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62화 (16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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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르릉...

쿠어어어어어억!

"이런... 대체 무슨 일이!"

난리가 나고 있는 도시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는 배 위에서 당황하던 이오스를 보던 강태석이 턱을 매만졌다.

페이즈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으니 기계병기들이 날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기계병기들은 한 단계 더 진화하여 인류의 생존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는 데다 더욱더 공격적으로 몰아붙이게 되니까.

하지만 이렇게 속도가 빠르다면 뭔가 한 가지가 더 끼어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론은 금방 도출되었다.

'아너스빌. 막 나가는구나.'

강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군바리안의 혈통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건지 중간이 없다.

모조리 파괴하고 기어이 자신들의 발아래 두어야 하는 건 군바리안의 핏줄들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

아너스빌은 그저 차근차근 세력을 키워나가 다른 이들과 견주며 자라갈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혼돈 속 정복.

오롯함의 구현.

온 세상이 무너지는 속, 그 생존자와 자원들을 흡수하여 홀로 우뚝 서려는 생각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간다고 해도, 온전한 과정을 밟았을 때보다 더 큰 피해를 감수한 채 통일이 끝난다고 하여도.

아너스빌은 모든 것을 발아래 굳건히 지르밟아 철혈의 권좌를 원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동맹이니 협상이니 하며 착실히 흡수한다면, 들어와서도 대거리를 세우며 말을 잘 안 들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게 지금 눈앞에 벌어진 결과.

녀석은 얼마나 죽건 간에 일단 기존의 구세력을 모조리 뒤흔들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이건 어떻건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추후 이들 세력을 흡수하기 용이하다는 것들은 둘째치고.

당장 앞가림하기 힘든 이들이 신생, 자라날 G구역의 대지를 넘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하자면 시간 벌기.

구어어어엉...

“우아아아아아악!”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달린 주둥이를 쩍 벌리며, 도시 한가운데를 누비며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갈아버리고 있는 코뿔소를 닮은 크기 40m의 거대기계병기를 본 강태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라이노.

추정 병기 레벨 22.

파르스보다도 훨씬 강하고 동 레벨 검기 사용자 따위는 체급과 출력으로 압도해버리는 녀석이다.

레벨이 같다는 건 어디까지나 마력의 질이 동일하다는 것이지 볼륨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통상 같은 레벨이라면 인간보다 병기가 훨씬 더 강하다.

다만 일방적으로 밀리 진 않는다, 그 정도이지.

당장 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뇌종의 검기 사용자와 병력들이 쉽사리 녀석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중병기가 있기야 하겠지만 이런 외곽에까지 군대를 배치하지는 않았을 테니 출격하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릴 터.

이를 증명하듯 점점 더 땅과 가까워지는 배를 바라보던 이오스의 표정에 고뇌가 서린다.

잠시 후.

"안 되겠습니다. 배를 돌리지요."

이오스가 이를 끄득 악물며 내뱉었다.

성격상 같은 동지를 버리고 간다는 게 성격에 맞지 않음에도 결단을 내렸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 뇌지국의 적통 후계자인 강태석이 현재 중요하다는 뜻이다.

괜스레 이곳의 사건에 휘말려 강태석을 잃느니 안전하게 배를 돌리는 게 낫다.

수도의 역할을 하는 중심도시, <카멜>에 가면 충분한 군대와 세력이 있으니 기계병기들과 쉽게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오스의 말에.

"상징이 필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위기를 마주칠 때마다 도망가는 왕을 대체 어디다 세우려고."

"아직 저들은 모를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일단 임무를 완수하는 게 중요하고."

이오스를 대신해 대답한 건 보좌 역할을 하던 흑발 여인.

흑발 여인은 되려 차가운 표정으로 덤덤히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저 항구도시는 자신들, 적통 파벌과 사사건건 대립하던 군소 파벌 중 하나.

항구라는 이점을 움켜쥔 채 다른 세력들과의 교역을 벌이며 정보를 팔아넘기고 제 잇속을 챙기며 세력을 키우던 녀석들이었다.

저런 녀석들을 위해 자신들, 적통 파벌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지금 임무를 포기하고 리스크를 짊어진다?

그럴 수야 없는 법.

그런 흑발 여인의 말에 강태석이 웃었다.

굳이 자신은 영웅 놀이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때론 명분이란 장단에 휩쓸려 놀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뇌지국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서면 무엇을 얻게 될 지 잘 안다는 의미.

거기에 더 중요한 것.

지금 자신은 강해지고 싶으며.

지금 눈앞에 강해지기 위한 기회의 장이 타이밍 좋게 열려있다.

이제 좀 있으면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놈들도 잔뜩 생길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찌 이 좋은 기회를 놓치리?

키이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앙!

강태석이 의념을 뿌린 순간 옆에 작게 떠 있던 금속 생명이 안팎으로 뒤집어지며 거침없이 크기를 키우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동체를 자랑하는 파르스를 토해냈다.

언제 보아도 공간의 법칙을 무시하는 신기한 광경.

쿠웅...

"!!"

갑작스레 나타난 이족보행병기의 등장에 흠칫하는 이들을 내버려 둔 강태석은 곧바로 파르스를 밟고 위로 뛰어올라 그 안에 탑승했다.

키이잉...

콕핏이 닫히자 내외가 구분되며 바깥의 난리통과는 전혀 다른 안락함을 선사한다.

그 속, 사방을 통해 몰려드는 온갖 정보들을 스윽 훑은 강태석이 자신의 마력을 체크했다.

배를 타고 이동한 근 이틀 동안 회복한 마력이 대략 40%가량.

만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날뛰기에는 충분한 수치다.

