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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콰콰콱!
퍼어어억!
손에 들린 레일건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몇 놈을 벌집으로 만들고 걷어찬 ‘스피어’의 청년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런 녀석들은 G구역에 있었다고 보고되지 않았었다.
근래 이렇게 신종의 개체 수가 늘어날 일이 있었나?
"어떻게 된 거지?"
청년이 뒤를 돌아 얼굴이 멍투성이가 된, 털보를 바라보았다.
오던 길에 멋도 모르고 덤벼들길래 대부분은 죽이고, 길 안내 시킬 겸 살려둔 범죄자 녀석들 중 하나.
이 녀석들도 온 지 얼마 안 되었겠지만, 갓 도착한 자신들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청년의 말에 털보 사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그... 어떤 꼬맹이가 있습니다. 시체를 부리는 능력을 가졌는데... 아마 그 녀석의 짓일 겁니다. 요즘 세력을 확장시킨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데..."
사내의 말에 청년이 이채를 띄었다.
시체를 부리는 능력은 제법 귀하다.
그것도 이 정도 숫자를 통제 없이 살려둘 수 있다면 더욱.
비록 장난감 수준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살려낸 녀석들을 어떻게 써먹느냐이다.
'온 김에 데려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잠시 고민하던 청년은 털보 사내의 옆에 묵묵히 서 있던, 스피어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어차피 시간도 아까운데. 둘로 갈라져 진행할까요?"
"괜찮겠나."
사내가 청년의 말을 이해하고는 되물었다.
녀석은 지금 범죄자 녀석들과 생존자 집단, 두 쪽과 동시에 접촉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단축시킬수는 있지만, 전력이 분산되니 당연히 위험은 두 배가 된다.
그런 사내의 말에.
톡톡.
"괜찮습니다. 이거 가져왔잖아요."
왼쪽 팔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톡톡 건드리는 청년의 말에 흐음 소리를 토한 사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둘로 갈라지지. 어느 쪽으로 가고 싶으냐?"
그런 사내의 말에.
"제가 시체를 부린다는 녀석 쪽으로 가보지요."
청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시체를 부린다는 녀석 쪽으로 가보고 싶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
왠지 생존자 집단 녀석들은 좀 고리타분할 것 같지 않은가?
말로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진행하게 될 텐데, 자신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 흥미가 가는 쪽은 반대.
"자. 말해봐. 어떻게 그쪽으로 가는지. 접선 방법이나 그런 거 들었을 거 아냐?"
총구로 쿡쿡 찌르는 청년의 말에 털보 사내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
연구시설. 지하.
쿠르르르르릉!
“조심해서 파내!”
“제대로 막고! 또 새어 들어올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일런이 설치된 지하 자원부로 내려온 강태석이 주변을 보며 감탄을 토했다.
자신이 이곳을 떠날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활기.
사방이 막힌 지하통로, 에너지 아깝다며 조명조차 꺼져있던 공간, 멈춰버린 자원 채취 시설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동서남북으로 다시 열린 여덟 개의 통로.
그 안으로 분주히 이동하며 자원을 캐나르고 있는 수십 대의 트럭들과 이를 호위하는 엑소슈트들.
투타타타타...
투콰콰카...
통로 군데군데서 가끔씩 교전음과 짐승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자원 채취를 방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소수의 인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괴물들과의 간헐적인 조우로 위협받기에는 지금 이곳에 투자된 인원과 병기들의 물량이 지나치게 과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금 생존자섹터는 이곳에 사활을 걸고 있었으니 말이다.
"왔어요?"
"상황이 어때?"
키이잉...
끊임없이 굉음을 토해내며 작동하는 자원정제 시설들,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파일런에서 걸어온 달리안이 강태석의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파르스 연구는 끝났어요. 현재 일차적으로 소환 중이고."
희미하게 푸른빛을 뿜어내는 수정을 보며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곳에 파르스가 보이지는 않는다.
파르스가 소환되고 있는 곳은 이곳 22층이 아닌 21층, 연구시설의 또 다른 구역 안쪽.
