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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30화 (30/121)

30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녀의 눈빛이 전혀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나른해 보였었기에 방심했던 것일까?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이 바지까지 내려와 닿았을 때 마고 신의 인자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대가 지금까지 한 얘기는 회귀자 성진아와 강태식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는고.”

“그, 그렇습니다…….”

“창조신을 우습게 보는 것인고?”

“아, 아닙니다!”

망했다.

처음 만나는 거짓말이 안 통하는 상대.

다른 창조신을 찾아가야 하나?

아니, 다른 창조신은 절대 수락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회귀자나 빙의자, 환생자를 가장 싫어하는 것이 창조신 아니던가.

땀을 비 오듯 쏟고 있을 때 마고 신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내 동의를 해줄 수 있는고.”

“지, 진심이십니까?”

“대신, 조건이 있는고.”

“네… 무슨 조건인지?”

그녀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열흘 뒤. 그대의 능력을 증명할 곳이 있지 않은고?”

“네? 열흘 뒤라면 설마?”

열흘 뒤.

회귀, 빙의, 환생을 관장하는 부서에 속한 관리자들 간의 경합이 열린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건 무리한 요구였다.

평소에 헤라클레스 녀석과 투덕거릴 때와는 전혀 다른 문제.

경기장에는 많은 신이 있고 그들 가운데 내가 쓰는 힘이 드래곤의 룬 마법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신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정체를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카르나님의 엄명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설마 그 대회에서 우승하라는 말씀입니까?”

“정확하게 알아맞혔는고.”

“죄송하지만, 저는 그 대회에서는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혹시 다른 방법은…….”

“응? 아까 자네가 말하지 않았는고? 싸움은 힘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마 그걸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고? 게다가 자네가 잘하는 것 있지 않은고?”

“네?”

“방금 나한테 하려고 했던 거짓말 말인고.”

“…….”

물론, 거짓말을 하려고는 했지만, 그것이 지금 이 문제와 무슨 상관이라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참아내고는 그녀에게 힘들 것 같다는 의사를 표하려 할 때였다.

“이것이 있으면 가능하지 않겠는고?”

이 상황에 뭔가를 준다는 것인가?

궁금증이 차올라 고개를 슬쩍 들어 그녀가 꺼내든 물건을 바라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건!”

“내 힘이 담긴 천부령이라는 것인고.”

거듭된 충격에 심장에 무리가 갔다.

그녀가 꺼내든 천부령은 환웅 신이 들고 갔던 복제품이 아니라 진품이었다.

물론 진짜 신물(神物)에 담긴 힘이 너무 강력하기에 신물을 하계로 가져갈 때는 어쩔 수 없이 복제품을 들고 가기는 하지만…….

“어째서 이런 귀한 신물을 제게 주시는 것인지…….”

“그대가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도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고? 딱 그렇게 쓸 수 있게 봉인을 풀지 않은 물건인고.”

“네? 봉인 말입니까?”

“그런고.”

나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봉인된 물건이면 그냥 평범한 팔찌나 다름없다. 이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그대가 진정으로 성진아라는 아이와 한국을 위한다면, 그런 이유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증명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고?”

“저는 진심으로 성진아 씨와 그녀의 조국이 잘 되길 원합니다. 이건 정말로 거짓이 섞이지 않은 진실입니다.”

“증명하면 되는 문제 아닌고? 그리고 나는 분명 그대에게 답을 알려줬는고.”

“네?”

“쯧쯧, 아둔한지고, 똘똘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아직도 깨닫지 못했는고? 천부령을 잘 살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는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천부령을 살펴봤다.

안에서 요동치는 자연의 힘은 자연 자체를 다루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왠지 드래곤이 쓰는 룬 마법하고 발동원리가 비슷한 것 같은데?

그때 내가 뭔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눈치챈 마고 신이 조용히 말을 건네왔다.

“용족의 힘과 천부령의 힘의 본질은 비슷한고, 내게 받은 천부령의 힘이라고 다른 놈들의 눈을 속이면 되는 일 아닌고?”

순간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룬 마법과 천부령의 발동원리는 거의 비슷했다.

이걸 이용하면 내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힘을 쓸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고 신이 나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은 모양.

그때 마고 신이 내게 조용히 또 다른 제안을 건네왔다.

“우승한다면 내 천부령을 그대에게 주도록 하겠는고, 또 힘을 풀어줌과 동시에 성진아 그 아해에게 계시를 내려주겠는고.”

