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61화 (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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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해볼까?'

강태석이 달빛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만약 정말 뇌지국의 정통 후계자였다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실권도, 권력도 없는 허수아비 신세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아니, 사실 확률 정도가 아니라 100%이다.

주변 이들은 웃으며 자신을 떠받들어 주겠지만 혹여 자신이 권력을 탐하거나 혹여 실권을 잡으려고 한다면 그 즉시 표정이 변해 착실하게 자신의 손발과 세력을 잘라가며 길들이기를 시전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옥좌에 앉아만 있으라고.

굿을 벌이고 떡을 먹는 건 다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강태석 본인에게 있어 그건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누구도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권력? 명예? 지위? 세력?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를 유지하려면 무조건 시간이건 돈이건 노력이건 감정이건 무언가를 투자하고 낭비해야 한다.

강태석 본인은 이를 <자원의 낭비>라고 불렀다.

자신의 한정된 시간과 노력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누군가는 자신을 보며 말할 것이다.

네가 그럴 시간이 있느냐고.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워 뇌종을 삼키고 새로이 세력을 일으킨 뒤 위풍당당하게 돌아가 아너스빌을 비롯한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본래의 권리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그것들이 자신에게 소중하고 귀하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정말 진실대로 말하자면...

<소중하지 않다.>

강태석이 밤하늘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너스빌이 가져갔을 파일런도, 세력도, 군대도, 병력도.

뇌종의 각기 다른 파벌들과 수많은 힘들도.

모두가 어느 정도 필요하긴 했지만, 진실로 소중한 건 아니었다.

다만 당장 써먹어야 했을 필요가 있었으니 키워내고 굴린 것이지.

자신이 예전 이 게임 내에서 이루어 냈던 것들과 쥐었던 것들에 비하면 이 변방, 레벨 10~30대 사이의 모든 것들은 너무나 하찮아서 사실 눈길 줄 필요조차 없는 것들이다.

정말 대단한 것들을 보고 느꼈다면 그 아랫것들에는 저절로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설령 지금의 자신 또한 약해져 그것들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보다 그것조차 모두 필요가 없어졌다.

해금된 한계.

완성된 조합 병기, <흑기사>의 소유.

자신은 단신으로도 이 대지를 헤쳐나갈 만한 힘을 손에 넣었다.

흑기사를 구성하는 전마강갑과 여의, 금속 생명은 모두 자신의 성장에 따라 함께 성장할 녀석들.

파르스는 원형의 틀만 제공했을 뿐, 자신의 마력이 공급되는 한 아예 다른 기체에 가까운 <흑기사>는 자신의 성장과 함께 더욱 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적절한 자원들만 먹여준다면 적어도 레벨 100 이전에 힘이 모자랄 일 따위는 없다.

홀로 이곳을 거치고 장벽을 넘어. 센트라의 대지를 지나고 대륙을 관통해 노아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다른 세계로 떠난다면 이곳에서 자라날 권세와 인연들이 모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떠올린 순간 강태석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키워 뒀더니 뒤통수 맞고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났지만, 그닥 나쁘지 않았다.

만신창이 몸뚱이였지만 홀가분히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벌떡.

생각을 마친 강태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부좌를 틀었다.

일어나자 주변, 자신을 바라보다 흠칫하는 이들의 기척이 느껴졌고.

그런 이들마저 기꺼웠기에 강태석이 어둠을 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이유가 무엇이건 자신을 구해주고 당분간 자신과 함께할 이들.

일단 중요한 건 자신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후우웅...

의식을 집중하자 말라붙은 어둠샘의 바닥과 손상된 마력 회로에 조금씩 생기가 휘돌기 시작했다.

극한까지 치러진 전투로 상해버린 마력의 근원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바닥까지 긁어 썼기에 완전히 회복되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지만,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이들이 있으니까.

잠시 후.

쿠르르릉...

어둠 속,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 속에서 가부좌를 튼 강태석이 온전히 몸을 회복시키는 데만 집중하며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

배, 함장실.

"태평한 자로군요."

