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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37화 (37/121)

37화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베르티아가 지금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뭔지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다.

시트리와의 대화를 통해 도출해낸 결과는 하나.

베르티아는 지금 상관인 시트리에게 보고를 올리지 않고 하계에 오랜만에 놀러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뭘까?

바로 하계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도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얼굴에 밀가루라도 바른 듯 새하얗게 질린 베르티아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요한에게 싹싹 빌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어요! 제발 그만해주세요!]

그러나, 누가 봐도 애처로울 정도로 눈물을 글썽이며 비는 그녀를 바라보는 요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무표정했다.

요한이 누군가?

누구나 꿈꾸는 신선의 초입에서 회귀를 선택해 성직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녀석.

그만두라고 그만하면 요한이 아니다.

이내 요한이 무표정하게 성수를 뿌리며 그녀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옥으로 그만 돌아가시오!]

팟-!

천부령의 힘을 이용해 창살로 들어오는 달빛을 요한에게 집중시켰다.

이내 환한 빛이 흘러나오는 요한의 몸과 그 주변에 놓인 물건을 바라본 시트리가 소리쳤다.

[제, 제발 그분만 불러오지 말아 주세요!]

[심판의 천사 미카엘 님! 제게 힘을 빌려주시어 악을 퇴치해주시길 비옵니다.]

[아, 아니! 그분 말고!]

[치유의 천사 라파엘 님! 제게 힘을 빌려주시어 악을 퇴치해주시길 비옵니다.]

[야! 이 미친놈아!]

[계시의 천사 가브리엘…….]

요한이 4대 천사의 이름을 연달아 부를 때마다 베르티아는 절규하며 소리쳤다.

뜬금없는 대천사들의 이름만 나오니까 더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요한의 주변에 펼쳐 놓은 물건들은 바로 정욕의 군주 시트리를 소환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었으니까.

그녀가 호전적인 루시퍼나 다른 대악마들의 부하라면 그들을 소환한다고 해도 비웃었겠지만 시트리는 다르다.

하계를 최대한 보전해 포인트를 벌고자 하는 그녀의 성격상 베르티아만 끌고 갈 확률이 높다.

그걸 잘 아니까 저렇게 당황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제 결정을 지을 시간.

요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지금 얌전히 돌아가면 의식을 그만한다고 하세요.]

[요한: 지금까지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버텼는데 과연 얌전히 돌아갈까요?]

[이르카: 제가 보내드린 물건중에 하나가 우리엘 휘하 심판자 천사의 깃털이거든요? 자꾸 말 안 들으면 확 소환한다고 말하세요.]

[요한: 허, 그래서 저렇게 떨고 있던 것이었군요. 정말 대단한 물건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르카: 아주 잠깐 효력이 있는 거라 이 일이 끝나면 바로 태워야 하는 건데요 뭐, 많은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하죠.]

요한이 수긍하고 베르티아에게 말을 건넬 때 안젤라가 날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정말… 누구의 깃털이라고요? 저거 치킨 만들려고 하늘 닭 털 뽑은 거잖아요. 그리고 천사의 깃털이 100포인트라고 하면 누가 믿어요?”

“쟤가 믿잖아?”

화면에 비친 요한을 가리키며 말하자 안젤라가 긴 한숨을 내쉬더니 바싹하게 구워진 치킨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무튼, 치킨 튀겨왔어요. 드세요.”

“지금 반응은 어때? 요한하고 말하느라 살펴보지 못했어.”

“뭐, 다들 궁금해하죠, 어떤 퇴마술이기에 악마가 저렇게까지 벌벌 떠냐고요.”

“좋아. 알아차린 분들은 없다는 소리네.”

“아, 이르카 님. 제발…….”

안젤라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요한이 행하고 있는 퇴마(?) 작업을 다시 살펴봤다.

[악마여! 이제 얌전히 돌아가거라! 아니면 그분을 불러올 것이니!]

[그, 그럼 얘 말고 다른 애한테 갈게요!]

[그만 포기하거라! 당신의 어린양이 비오니…….]

[도, 돌아갈게요!]

드디어 베르티아가 항복했다.

이제 화려한 효과를 내보일 차례.

[이르카: 아르한,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아르한: 벌써, 퇴마 작업까지 끝나신 겁니까! 요한님의 능력을 이제는 정말 짐작조차 하기 힘들군요!]

이미 요한에게 설명도 해뒀겠다.

