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179화 (17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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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르릉...

"쿨럭... 커헉."

박살 난 통제실 안에서 간신히 기어 나온 사내가 피를 토하며 이를 까득 악물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사내가 주변을 바라보았다.

단 일격.

단 일격에 금속과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방이 훤하게 트여버렸다.

그렇기에 사내는 다시 한번 자고 일어나 세상이 뒤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살던 시대는 단신의 무력만이 있다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살 수 있던 때였다.

칼 한 자루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고, 쓸만한 수하 놈들까지 있다면 정말 왕처럼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질주할 수 있었다.

평범한 민초 놈들은 그저 자신들이 먹을 곡식과 가축을 키우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던 수준이었을 뿐이다.

한데 달라도 너무나 달라졌다.

그 무지렁이들이 모여 집단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조직을 만들어 결국에는 이런 병기들이라는, 일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서운 것들을 만들어냈다.

일신의 힘만을 믿고 단신으로 세상을 뒤흔들던 시절은 스러진 지 오래다.

당장 자신들을 천벌마냥 후려친 이 강철의 일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녀석들이 만들어낸 걸 빼앗아 대항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거면 된 거다.

자신들은 여전히 포식자.

약한 놈들이 만든 게 있다면 이를 빼앗아 쓰면 그만이다.

"쿨럭... 후우. 다들 살아있지? 준비해라. 가자."

"크으."

콰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릉!

폐허 구석구석, 피를 흘리며 일어난 남녀들이 미사일들에 두들겨 맞기 시작한 금속섬 한쪽을 바라보며 침을 퉤 뱉었다.

**

촤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앙!

거침없이 강철의 칼날을 채찍처럼 뽑아내 저 멀리, 우뚝 선 터렛 타워 하나를 후려친 강태석이 자신의 몸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며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장막.

우우웅...

밀려드는 폭발의 열기를 막아내는 장막을 보며 강태석이 연기 속에서 철컹 발을 내디뎠다.

철크렁...

쉴드, 원래 이 녀석은 에너지와 연산력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현재 이 금속섬, 지하 어딘가 숨어있을 쉴드 발생 병기들도 하나같이 그 덩치가 상당하다.

옵저버같이 작은 녀석들은 자기 한 몸 지키기 급급했지, 전장에서 유효한 쉴드를 발생시킨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물며 흑기사 같은, 어디까지나 전투 기체 중엔 소형에 해당하는 녀석이 이 기능을 가지기엔 불가능에 가깝거늘.

외계 생명체의 고출력 코어와 금속 생명의 방대한 연산량은 이를 이 크기 10m도 안 되는 기체에 구현시키는데 성공시켰다.

지금 이게 그 증거다.

투투투투퉁...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연기 너머, 날아드는 포격들을 무심하게 온몸으로 버텨낸 강태석이 계속해서 강철 칼날을 휘둘러 차례대로 주변, 섬을 지키기 위해 세워져 있던 터렛들을 박살 내 갔다.

몸 안에서 넘치는 출력 때문에 굳이 자잘한 포격 따위는 이제 피할 필요도 없다.

분명 이전에는 몸으로 받아냈으면 순식간에 고철이 됐을 것들이지만 말이다.

쩌거거거걱!

콰아아아아아아앙!

이전보다 한층 더 강해진 출력의 사이오닉 칼날을 휘감은 채 주변의 작동하는 터렛들을 모조리 동강 낸 강태석은 일단 멈춘 포격 속, 주변의 자욱한 연기를 헤치며 쿵쿵 걸어 나가 사방을 살폈다.

금속섬은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의 형태와 같았다.

너르게 펼쳐진 금속 대지, 곳곳에 선 통제실과 방어 타워들.

그리고 어딘가 자리 잡고 있을 군 병기들까지.

사이즈가 훨씬 클 뿐, 용도도 비슷했다.

쿵쿵.

