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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152화 (15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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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사도 여기사 단장, 에르트와 그녀의 기사단을 조우했습니다.>

<각 개체 모두 사용자보다 레벨이 높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시왕의 영향력이 높아집니다. 반경 30m 모든 생명체가 랜덤한 상태이상에 걸립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오십에 가까운 이들.

모두가 자신보다 레벨이 높다는 경고가 번쩍였다.

이것만 해도 까다로운데 실로 귀찮은 건 이제부터 레벨 10 이하만 걸렸던 상태이상까지 같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 근원지는 눈앞에 선 여인.

후우우욱...

외모만 보면 평범한 여인이건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대기가 형형색색 무지갯빛으로 물들고 발아래에서는 정체 모를 균들과 버섯이 자라났다.

시왕의 사도들은 그 자체가 생물병기 같은 재앙들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 같은 녀석들이다.

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와 마력들이 주변을 물들이고 상대를 저주와 전염병으로 감염시킨다.

실제로 주변에 선 사내와 스피어의 남녀들은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온 마력을 끌어올려 몸 전체로 이리저리 휘감고 있었다.

당장 발생하는 상태이상을 해결하기 위해 마력저항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저래서야 마력의 소모가 심할뿐더러 무엇보다 완전히 상태이상을 극복할 수도 없다.

당장 이들 중 가장 약해 보이는 한 남자의 피부에서 울긋불긋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었으니.

이래선 곤란하다.

이들은 좀 더 잘 싸워줘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태석은 어둠샘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이에서 솟구쳐 나오는 모든 마력을 한 가지 권능에 모조리 쏟아붓기 시작했다.

뇌지국의 옛 왕, 라프텔의 <뇌전의 권능>.

강태석이 검은 마력을 불어넣은 순간.

파지지지지지직!

콰르르르릉!

시퍼런 스파크가 강태석의 몸을 중심으로 해일처럼 뻗어 나가며 동굴, 반경 50m를 단번에 휘감았다.

아까 전처럼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파지지지직...

“키야아아아아아악!”

에르트의 발치에 솟아나고 있던 버섯과 균사들이 번개에 휩싸여 모조리 불씨를 내뿜으며 불타올랐다.

허공에서는 퍼져 나가던 저주의 원혼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내며 먼지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이어 떠오르는 상태창.

띠링!

<뇌전의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영역 내 모든 사기와 상태이상에 대한 극도의 저항력을 부여합니다.>

<저주와 원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는 이 영역 내에서 온전치 못합니다. 반사신경과 저항력이 상당 수준 감소합니다.>

<현재 마력의 소모가 상당합니다. 전투 시 마력 배분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치지지지직...

음유로운 기운이 휘감고 있던 동굴이 순식간에 희미하게 번쩍이는 청람의 기운으로 그득 찼다.

삿된 것들이 불타오름과 동시에 주변에 서 있던, 스피어측 이들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그와 달리 반대쪽에 서 있던, 죽음의 기사들을 비롯한 에르트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온몸의 신경과 혈관을 파고드는 번개의 가락.

그 모든 것들이 기분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넘어, 몸을 삐거덕거리게 만들었다.

이는 자신들이 모시는 시왕님의 것들과 동급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약한 녀석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권능을 몰아낸 걸 넘어 시왕님의 종에 불과한 자신들에게까지 현격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순간 상대와 대적하고 선 에르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생각 같아서는 눈앞에 있는 놈들을 모두 죽이고 싶지만, 쉽지가 않아 보였다.

자신의 영역은 불타올랐고 반면 녀석의 영역은 멀쩡히 작동해 자신과 죽음의 기사들을 내외로 깎아 먹고 있었다.

번개의 권능을 부리는 한 녀석만 있다면 간단했겠지만, 앞쪽에 선 서른 명의 녀석들과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 또한 만만찮은 게 문제였다.

아직 자신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지금 정면 승부는 영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정면 승부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생각을 마친 에르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뒤쪽, 거슬리는 권능을 부리는 상대가 아닌 앞쪽의 사내에게.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요. 설마 당신의 숨겨둔 아들 때문에 그런 건가요?"

"...?!"