그곳에서는 일단 파르스에 탑승할 1차 선발인원들을 모은 군파츠와 카티가 소환이 끝나면 바로 훈련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일차적으로는 준비 완료.
"지금은 프라다비아 업그레이드 중이고?"
"아무래도 군대가 제대로 갖춰지면 검기 사용자 숫자가 늘어나도 될 것 같아서요."
달리안이 강태석의 말에 대답했다.
프라다비아는 벽의 한계를 지워 집단 내 검기 사용자의 숫자를 폭발적으로 늘려준다.
지금 기존 생존자 집단 수천 명 가운데 검기 사용자가 강태석과 아린등을 비롯해 십여 명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프라다비아의 연구 및 건축이 끝나는 순간 이 숫자가 수십, 수백 명으로 폭등한다는 이야기.
물론 이는 당장의 훌륭한 전력이 되겠지만, 프라다비아를 우선적으로 시행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통제 가능 여부.
갑작스레 커다란 힘이 주어진 집단은 통제가 안 될 경우, 그대로 재앙으로 다가온다.
만약 새로 태어난 검기 사용자들이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에 취해 갈등이나 폭동을 일으킨다면 큰일이다.
그렇기에 파르스의 연구를 먼저 진행했다.
무장된 수십, 수백 기의 파르스들이라면, 설령 검기 사용자들이 날뛴다 하더라도 훌륭히 대처하며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그런 강태석과 달리안에게로 소장 여인이 걸어왔다.
한껏 투덜거리면서.
"소입자코팅 먼저 진행하자니까."
"어떤 유리한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건 이야기 다 되었잖아요."
"하. 몸이 낫는 게 어디야."
저도 모르게 자신의 다친 눈가를 매만지려다 스윽 손을 내리는 소장을 바라보던 강태석이 덤덤히 말했다.
"업그레이드만 끝나면 바로 진행할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마. 어차피 건축과 소환은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니까."
파르스의 소환, 프라다비아의 건축, 다음 소입자코팅의 연구.
일단 연구만 끝나면 자원이 받쳐주는 한 모든 것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남은 연구 시간은 96시간.
소입자코팅까지 하면 196시간.
테크니컬들이 추가로 확보되면 건축, 소환, 연구 이 모든 시간을 단축시킬수 있다.
채 일주가량이 안 걸리는 셈이니 나쁘지는 않지만...
'시간이 애매한데.'
상태창을 살펴보며 강태석이 중얼거리던 그때.
치직.
치지지직...
"엉? 올라와 보라고? 무슨 일인데. 뭐?”
구축해놓은 시설 내 근거리 통신망을 통해 전달된 위쪽으로부터의 보고에 무전기를 쥔 소장이 인상을 썼다.
**
연구시설, 위쪽 진지.
여인, 폴은 어제오늘 자신이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레 쳐들어온 녀석에 의해 자신 아래 다섯 남매 중 막내 녀석이 만신창이가 되고 협박 받은 게 바로 어제였다.
물론 그대로 기싸움에 눌려 잘 조련된 개마냥 지낼 생각은 없었기에, 이를 갈고 구밀복검의 자세로 칼을 품은 채 서서히 세력을 확충시켜가던 게 오늘.
그런데 지금은?
콰드드드득!
"끄으으윽... 커흐..."
"여기 놈들은 영 버릇이 없네. 이건 정당방위라고 쳐도 되는 거겠지?"
"...”
눈앞에 사지가 모조리 잘려 나가고 부러진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다섯 남매의 나머지, 일남 삼녀를 보며 폴이 눈을 끔뻑였다.
범인은 갑작스레 진지 밖에서 걸어 들어온 서른 명가량의 남녀들, 그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내.
어찌 보면 일상적인 접촉이자 마찰이었다.
어제 일로 날이 서 있던 다섯 남매 중 장녀는 으레 있는, 새로이 들어온 녀석들인 줄 알고 서열 정리를 위해 간이나 볼 겸 가볍게 시비를 걸었다.
