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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콰아아앙!
질주하는 파르스들, 쓸려나가는 시체들 사이에서, 강태석은 목적지인 절벽을 바라보다 이내 뒤돌아보지 않고 작게 혀를 찼다.
뒤쪽에서 아까 전부터 느껴지는 시선 때문이었다.
'이래서 일찍 보여주기 싫었던 건데.'
키이이잉...
키르륵!
왼쪽 허공, 크기 30cm로 줄어들어 붕 떠 있는 정팔면체 금속 생명이 위로라도 해주겠다는 듯 강태석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하지만 그와 달리 생각보다 강태석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귀찮을 뿐.
띠링!
<메인 퀘스트 : 진목시왕>
> 현재 콜로니 전체가 시체들의 왕의 영향 범위 안에 들어갔습니다.
> 레벨 3 이하 생존자 모두에게 전염병이 발생합니다. 사망 시 좀비로 재탄생합니다.
> 레벨 4에서 10 사이의 생존자 모두에게 각종 상태이상이 발생합니다. 사망 시 구울로 재탄생합니다.
> 레벨 11이 넘는 생존자의 경우, 시왕이 기꺼이 여겨 직접 수하로 재탄생 시킵니다. 이들은 가장 앞에 서서 죽음을 퍼트리며 시왕의 군세를 확장 시킵니다.
"..."
강태석이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바라보며 길게 콧김을 내쉬었다.
써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지옥.
레벨 3이하는 모두 전염병에 걸려 일정시간이 지나면 좀비로 재탄생한다.
그보다 강한 이들은 저항력을 가지긴 하지만 멀쩡할 순 없으며, 죽으면 차례대로 시왕의 군대로 재탄생하고 또다시 앞장서 인세를 짓밟고 그들의 군대로 바꾼다.
이 사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시왕을 직접 해결하는 것이지만...
<현재 진목시왕 레벨 : 27>
<현재 진목시왕은 칠국연합, 마슬룬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마슬룬의 신성진군들이 진목시왕과 싸우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현재 진목시왕은 이곳에 없을뿐더러 강태석 본인이 직접 해결할 수 있을 레벨도 아니다.
녀석은 현재 저 너머, 칠국연합의 영토 일부를 방랑하며 현재도 열심히 죽음을 퍼트리는 중.
하지만 이곳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굳이 녀석을 해치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백, 어쩌면 수천 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을 녀석이 이곳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녀석이 직접 키워내 아끼는 <사도>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띠링!
<서브 퀘스트 : 17인의 사도>
> 배를 타고 은빛의 바다를 건너온 17인의 사도가 콜로니 전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 그들을 처리하십시오. 많은 이들을 구하고 더 나아가,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현재 남은 사도 수 : 17.
> 현재 근방 사도 : 1.
> <여기사 단장, 에르트>가 이 근방에서 직접 수하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현재 에르트 레벨 : 20.
> 주의하십시오. 에르트는 시왕께 인정받기 위해 보이는 족족 모두를 스스로의 기사단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끝내주네."
콰아아아아앙!
점점 더 격렬해지는 전장 속, 강태석이 절벽 아래 동굴을 바라보았다.
**
동굴, 깊은 곳.
끄륵...
끄르륵...
"옳지 옳지. 잘되고 있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외견을 지닌 한 여인이 무릎을 쪼그려 앉은 채 자신의 발치 앞, 바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흡족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 앞에 놓인 건 수십 구의 남녀들.
여전히 살아있지만, 모두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약에 취한 것처럼 기묘한 신음만을 토하며 꿈질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근처, 분주하게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스켈레톤들.
특이한 건 그들의 팔과 손이 여섯 개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각기의 손에 다양한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콰직!
콰지지지직!
장침, 메스, 망치, 톱.
손에 온갖 도구들을 든 해골들이 분주히 자신들의 손을 놀리며 꼼꼼하게, 하지만 다소 투박하게 스스로들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 온갖 전염병과 환몽독에 취해 기절해 있는 영웅과 초인들의 머리통을 상대로 말이다.
꾸드드득...
톱에 의해 머리가 썰리고 두개골이 열리며 뇌가 드러난다.
