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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자식이."
뭐가 문제냐는 듯 쇠지깽이 두 개를 들고 딱딱거리는 상대를 본 순간 호프만은 왜 그리 파스멜이 이곳에 오며 열 받아 있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놈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걸 넘어 신경을 긁어대는 놈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싸움에 자신의 애병이 아닌 잡동사니를 꺼내 들어?
하지만 분노도 잠시.
'후우. 내가 너무 찌들어 있었네.'
정신을 차린 호프만이 부르르 떨리는 검날들의 기동을 바로잡고 심호흡을 하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보는 것.
그게 예전,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항상 존대를 쓰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왔으며, 때로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항상 언제 어디서 자신을 노릴지 모르는 강적을 방심시키고 죽이기 위해!
그렇기에 호프만은 분노를 풀지 않았다.
지금쯤 열받은 것처럼 보이는 자신을 보고 상대가 계속 방심하도록 말이다.
이윽고.
콰르르르르르륵!
열받은 것처럼 성큼 다가가던 호프만보다 빠르게 주변을 빙글 돌던 칼날 세 개가 빛살처럼 거침없이 상대를 향해 질주했다.
젓가락을 딱딱거리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상대의 척추와 심장, 목젖을 노리며!
촤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허공을 가로질러 상대의 코앞까지 도착한 칼날을 보며 호프만이 웃었다.
빛살같이 빠르며 절대 피할 수 없다.
하나하나의 위력이야 좀 약하지만, 급소를 꿰뚫고 찢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젓가락 따위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호프만의 입꼬리가 하염없이 만족스레 올라가던 그때.
따다다당!
콰드드드득!
"...?"
"뭐. 왜."
날아가던 칼날 세 개를 젓가락으로 잡아 으스러 분질러 트리며 되묻는 상대의 모습에 호프만과 파스멜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
수도, 로블롭.
적통 파벌 구역, 제4 저택.
쿠르르릉...
"후웁. 하아. 이거 정말 끝내주는군."
지하실에서 수련 중이던 한 청년이 자신의 앞, 움푹 패인 강철 벽면을 보며 믿기 힘들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검기를 쓰지도 않았다.
단지 맨주먹으로 후려쳤는데 이게 눈앞의 결과물이었다.
금속이 우그러지고 저택 전체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금 자신의 옆, 곱게 포장되어 있는 한 개의 앰풀 덕분이었다.
사아아악...
"대단해. 진짜 대단해."
바닥의 앰풀을 집어 든 청년이 그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빛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사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 망해가는 세계 속, 자신의 소중한 하루를 향락과 망각으로 채워줄 수많은 미약들 중 하나라고 여겼으니까.
블랙네트워크 놈들이 오랜만에 가져온 신상이라 하여 적당히, 이제는 쓸 일도 없는 전투 병기 몇 개 던져주고 챙겨온 것이다.
하지만 어제 각 가문들의 후계 친구들과 모여 이를 한 대 피워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뭔가 다르다.
지금 몸 안에서 넘치는 힘이 그 증거였다.
뿌드드드드드득...
"크하. 으하하하하하!"
쇳덩이라도 쥐어짤 수 있을 것처럼 터질 것마냥 부풀어 오른 팔의 힘줄을 보며 청년이 광폭하게 웃었다.
이건 그냥 몸 자체가 차원이 다르게 뒤바뀐 느낌이다.
이전, 검기를 깨우치며 벽을 뚫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벽을 넘지도 않았는데 육체가 뒤바뀌는 듯 한 느낌이다.
붉은 액체로 만들어진 증기의 가닥 한올 한올이 몸 안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유전자와 세포와 결합하여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기에 청년은 한줄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들이마셨는데도 이 정도다.
한데 지금 눈앞에 있는 앰풀을 좀 더 복용한다면?
굳이 더럽게 힘든 데다 한다고 해서 잘 오르지도 않는 경지를 훅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특무대의 이오스같은 재수 없는 녀석을 누르고 자신이 훨씬 더 뛰어나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한 방울씩 물에 희석해 먹으라는 사용법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래가지고 언제 이걸 다 먹는다고."
고민도 잠시.
이죽인 청년은 앰풀의 끝을 돌려 아예 뚜껑을 열어버리고 안의 액체를 찰랑였다.
블랙 네트워크 놈들은 수량을 조절하려고 한 모양인데 녀석들 입장에서도 이게 낫지 않겠는가?
