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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46화 (46/121)

46화

말도 안 되는 소리.

뱀파이어의 시조는 요한의 직계 선조인 드라큘라 블라드 대공.

늑대인간의 시조 역시 1지구 출신의 브세슬라브.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둘 다 성자가 된 인물들.

그들이 직접 시조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최초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 그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믿음을 이용한 어떠한 종류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행위다.

나 역시 그러한 거짓말을 많이 해봤기에 더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거짓말로 날 속였을 때 얻을 이득이 전혀 없기 때문.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살피기 위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

어떠한 미동도 없는 평온한 표정.

옆에서 태풍이 불어오고 벼락이 떨어져도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포커페이스였다.

이대로는 그의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의 속내를 파악해봐야겠지.

“흡혈귀와 늑대인간의 시조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관리자여.”

“그렇다면, 어떻게 신성력을 쓰실 수 있었습니까? 십자가의 신의 제자 중 신성력을 쓸 수 없던 제자는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어려운 일이었지요.”

“어떻게 어둠의 신의 권속이었던 분께서 신성력을 쓰실 수 있던 겁니까?”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긴장감에 마른침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쓸어내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쉬운 방법이 있고 몹시 어려운 방법이 있죠.”

“쉬운 방법이라 함은?”

“제가 처음에 쓰던 방법인데, 신성 마법을 쓰고 곧바로 저주 마법을 쓰면 됩니다.”

“…….”

이걸 요한이 받아들일까?

아니,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처음 쓰던 방법이라고 했으니 다른 방법이 있을 터.

“다른 방법은 어떻게 쓰는 것입니까?”

“죽어야 합니다.”

“……?”

“말 그대로 죽어야 합니다.”

배반의 성자가 말한 어려운 방법을 듣고 난 뒤.

아무런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이건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그냥 포기하라는 것을 직접 말한 것과 다름없다.

부활의 권능.

이건 요한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신들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권능이었으니.

잠깐?

배반의 성자는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성마법도 쓰고 신성력에 의해 죽지도 않았다.

분명 지금 말한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죠?”

“당신께서는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쓰던 방법과 죽어야 하는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는 것 아닙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죽기 전 어떻게 신성 마법을 쓰셨습니까?”

질문을 건네자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그는 이내 역으로 질문을 건네왔다.

“재밌군요. 당신은 왜 그 회귀자를 위해서 이렇게 움직이는 겁니까?”

“제 일이니까요.”

“일? 흠, 일이라… 아쉽군요.”

“이것은 당신의 후손을 위한 일입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저를 찾아오실 이유는 그것뿐일 테니까요.”

대답을 마친 그는 이내 허공을 바라보듯 고개를 치켜들고는 두 눈을 감았다.

대답을 거부하겠다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질문을 건넸다.

“후손을 위한 일입니다. 조금만 더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방법은 이미 다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그를 도발했다.

“역시, 모순덩어리 그 자체로군요.”

“무슨 말씀이시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모순된 삶이군요. 당신이 이곳에 스스로 들어온 이유를 제가 말해볼까요?”

“당신에 대한 호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왜 제게 호감을 느끼셨습니까? 아, 이건 질문이 아니니 대답하실 필요 없습니다.”

말을 마치고 그를 유심히 살펴봤다.

기분이 언짢은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 통한 모양.

감정에 변화가 생긴 그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소원이 있으신 거죠?”

“저는 제 죄를 반성하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 들어왔습니다. 소원이 남아있을 리가 없죠.”

“용서받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그분께서는 이미 저를 용서하셨습니다.”

“아뇨, 당신을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설마, 제 사형제들을 말한 것입니까?”

“설마요.”

“그렇다면, 지구에 있는 그분의 신도들을 말하는 겁니까?”

처음으로 격정적인 모습을 드러낸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셨잖습니까.”

“…….”

이내 입을 앙다문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자신을 용서하는 건 힘든 일이죠. 저를 아신다고 하셨죠? 그러면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시나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얘기하기 편하겠군요.”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제가 관리하던 세상을 파괴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엘이 강림했고 분노에 정신을 잃은 저는 그의 휘하에 있는 심판자 천사들을 모조리 학살했죠.”

“흠…….”

“그 뒤로는 잘 아시겠지만, 그 세계의 창조신이었던 카르나티우스 님께서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임무를 주셨죠.”

“회귀자들을 관리하는 일 말씀입니까?”

“네. 반신의 자격을 얻은 자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하죠. 5천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 평범한 신이 될지 아니면 시험을 거쳐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창조신이 될지.”

“처음 들어보는 얘기로군요.”

반신들의 선택에 관한 얘기를 듣고 흥미를 느낀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준 뒤 말을 꺼냈다.

“그 시험이 바로 관리자를 맡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파괴한 세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지요.”

“……!”

그는 이내 놀란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봤다.

