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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멸망 n% 진행중-187화 (18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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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지대, 외곽.

콰아아아앙!

".... 정말이지 미쳐 돌아가는군."

저 멀리서 질주해 내달려 외곽에 수평에 가깝게 내리꽂히는 세 줄기 연기를 보며 여인, 카르멘이 혀를 찼다.

자신도 한정 허가권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개인의 욕망과 부패한 권력이 조합되어 만들어낸, 절대 흘러나가지 말아야 할 권리의 유출이다.

세상에 군벌도 아닌 일반 세력들에게 미사일 사용 허가권이라니.

비록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게 몇 가지 제한이 걸려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과하다.

쿠르르릉...

저 멀리, 피어오르는 불꽃과 연기를 보던 카르멘이 휙 고개를 돌려 하던 일에 집중했다.

지금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칸헬을 찾아야 한다.

신흥 파벌, 혹은 또 다른 누군가가 그를 발견하기 전에.

잠시 후.

타탁.

뒤쪽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꽃을 남겨둔 채 카르멘이 그대로 몸을 날려 하던 일에 집중했다.

**

콰르르르릉...

"..."

"......"

파스멜과 호프만이 할 말이 없다는 듯 멀리서 피어오르는 검은 화염과 연기를 침묵을 지키며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속, 불타오르는 화염 속에 선 자를 보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상대의 옆,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있는 굵고 거대한 강철의 검은 팔뚝을.

콰지지직...

콰직...

뻗어 나온 거대한 팔뚝과 손아귀가 무슨 장난감을 움켜쥔 양 세 개의 미사일을 손안에 쥐고 으스러트리고 분지르고 있었다.

자신의 손아귀에 힘을 주며, 과자를 으깨 버리는 것처럼.

덕분에 반경 백여 미터를 흔적도 없이 불살랐어야 할 미사일이 그저 유폭되어 주변에만 검은 연기와 화염을 흩뿌리고 있었다.

중간에 이를 잡아챈 저 검고 우악스런 금속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저게 대체 뭐야..."

스스스슥...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거짓말처럼 빨려 들어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검은 손아귀를 보며 파스멜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뭔가 숨겨놓은 게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심지어 팔뚝만 튀어나왔는데 이 정도다.

자그락.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나는 파스멜의 뒤,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키며 지켜보던 호프만이 어느 순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저거였군요. 녀석들이 말한 것이."

금속섬에서 기어 나온 녀석들이 말했다.

강철의 흑기사 하나에게 모조리 썰렸다고.

칸헬.

자신들, 소주의 대적자.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음이 느껴지긴 한다.

자신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방법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동료들을 데리고 오면 조금 달라질까 했지만...

'안 되겠군.'

호프만이 냉철하게 판단을 내렸다.

저건 사실상 군대로 상대해야 하는 영역이다.

자신들 동료들은 강하며 기기묘묘한 재주들을 가지고 있지만, 저런 걸 상대하기엔 영 가성비가 좋지 않다.

설령 이겨도 죽어 나갈 숫자를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이야 아니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신은 여기서 죽을 것이다.

"쯧. 선배."

"엉... 엉?"

멍하니 어쩔 줄 모르는 파스멜을 보며 피식 웃은 호프만이 파스멜의 가슴팍을 툭 밀치며 말했다.

"도망가세요. 혼자라도. 여긴 내가 어떻게 끌어볼 테니까."

"... !?"

이에 뭔가를 깨달은 파스멜의 표정이 창백해진 순간.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

단번의 도약으로 운석처럼 그들 앞에 내리꽂힌 강태석이 팔을 붕 돌리며 흙먼지 속에서 걸어 나왔다.

**

후두두두둑!

박살 난 파편, 튀어 오르는 먼지.

도약의 여파로 으스러진 대지 속에서 걸어 나온 강태석이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 흑기사와 연결되어 있었던 손아귀의 감촉을 떠올리며.

실험은 성공.

흑기사의 일부만을 구현해 끄집어내는 것 또한 이제는 가능했다.

마력의 소모는 줄이고 파괴력은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전체 구현에 비하면 당연히 전투력이야 밀리지만, 방금 전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나저나... 한 놈?'

타타타탁!

저 멀리, 뭔가를 들었는지 몰라도 한껏 창백해져 부리나케 도망치는 상대를 보던 강태석이 의외라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남은 칼자국 사내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정체는 이제 대충 짐작이 간다.

군바리안의 자락, 아너스빌의 수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속섬에서 녀석들의 뿌리를 다 뽑은 게 아니었고, 그 잔당들이 이렇게 조용히 숨어 움직이고 있었다.

의외인 건 지금 녀석이 도망치지 않고 남았다는 것이다.

"왜 남았지?"

호기심은 독.

강태석은 항상 이를 알고 있었지만 끊을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몇 안 되는 동기마저 사라지니까.

그렇기에 강태석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저 녀석을 도망치게 하고 눈앞의 녀석이 남았는지.

아무리 봐도 지금 녀석의 역할은 위장이다.

임무를 위해 숨어들었을 뿐이며 선배선배 거리고 있었지만 그 우위는 명확했다.

한데 미끼로 내던지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리를 지킨다?

그런 강태석의 말에.

후웅...

"아직 우리 계획이 진행 중이라 내가 할 일을 하는 거기도 하고... 또 나름 정이 들거든."

허리춤에서 또 다른 두 자루의 칼날을 뽑아 든 호프만이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웃으며 강태석의 앞을 막아섰다.

의태.

약자들의 품 사이에 섞여 들어간다.

