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65화 (16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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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하. 진짜 미치겠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뇌지국의 오랜 명문가.

이곳에 와서는 항구도시의 주인.

사내, 빈마흔이 우르릉 떨어 울리는 고철산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아직 도시 반대편만 본격적으로 난리가 난 상황이지만 곧이어 그 해일이 곧바로 이곳을 향해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끝장.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몸 빠져나가기는 힘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반을 다질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가면 그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적통 파벌과 신흥 파벌.

그들의 줄다리기 사이에 한 다리 걸쳐 이편저편을 들어주며 양쪽 모두에게서 뭔가를 뜯어내려면 반드시 새로 자리 잡을 기반이 필요하다.

이곳, 고철의 산을 뒤져가며 찾아낸 귀한 것들과 분류해낸 핵심 자원들은 이미 배에 실어 뒀으니 몇 가지 핵심들만 좀 더 챙겨서 탄 뒤 떠나면 되는 상황.

비록 그동안 충실히 자신을 위해 일해준 도시민들을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것이 아깝기는 했지만...

"후우. 비상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콰아아앙...

쿠르르릉!

고철산 반대편, 도시에서 아스라히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던 빈마흔이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저 많은 이들이 배에 타려고 하면 안 그래도 많지 않은 배들이 모조리 가라앉아버릴 터.

혼란 속, 타지 못한 녀석들이 공격이라도 퍼붓는다면 더 문제가 커진다.

그럴 바에 그냥 소중한 사람들만 챙겨 떠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어설픈 동정은 화를 부르는 법.

그리고 사실 자신은 인간이 그렇게까지 동정할 가치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뭐 그래도 결혼은 잘했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먼저 배에 가 있을 자신의 후계인 묘령의 딸을 떠올린 빈마흔이 흥얼거리며 저택 내부에 남은 몇 가지 물건들을 추가로 챙기기 시작했다.

**

콰아아앙!

콰드드드드드드득!

구어어엉...

달려들던 거대한 라이노 하나가 머리 구석구석이 길쭉하게 뻗은 번개의 검기들에 의해 관통당한 채 노릇노릇 구워지며 바닥으로 쿠웅 쓰러졌다.

그 머리 위, 일곱 갈래 번개의 가지가 뻗은 뇌전의 칼을 들고 선 청년 이오스에 의해.

"허억... 커헉... 후욱..."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이오스가 쿵 쓰러진 라이노의 머리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자세를 다잡았다.

내상을 입을 정도로 기운을 끌어다 쓰고 싸운 끝에야 간신히 이 거대한 녀석 한 마리를 처지 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주변 대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터.

"... 군대가 빨리 합류해야 한다."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오스는 라이노가 쓰러지며 뚫린 포위망 사이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 너머, C구역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수도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재 중장갑병기들로 이루어진 뇌종의 군대를 지휘하는 핵심 파벌은 둘.

자신들, 적통 파벌의 임시 수장을 맡고있는 델토른 경.

그리고 신흥 파벌의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한 방계 왕족, 아리스.

뇌종내 다양한 세력들이 수많은 검기 사용자와 특전대, 혹은 엑소슈트 등의 무장호위부대들을 보유한 채 스스로의 힘을 뽐내지만 정말 군대라고 할만한 세력을 보유한 건 이들 단 둘뿐이다.

애초에 군수권자가 많아진다면 옆 동네 또 다른 11군세, <군벌연합>처럼 개판 오 분 전이 될 뿐이니까.

그나마 둘로 나뉜 것도 크게 양보한 셈.

하지만 돌아간다면 둘이 힘을 합쳐 이 위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10년 동안 기계병기들에 의해 망해버리고 이곳으로 쫓겨온 전철을 고스란히 밟게 될 테니.

심지어 이제는 도망갈 곳도 없다.

'... 그런데 그게 될까? 둘이 힘을 합치는 게?'

이제는 감정을 넘어서 때로는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악화되어버린 두 파벌의 관계를 떠올린 이오스가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려던 그때.

