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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사방, 시체들을 으깨며 질주하는 사내와 남녀들을 보며 강태석이 빙글 자신의 주먹을 돌렸다.
사방으로 파괴의 장벽이 질주하고 시퍼런 선들이 그어지며 온갖 좀비와 듀라한들을 으깨어 부순다.
면검기와 강화된 선검기의 위력이다.
어찌나 잘 싸우는지 자신이 지금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돋보이는 건, 가장 앞에서 해일을 막아서듯 굳건히 선체 앞장서는 사내다.
사내가 허리춤의 칼을 조용히 휘두르자 그의 몸 주변으로 흰빛 반투명한 장벽 같은 막이 생겼다.
마치 칼을 붓 대신 사용하여 허공에 흰빛의 구체를 그려낸 것마냥.
그리고 그렇게 구체를 온몸에 휘감은 사내가 그대로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간 순간.
쩌저저저적...
스거거거거거거걱!
그야말로 마법처럼, 원의 범위 안에 들어선 순간 개미 사체로 만들어진 좀비들의 해당 부위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날카로운 발톱이건, 단단한 갑각이건.
살아생전에는 제법 범죄자들을 위협했을 흉험한 육체들이 가리지 않고 모두다.
심지어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사내가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내겠다는 듯 칼에 힘을 실어 멀리까지 뻗어낸 순간.
스거거거거걱!
기존, 칼이 닿는 2m 범위까지만 그려지던 구체가 순식간에 6m 크기로 주욱 커지며 사내를 스쳐 피해가려던 좀비들을 모조리 그 자리에서 갈아버렸다.
약식 알레고리아같은 기적.
그보다는 더 조용했지만, 더 음유로웠고 무엇보다 더욱 자유로웠다.
한참 기운을 모아 기물의 힘까지 빌려야 하는 강태석과 달리, 사내는 마치 숨을 쉬듯 주변의 권역을 집어삼키며 달려들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있었으니까.
저게 레벨 20을 넘어선, 비기너를 지나 익스퍼트에 도달한 자의 위력이었다.
구검기.
흉험한 구체와 사방으로 질주하는 벽들이 뒤섞여 스피어의 인원들은 죽음이 가득하던 동굴을 한 번 더 죽음으로 휘감아버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현장.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달려드는 녀석들의 숫자가 많았기에 강태석 역시도 부지런히 자신의 손발을 놀릴 일이 생기고 있었다.
NO. 111이나 알레고리아, 영뇌수가 날뛰기엔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전마강갑이나 여의 정도는 충분히 활용이 가능했다.
후우웅...
어둠을 휘감은 강태석의 주먹이 대열을 뚫고 달려드는, 목 없는 시체기사 하나를 향해 질주한 순간.
콰드드드드드득!
허리춤에 전리품마냥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레일건 중 하나에 검고 끈적한, 죽은자 특유의 마력을 그득 실어 일격을 막아낸 시체기사를 향해 강태석의 주먹 너머, 폭발하듯 솟구친 그림자의 가시가 레일건과 시체기사의 두 팔을 타고 넘어 상대의 육신을 모조리 관통했다.
인대, 근육, 신경.
여전히 검은 피를 꿀렁거리며 전신으로 뿜어내고 있던 죽은 심장과 시왕의 권능을 묶어두고 있던 코어까지.
후드드득...
주먹을 타고 뻗어 나갔던 그림자칼이 회수된 순간 전신에 구멍이 숭숭 뚫린 듀라한이 실 끊어진 인형마냥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다.
사방, 휘몰아치는 검기들에 이리저리 두들겨 맞은 탓에 강태석의 일격에도 이렇게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험치는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된다.
거기다...
띠링!
<현재 페이즈 5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전 세계관이 몹시 위험한 상태로 돌입합니다. 모든 몬스터와 이형 대적들의 상태가 흉폭하게 변합니다.>
<하지만 난세야말로 격동의 시대. 온갖 영웅들이 자라나고 왕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불태우는 시기입니다.>
<경험치 페널티가 삭제됩니다. 더불어 난이도 상승에 대한 보상으로 추가적인 경험치를 지급합니다.>
키리리링...!
콰드드득!
달려드는 녀석들을 쳐 죽일 때마다 쉴새 없이 차오르는 경험치들을 보며 강태석이 가쁜 숨을 다잡았다.
경험치 페널티.