기억을 읽어낸 에르트가 건넨, 담담한 한마디에 스피어측 주변의 남녀들이 무슨 소린가 하다가 이내 놀란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설마 사내와 청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가 했기에.

이는 자신들도 몰랐던 사실이다.

하지만 의외로 사내는 잠시 흠칫했을 뿐 무덤덤하게 에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반응을 보며 에르트가 더욱 만면의 미소를 끌어올렸다.

저 정도면 충분했기에.

그러면 다음.

"여기서 서로 싸우면 피해가 클 것 같네요. 당신은 아끼는 당신들의 수하를 잃고, 나는 기껏 만들어 놓은 내 기사단들을 잃고. 심지어 여기는 당신들 영역도 아니잖아요? 아마 지금 당신들이 왔다는 바다 건너 대륙도 지금 난리가 났을 텐데."

"본론이 뭐냐. 주둥이 놀리지 말고."

화르르르륵.

사내의 칼에서 시퍼렇게 피어오르던 검기가 되려 응축해 칼 속으로 숨어들었다.

저게 더 무서운 상태.

사내는 말뿐만이 아니라 속으로 마음이 급했다.

시간을 끈다는 판단이 서면 그대로 달려들어 새끼를 잃은 호랑이마냥 미친 듯이 날뛸 것이다.

실제로 그런 상태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에르트는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간단해요. 제안을 하죠. 뒤쪽의 그 사내를 넘겨줘요. 그러면 그 대가로 나는 사로잡고 있는 인질들을 넘겨줄 테니. 몇몇 개조해 버리긴 했어도 아직 다들 멀쩡히 숨 쉬고 있다고요? 당신이 아끼는 청년을 비롯해서."

"...!"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스피어측 인원들의 시선이 모조리 사내에게 집중됐다.

**

인질을 구할 것인가?

한 명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사실 이는 저울 양쪽에 올렸을 때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문제였다.

동맹의 신의보다는 각자의 득실들이 중요했다.

스피어는 이곳 생존자 집단보다 명확히 우위에 있었으며, 무엇보다 청년은 사내에게 있어 반드시 구해야 할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칼을 빙글 휘둘렀다.

이 계산에는 한가지 빠진 게 있다.

방금 그 말을 지껄인 게 명확한 자신의 적이라는 것.

믿을 수 있겠는가?

"헛소리를 하는구나. 죽기 전에 목이나 잘 닦아 둬라. 아까 네 인형들과 똑같이 만들어 줄 테니."

"못 믿는 건가요? 그러면 보여 줄게요 지금."

"...?"

그러며 에르트가 손가락을 따악 튕긴 순간.

드드드드득...

드르륵...

무언가를 바닥에 질질 끄는 소리와 함께 그들 뒤 동굴 쪽에서 수십 구의 스켈레톤들이 걸어 나왔다.

대체 무슨 시체를 쓴 것인지 거진 3m에 달하는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스켈레톤들의 등 뒤에 메어진 건 커다란 십자가들.

그렇게 바닥에 질질 끌려오는 수십 개의 십자가들에는 누군가들이 액체 금속과 쇠사슬에 결박된 채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익숙한 얼굴들.

"...!"

"살아있었구나."

서 있던 이들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십자가에 묶여 끌려오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곳에 돌입하면서도 큰 희망을 가지진 않았다.

청년을 비롯한 자신의 동료들이 어디 가서 쉽게 죽을 이들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들도 전쟁을 알기에 사로잡힌 이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잘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어설픈 기대는 감당할 수 없는 상실감을 불러온다.

그래서 무념무상, 단지 이곳에서 위험한 적의 수괴를 처치한다는 느낌으로 싸우고 있었는데 실제로 살아있는 동료들을 만나다니.

심지어 상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을 이끄는, 청년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감정은 그 이상일 터.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은 빨랐다.

키이이이잉...

치이잉...

호위하듯 강태석을 둘러싸고 있던 십수 명의 칼날들이 순식간에 상하좌우 사방으로 들이 밀어지며 강태석의 자유를 완벽하게 속박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사정없이 사지를 베어내 버릴 것 같은 시퍼런 검기들.