<그나저나 이걸 왜 집어삼킨 거야?>

강태석이 발치의 철판을 쿵쿵 두드리며 금속섬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뇌종 상대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화력에 압도적인 차이가 있으며 정말로 대거리를 하려고 덤벼들면 이미 준비를 마쳐가는 양측 파벌에서 쏟아지는 압도적인 화력에 섬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형체가 없이 지워질 것이다.

다만 양 파벌이 내버려 두고 있는 건 이 섬에 그래도 실려있는 화력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죽기 전 최후의 발악으로 쉴드를 쓰고 버티며 퍼부어 대면 수도라도 어느 정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재수 없게 선공을 퍼부었다가 그 불벼락이 자신들 머리 위로 떨어지면 그 수장들은 정치적으로 아래 세력들에게 말하기가 매우 곤란해지니 내버려 두는 것뿐이다.

<하여간 북한 같은 놈들이라 이거지.>

쿠웅...

강태석이 산책하듯 주변을 내걸으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북한이 낫지.

지금 이 상황은 북한 정부가 정체불명의 무장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강태석이 쳐들어와서도 이렇게 느긋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일단 대화라도 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놈들도 원하는 게 있으니 이 짓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와라. 얘기라도 해보게.>

쿠우웅!

강태석이 좀 더 강하게 발을 내리찍으며 갑판처럼 펼쳐진 대지 위로 소리쳤다.

일단 통제실과 터렛 타워들을 박살 내놨으니 섣불리 무력 도발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태석의 외침에.

"..."

"......."

금속섬 한쪽, 몸을 숙이고 있던 사내와 동료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

슈우우우욱...

수 없이 퍼부어진 미사일과 포격 속에서도 여유로이 우뚝 선 기체를 보며 사내가 주먹을 우득 쥐었다.

"저게 뭐야. 뇌종 비밀병기라도 되는 거야?"

"..."

그 말에 주변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형 기체 주제에 상식을 넘어선 방어력에 상식을 넘어선 공격력과 기동성, 한방에 쉴드를 몽땅 뒤흔들어 깨버리고 바다를 쿵쾅거리며 건너온 것도 모자라 퍼부어진 미사일 포격을 모조리 맨몸으로 버텨냈다.

아무리 병기가 발달된 시대라고 해도 상식이란 것이 있지.

저건 너무하지 않는가?

"어때. 댁이 보기엔 저게 정상 같아?"

"... 아니. 나도 처음 본다."

그 물음에 거의 인질로 잡히다시피 한 중년 여인이 침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중년 여인은 당연히 한 세력의 수장이자 뇌종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기에 군 병기들에 대해서도 제법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여인도 저런 기체는 처음 보았다.

단신으로 금속섬을 통째로 대적할만한 소형기라니.

설령 검공의 전용 중갑병기라도 저 정도 위력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여인을 향한 사내의 추가적인 질문.

"하나만 대답해봐. 지금 여기 군대 전력으로 저거 이길 수 있어 없어?"

"... 있기야 있지. 상대가 멍청하게 싸워준다면."

"못 이긴단 소리네."

사내가 한탄에 가까운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기체가 강하다 해도 소형기 주제에 전투 지속시간이 길진 않을 것이다.

포탄은 무시당하겠고 고화력병기들은 피해버리겠지만 계속해서 퍼붓고 몰아붙이면 못 이길 건 없다는 소리.

하지만 바보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싸워준단 말인가?

빙빙 돌며 철저하게 머리통만 찍어 부수면 자신들이 먼저 박살 날 것이며, 심지어 이 작은 금속섬에서는 도망갈 곳도 없다.

하지만 그게 문제도 아니고, 시간만 끌면 그만이거니와 싸울 게 자신들도 아니다.

저 멀리 우뚝 선 흑기사를 보던 사내는 옆의 중년 여인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아까 너희 수하들한테 신호 보내 놨지?"

"..."

"대답."

"보내 놨다."

"그래. 좋아. 이제 그러면 쏴."