창밖 아래, 갑판에서 가부좌를 튼 채 앉은 상대를 내려다보던 장발 머리 여인의 말에 청년 이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 까요. 생각보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잘 아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런 청년의 말에 이오스를 보좌하던 장발 머리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방심하지 마세요. 저 자는 생각보다 생존자 집단과 복잡하게 엮여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자칫 복수를 꿈꾸며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상처 입은 자신의 오른팔을 꾹 동여매며 여인이 차갑게 말했다.

무슨 지나가다 길 잃은 상대를 데려온 게 아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반란과도 같은 상황에 휘말려 있던 와중, 상대가 어찌나 만만찮던지 자신들조차 구출 와중 사상자가 나올 정도였다.

아무리 자신들이 소수였다고 한들 무시하던 생존자 집단과의 마찰에서 피해를 입게 되다니.

심지어 그들 중 여덟은 정말로 만만찮았다.

단장인 이오스와 부단장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칼을 맞대고 몰아냈어야 했을 정도.

하여간 그런 상황에서 구출해온 녀석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왕관만 씌워준다고 희희낙락거리고 있을까?

자신의 원래 자리를 되찾고 배신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건 누구나 가지는 욕망이자 본능.

그렇게 되면 저 사내는 자신의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뇌종 내에 스스로의 힘과 세력을 구축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를 이용하려는 파리들이 얽혀들게 되면 안 그래도 복잡한 현재 내부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런 여인의 말에 이오스가 뺨을 긁적였다.

'그럴 상대로 보이진 않았는데.'

상징 이야기를 하면서도 실로 무덤덤하던 그의 눈동자를 떠올리던 이오스가 이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은 책임이 있고 사명이 있는 포지션이다.

자신의 감만 믿고 행동할 수는 없으며, 정황을 따져본다면 자신의 보좌관이자 부단장인 여인의 의견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더욱 높다.

엄중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더불어 많은 소통도.

상징이라고 해도 도착하면 할 일이 많을 테니 말이다.

"일단은 내버려 두자고. 가서는 바쁠 테니."

갑판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이오스의 말에 여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

부우우웅...

배가 어느덧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밝아지기 시작한 바다를 지나 거침없이 한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C구역, <폐허지대>.

"온갖 동력원과 기능을 상실한 고철들이 쌓여있는 곳입니다. 거대한 고철 처리장 같은 곳이지요."

갑판 앞에서 바다를 보고 선 강태석이 이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폐허지대, 혹은 고철지대.

토스트기나 장난감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의 물건들부터.

정체불명의 전차나 무기, 이동수단 같은 커다란 물건들까지.

정말 수많은 것들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쌓여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기능이 망가지거나 동력원이 상실된, 사용 불가의 물건이라는 것.

심지어 C구역은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곳들과 다르게 에너지의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고 그걸 넘어 빠르게 공기 중에서 빠르게 방전되기까지 했다.

G구역의, 소장이 살던 지하 연구시설 같은 곳에도 전력은 들어왔는데 말이다.

말하자면 생존자들이 살아가기에는 썩 좋지 않은 대지.

하지만 되려 이점이 뇌종의 생존자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들이 몸에 지닌 특유의 뇌전의 기운이 동력원을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

바깥에서 병기를 이끌고 들어온 이들은 이내 동력이 바닥나 더이상 싸울 수 없었지만, 그들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싸울 수 있다.

그게 그들이 C구역에 자리 잡은 이유다.

쿠르릉...

어느 정도 배가 더 나아가자 저 멀리 산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산이 아닌 고철 무더기.

하지만 그 양이 어마어마했기에 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산처럼 쌓인 곳으로 강태석을 태운 배가 다가가던 그때.

파지지직...

'호오. 이거구나.'

갑자기 자신을 스치는 스파크.

동시에 마치 미욱한 무언가 꾸물거리는 듯한 권역으로 들어간 듯한 그 느낌에 강태석이 주변으로 손을 내저어보았다.

자신을 둘러싼 온 주변이 기운을 빨아 먹으려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자의 기운은 의념에 의해 보호되니 빨려 나간다거나 흩어지지는 않겠지만, 기계에 내장된 동력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 권역에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되고 이내 작동이 정지되어버릴 것.

차라리 석유를 쓰는 내연기관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발전을 통한 전력을 활용하는 축전지 타입의 동력원들은 모두 예외 없을 터이다.