바싸고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런 것까지 모두 보지는 못했을 터.

게다가 반신의 격에 오른 이들이 왜 귀찮은 관리자를 하는지 몰랐을 테니 놀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의 반응을 살펴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으로 이런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곳에 있어봤자 스스로 용서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거, 조금 놀랍군요.”

이제 슬슬 넘어왔나?

그때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가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모순된 방법 아닙니까?”

“어떤 부분이 모순되었다는 것이죠?”

“당신은 당신이 죽인 자들에게 아직 용서를 받지 못하셨잖습니까? 이건 그냥 스스로 자위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까요?”

이걸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나?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또다시 말을 꺼냈다.

“당신이 왜 이렇게 필사적인지 이해했습니다. 당신의 과거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니 확실히 이해가 가는군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오해를 하고 계시는데, 저는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당신이 잘 아는 방법 있잖습니까?”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의 신이 요한에게 왜 그런 제약을 걸었는지까지 모든 퍼즐이 짜 맞춰졌다.

최초의 뱀파이어 성직자는 요한이 아니다.

그리고 최초의 뱀파이어이자 늑대인간은 회귀자였다.

아마도 최상 격의 신들 간에 배반의 성자와 요한에 관한 얘기가 오고 갔을 터.

어둠의 신은 처음부터 요한을 순순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때 그가 다시 말을 마저 이었다.

“그때 만났던 관리자는 지금 신이 되었더군요. 아마, 이름이 하누만이었던가?”

인도의 신중 한 명인 원숭이 신.

하누만의 이름을 꺼내 드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하누만 신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하누만 신이 방법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뇨, 제가 알기로는 이 두 가지 방법이 전부입니다. 그도 다른 방법은 모를 겁니다.”

실망감인지 무력감인지 모를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결국,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

신성마법을 쓰고 그 후유증을 없애기 위해 저주마법을 걸어야 한다.

요한의 성격상 죽으면 죽었지 결코 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점점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아서 커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말을 꺼냈다.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네,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죠.”

“그게 어떤 방…….”

“제 소원을 이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제 피와 심장을 드리죠.”

“……?”

조금 전까지 소원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모순덩어리에 거짓말 덩어리 같으니.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때 그가 이내 머리를 긁으며 말을 정정했다.

“아! 그 전에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어떤 게 궁금하시죠?”

“만약에 말입니다. 자신을 죽음에 몰아넣은 자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저를 용서하셨다고 하셨지만…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용서는 그분의 상징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그런 자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으면서도 저 스스로 납득을 할 수 없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니까요.”

말을 마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이런 걸 2천 년 동안 고민하고 있었어?

하긴, 나 역시 겪어보기 전에는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으니까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은은한 미소를 지어주며 그에게 대답했다.

“이미 당신을 용서하셨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언하십니까?”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게 무슨…….”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는 제게 목숨을 잃은 자에게 용서를 구했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

다채로운 표정이었다.

놀람, 경악, 환희, 슬픔 모든 표정이 담겨있는 그의 기묘한 표정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먼 옛날. 광기에 몸을 빼앗겼을 때 얘기입니다. 그 당시 우리엘이 저를 심판하러 내려왔죠. 치열한 전투 끝에 제가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카르나 님이 강림했습니다. 그리고 그분 손에 이끌려 중간계로 올라와 관리자를 하게 되었죠. 그때 제가 뭐라고 빌었는지 아십니까?”

“흠… 글쎄요, 제가 짐작하기엔 조금 어렵군요.”

“제가 정신을 차리기 전, 처절하게 저를 막다가 죽은 아이를 살려달라 빌었습니다. 살리지 못한다면 제발 같이 데려와달라고 빌었습니다.”

“허…….”

“그 아이가 죽음에서 깨어났을 때 저는 용서를 구했습니다. 당연히, 쉽게 용서해주지 않았죠. 그 아이의 종족을 멸족시킨 게 저였으니까요. 그렇게 오랜 시간 끊임없이 빌고 사과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용서를 받았죠.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던 아이도 저를 용서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는 그분이라면 당신을 이미 용서하셨을 겁니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노인네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뱉고 있는 그에게 다시 질문을 꺼냈다.

“당신이 말한 소원은 제가 맞춰보죠. 당신의 소원은 그분의 용서를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이 듭니다. 용서를 구하려면 저처럼 끊임없이 빌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흠.”

당연한 말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게 목적이라면 이곳에 이렇게 틀어박혀 있을 이유가 없다.

그에게는 또 다른 소원이 있지만, 그것이 욕망인지 아니면 간절함에서 나오는 소원인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 것이 확실했다.

침음성을 삼키고 있는 그에게 재차 질문을 건넸다.

“더럽혀진 오명을 씻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

“당신의 피와 심장은 제가 더 가치 있는 곳에 쓰이도록 하죠.”

“허허…….”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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