아르한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굳은 표정으로 베르티아를 바라보던 요한이 아르한의 팔목을 물어뜯고는 새로운 혈 마법을 선보였다.

[피의 날개에 안겨 사라져라!]

촤악-!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펼쳐진 붉은 색 피의 날개가 베르티아의 몸을 한번 감싸고 난 뒤.

꽈르릉-!

천부령을 이용해 하늘에서 번개를 한 줄기 떨어트렸다.

비록, 묠니르나 아스트라페 같은 강력한 힘은 아니지만,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데는 천부령만 한 것이 없었다.

피의 날개에 둘러싸인 요한의 얼굴이 빛에 잠시 비쳤을 때 채널의 메시지가 보기 힘들 정도로 주르륵 올라갔다.

잠깐 드러난 그의 눈은 우수에 차 있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며 한없이 성스러워 보였으니까.

[하늘의 대리자 메타트론이 어색하게 웃으며 5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심판의 대천사 미카엘이 좋은 퇴마였다면서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이 눈물을 흘리며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계시의 대천사 가브리엘이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장면이었다며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파괴의 대천사 우리엘이 그럭저럭 볼만하다며 5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광철 신선이 신선계 대표로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

.

.

[지식의 대악마 바싸고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4,885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그 뒤로도 주르륵 떠오르는 후원 메시지를 가리키며 안젤라에게 말했다.

“안젤라. 이거 봐.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니까?”

“바, 반응이 엄청 좋네요?”

“그러게 요한이 신선계 출신이라 그런지 광철 할배… 어? 자, 잠깐?”

후원 메시지를 쭉 살펴보다가 끝에 박힌 이름을 보고 소름이 쫙 돋았다.

사탄, 루시퍼, 바알 등을 대군주를 제외하고.

최상위 서열에 있는 대악마 바싸고가 이 모습을 지켜본 것.

게다가 후원까지 해?

저 음흉한 할배가?

메타트론을 제외한 다른 천사와 신들은 지금 요한이 어떻게 퇴마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바싸고는 다르다.

요한이 꺼내놓은 물건들이 시트리를 소환하는 물건들이었다는 것을 다 알아봤을 것이다.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수신 거부 상태라는 메시지만 다시 되돌아 왔다.

옆에서 치킨을 열심히 뜯어 먹고 있던 안젤라를 바라보며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로 지옥에 한번 가봐야겠네.”

“네? 지옥이요?”

“뭐, 겸사겸사 가봐야지. 시트리 님이랑 약속도 했으니까.”

“음, 그런데요. 지옥에 가면 그 녀석도 만나지 않아요?”

안젤라의 말에 과거에 회귀를 시켜줬던 망나니 녀석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회귀 끝마치고 제 소원대로 지옥에 간 놈이잖아?”

“그렇죠, 근데 걔 대공님들한테 훈련받고 요즘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안젤라.”

“네?”

“내가 주먹을 들면 안젤라는 무슨 생각이 들어?”

“또 누굴 패겠구나?”

“그렇지? 그게 바로 반사작용이야. 걔가 나한테 대들다가 처맞은 게 몇 번인데 이제 내가 주먹만 들어도 고분고분해질걸?”

“…하긴 걔는 진짜 꾸준하게 대들다가 엄청나게 맞기는 했네요.”

안젤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미소를 지어준 뒤 요한이 나오는 화면을 다시 살펴봤다.

* * *

얼핏 보면 화려해 보이는 피의 날개가 차츰 사라지고 난 뒤.

베르티아가 지옥으로 돌아가 정신을 잃은 백작 영애의 몸이 침대 위로 쓰러져 내렸다.

한숨을 내쉰 요한이 쓰러진 영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난 뒤 구매한 퇴마 도구를 주섬주섬 집어 들며 기도를 올렸다.

“당신의 축복으로… 쿨럭! 어린양을 구원할 힘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힘드셨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아르한과 관리자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지요.”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환하게 웃는 요한을 바라본 아르한이 포인트가 들어온 내역을 확인하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포인트가 꽤 많이 들어왔군요… 조금 아쉽습니다. 계약이 1:9가 아니었다면…….”

“아르한, 관리자님이 나머지 9의 포인트를 어디에 쓰셨겠습니까?”

“네?”

어리둥절해하는 아르한을 지긋이 바라본 요한이 조심스레 들고 있던 하얀 깃털을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이 퇴마 물품들을 보십시오. 특히, 이 날개가 보이십니까? 진짜 천사의 날개라더군요. 이걸 고작 100포인트에 주셨습니다.”

