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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168화 (16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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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와 여인, 카일란의 팔뚝 어림 상처를 본 이오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캐한 상처마저 나는듯한 흉터.

저건 분명 자신들, 적통 파벌의 뇌검기에 의해 생겨난 특유의 흔적들이다.

신흥 파벌과 달리 자신들, 적통 파벌은 과거 칸헬 대왕이 남긴 뇌전의 기공에 반드시 무언가 더 비밀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원본을 최대한 유지한 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이를 완벽하고 더 깊이 익혀내는 데에만 주력했으니까.

그 상징이 쭉쭉 갈라진 가지마냥 뻗어 나가는 흉터.

어찌 보면 예술과도 같은 그 흉은 자신들 적통 파벌에 의해 공격당했을 때만 남는 흔적이자 낙인이었다.

한데 왜 저게 지금 저 여인의 팔뚝에 있단 말인가?

'자작극? 아니면 정말로 우리 쪽에서 누가 나와 그런 짓을 벌였나?'

이오스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그 옆에 선 강태석도 소리치는 여인과 혼란에 빠진 이들을 보며 나름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어 나온 결론은 여러 가지.

정말로 여인의 말대로 이오스 쪽의 적통 파벌이 장난을 쳤을 수도 있고, 이곳에서의 선동을 위해 여인이 감성팔이를 시전중일수도 있다.

어쩌면 아너스빌의 수하, 혹은 또 다른 외부세력이 장난질을 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하나.

하암.

"어떻게 할 겁니까. 이오스."

"네?"

"적당히 정리해주세요. 내버려 두고 갈 거면 그냥 내버려 두고 가고."

강태석이 무관심하다는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그 말대로.

자신이 지금 무슨 인기 관리 해야 하는 대통령도 아니고, 대적과의 싸움은 경험치도 나오고 관심도 좀 있었지만 이런 쓸데없는 내분 관리야말로 이오스의 몫이었다.

자신이 무슨 부모도 아니고 이런 일이 모조리 나서 손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적당히 얽힌 관계, 그저 자신은 적당히 하면 그만이다.

차라리 이 시간에 그냥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리하고 레벨업이나 하고있는게 더욱 낫다.

'그러네. 차라리 진짜 그게 낫겠네.'

"아니면 역할을 분담할까요? 나는 근처를 정리하고 배까지 가는 길을 뚫을 테니 이오스 당신네가 책임지고 저 난리를 정리하고 사람들 데리고 오는 걸로."

"그건..."

"아니면 그냥 우리끼리 배 타고 가던지요."

강태석이 덤덤히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무시하던가, 해결하던가.

사실 눈앞에 있는 수천 명의 생존자들은 지금 상황에서 크게 자극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살려가는 게 어렵지도 않지만 살려간다고 큰 도움 되는 건 아닌.

내버려둔다고 죽을 것도 아니고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큰문제될것도 없는.

내버려 두고 갈 경우 저들이 후일 수도에 도달한다면 적통 파벌들의 명성에 다소 흠집이 갈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때쯤 되면 상황은 다 끝나 있을 것이다.

적통 파벌이 흩어진 이들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하나로 통일했건.

아니면 어찌어찌 붕괴되고 자신은 또 방랑의 길을 걷건.

둘 중 뭐가 되었건 그때쯤이면 저들 목소리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뜻.

즉 여기서부터는 그저 선택일 뿐이다.

신념일지, 혹은 편의일지.

이런 상황에서 더욱 나약한 저들을 지킬 것인지.

혹은 나약하기에 더 사나워질 수 있는 저들을 내칠 것인지.

하지만 그렇게 홀로 고민하는 이오스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옆에 있는 흑발 여인이 이를 까득 악물며 한발 나섰다.

"칸헬께서는 지금 이 사태를 무시하겠다는..."

"참고로 나는 오늘 내 할 일을 넘치다 못해 과하게 한 거 같아요. 왕가의 후예로서 안 부끄럽게. 내 능력도 어느 정도 보여준 거 같고. 여러분들 목숨도 구해줬으니 목숨 빚도 조금 갚은 거 같고.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내게 뭔가를 보여줄 차례 아닐까요? 뭐라도 좋으니까요. 저희는 그런 관계였잖아요? 제 오해라면 또 모르겠지만."