“계, 계시 말입니까!”

“싫은고?”

“아닙니다!”

그때 마고 신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인제 그만 가봐야 하지 않겠는고? 그대가 할 일이 많을 터. 이 시간만 축내는 늙은이가 언제까지 붙잡을 수는 없는고.”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고 님. 꼭 원하시는 성과를 내고 오겠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녀에게 한국식 인사인 큰절을 올리고 난 뒤 산에서 내려오다 갑자기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라 등골이 섬뜩해졌다.

그때는 놀라서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그녀는 내가 용족 즉,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정한 본질을 꿰뚫어 본 것.

정기가 가득한 산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앞으로 창조신을 만날 때는 진짜 조심해야겠네. 아니, 절대 안 만나야지.”

그 이름이 거의 잊혔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창조할 능력이 있는 신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고 신만 해도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말했지만 실제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던가?

얼마 전 성진아가 크게 사고를 쳐 분노하고 있을 일본의 이자나기 신과 이자나미 신은 절대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산을 모두 내려온 뒤.

마고 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도착한 뒤 카르나 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대전에서 힘을 쓰는 문제는 카르나 님에게 보고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

[이르카: 카르나 님. 저 이번 대전에서 힘을 좀 써도 괜찮을까요?]

[카르나티우스: 너 미쳤니? 거기 지켜보는 신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 정체를 밝히겠다고?]

[이르카: 사실, 지금 마고 님을 만나고 왔는데요 봉인되기는 했어도 천부령을 빌려주셨어요, 그런데 이게 발동 원리가 룬 마법이랑 비슷하더라고요.]

[카르나티우스: 마고 신? 설마 그녀가 동의해주는 조건이 대전에서 우승이니?]

[이르카: 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진짜 힘 좀 쓸게요.]

[카르나티우스: 이르카야. 나랑 한 약속은 잊지 않았지? 절대 티 내서는 안 된단다? 안젤라 빼면 네 정체는 나랑 메타트론 그리고 우리엘만 아는 거잖아? 네가 내 세계 출신의 이르카시우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르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카르나 님이 저를 데리고 오실 때 다른 분들한테 이름 없는 행성 출신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대답을 마치고 한참 뒤.

[카르나티우스: 후, 우승할 자신은 있니?]

[이르카: 저 못 믿으세요? 머리를 쓰면 쉽죠.]

[카르나티우스: 그래, 이번에는 한번 제대로 놀아보렴.]

[이르카: 넵! 감사합니다.]

* * *

열흘 뒤.

사라진 강태식을 찾고 있는 성진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갑자기 상점창을 이용한 대화도 막혀 답답해하는 그녀에게 기다리라는 말만 했음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두 주먹을 꾹 쥐었다.

이번 대전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동안 그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지 못해 답답하던 문제도 단박에 해결될 기회.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경기장으로 이동하자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을 만드는 성좌들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이 거대한 콜로세움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안젤라가 경기장에 한번 나갔다가 오더니 급격하게 어두워진 표정을 짓고는 말을 건네왔다.

“다른 신들이 엄청 많네요.”

“백 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니까.”

“진짜 괜찮겠어요?”

“이번에 한번 제대로 놀아보지 뭐.”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안젤라에게 대답하고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를 마실 때였다.

퍽-!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밀치는 바람에 땅에 쏟은 음료수와 내 어깨를 밀친 녀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는걸?

내가 먼저 시비를 걸 필요가 없어졌잖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시비를 건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이 코웃음을 치며 도발하듯 말을 건네왔다.

“크흣! 네놈이 놀아봤자 뭐하겠다고?”

“어? 너 누구더라?”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변방 행성 출신이라 그러는 건가? 3연속 우승자인 나 빙의부 최고의 관리자 베르미우스를 까먹은 거냐?”

“뭐! 네가 3번이나 연속으로 우승했다고? 운이 좋네, 아니, 엄청 좋네.”

“뭐라?”

“아! 너 누군지 기억났다! 비다르랑 헤라클레스가 준결승에서 붙은 다음에 결승전에서 붙은 놈이 너구나? 걔들끼리 싸운 다음에 힘 빠진 애들 상대로 어부지리 우승한 놈 맞지?”

“어디서 그런 망발을! 제대로 붙어도 내가 이긴다!”

“진짜? 에이~ 넌 그렇게 안 세 보이는데.”