터덕.

"왔구나. 그런데 그분은?"

그분이라 함은 그들의 새로운 상징이자 왕.

이오스의 질문에 내려앉은 흑발 여인이 짧게 대답했다.

"산 쪽으로 가셨어요. 할 일이 있다고."

"산 쪽...?"

그 말에 고개를 쳐든 이오스가 어느덧 그들이 제법 벗어났던 도시의 한가운데, 높게 솟은 고철무더기의 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야말로 온갖 폐허와 고철더미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쌓여있는 언덕.

군데군데 항구도시의 도시민들이 쓸만한 걸 파헤치며 만들어둔 깊은 구멍들이 존재했기에 그 불안감이 더욱 심했다.

그리고 그 아랫자락.

터어어엉...

터엉...

홀로 고철의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흑색의 병기와 그 뒤를 따라 우르르 몰려드는 각양각색의 기계병기들을 바라본 이오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싸우느라 몰랐는데 어쩐지 포위망이 조금 느슨해졌다 했더니.

자신들을 자극한 번개의 주인을 쫓아 우르르 몰려간 모양이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은빛의 물결이 검은 점을 타고 역주행으로 기어 올라 산을 꾸물꾸물 뒤덮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오스가 침음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무너트릴 생각인가 본데."

"저 산을요?"

이오스의 말에 흑발 여인이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계병기들이 무겁다지만 라이노처럼 제법 거대한 놈도 수천 톤.

하지만 저 산은 수백만 톤은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육중하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질량.

만약 저걸 무너트린다면 개미 새끼들처럼 우르르 따라 올라가고 있는 녀석들의 대부분을 파묻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너트릴 수 있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이고.

흙으로 된 산도 무너트리려면 상상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데, 저건 금속 덩어리로 된 산이며, 불안해 보인다고 했지만 어디까지 <보기>에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 저걸 무너트리려면 말도 안 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칠흑의 기체와 황금의 왕관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

사람이 맨몸으로 산을 무너트리겠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그런 부단장, 여인의 말에.

"모르지. 또 어떻게든 해낼지."

"..."

<어떻게든>.

그 말보다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듯하다.

이오스의 말대로 여인을 비롯한 주변 대원들의 마음속에도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으니.

그런 이들을 바라보던 이오스가 이내 자세를 바로 세우며 다시 말했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한다. 일단 이 근방의 정리부터.”

대부분이 도시 한가운데로 끌려들어 가거나 남은 탓에 그들이 빠져나온 도시 외곽은 제법 한산했다.

이 부근만 정리하면 일단 한숨 돌릴 수 있을 터.

어디까지나 도시 가운데 문제가 해결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카르멘. 그리고 혹시 모르니 근방 작동하는 배를 찾아 둬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원 셋을 붙여주마."

그 말에 부단장, 카르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

콰아아아아앙!

"집요한 녀석들."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파파파팍 주파하여 발목을 부여잡고 펑펑 터져버리는 기계 딱정벌레를 보며 강태석이 혀를 찼다.

아까 전 흑발 여인, 카르멘에게 달라붙어 터지려는 놈들.

겉으로는 조그맣고 만만해 보이지만 속은 단단한 데다 내장된 자폭 구조는 제대로 터지면 검기 사용자의 목숨마저 앗아갈 수준이다.

말 그대로 평범한 인간이나 구조물들이 아닌, 본격적으로 검기 사용자만을 노리고 진화된 녀석들.

그 위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고출력 쉴드로 보호받고 있는 흑기사의 외장마저 저릿하게 울릴 지경이다.

덩달아 패여 나가는 발치의 폐허들.

콰아아앙!

콰앙!

안 그래도 육중한 흑기사가 내딛는 발 울림을 견디지 못해 군데군데 무너져 내리던 산자락이 녀석들의 폭발에 의해 뻥뻥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단 수백 미터를 내달리는 동안 벌써 내달려 터진 놈들만 해도 수십.