그게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전략이었다.

동시에 강자들을 죽일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자신이 생각보다 정에 약하다는 것이다.

'아아. 진짜 큰일이다. 분명 악당 놈들인데 말이야.'

파스멜과 그 누나, 두 남매를 떠올리며 호프만이 웃었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둘과 다르게 빈민가에서 죽어버린 자신의 누나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 둘이 죽는 것보다는 여기서 자신이 남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파스멜이 남아 봤자 시간을 끌겠다는 의미가 없기도 했다.

차아앙.

"시대가 바뀌어도 이게 편하네."

호프만이 자신의 손에 쥔 두 개의 칼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떠나오기 전 챙겨왔던 두 개의 병기.

아까 전 기계 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의 손에 가장 잘 익은 무기이다.

잠시 후.

화르르르르륵...

불타오르는 적색의 검기를 칼날에 두른 호프만이 상대를 보며 웃었다.

"덤벼."

자신이 죽어도 계획은 완성된다.

더불어 파편 또한 남겨놓았다.

콰르르르릉!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상대를 본 호프만이 그 너머, 두 꼬맹이가 남겨져 있을 고철 더미 방향을 샐쭉하게 휜 눈으로 바라보았다.

**

고철 더미 속.

콰르르릉...

파지지지직!

"이게... 이게 진짜 우리 선조들의 힘?"

어둠 속에 남아있던 소년이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황홀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신 구석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강맹한 뇌전의 힘.

예전, 무겁기만 하던 몸뚱이가 아니다.

혈관이, 기맥이, 심장이 폭발하듯 에너지를 생산해내며 온몸 구석구석에 불어넣고 있었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각성하듯 깨어나고 육체가 차례대로 재구성될 준비를 마쳤다.

비록 지금은 재료도, 준비도 미약했기에 변화하지 않고 있지만 이내 가문의 수련법을 조금만 수행한다면 자신의 육체와 경지는 폭발적으로 자라나게 되리라.

부르르르...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떤 소년이 순간 퍼뜩 정신이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있어야 할 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내, 그리고 자신의 동생.

철그럭.

황급히 주변을 확인한 소년이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향했다.

고철 더미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후우. 놀랐네. 거기서 뭐하고 있어. 에멜."

소년, 카인이 바깥에 쪼그리고 앉은 소녀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멜.

자신의 동생,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할 녀석.

콰득.

솟구치는 힘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쥔 카인이 성큼 쪼그리고 앉은 에멜에게 걸어갔다.

이제 이 힘으로 녀석을 지켜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걸어가던 카인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쪼그려 앉은 에멜이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닥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보고 있는 것은...

'시험관?'

작은 유리관 안에 담긴 것은 선홍빛의 액체였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 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동생에 걱정된 카인이 성큼 다가가려던 그때.

꿀꺽.

"!!!!!!!!!!!"

파파파파팍!

갑자기 바닥에 있는 앰풀을 들어 안의 액체를 모조리 훅 마셔버리는 동생의 행동에 카인이 기겁을 하며 후다닥 달려갔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커헉..."

고철 더미 속에 거칠게 처박힌 호프만이 입에서 쿨럭 피를 토했다.

이미 검기는 꺼지고 자신이 자랑하던 두 자루 칼은 형편없이 부러졌다.

저벅.

"으흐흐흐. 하여간 태어나서부터 재수가 있었던 적이 없네요."

무심하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상대를 보며 호프만이 실소를 토했다.

어려서부터는 빈민가에 태어나 악을 쓰며 살아야 했고, 누나마저 죽어가는 와중에 어떻게든 강해진 이후로도 스스로를 감추며 최대한 안전하게 살아왔다.

한데 금속섬 조에 비해 실로 간단한 임무라고 생각했던 이곳에서 저런 놈을 만나 어이없이 죽게 되다니.

철그럭.

"말해. 뭐 꾸미는지."

"크흐흐..."

자신의 앞, 이제는 너덜너덜해져 대꾸할 기운조차 없는 자신의 앞에 쪼그려 앉아 묻는 상대의 한마디에 호프만이 실실 웃어댔다.

싸우는 와중에도 봐주는 것이 느껴졌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하긴 못 말해줄 것도 없다.

악당의 덕목 중 하나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한껏 장황하게 설명해주는 것.

어찌 보면 이제 자신들이 뿌려둔 씨앗으로 벌어질 장구한 광경에 대해 떠들어대며 마지막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또 아는가?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고문 대신 잘 살려둘 수도?

하지만...

"저기요."

"?"

"우리 소주 잘 부탁합니다. 서로 지지고 볶든 알아서 하세요. 난 이제 좀 지쳤거든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키이이이이잉...

호프만의 심장 부근, 깊은 곳에서 붉은 광채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검예, 그 마지막.

홍화.

모든 피의 마력을 불태워 터트리는 것이다.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검기가 구의 형태로 폭발하며 주변, 강태석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콰아앙...

타탁...

타타탁...

"허억... 허억..."

내달리던 파스멜은 뒤쪽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폭발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스멜은 멈추지 않고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곳을 떠나기 전, 호프만이 귓가에 속삭였던 한마디 때문이다.

<네 누나랑 도망가요. 먼 곳으로... 배를 타고 최대한 이 구역에서 먼 곳으로.>

나지막했지만 실로 불길한 속삭임이었다.

콰르르르릉...!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가상 하늘에 끼는 먹구름과 우중충해지는 날씨 속, 파스멜이 이를 악물고 쉴새 없이 고철 지대 사이를 내달렸다.

점점 더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대지 전체를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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