그 속, 떨리는 눈동자로 전방을 바라보던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에르트를 향해 말을 이었다.

"네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어떻게 믿지? 이 녀석을 건네주면 인질들을 풀어주고 우리를 보내줄 거라는 걸?"

상대는 사악한 자.

순식간에 말을 바꾸어 카트란을 건네준 순간 자신들을 포위하고 협박할 수 있다.

그런 사내의 말에 에르트가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거래 장소를 바꾸면 되죠. 기억을 보니 가까운 곳에 당신들 배가 있던데. 함께 그곳까지 가면 되지 않겠어요? 나는 사실 당신들이 그냥 이곳을 떠나 주길 바란다고요. 다른 구역은 내 영역이 아니니까. 나는 이곳에 집중하길 원하고. 굳이 당신들과 전력 낭비해가며 싸울 이유가 없잖아요?"

"..."

"내 약점까지 밝히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그 카트란이라는 작자가 가진 번개의 권능은 우리와 상극이거든요. 살려두면 자라서 우리를 방해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지금 기회가 있을 때 잡아 두려는 거에요. 어떻게 할 거에요? 뭐 의기 있게 싸우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결국 당신들과 우리는 언젠가는 부딪치게 될 테니. 장렬하게 여기서 한판승부 벌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물론 이들 목이 제일 먼저 날아가겠지만."

따악.

에르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던 스켈레톤들이 허리춤에 메고 있던 커다란 칼날들이 그들 손에 쥐어져 각자 십자가의 상단부에 겨눠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십자가에 메여져 있는, 청년을 비롯한 스물다섯 가량 스피어측 생존자들의 목에.

평소 같았으면 칼질 한 번에 베어버릴 수 있는 해골들이지만, 청년을 비롯한 이들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심히 좋지 않았다.

약과 저주에 절여진 상황.

저 칼을 느긋하게 눌러주는 순간 자신들이 구하러 온 이들은 그대로 목이 분리되어 하급 기사인 듀라한의 재료 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다다른 순간에서야 사내는 자신의 깊은 본연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대의를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싸워왔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은 결국 가까운 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찬. 너도 우리와 같아서 실패했던 걸까.'

콰득.

"자리를 옮길 필요는 없다. 이 자리에서 인질을 보내라. 우리도 바로 넘겨줄 테니."

칼을 움켜쥐며 결단의 통보를 보낸 사내는 그제서야 몸을 돌리며 검기에 몸이 포박된 카트란에게 다가왔다.

굳게 다문 입술과 표정으로.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너도 이해는 할 수 있겠지. 이해해 주진 않겠지만."

그 말에.

"아뇨. 저는 항상 이런 상황을 이해합니다. 비슷한 상황이면 저도 그랬을 거니까."

"...?"

태연한 카트란의 태도에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든 대화를 듣고서 도저히 여유롭게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설마 모두 놓아버린 것인가?

이 압도적인 전력차에?

그러거나 말거나 카트란, 강태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을 이해합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나를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 베어!"

무언가 섬뜩한 느낌에 사내가 주변을 감싼 이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포옹!

키리리리리릭!

정팔면체, 금속 생명 내부의 분리된 이면 세계에서 차츰차츰 마력을 삼키며 자라고 있던 알레고리아의 반지가 바깥으로 퐁 뱉어지며 사방으로 시뻘건 붉은 빛을 토해냈다.

반경 30m를 모조리 갈아버릴, 심지어 본인조차 무사하지 못할 일격!

"미친 새끼! 자폭을!"

이에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검벽을 휘둘러 치며 뒤로 몸을 튕겨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붉은빛의 칼날이 휘몰아치며 주변의 동굴 벽을 사납게 휘감아 삼키고 날아들던 검벽들을 모조리 퉁겨내 사방으로 처박았다.

온 동굴을 원형으로 갈아버리고 지축을 뒤흔드는 강렬한 일격!

콰르르릉!

그렇게 커다랗게 뻥 뚫려 난 동굴 속, 무너지는 천장과 흔들리는 땅 사이에서 사람들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던 그때.

쿠구구구구...!

거대하면서도 익숙한 이족보행 기체가 온몸에 푸른 광채를 휘감은 채 먼지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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