'왜 여기만 이런 영역이 생긴 거지?'

속으로 의문을 표한 강태석의 옆에 선 이오스가 하선을 준비했다.

"이 배의 메인 동력원은 연료 내연기관이라 운행에 문제없지만, 보조 기관들이 곧이어 멈춥니다. 그래서 보통 저 항구도시에서 내려서 이동..."

하지만 수평선을 지나 고철선 아래, 육지를 향해 나아가던 배에서 앞을 바라보던 이오스의 표정이 굳었다.

별일 없어야 할 도시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

G구역을 뒤덮었던 사기 때문에 사고가 터진 것인가?

그렇지만 이오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 C구역은 그럴 리가 없다.

구역 전체를 휘감은, 통칭 뇌광의 영역은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지만, 그와 동시에 저주 같은 사념 또한 불태운다.

거기에 자체적으로 모두 뇌기를 수련하니 망자들 때문에 난리가 날 일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배가 좀 더 나아가고 도시의 전경이 들어오자 이오스를 비롯한 모두가 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고철산 아래 만들어진 도시 전체가 모조리 불타고 있었기 때문.

거기에 그 위에서 날뛰는 건...

콰아아아앙!

크러러럭...

"말도 안 돼. 기계병기들이 왜 갑자기 다시?"

10m에서 50m까지.

다양한 크기를 자랑하며 도시를 짓밟고 돌아다니는 거대한 금속의 생명체들을 보며 이오스가 주먹을 꽈득 쥐었다.

**

5층.

"나는 왜 맨날 이런 역할이지?"

투덜거린 청년이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넓게 펼쳐진 5층 전경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높이 20m의 표부와 100m 가까운 심부가 구분되어 있던 공간.

하지만 이 구분은 진즉 무너진 지 오래였다.

뻥 뚫린 콜로니의 양측 입구를 타고 침입해 들어온,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기계병기들에 의해.

구어어어어엉...

쿠르르르릉!

작은놈부터 커다란 놈들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는 녀석들이 섬뜩한 기계음을 흩뿌리며 생명의 기척이 없는 5층의 대지 위를 거닌다.

은신스킬을 최대한 발휘하여 숨은 채 녀석을 바라보던, 며칠 전 계곡의 지네들을 본진으로 몰아넣던 역할을 하던 청년은 그 당시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성공했다고 했는데 영 개운해 보이는 표정이 아니던 소주와 팔인방, 그리고 그 휘하 자락들.

돌아오자마자 소주는 담담히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앞으로 최단기간 내에 콜로니 전체를 삼킨다. 가리지 않고 생존자라면 모두 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전력 부족.

소주는 자신들과 파일런을 통한 군대라는, 양손의 꽃을 모두 쥐기는 했지만, 아직 그 숫자가 모자랐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먹어 치우고 더 많은, 파르스같은 중장갑병기들을 생산하며 더 많은 검기 사용자들을 배출해 내야 했다.

온 콜로니의 정복은 아직 시기상조.

그런 의문 속, 소주는 자신들을 향해 첫 명령을 내렸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 콜로니를 혼란과 파멸로 뒤덮을 것.

일통을 이루는 법은 둘 중 하나.

내가 강해지거나.

적들이 약해지거나.

그중 소주는 양지를 담당하기로 했다.

카트란이라는 녀석의 죽음에 슬픔에 빠진 집단을 재정비하고 탑을 세우며 전력을 강화하기로.

그렇다면 자신들이 담당해야 할 부분은 음지.

A구역부터 H구역까지, 가리지 않고 모조리.

살아있는 이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몽땅 뒤흔들고 박살 낸다.

특히 신경 쓰기로 한 곳이 지금 자신이 일부를 담당하게 된 C구역.

카트란이라는 녀석이 아마 도망쳤을지도 모르는 장소.

<배를 타고 갔으니 우리가 더 빠를 수 있다. 먼저 손을 써 놔라.>

"옳으신 말씀이지요."

콰르르릉...

콰르르르릉...

“우아아아아아아악!”

목숨 걸고 기계병기들을 유인해서 역장이 작동하는 통로를 통해 위층으로 우르르 퍼 넣고 있는 수하들을 보며 청년이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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