그렇게 드러난 뇌로 기다란 대침들이 푹푹 각기 다른 깊이로 쑤셔 박아지고 어떤 부분은 메스에 의해 조심스레 절제되거나 개조된다.
그 모든 작업들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었다.
열넷의 스켈레톤, 그리고 줄 서서 시체마냥 기다리는 마흔여섯 구의 남녀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여인이 다시 한번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래. 듀라한은 쓸만한데, 너무 멍청하단 말이지. 역시 손이 좀 가도 데스나이트가 좋아."
듀라한과 데스나이트의 차이점은 지성의 유무였다.
강력한 영웅과 초인들의 육체에는 그에 걸맞은 영혼과 지성이 깃든다.
이는 살아생전엔 그들을 한층 더 강력하게 해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자신들처럼 시체를 되살려 병사로 사용해야 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심히 거슬리는 요소이기도 했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야 될 녀석이 쓸데없이 살아생전의 자아를 가지고 멋대로 행동하거나 거부하려 드니까.
그렇기에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게 듀라한이다.
쓸데없는 판단을 할 머리통을 치워버리고 목 부위에 술식을 박아 그 육체가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비록 판단력은 없어도 제작이 간편한 데다 그들의 육체만으로도 가치 높고 강력하니 병사로 써먹기엔 그만이었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시왕의 권능으로 마력과 육체가 강화되기에 어찌 보면 살아생전보다 더욱 무서운 죽음의 초인이 탄생한다.
하지만 역시 영웅과 초인들의 진가는 그들이 가진 영혼과 지성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 나온다.
그들의 경험, 그들의 신념, 그들의 의지, 그들의 지성.
그 모든 것들이 본연의 육체와 결합되어 나오는 파괴력과 전투력은 오직 본능적으로 싸우기만 하는 듀라한과 비교를 하기 미안할 수준이다.
그렇기에 다소 귀찮고 복잡해도 가치 있는 재료들은 데스나이트로 만든다.
영혼을 물들이고 뇌를 개조하고 자아를 철저히 파괴하여.
그러면서도 기억과 전투능력은 상실하지 않게 하는 섬세한 작업을 걸쳐 이후 시왕님 만을 위해 싸울, 타락한 기사로 재탄생 시킨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이 다시 태어나 스스로를 위해 분투할 거라고 생각하니 없는 심장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얘들아. 어서 일어나렴. 어서어서."
에르트가 못 참겠다는 듯 발을 탁탁 구르며 세상 설레는 표정으로 그녀의 눈앞 바닥에 놓인 시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
콰아아아아앙!
<이 안은 저희가 따라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냥 아예 무너트리는 방향으로 갈까요?>
주변을 정리한, 기존 페리트란 쉘터 소속이었던 파르스 운용병 중 하나가 거체에 탑승한 채로 절벽을 바라보며 발치의 강태석에게로 물었다.
동굴의 높이는 고작 4~5m 정도.
사람에게는 커다란 크기지만 커다란 파르스가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좁다.
심지어 안쪽에서 전투를 벌이기에는 더욱 그렇고.
거기에 동굴 깊은 곳에서 피어나오는 사악한 기운은 보는 이들을 껄끄럽다 못해 뒤로 물러나게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당연히 파르스 운용병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무너트려 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운용병의 말에 강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청년과 함께 이곳의 탐사를 진행하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스피어측 생존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 동굴은 지나치게 깊고 넓다.
절벽을 무너트린다고 해도 깊숙이 들어갈 수 없으니 외곽만 무너트릴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안쪽 녀석들은 그대로 내빼버리거나 맘 편히 만들어진 자연벙커에서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거기다 제대로 무너져도 문제다.
옆에 선 사내가 구하려고 온 청년과 스피어의 생존자들이 모조리 깔려 죽어버릴 테니까.
솔직히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진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협력을 구하려면 이를 전제로 행동해야 한다.
아니면 아군으로 싸울 이들이 당장 적으로 돌아서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우리끼리 들어갈 테니까 돌아가서 쉘터를 지켜요. 여기 남아있지 말고."
<대기 안 해도... 괜찮겠습니까?>
키잉...