빨리 복용하고 빨리 녀석들에게 새로 사주면 놈들도 자신들에게 감사의 눈물을 흘려댈 것이다.
만약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면 더욱 문제고.
'다른 놈들이 먹기 전에 내가...'
이윽고.
주르르르륵!
앰풀의 액체가 시험관 끝을 타고 그대로 청년의 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
콰지지지지지직!
콰직!
콰지지지직!
총 스물여덟 개의 칼날들.
하나하나가 중장갑보병도 베어낼 수 있는 시퍼런 칼날들이 허공에서 거침없이 잡아 채여 우그러지고 부러지고 토막 난다.
어처구니없게도 가냘프기 그지없는 젓가락 한 짝에 의해서 말이다.
전후좌우, 위아래 사방.
모든 곳에서 빈틈을 노리고 몰아닥쳐도 무의미했다.
콰드드드득!
콰득!
콰득!
날아든 칼날은 차례대로 젓가락에 파리가 잡히듯 채여 박살 났고, 멀리서 강철의 꼬챙이를 든 채 이를 지켜보던 호프만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누가 봐도 이제 알 수 있었다.
젓가락을 들고 장난치듯 기어 나온 저 녀석은 강자 그 자체였다.
자신이 그토록 속이고 피하고 싶어 했던, 그런 종류의 강자 말이다.
"선배. 저놈은 나보다 한술 더 뜨네요. 이런 촌구석 판자촌 같은 데서 기어 나오고."
"엉? 대체 뭔 소리야 그게?"
"아니에요. 그나저나 어쩐다."
굳건히 고철 더미 앞을 지키고 선 상대를 보며 호프만이 혀를 찼다.
보아하니 자신들이 노리는 꼬맹이 둘은 저 안에 있는 모양인데 저렇게 움직이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차라리 자신들에게 달려들면 자신들은 둘이니 흩어져 한 명은 시간을 끌고 한 명은 인질을 잡을 텐데.
자신들이 뭘 하건 말건 저 자리에 우뚝 서 개무시를 하고 있으니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잠시 고민하던 호프만이 슬쩍 몸을 숙여 파스멜에게 속삭였다.
"선배. 꺼내 봐요."
"뭘... 뭘 꺼내."
"그거 있잖아요 그거. 아까 전부터 계속 품에서 만지작거리는 거."
"!!!!"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호프만의 말에 파스멜이 기겁을 하며 몸을 쑥 빼냈다.
이놈 새끼가 그걸 어찌 알고?!
아니, 그 이전에 알면서도 계속 모른척했다는 말인가?
그런 파스멜의 모습에 호프만이 혀를 찼다.
"아니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티를 내면서 와놓고 어떻게 몰라요."
"..."
"하여간 어서 꺼내서 보여줘요. 결정해야 하니까."
"... 뭘."
"빠질지 말지."
호프만이 하품을 하며 선 상대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칠지 나중에 다시 올지.
파스멜이 가진 게 뭔지 몰라도 지금 한번 찔러 볼 만하면 찌른다.
하지만 꺼낸 게 아무리 봐도 각이 안 나오면 일단 물러난다.
그리고 그냥 자신들의 볼일 보는 데 집중하거나 여유 좀 생기면 우르르 몰려와 덮친다.
인해전술은 자신이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고래로 가장 유용한 전법들 중 하나이니.
블랙네트워크의 정예, 더 나아가 부족하면 자신들 심심할 동료까지 몇 모아 오면 크게 문제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호프만의 말에 침묵을 지키던 파스멜은 이내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투박한 손에 들려 나온 건 작은 스위치였다.
그리고 그 스위치를 본 순간 호프만이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파스멜을 바라보았다.
"이런 걸 꿍쳐두고 있었어요? 와."
"... 제발 좀 닥쳐."
스위치에 음각된 글자를 꾹 쥐며 파스멜이 작게 중얼거렸다.
**
블랙네트워크, 창고 지역.
"와씨. 우리 이번에 이런 것도 얻어 왔어?"
"그래. 철저하게 관리하라고 하시니까 잘 준비해."
"요즘 적옥인지 뭔지가 잘나가긴 하나 보네. 유력가 그 작자들이 이런 것까지 지불하고."
고철 더미 사이, 우뚝 솟은 강철의 컨테이너박스를 보며 블랙네트워크 소속 여인이 감탄을 토했다.