“크흣! 쓸데없는 도발은 하지 마라. 첫 경기부터 탈락하고 싶지 않다면.”

인상을 쓰고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고 있는 베르미우스를 물끄러미 바라본 뒤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최대한 시비조로 말을 건넸다.

“네가 그렇게 강하다면, 풀 컨디션으로 나랑 붙어볼까?”

“내가 널 왜 지명해주길 바라는 거지? 변태도 아니고 그렇게 얻어맞고 싶은 건가?”

“그냥 네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어서 그래. 설마 자신 없니?”

“크흣!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 왜 대단한 신물이라도 빌려왔나?”

“에이, 이름도 없는 변방 출신한테 신물을 빌려줄 신이 어디 있겠냐?”

“하긴, 너 정도는 신물의 힘이 없어도 이기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러면 진짜 붙어볼까?”

“크흣! 자꾸 까불면 진짜 뒤지기 전까지 처맞는 수가 있다?”

“그럼 지금 한판 벌여보든가.”

일촉즉발의 순간.

우리엘 휘하의 심판자들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거기 두 반신 분들 그만하시죠!”

“반신의 체통을 지키지 않으실 겁니까? 경기전 싸움을 벌이면 부전패입니다! 이르카 님! 그리고 베르미우스 님!”

이내 심판자 천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본 베르미우스가 내 귓가에 대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패기가 좋군. 좋아! 첫 라운드에 널 지명하겠다. 목 깨끗이 닦고 기다려라.”

“응? 어차피 서로 죽이지 못하는데 무슨 목을 닦아? 너 붕어 반신이니? 규칙을 까먹은 거야?”

“…크흣!”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이내 쿨한 척 사라진 녀석을 바라봤다.

이내 안젤라가 다가오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베르미우스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왜 위험하게 저분이랑 첫 경기에서 붙으려는 거예요? 사실 운이 조금 더 좋을 뿐. 헤라클레스님이나 저분이나 힘은 비슷하잖아요.”

“응? 그래서 쟤들 대진표는 맨 끝에 위치하잖아. 결승전에서 붙으라고.”

“아니, 그러니까 왜….”

의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하던 안젤라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여줬다.

“대진표를 봐.”

“맨 끝에 우승자인 베르미우스 님이랑 헤라클레스 님이 있고… 이대로라면 4강에서 헤라클레스 님이랑 비다르 님이 붙네요?”

“응. 게다가 베르미우스 쪽 대진표를 봐봐. 쟤 빼고 뭐 있어?”

“흠… 자신 있으세요?”

“그거야 붙어봐야 아는 거지. 그래도 쟤는 나랑 한 번도 싸워본 적 없잖아. 난 초반에 떨어진 덕분에 저 녀석이 어떻게 싸우는지 다 봐왔고.”

결승전까지만 가면 우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다르는 항상 헤라클레스와 최대한 빨리 승부를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승부를 본다.

숙명의 라이벌이라나? 뭐라나?

카르나 님이 제발 결승전에서 승부를 보라고 말해도 녀석은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지금 대진표대로라면 4강에서 비다르와 헤라클레스가 붙는다.

초반에 마력이 넘칠 때 베르미우스만 처리하면 우승까지는 손쉽다.

결승전에서 올라오는 것은 힘이 빠질 대로 빠진 헤라클레스 혹은 비다르니까.

그래서 베르미우스에게 시비를 걸어서 날 지명하게 만든 것이고.

내심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안젤라에게 손목에 차고 있는 천부령을 흔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이번엔 이거가 있잖아.”

“그거 템발로 규제 안 당해요?”

“헤라클레스랑 비다르를 봐봐.”

“…안 당하겠네요.”

마치 운동선수가 몸을 예열시키듯 땀을 흘리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몸에는 온갖 무구가 즐비했다.

거기다 다른 올림포스 신들에게 빌려온 장비도 상당했다.

헤르메스의 신발.

아레스의 창.

아테나의 방패.

비다르 역시 자신의 형인 토르의 상징인 묠니르와 힘의 벨트까지 빌려왔으니 마고 신의 천부령 가지고 템발이라고 할 신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하나의 신물만 가지고 온 내가 동정표를 받을 만한 상황.

베르미우스가 날 지명해주길 기다리며 경기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대전은 의외로군요! 대회의 3연속 우승자인 빙의부의 베르미우스가 저번 대전 32강 탈락자인 회귀부의 이르카를 지목했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든 것은 내 예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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