이번에 운용병이 바라보는 방향은 절벽이 아닌, 그들의 옆에 선 사내와 스피어의 인원들이었다.
그 걱정스럽다는 눈길.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전부터 불온하고 묘한 분위기를 감출 생각 없이 뿜어내고 있었으니 어련하겠는가?
하지만 강태석은 손을 내저었다.
그들이 이곳에 서 있는다고 안쪽에서의 일은 막을 수 없거니와 사방에 난리가 난 지금 파르스를 이곳에 걱정만으로 세워두기에는 지나친 전력손실이다.
무엇보다 여기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다.
"빠르게 흩어집시다. 이곳은 내가 마무리하고 돌아갈 테니."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지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만큼 적절하기에 쓰인다.
말을 마친 파르스 운용병 리더가 짤막한 경례를 한 채 몸을 돌려 쉘터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 뒤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하는 열한 개의 파르스들.
쿵쿵...
쿵쿵쿵쿵...
콰아아아아아아앙!
달려드는 짐승들을 후려치고 꺾어 던지며 쉘터쪽으로 사라지는 이들을 본 강태석이 몸을 돌려 옆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건 그들뿐.
강태석 본인, 그리고 사내와 스피어의 서른 남녀.
"들어가지요. 또 몰려들기 전에."
그르르르륵...
콰아앙!
지금은 파르스들이 내달리며 처리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나가면 이제 그 빈자리로 시체의 짐승들이 동굴 앞 자신들을 노리고 몰려들 것이다.
다행히 동굴은 그들로부터 몸을 피하기에 충분히 작은 크기다.
하지만 자리에 선 사람들 중 아무도 이에 안도하는 이는 없었다.
동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수림에서 조여져 오는 살기들, 그 이상으로 흉험하고 사악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들어가지."
그들 앞에 선 사내의 무거운 한마디에.
저벅.
앞장서 동굴 안을 향하는 강태석의 뒤를 모두가 뒤따라 향하기 시작했다.
**
띠링!
<사도, 에르트의 영역 안으로 진입하셨습니다.>
<시왕에게 부여받은 권능의 영향력이 한층 더 강해집니다.>
<레벨 5 이하 모든 생존자에게 전염병이 발생합니다.>
<레벨 6부터 10, 모든 생존자에게 기존보다 한 종류의 상태이상이 추가되어 지속됩니다.>
<에르트의 권역 안, 레벨 10이 넘는 모든 생존자는 그녀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당신이 레벨 10을 넘는다면 그녀의 권속들은 최대한 당신을 생포하려고 들것입니다.>
<하지만 생포하려고 드는 게 좋은 일은 아닙니다. 사로잡히게 될 것 같은 경우 자결을 추천합니다.>
"..."
동굴 안에 한 걸음 들어서자마자 사정없이 떠오르는 문구들을 보던 강태석이 금속생명체 안의 NO. 111을 꺼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좁은 동굴에서 커다란 NO. 111이나 알레고리아등은 그다지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지금은 전마강갑과 여의, 뇌전을 십분 활용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다.
우르릉...
강태석의 양 주먹 끝으로 어둠을 한 겹 더 진하게 겹치고, 번개를 휘둘렀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가 잠수하면 되례 잠잠하듯, 동굴 안에 들어오니 흉험한 기운들은 되려 잠잠해졌지만 굳이 상태창이 아니더라도 강태석을 비롯한 이곳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제 숨돌릴 틈도 없이 시작이라는 것을.
그런 이들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겠다는 듯.
콰아아아아앙...!
"전열 유지해라! 무조건 뚫어낸다!"
어둠 속에서 기습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한 온갖 시체들 속, 칼을 치켜세운 사내가 기쾌하게 검기를 휘두르며 버럭 내지르고 앞장섰다.
**
쿠르르릉...
쿠르릉...
"서른하나... 좋다. 거기에 특이한 게 하나 껴있네?"
떨리는 진동, 깊은 동굴 속.
눈을 감고 권속들의 시야를 공유하던 여인 에르트가 시체들이 보는 광경 너머로 보이는 강태석을 보며 희미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