"..."

말을 끝까지 못 잊는 흑발 여인, 카르멘을 강태석이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충심을 지키는 신하와 이를 받아들이는 주인으로서 만났다면 모를까.

먼저 이용할 것이 있다 여겨 접근했고 자신도 이를 받아들였기에 자신들은 거래의 관계.

거래의 기본은 신용이고 신용의 기본은 능력.

자신은 어느 정도 보여준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이들이 어느 정도 보여줄 차례.

그런 강태석의 말에.

"... 주변 정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포기하는 건가요?"

이에 이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모시지요. 배까지 정리하며. 너희 넷. 칸헬을 모시고 배까지 가는 길을 뚫어 둬라. 나는 카르멘과 함께 이곳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갈 테니."

이오스의 선택은 전자였다.

조금 잡음이 있어도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가는 것.

그런 이오스의 선택에 이채를 띈 강태석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배로 가서 기다리지요.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한 시간 안에 마무리하지요. 이곳 정리에 사태조사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며 저 너머, 점점 더 격렬해지는 분위기의 사람들을 흘긋 보는 이오스를 향해 강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

쿠르르릉...

항구와 조금 거리를 두고 정박해 있던 배가 서서히 항구 쪽으로 진입했다.

중립 파벌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에, 그리고 동력원을 흩어내는 권역을 피하기 위해 세워둔 배를 끌어 항구 한켠으로 가져다 댄 것이다.

비록 조금씩 동력원이 갉아 먹히긴 하겠지만 짧은 시간 정도는 상관없다.

그리고 그 위.

'진짜 성공했네.'

쿠르르릉...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배 위.

가장 높은 층의 객실과 연결된, 마치 개인 정원처럼 꾸며진 발코니의 의자에 앉아 쪼르르 음료수를 마시며 아래 전경을 내려다보던 강태석이 항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보며 이채를 띄었다.

말이 한 시간이지 그곳에서 이곳 항구까지 수천 명을 이동시키는데 시간까지 고려하면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안에 당장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이들과 웅성거리던 이들 모두를 뒤섞어 설득하고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

혹시 말 안 듣는 놈들은 좀 패고 제압하면서 진행했나 흘긋 살펴보았는데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나 분노가 어리지 않은 걸로 보아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주동자 격인, 가장 앞에서 크게 소리치던 여인과 젊은 남녀들이 버젓이 사람들의 앞에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고, 과정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좋고 행복한 결말을 가져왔다는 이야기.

그렇게 탑승하던 사람들을 보고 있던 강태석을 향해 저 아래서 누군가가 빠르게 솟구치며 난간과 갑판을 밟고 차례대로 접근해왔다.

보좌이자 부단장, 카르멘.

타탁!

일순에 백여 미터 거리를 좁히며 강태석의 곁에 내려앉은 카르멘은 무슨 휴양지라도 온 것마냥 의자에 몸을 눕힌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강태석을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탑승하면 출발할 겁니다. 한 시간이면 되겠군요."

"수고했어요."

"..."

뭐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콧등을 간질간질거리던 카르멘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정중한 태도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이제는 보는 사람들, 보는 눈이 많아졌으니.

자신이 칸헬을 대하는 태도가 앞으로 저들이 왕가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

그렇기에 이제는 이 사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매우 정중히, 예의 바르게.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선 이유는 그렇게 해야 할 일들 중 하나, 보고를 끝마치기 위함.

"도시 서쪽 저택부터 시작하여 조사를 마쳤습니다. 범인 색출을 위해."

카르멘이 말을 이어갔다.

이오스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동안 자신은 수하 일곱을 더 이끌고 가 카일란이라는 여인이 말하는 참변의 조사를 위해 떠났다.

수하를 많이 데려간 이유는 혹여라도 조사 중 적의 세력을 마주칠 수 있기에.