레벨에 맞지 않게 너무 낮은 녀석을 잡으면 경험치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것도, 반대로 레벨에 맞지 않게 너무 강한 녀석을 잡아도 경험치를 크게 깎아 지급했던 것도.
심지어 공동 사냥이나 지형지물의 이용 시, 지나치게 본인의 비중을 작게 잡아 짜게 경험치를 지급했던 것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한 페널티가 드디어 풀렸다!
강하면 강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싸우면 싸우는 대로.
이제부터는 죽이고 짓밟는 모든 것들이 모조리 경험치로 환산되어 고스란히 쏟아져 들어온다.
거기에 추가적인 경험치 가산.
그리고 이 위험한, 현재 자신의 레벨로는 부담스러운 고레벨의 사냥터를 대신 싸워가며 전진해줄 무인들까지.
콰드드드드득!
키이이잉...
띠링!
<레벨 14 달성!>
<추가스탯 4가 지급됩니다.>
<전마강갑의 고유 스킬 중 그림자칼-지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강해지는 육체와 이를 알려주기 위해 떠오르는 상태창을 본 강태석은 싸우면서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
본진.
콰아아아아아앙!
<돌아왔습니다. 합류하겠습니다!>
정신없이 달려들던 좀비와 구울들의 해일과 싸우던 아린과 아너스빌의 주변으로 뛰어든 파르스들이 거침없이 자신들의 양손에 들린, 사이오닉소드를 휘두르며 거구의 호랑이 좀비들을 도륙 냈다.
그야말로 온 숲, 온 대지가 죽음으로 그득 들어찬 듯하다.
이 구역이 그간 이렇게 많은 생명들을 품고 있었는지 놀라 자빠질 정도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숨어 지내던 그 모든 녀석들이 튀어나와 오직 생명을 죽이기 위해 합심하여 흉폭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콰아아아아앙!
"왜 너희끼리 왔어? 카트란은?"
양쪽, 어깨 위에 둥둥 뜬 유물로 수림의 한쪽을 크게 베어 물듯이 지워낸 아린이 자신을 지켜주던 아너스빌을 대신해 자리 잡는 파르스의 운용병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곳도 위험하지만 카트란이 향한 곳에 비할 바는 아니다.
쏟아져 나오는 시체들과 흉험한 사기, 그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장소이다.
같이 간 이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그들조차 위험요소로 보였다.
그런 아린의 말에.
콰아아아아앙!
<이곳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어차피 동굴 안이라 도움이 안 된다고. 바깥이라도 지킬까 했지만...>
말을 채 마칠 시간도 없다는 듯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파르스의 모습에 아린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끝까지 듣지는 못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단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안으로 들어간 이들을 기다리느라 세월아 네월아 병력을 묶어들 여유 자체가 없다.
온 구역, 온 세상이 떨리는 듯 하기에.
전력을 다해 살아남으려 어린아이까지 각자가 발버둥 쳐도 모자랄 상황이다.
하물며 파르스같은 섹터의 핵심 병력은 말해 뭐하랴!
키이이이잉...
그런 아린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유물 끝에 그러 모이던 파괴의 빛이 작게 떨리며 점멸하던 그때.
콰드드드드드득!
"너무 불안해하지 말도록. 이곳에 여유가 조금 생기면 내가 병력을 이끌고 직접 가볼 생각이니까."
"병력? 여유 병력이 어딨다고?"
금빛 칼을 휘두르며 자신 앞을 막아선 아너스빌의 말에, 아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온 섹터의 생존자들이 각자 구역을 맡아 싸우기에도 바쁘다.
한데 여유 병력이 있다고?
그런 아린의 외침에.
"있지."
아너스빌이 기묘한 미소를 띄우며 짧게 대답했다.
**
콰아아아아앙!
어느새 동굴을 한참이나 주파한 강태석과 스피어의 인원들이 잠깐 공세가 주춤한 사이 한숨을 돌렸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몇 차례의 파죽지세를 막아낸 뒤 그들조차 지쳤기에 공격이 조금 뜸한 구석지형을 찾아 숨어들어 몇몇은 망을 보고 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이 동굴을 차지한 주인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살펴보며 동굴 안의 병사들을 보내고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들을 이끌고있는 핵심 인원인 사내의 마음이 너무나 급했으니까.
후우욱.
"3분. 3분 후 다시 출발한다. 모두 최대한 기공을 돌려 마력을 채워 넣어라."
