 뜻.

툭툭.

발치의 시체를 밀어 걷어찬 소녀는 심호흡을 한 뒤, 뒤쪽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본대로> 제대로 이곳,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찾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

"뭐해.? 어서 준비한 거 꺼내지 않고."

그런 소녀의 말에.

부스럭.

서로를 바라보던, 소녀보다 조금 더 나이 많아 보이는 세쌍둥이 남매들이 자신들이 들쳐 메고 온 무언가를 끄집어 내렸다.

**

자원시설.

콰아아아아아앙!

꾸르르르륵...!

질주하는 흑색의 선들이 허공에 길쭉하게 그려질 때마다 경로에 서 있던 검은 시체들의 머리통이 박살 난다.

흑색 선과 흑색 존재의 충돌.

하지만 박살 나는 건 일방적으로 검은 시체들뿐.

콰아아아아아앙!

"좋아. 아주 좋은데..."

'왜 이렇게 뭔가 찝찝하지?'

<미약한 볼크스(LV. 12)을 처치하였습니다.>

<소정의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3(48.33%).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달려드는 녀석들도 착실하게 정리되고 있고 레벨도 쭉쭉 오른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다.

콰지지지지지직!

사방에서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볼크스 속, 그중 가장 앞에 달려드는 하나를 후려쳐 으깨버린 강태석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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