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재 멸망 n% 진행중-200화 (200/221)

200

수십, 수백의 천장, 바닥, 건물.

사방에서 종말의 마수마냥 튀어나와 사람들을 둘러싼 촉수들이 꾸물텅거리며 쩌억 그 거대한 속살을 드러냈다.

그 속, 창백해진 이들을 보며 웃은 소녀의 한마디.

"나는 이 정원의 관리인이에요. 당신 같은 해충들이 망치게 놔둘 수 없죠."

소녀가 주변을 주욱 둘러보았다.

서쪽, 남쪽, 북쪽.

여전히 해충들이 득시글거리며 자신의 아름다운 정원을 망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 꽃과 같이 화사하게 피어난 군락의 뿌리를 잘라내 버리려는 발칙한 속셈을 가지고 말이다.

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자신의 담당 범위는 이곳, 서쪽과 남쪽.

가장 많은 해충들이 우글거리며 향하는 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모조리 양분으로 삼아 드릴게요."

"... 1, 2, 3분대 앞으로! 무조건 뚫어야 한다! 돌격!"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우아아아아아악!”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거대한 촉수들이 지상을 미친 듯이 내리찍는 가운데, 핏줄이 선 채 고함을 치는 라스탕과 군인들이 가진바 모든 화력을 토해내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

중앙.

콰아아아아아앙!

쉴새 없이 거검을 휘두르며 해일처럼 밀려드는 녀석들을 토막 내던 강태석이 조금씩, 하지만 착실히 줄어들어 가는 마력과 출력에 살짝 달아진 숨결을 내뱉었다.

이놈들의 계획도 결국 아까 전의 자신들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차륜전.

어차피 자신이 타고 있는 흑기사만 어떻게든 내리게 한다면 군락을 이용해 여왕을 지키는 건 너무나 쉽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덕분에 도시에서 꾸역꾸역 생산되고 있는 병종이란 병종들은 모조리 자신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빠져나가 기동력을 이용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기에는 이미 발목을 잡혀버렸다.

'하긴. 게릴라전을 하기에 적합한 크기도 아니지.'

투웅!

콰아아아아앙!

허공을 역장으로 밟고 뛰쳐 올랐다가 대번에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촉수를 피해 황급히 옆으로 피한 강태석이 번개를 휘감아 칼을 내질러 촉수의 일부분을 불태워버린 뒤 속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이게 무슨 꼴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서쪽, 남쪽, 북쪽 셋 중 하나만 뚫어줘도 어떻게든 수월할 것 같았는데, 이대로면 자신도 수를 써야만 할 것 같았다.

키이이잉...

강태석이 희미하게 금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눈동자를 꿈벅거리며 주먹을 움켜쥐려던 그 순간.

치지지직.

<아아. 들리나?>

"?"

갑작스레 열린 통신 채널에 싸우던 강태석이 귀를 쫑긋 세웠다.

통신이 날아든 곳은 남쪽이었다.

유력가의 일원들이 향한 방향이다.

귓가의 목소리가 제법 익숙하다.

'몬테른... 이었던가?'

콰아아앙!

줄기차게 자신들이 남쪽을 맡겠다고 주장한, 적통 파벌 측의 임시 리더를 떠올리며 칼을 휘두른 강태석이 콕핏 안에서 물었다.

"들리는데. 무슨 일이지?"

<일단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군.>

"?"

<너희 덕분에 우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으니 말이지.>

그와 동시에.

쿠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진동과 함께 남쪽 어딘가에서 커다란 강철의 장갑을 두른 웅장한 형태의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높이는 대략 50m.

길이 300m에 폭은 족히 100m는 되어 보이는 육중하고 거대한 덩치, 그 위로 존재하는 수십 개의 포신과 거대한 주포까지.

육상 전차.

콰르르르릉!

살점들을 찢어발기며 기운차게 지하에서 솟구친 육상 전차의 등장과 함께 득의양양한 통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 끄느라 수고했다. 이쯤에서 작별 인사를 하자고.>

"저런 게 수도 지하에 숨겨져 있었나... 그나저나 매정한 놈들이네."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칼을 휘둘러 달려드는 마수 하나를 처리한 강태석이 그대로 포신을 들어왔던 입구의 점막 쪽으로 조준하며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육상 전차를 보며 혀를 찼다.

보아하니 저 작자는 이 지하에 숨겨져 있던, 적통 파벌 측이 비상사태를 대비해 제작하던 비밀 병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굳이 베르트 등과 함께 배를 타지 않고 도박의 심정으로 이 결사대에 참여한 모양이다.

하긴 보아하니 저건 마울러보다도 두 단계는 위의 고급 결전 병기였다.

비록 부분부분 미완성이라 제대로 작동을 할지 안 할지는 몰라도 저걸 챙겨 바다를 건너가기만 한다면, 어디 가서도 목숨은 부지하며 떵떵거리고 권세를 누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저런 종류의 거대한 육상 전차들은 기본이 수륙양용에 내부 자체 플랜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전차보다는 군주를 위한 움직이는 성에 가까운 녀석이다.

저걸 가지고 도와주면 참 좋을 텐데,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 녀석을 보니 영 정이 없다 싶었다.

"그대로 도망치려고? 안 도와주고?"

<무슨 미친 소린지 모르겠군. 이곳도 짜증 나 죽을 지경인데 우리보고 더 깊숙한 그곳까지 기어들어 가라고?>

<으하하하!>

통신기 너머로 득의양양한 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다.

저들 입장에서는 입구 쪽, 가장 가까운 남쪽으로 파고드는 것만 해도 짜증 났을 텐데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라는 제안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여길 테니.

발이 붙잡히기 전에 온 화력을 집중해 입구 쪽을 박살 내고 벗어나 후다닥 바다를 건너 이곳에서 멀어지는 것이 저들의 제1 목적일 것이다.

쿠르르르릉!

실제로 기동을 시작한 육상 전차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입구를 뚫기도 전 기수를 돌려 바다 쪽으로 거칠게 기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면 잘 있으라고! 너희 영웅담은 우리가 잘 전해줄 테니.>

그와 동시에 더욱 득의양양해진 이들의 웃음소리가 통신 너머, 강태석을 향해 울려 퍼지던 그때.

<...엇? 너 뭐야! 어떻게?>

<우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주먹을 쥐며 당장 저놈들을 두들기러 가야 하나 고민하던 강태석의 귓가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웃던 녀석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 소리, 피 소리, 비명 소리.

순식간에 정리되어가는 통신 너머의 공간.

이윽고.

치직.

<아아. 들립니까.>

<잘 들리나 모르겠군.>

두 명의 목소리가 통신을 타고 들려왔다.

익숙한 하나, 그리고 낯선 하나.

그중 익숙한 이의 목소리를 들은 강태석이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이리저리 바쁘네. 동쪽도 터트리고 거기까지. 여유가 있었나 보지 그라함?"

<쉽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제 할 일을 다 끝낸 김에 와봤지요. 유능함의 상징이 추가 잔업 아니겠습니까.>

치직...

통신 너머, 숨을 가다듬으며 말하는 그라함의 말에 강태석이 거칠게 진각을 내질러 마수 하나를 두 동강 내며 자신 또한 웃음기를 지웠다.

반가워 웃기는 했지만, 상대의 고초가 상상 이상이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나 더.

자신의 일을 모두 끝내고 도우러 왔다는 건...

"그럼 그쪽이 그 양반이겠네."

<직접 대화하는 건 처음이군. 탈리만이라고 한다네.>

치직.

낯선 목소리의 주인이 통신 너머로 강태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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