“허, 말로만 1:9고 실제로는 이런 물품을 사들이셔서 저희에게 저렴하게 주시는 거로군요.”

“그렇죠, 저희는 관리자님을 위해 이런 도탄에 빠진 분들을 많이 구해줘야 하는 겁니다.”

“이거 참 쑥스럽습니다. 속세에 물들어 포인트를 아까워하다니, 반성해야겠습니다. 그분도 참 아픈 과거가 있으신 분이던데…….”

“과거요?”

“못 들으셨습니까? 사실 저희 관리자님이 어떤 분이냐면…….”

아르한이 이르카의 숨겨진 진실(?)에 관해 얘기하려고 할 때 요한이 손을 들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다.

“아, 괜찮습니다. 제게는 말씀해주지 않으신 이유가 있겠죠. 아르한 님의 과거 이야기도 제게는 무척이나 슬펐답니다.”

“허허, 이미 지나간 일 아니겠습니까? 제 생각이 짧았군요. 남의 비사는 그렇게 털어놓는 게 아닌데요.”

“그렇죠, 저는 제 관리자님을 만난 것도 신의 축복… 쿨럭! 쿨럭!”

“이, 이런 괜찮으십니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피를 토하는 요한을 부축한 아르한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을 꺼내려 할 때였다.

끼익-!

굳게 닫혀있던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온 할파스 백작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이, 이런! 괜찮으십니까?”

“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퇴마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시…….”

“이럴 수가! 퇴마가 얼마나 힘드셨으면 온몸에서 피까지 흘리시다니! 저 할파스, 절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요한이 혈 마법의 후유증이라고 그의 말을 정정하려고 할 때.

텁-!

아르한이 요한의 팔목을 붙잡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몸짓이었고 그 이유를 궁금해하던 요한이 아르한을 빤히 바라봤다.

쓰러진 백작 영애를 끌어안고는 기쁨에 겨웠는지 늑대의 하울링 소리를 내는 할파스 백작을 가리킨 아르한이 요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항상 괜찮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곳에 기반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대한 도움을 받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쉿! 퇴마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믿으십시오. 이래 봬도 한 종족의 왕이었습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세력과 기반입니다.”

아르한의 얘기는 타당했다.

아르카니아에는 요한과 아르한을 지지하는 세력도, 기반도 없다.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은 요한이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말끝을 흐렸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저희는 일반적인 회귀자와는 다릅니다. 저는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요한님께서는 몸에 쌓인 선기를 빼기 위해 특수한 이계 회귀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인즉, 저희에게는 회귀자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미래 정보가 없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흠칫 놀라 아르한을 바라봤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다른 이에게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굵은 힘줄이 돋아난 팔목부터 까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그 아르한이 맞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할파스 백작을 돌려보낸 백작 영애가 몽롱한 눈빛으로 요한을 바라보더니 색기가 한껏 묻어나는 요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버님께 들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악마에게서 구해주신 분인가요?”

“깨어나셨습니까? 제가 구해드린 게 아니라 제가 모시는 신께서 그대를…….”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죠. 저는 차가운 보름달의 일족 베아트리체라고 한답니다.”

“아, 베아트리체 영애셨구려. 저는 신을 모시는 성직자 요한 그리고 이쪽은 저를 도와주시는 성혈기사 아르한이라고 합니다.”

요한이 자신과 아르한을 소개할 때 베아트리체가 묘한 눈빛으로 요한을 바라보더니 혀로 입술을 핥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후훗, 제가 요한 사제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래도 될까요?”

“저보다는 제가 모시는 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잠시 할 얘기가 있으니 이쪽으로…….”

“여기서 얘기해도 괜찮습니다.”

“하아, 제가 몸이 불편해서 그렇답니다?”

“흠…….”

고개를 갸웃거린 요한이 퇴마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살짝 발그레한 얼굴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아트리체를 향해 요한이 다가갈 때.

퍽-!

베아트리체의 선홍색 입술에 아르한의 커다란 녹색 주먹이 날아들었다.

“꾸웨엑-!”

“……!?”

세 명의 상반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돌처럼 굳어버린 요한.

씩씩거리며 커다란 주먹을 움켜쥔 아르한.

벽까지 날아가 처박힌 베아트리체.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이르카가 목덜미를 잡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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