사내가 바닥에서 간신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모두가 지쳐 보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급했다.
이 지옥 속, 사로잡힌 이들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기 짝이 없었으니.
다른 이들은 몰라도 청년은 무조건 구해 가야만 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이 명확했다는 것이다.
후우우웅...
사내가 어둠 너머, 동굴 깊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원주인이던 거대개미들이 파놓은 듯한, 그 덩치에 걸맞은 커다란 통로와 그 크기에 걸맞은 광대한 영역.
어찌나 넓고 깊게 복잡하게 뻗어 있는지 원래대로였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차 한참을 헤맸어야 할 테지만 이곳의 새로운 주인 녀석은 그런 자신들을 배려라도 하듯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흩뿌리고 있었다.
차마 함정이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진하고 어두운 향기.
이를 쫓아가기만 한다면 분명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된 녀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사로잡힌 이들 또한 분명 그곳에 있을 것이고.
'기다려라.'
우득.
청년을 떠올린 사내가 가라앉은 표정을 지은 채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현재 사망자는 0.
모두 지치기는 했고 부상도 입었지만, 아직 큰 피해는 없다.
평범한 시체병사 녀석들은 숫자는 많아도 위협적이지 않았고, 듀라한이라는 놈들이 제법 거슬리긴 했지만 지성이 없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동굴의 주파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거슬리는 건 이 끝에 자리 잡고 있을 새로운 주인.
그리고... 눈앞의 한 녀석.
후욱.
다른 수하들조차 지쳐 회복에 전력을 다하고 있건만, 홀로 여유 있게 숨을 고르고 있는 녀석을 보며 사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꿈틀거렸다.
카트란이라고 했던가?
녀석의 존재 자체가 거슬리는 건 아니었다.
녀석을 지탱해줄 이족보행 병기들도 이곳에 없고 무엇보다 녀석이 크게 강한 건 아니었으니까.
<데리고 가세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이니.>
향후 동맹을 맺을 자신들이 급박함을 표명했는데도 당장 큰 도움이 안 될 한 명만을 보내준다는 아너스빌의 결정이 심히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 여인은 귀족가의 혈통이라는 든든한 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함께 지원된 파르스라는 병기들이 있었다.
거기에 상황 자체가 자신이 보기에도 녀석들조차 급했기에, 그녀의 제안을 큰맘 먹듯 받아들여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자신들이 보기엔 아직 면검기조차 못 쓰지만 나름 그들 섹터에선 최고 전력으로 보이는 것 같았으니 성의 표시 정도는 했다 하며 넘기면서.
그리고 역시나.
크게 뒤처지진 않았지만, 딱히 자신의 수하들에 비해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다.
말하자면 고만고만.
기대 이상도 아니고 기대 이하도 아닌 실력이었다.
한데 그럼에도 이토록 상대가 거슬리는 이유는……
'너무 빨리 강해진다. 이게 말이 되나?'
아까 전과 비교해서도 현격히 증가한 마력의 양을 느끼며 사내가 손가락을 꿈질거렸다.
아무리 위기 속에서 두각을 보이는 자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이 속도는 그냥 말이 안 된다.
한번 작은 벽을 넘은 건 그렇다 쳐도 그 이후로도 쭉쭉 치솟아 오르는 성장세까지.
이게 어찌나 이질적이었는지 당장 이 동굴의 끝에 있을 주인보다도 옆의 이 녀석이 신경 쓰일 정도다.
"..."
이에 이마 옆을 문질문질거리던 사내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다가가 뭔가 한마디 하려 입을 열려던 그때.
콰드드드드드득!
“으아아아악!”
바깥, 보초를 서고 있던 수하의 다급한 비명에 멈칫한 사내가 휘리릭 몸을 날려 입구 쪽을 향했다.
자신들이 있는 작은 방과 입구까지의 거리는 고작 10m.
날듯 순식간에 도착한 사내는 이어 수하가 비명을 지르게 만든 원흉을 찾아낼 수 있었다.
칼을 맞댄 수하를 힘으로 찍어 눌러 다급하게 만들고 있는 범인.
이윽고.
"크허... 안돼! 이런 빌어먹을!!!!!!!!!!!!!!!!!"
실종된 30인 중 하나의 얼굴을 적으로서 발견한 사내의 입에서 끔찍한 고통 서린 포효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