컨테이너박스라고는 하지만 그 크기부터 차원이 달랐다.
높이 폭 25m, 길이 75m.
작은 건물 하나를 눕혀 놓은 것 같은 금속광택의 상자.
누군가 위에서 발아래를 본다면 위에 그려져 있는 수십 개의 원형에 의아해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용도인지 알 수가 없으니.
그런 컨테이너를 바라보던 여인이 직속 선배를 보며 물었다.
"이제 이거 있으면 우리랑 부딪치던 놈들이 깔짝거릴 생각도 못 하겠죠? 그 지방에서 올라온 놈들이 주워 먹을 거 없나 계속 기어들어 오던데."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당분간 쓸 일은 없을 거야. 아무리 허가받았다고 해도 그렇게 막 쓸만한..."
그렇지만 아래, 고철 의자 위에 앉아 잡지를 읽던 선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
쿠구구구구궁...
끼이이이이이익...
"!!!!!"
쿠르릉거리는 진동.
이어 뭔가 끼극거리며 열리는 소리에 여인과 선배가 모두 벌떡 일어나 컨테이너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게 작동한다고?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
콰르르르르릉...
콰콰콰콰쾅!
컨테이너박스 위, 열린 해치를 통해 세 발의 미사일이 굉음을 토해내며 고철 지대 위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궁...
타타타타타타탁!
"뛰어... 뛰어뛰어뛰어!"
"후우... 선배 그런데 그거 써도 괜찮아요? 진짜? 그 꼬맹이들도 다 죽는 거 아니에요?"
미친 듯이 내달리던 파스멜이 뒤쪽, 호프만의 외침에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럴 리 없어! 그놈만 딱 타겟으로 설정했으니까. 그놈도 꼬맹이들을 살리려면 최대한 멀어지겠지!"
쿠구구구...
고개를 돌린 파스멜이 저 멀리, 굉음을 토해내며 고철 지대를 가로질러 날아오는 세 줄기 연기를 바라보았다.
아직 거리가 멀어 느려 보이지만 실상은 음속의 몇 배를 뛰어넘는 속도다.
아무리 검기 사용자라 한들 절대로 달려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당연히 몸으로 버텨낼 만한 수준도 아니고.
쿠르르르릉...!
'멍청한 놈. 네 힘을 믿고 자만했지? 이제 어떻게 하나 보자.'
한참이나 멀어진 곳에 떨어져 하늘에서 날아드는 심판을 바라보던 파스멜이 이제는 고개를 돌려 아까 전, 자신들이 서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M-114.
대중장갑 전용 미사일.
그 위력과 사정거리는 근거리 방위용으로 만들어진 터렛타워의 몇 배를 상회한다.
당연히 저딴 걸 자신들 같은, 군을 쥔 이들이 아닌 암시장 나부랭이들이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빼돌려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수도 근처에서 저딴 걸 쏘는 순간 즉시 양 파벌의 군대가 잿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밀어버릴 테니까.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건 <한정 허가권>.
양측 파벌이 허락한 사용범위 내에서, 허락한 퇴역 무기 종류를, 금지된 대상 외에게 사용할 수 있다.
즉 자신들한테만 까불지 않는 조건하에 내려주는, 충성스런 이에게만 한정적으로 지급되는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돌고 돌아 홍옥의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손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방금 전, 자신의 손에서 사용되었다.
오차범위 50cm,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재앙.
녀석이 어디로 도망치듯 세 줄기 불벼락은 그 위로 내리꽂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내리라.
'잿더미가 돼서 죽...'
"...???!!!"
"선배 왜요?"
"저 새끼 왜 아직 저기 있어!"
쿠구구구...
내리꽂히는 미사일 아래, 멀뚱히 선 상대를 보며 파스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놈은 저기 있어서는 안 된다.
곁에 있는 꼬맹이들마저 흔적도 없이 불타오르고 비전마저 사라질 테니!
왜 꼬마들 곁에서 안 도망가고 아직 서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미사일은 충돌 직전이었다.
꿈.
뻑.
눈 깜빡할 사이에 하늘 위, 수백 미터를 쪼갈라 내리꽂히는 세 줄기 연기를 보며 파스멜이 이를 악물던 그때.
후우우우우우욱!
땅에 선 상대의 옆에서 무언가가 거칠게 튀어나와 그대로 세 줄기 벼락을 잡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