심지어 뒤쪽에서는 도시를 뒤덮은 놈들이 해일처럼 우르르 따라붙어 어떻게든 들이받고 짓이기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중에는 아까 전 쓰러트린 라이노 만한 녀석들도 셋.

무슨 마개조를 거듭한 건지 몰라도 종류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게 진화해 있었다.

쿠어어어어엉!

콰르르르릉!

발치를 무너트리며 거침없이 쫓아오는 녀석들을 본 강태석은 빙글 몸을 돌린 채 다시 바쁘게 가던 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고철산의 정상, 그 꼭대기로.

따라오는 녀석들을 후려갈겨 걷어차고 뿌리치며.

콰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득!

칼날이 휘둘러질 때마다 금속 생명이 적의 코어를 삼키고 그에 따라 출력은 점점 회복되어갔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마력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만전이지 않던 마력 상태.

자폭 벌레들의 공격에 끊임없이 깎여 나가는 마력.

하지만 강태석은 좀 더, 좀 더 정신을 집중하며 끊임없이 고철산 등성이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등산을 하듯 위로 올라갔다.

끝나기 전에 변신이 풀리면 곤란해진다.

물론 변신이 끝난다고 하여 죽는다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싸울 순 없겠지만 작아지기에 더욱 날래질 것이다.

그렇기에 이 포위망을 뚫고 벗어나 자신이 타고 왔던 배를 타고 떠나는 것 정도는 문제없을 테니까.

하지만 기껏 이렇게까지 해놓고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건 뭔가 좀 아쉽다.

영웅과 왕은 강렬함 속에서 태어나는 법.

첫인상을 강하게 남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난관을 타파하고, 도무지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은 적들을 모조리 해치우는 것.

이런 위업들이 하나, 둘씩 쌓여 초인을 만들고 철인을 만들며 위대한 자를 만든다.

굳이 추앙받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를 통해 앞의 행보가 편해진다면 굳이 피할 이유도 없다.

더 나아가 실질적인 이득 또한 넘치고 말이다.

콰아아아앙!

띠링!

<레벨 17 달성!>

<추가 스탯 4가 지급됩니다.>

<전마강갑이 집어삼킨 스킬 중 하나가 아닌, 전마강갑의 고유 스킬 중 하나가 해금됩니다.>

<스탯 투자... 흑선 1(전 근력>검체)/암흑 회로 1(전 반사 신경>뇌속)/짙은 그림자 1(전 체력>기심)/이상 상념 1(전 기술>기예)>

<금안이 정식 스킬로 등록됩니다. 최적화 작업을 끝마쳐 지속 시간이 2배 증가합니다.>

<강태석>

>레벨 : 17(0.09%)

>직업 : 전마강갑 지주(등급-?)

>스킬 : 전마강갑 장착*해방(?)/영뇌수(D+)/무량검기(D+)/그림자칼-지*인(D++)/금안(C--)

>스탯 : 흑선(D+) 12/암흑 회로(D+) 12/짙은 그림자(D+) 11/어둠샘(C+) 14/이상 상념(D+) 11.

>무장 : 전마강갑(?)/여의(S?)/칠채영창(B?)/오시리스(C-잠항 중)/알레고리아(B)/NO. 111(C+)

<금속 생명이 수많은 재료와 코어들을 집어삼키며 허기를 해소하고 한 단계 더 본질에 가까워집니다.>

<한층 더 높은 지성이 흑기사에 반영됩니다. 내외골격의 기본 구조가 뒤바뀌며 출력과 방어력이 11% 상승합니다.>

눈앞에 문구들이 떠오르며 전신에 걸리던 부담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전신 출력을 그러모은 강태석이 그대로 NO. 111을 휘둘러 자신이 서 있던 산 중턱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

"에이. 안되지."

쿠르르릉...

아래서 지켜보던 칼라다가 산 중턱에서 피어오르는 폭발을 보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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