그리고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박살 난 장녀, 이어 괴성을 지르며 뛰어든 나머지 남매.
넷 모두가 사지가 절단나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구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툭툭.
"네가 이 녀석들 우두머리인가 본데 잘 챙겨라. 그러라고 놔둔 거니까. 그나저나 너희들 대장은 어디 있지?"
"대... 장?"
"너희 생존자들 장 말이다. 너 같은 녀석이 장은 아닐 거 아니냐?"
다가와 넋이 나간 폴의 앞에 선 사내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무슨 짐승도 아니고, 왜 말귀를 못 알아먹는단 말인가?
다짜고짜 원숭이마냥 시비를 걸어대는 것도 그렇고.
협력이건, 복종이건, 노예건.
앞으로 자신들과 함께하려면 무엇이 되었던 그런 태도는 곤란하기에 본보기로 손을 좀 과하게 쓰긴 했지만, 딱히 후회는 없다.
보니까 그렇게 굴려야 할 놈들 같았으니.
"...됐다. 그냥 직접 찾아봐야지. 그나저나 대체 뭘한거야 여기 장이란 놈은. 이런 것들이 이렇게 돌아다니게 놔두고."
투덜거리며 폴을 지나쳐 안으로 향한 사내의 뒤를 따라 서른 가량의 남녀가 무표정하게 진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던 그때.
키이이이잉!
키잉!
터어어어엉!
터엉!
"그래. 대처가 이래야지."
순식간에 임시 진지들을 뛰어넘어 자신들을 기습적으로 둘러싼 일백 대가량의 엑소슈트.
그리고 그 앞에 선,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금발 상처의 여인과 그 옆의 검기 사용자들 등장에 사내가 웃었다.
**
키이이이잉!
"빨리 올라오라던데.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대체."
엘리베이터에 탄 소장이 강태석의 곁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물론 하고 싶은 건 혼잣말이 아니라 다른 말이긴 했지만.
가장 궁금한 건 그간 자신들을 지켜주던 연구시설 출신의 아이들, 차일드가 어찌 되었느냐에 대한 것.
출발했던 건 열넷이었는데 돌아온 건 카트란, 그리고 외지의 소녀 단둘.
하지만 이에 대해서 소장을 비롯한 연구시설의 인원들은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함구하기로.
'아마... 모두 이 작자 손에 죽었겠지.'
키이이잉...
껌뻑이는 전등의 엘리베이터 속, 소장이 카트란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비록 자신들 측 인원이 실종되기는 했지만 이미 정황은 명확했다.
카트란에 대한 차일드들의 선제공격.
이어 자신을 이올레타라고 소개한 소녀에 의한, 자원시설에서의 차일드들의 만행.
심지어 추측건데 이는 차일드들이 모두 카트란을 죽이기 위해 벌인 일이었을 것이다.
카트란이 입 꾹 닫고 조용히 넘어가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너스빌, 그 망할 년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넘어지며 자신들을 압박하고 차례차례 이득을 챙겨가고 있었지만 당사자까지 껴서 난리 치지 않는 게 어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솟구쳐 순식간에 1층에 도달했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
카트란과 아너스빌들의 생존자 집단들이 진을 치고 있는 가장 삼엄한 장소.
스르륵.
문이 열리고 숨겨진 계단을 조금 걸어 올라가자 주변으로 쳐진 수십 개의 천막과 가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가운데.
두터운 천으로 가려져 있지만 한눈에 봐도 살벌한 기운들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장소.
이를 향해 소장과 강태석이 한 발 내디딘 순간.
촤르르르륵.
"드디어 왔구먼. 적당히 모였으면 시작하면 될 텐데 왜 굳이 당신네들 둘을 참석시켜야 한다고 그리 고집들을 피우던지."
소장과 카트란이 손수 천막의 문을 활짝 젖히며 맞이하는, 처음 보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
수림, 어느 절벽.
"저기라 이거지?"
털보 사내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온 청년이 절벽, 폭포수가 콸콸 떨어지고 있는 호숫가 아래의 동굴을 바라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