허리춤의 신호탄을 가리키는 사내의 말에 중년 여인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 군부대를 장악한 자신의 수하들에게 내려진 신호는 하나다.

적색 신호탄이 피어오르면 일괄적으로 공격할 것.

패배가 명확한데 싸우라?

적에게 손속의 자비를 기대하지 않는 이상 모든 파일럿과 자신의 수하들은 궤멸에 가깝게 도륙당할 것이다.

시간을 주는 걸 보니 잔혹해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들이 총공격을 퍼붓는다면 저쪽도 여유를 둘 상황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

잠시 후.

끼리리릭...

허리춤의 신호탄 총을 뽑아낸 중년 여인이 조심스레 총구를 위로 올려 방아쇠를 잡아당길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스팟.

"끄윽... 아아아아악... 이이익!"

"신사적으로 대하려니까. 어디서 수작질이야. 녹색 말고 적색."

손날의 검기를 지워낸 사내가 땅바닥에 툭 떨어진 중년 여인의 손, 그 안의 총을 집어 든 뒤 조정간을 딸깍 바꾸고 하늘로 들어 올렸다.

이윽고.

피이이잉...

파아아아아앙!

한줄기 섬광이 솟구쳐 장막에 부딪쳐 터져 나가며 섬 위를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릉!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금속섬,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던 온갖 병기들이 갑판과 같은 대지 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들이 진짜!”

저 너머, 흑기사 쪽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욕설과 함께.

콰콰콰콰쾅!

쿵쿵쿵쿵!

콰아아아아앙!

각종 기계 거미 형태의 전차와 근접 중병기들의 격돌로 금속섬이 터져나갈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

수도, 저택.

!!!!!!!!!!!!!!!!!!!!!

!!!!!!!!

!!!!!!!!!!!!!!!!!

외교부장, 탈리만은 저택에 조용히 앉아 금속의 섬을 바라보았다.

둥근 장막에 뒤덮인 금속의 섬은 일정 이상의 소음마저 차단했기에 상당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섬광과 폭발의 불빛들은 감추지 못했다.

폭발, 격축, 붕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섬광과 흑기사로부터 솟구치는 검광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탈리만이 뒤쪽, 그라함을 보며 물었다.

"검공이 자신의 전용 중장갑 기체를 타면 저 정도 위력을 보일 수 있나?"

"... 무리이지요. 검공의 기체는 오직 기동성과 파괴력에 집중되어있습니다."

뒤에 서 있던 그라함이 저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검공의 전용기, <볼트라>

여덟 갈래를 넘어 아홉 갈래에 달해가는 검공 특유의 뇌망이 구석구석 기체 안을 파고들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움직임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방어력을 포기해야 했다.

기민하게 움직이고 걸리는 어떤 중갑병기도 잘라낼 수 있는 대신, 전장의 포격이나 거대한 구조물 파괴 등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라.

얼핏 보면 난잡해 보이지만 우위는 명확했다.

흑색의 기체.

소형기 한 대가 단신으로 금속섬의 방어를 뚫어낸 것도 모자라 그 안의 군대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여유마저 있어 보이는 상황이다!

“!!!!!!!!!!”

"..."

달려드는 기계 거미, 메탈스파이더의 탑승부는 내버려 둔 채 정확히 다리와 포신만 으깨 버리는 거친 칼날 채찍의 폭풍을 지켜보던 탈리만은 뒤쪽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지?"

"..."

"거기에 살아 돌아오면 적통 파벌 측의 늙은이들 몇몇은 고스란히 저 녀석의 손을 들어줄 테고 말이야."

이에 그라함이 <중립 파벌들 중 일부들도 그럴 겁니다.>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지금 이 결과는 탈리만이 원치 않는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새끼로 생각했건만 그 수준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어디 크게 한입 베어 물려 뜯길 수도 있다!

잠시 후.

"우리 쪽 군대. 준비가 끝났지? 마울러도."

"네."

"조준해라. 금속섬 쪽으로."

"...!"

탈리만의 말에 그라함의 표정이 크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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