콰르르릉...

강태석이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콕핏 내부로 투사한 순간.

촤르르르르르륵!

여의와 금속 생명, 전마강갑이 퍼져나가며 다시금 파르스 전체를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

콰드드드득.

콰득.

촤르르륵...

"...!"

바깥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이오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눈앞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허공에서 나타난 이족보행병기.

거기에 한술 더 떠 그 전신에서 일어나는 변화.

촤르르르륵...

내외가 검은색의 장갑으로 뒤덮이고 내부구조가 또 다른 고차원적인 무언가로 변하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전쟁을 거치며 온갖 중장갑병기를 보아온 이오스로서도 처음 보는 구조, 처음 보는 병기.

거기에 갑작스레 허공이 쩌억 갈라지며 크기 6m에 달하는 기묘한 칼이 튀어나오고.

콰득.

변해버린 병기의 손에 쥐어진 순간 칼 또한 더욱 크고 두터워지며 병기에 걸맞은 크기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배 위로 나타난 건 크기 9m, 늠름하기 그지없는 흑색 장갑과 거검을 두른 거구의 기체.

콰앙...

<먼저 갑니다. ‘왕’으로서. 천천히 오세요.>

발을 내디딘 기체의 윗부분으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무시하던, 허튼짓하지 않고 인형으로만 남길 바랐던 남자의 목소리.

이에 이오스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

쿠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앙!

갑판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칠흑의 기체가 순식간에 백여 미터를 가로지르며 저 멀리, 온갖 기물들이 날뛰고 있는 도시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아아앙!

항구도시라는 별칭에 걸맞게 바닷가에는 제법 떠 있는 배들이 많았다.

콰아아아앙!

온전히 흑기사를 발현시킨 강태석은 그 배들을 발판 마냥 하나씩 짓밟으며 거침없이 도시를 향해 내달렸다.

원래도 무거웠는데 여의와 금속 생명까지 집어삼키며 100t은 훌쩍 넘어가는 무게로 바뀐 흑기사가 뛰어내릴 때마다 배들이 단번에 갑판이 일그러지고 용골이 으깨지며 두 동강이 나고 바다로 꼬르륵 가라앉았다.

제법 커다란 배들은 버티긴 했지만, 그조차도 출렁거리며 크게 박살 났을 정도.

어차피 이대로라면 다 망할 도시, 누가 손해배상 청구를 하진 않을 것이리라.

설령 청구해도 뭐 뇌종에서 갚아주겠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몇 척의 배를 으깨고 뛰어 내달리니 어느새 육지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마치 운석처럼 대지를 지르밟고 착지한 강태석이 흑기사 전용으로 뒤바뀐 칼을 후웅 휘두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

어디서 이렇게 솟아났는지 모를 수많은 기계병기들이 도시의 내외로 날뛰며 헤집고 있었다.

이후 강태석이 살핀 건 내부.

쿠르르릉...

금속 생명과 여의에 의해 한 번 더 뒤바뀐 코어가 거침없이 에너지를 뿜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파르스의 코어는 마력처럼 내버려 두면 스스로 채워지는 형태가 아니다.

한번 전투가 끝나면 충전을 해줘야 한다.

아직 여력이 있긴 했지만, 저번 전투 이후 충전하지 않았으므로 지금 출력 잔량, 대략 25%.

저번에는 마력이 모자랐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동력원이 모자라게 생겼다.

거기다 더 안 좋은 건 이 C구역 전체를 감싼 정체불명의 영역.

키잉...

사방을 감싼, 동력원들을 무력화시키는 아지랑이들이 기체의 내부로도 파고들어 야금야금 에너지를 흩어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충전은 고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전되어 버릴 터.

하지만 강태석은 이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었다.

금속 생명에 집어 삼켜져 마찬가지로 변해버린 손의 무기, NO. 111.

후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크기 9m의 거검을 높게 쳐든 강태석이 눈앞, 고철들을 덧붙여 만들어진 도시를 타고 달려드는 크기 11m의 기계 늑대를 내리찍은 순간.

콰드드드득!

콰득!

그동안 얌전하던 NO. 111이 사정없이 이빨을 드러내며 거침없이 내리 찍힌 기계병기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간은 먹을 것이 없다가 마침 먹을 것이 나타나니 거침없이 흉성을 드러낸 것.

이어 강태석도 가만있지 않고 흑기사의 주먹을 휘둘러 발버둥 치는 기계 늑대의 사지를 차례대로 박살 내 갔다.

얼마 후 떠오르는 상태창.

띠링!

<엘리아고르(LV. 17)을 처치하셨습니다.>

<상당한 경험치를 확보합니다. 육체가 강화됩니다.>

<현재 LV16(8.09%). 소정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엘리아고르의 코어를 통해 얻은 에너지가 파르스->흑기사에 공급됩니다. 현재 출력 잔량 26.%>

상태창을 보며 강태석이 웃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레벨이 오르고 기체가 강해지며 에너지가 충전된다.

출력의 한계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싸우고 짓밟으며 강해질 수 있다는 것.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사냥.

잠시 후.

콰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수백 미터 쭉 뻗어진 사슬 채찍 같은 칼에 목이 휘감긴, 50m 길이의 라이노가 괴성을 내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

고철산 정상.

"난리도 아니네."

서 있던 여인이 아래 벌어지는 참상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광경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우수수 쥐어 뜯겨 나가는 걸 보니 영 거시기했기에.

거기에 깨어나고 처음 본,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갔다는 기계병기들을 보니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은 일.

'자. 어디 있으려나.'

수백 미터 고철산 정상에 선 여인이 매의 눈으로 도시 전체를 주욱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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