그렇게 저택부터 시작하여 도시 반대편의 작은 개인용 항구까지, 그리고 그 근방마저 탐색을 완료한 카르멘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믿기 힘들지만... 완전한 적통 파벌의 흔적입니다."

항구까지 이어지던 도주의 흔적.

여기까지의 카르멘은 괘씸한 감정이 앞섰다.

피해자인 척 주절거리던 여인의 말과 다르게 녀석들은 누가 봐도 챙길 거 모조리 챙겨 도망치던 행적만을 보이고 있었으니.

하지만 항구로부터 갑작스레 난입해 치고 들어온, 강렬한 검기와 참변의 흔적을 본 순간 그런 감정은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다.

적통 파벌 중에서도 실로 높은 수준의 검기.

이 정도라면 자신은 물론이고 검공의 애제자인 이오스보다도 더욱 강하다.

적통 파벌 내, 다른 고관들이 끼어들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흔적.

그게 지금 카르멘이 침중한 이유였다.

신흥 파벌과의 싸움 마저도 바쁜데 자신들, 적통 파벌마저 이 난리통에 제멋대로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가 있다니.

하지만 이를 듣던 강태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것 같은데요.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에 강태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유가 별건 없긴 했다.

단 하나.

"제가 범인이라면 저 녀석들을 살려 두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저 아래, 어느새 생겨난 호위대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장 먼저 배에 성큼성큼 올라타고 있는 카일란과 젊은 청년들을 가리키며 강태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적통이란 가진바 품격과 품위에 의해 지탱받는다.

설령 그 아래 탐욕이 드글거려 이번 일을 저질렀다고는 해도 할 거면 정말 철저히 했을 거라는 이야기.

그래도 도시 하나의 재물을 털어먹는 일인데 한 명만 나와 일을 저질렀을까?

아무리 강해도 홀로 일을 진행하다 보면 빈틈이라는 게 생기는 법인데?

그리고 설령 하나만 왔다고 해도 그 정도로 강했던 하나가 저런 일반인들 숨어 있는걸 몰랐을까?

오히려 철두철미하게 주변을 다 수색해 쥐새끼 하나까지 잡아 죽이려고 해도 모자랄 판에?

그 말을 들은 순간.

"...!"

카르멘의 눈매가 샐쭉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걸 놓치고 있었기에.

다른 곳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들만의 검기에 눈이 가려 잊고 있었다.

그들이 특유의 전수기예보다도 더욱 지키고 싶어 하는, 품위와 명예에 대한 집착을.

"이제 가봐요. 바쁠 텐데."

"칸헬께선 무엇을 하시려고요?"

이에 강태석이 쭈루루룩 음료를 빨아들이며 말했다.

"하던 거요."

"..."

한량마냥 축 늘어지는 강태석의 모습에 간신히 억눌렀던 카르멘의 콧잔등이 한층 더 거세게 파르르 떨어 울렸다.

하지만 이도 잠시.

"물러나겠습니다. 푹 쉬시지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정중히 강태석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카르멘이 이번에는 발코니가 아닌, 객실의 문을 통해 조용히 물러났다.

**

카르멘이 물러가고 남은 자리.

쿠르르르릉...

사람들의 탑승이 끝나고 천천히 배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 강태석이 침대에 앉아 가부좌를 튼 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깊숙한 곳, 단전 위치에 자리 잡은 어두운 샘을.

쿠르르릉...

말라붙었던 샘과 경락이 다시금 솟구쳐 오르는 어둠에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 속도면 수도까지 가는 도중에는 별문제 없이 모두 회복될 터.

싸움은 레벨과 흑기사를 강하게 만들어주지만,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부러라도 쉬어주며 만전의 컨디션을 준비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레벨이 오르면 마력을 좀 더 투자해야 하나. 균형 잡힌 게 좋긴 한데.'

강태석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한층 더 정신을 집중하려던 그때.

쿵쿵쿵쿵!

“저기요! 이봐요!”

"???"

밖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눈을 뜬 강태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객실, 굳게 닫힌 자신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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