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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53화 (53/121)

53화

바싸고가 헤라클레스를 왜 끌어들이는 걸까?

올림포스 쪽 신들로부터 무슨 청탁을 받은 것일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일에 헤라클레스를 끌어들일 이유는 없을 텐데?

그때, 어딘가 모르게 흥분된 표정을 지은 바싸고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끌끌, 그렇지 않소? 어차피 지금 이 일도 4 지구에서 성진아와 강태식이라는 회귀자의 싸움으로 인해 발단된 것으로 알고 있소. 난 이게 이해가 안 간단 말이오? 그대들이 계속 공정성을 얘기하던데 공정하게 누가 성배를 먼저 얻는지 대결하는 건 어떻겠소? 끌끌끌.”

“흠, 나는 바싸고의 말에 찬성하오.”

바싸고의 말이 끝나자마자 묘한 표정으로 나와 헤라클레스를 번갈아 바라본 프로메테우스가 손을 들어 동의를 표했다.

이 아저씨가 왜 동의를 하는 거지?

나를 도와주는 아저씨 아니었나?

프로메테우스가 동의하고 나서자 여기저기서 바싸고의 의견에 동의하는 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좀 골치 아픈데?

처음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에 잠시 말을 아끼고 있을 때.

조용히 있던 올림포스 측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해요.”

“……!”

싸늘한 시선으로 제우스를 노려보고 있던 헤라가 입을 연 것.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저 아줌마가 왜?

당황한 올림포스의 신들이 입을 열기 전.

헤라가 재차 입을 열었다.

“회귀자들을 관리하는 일이야 헤라클레스의 아내인 헤베가 하면 되는 일이고, 이르카는 안젤라라는 유능한 아이가 있잖아요?”

“여, 여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당신도 주신이라면, 체통을 지키세요.”

제우스를 한 방에 제압한 헤라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올림포스 신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성배 신화를 우리 측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화는 저기 쭈그리고 있는 누구 덕분에 오명이 많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하지만, 헤라 님. 그 일은 너무 위험합니다.”

“형수님. 이건 감정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헤라클레스가 가진 신화도 상당해요. 그것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인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조용히 이 사태를 관망하던 포세이돈의 의견을 들은 헤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제 아들은 아니지만, 헤라클레스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헤라와 헤라클레스의 사이는 서먹서먹했을 텐데?

이 일을 기회로 삼아 헤라클레스를 제거하려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통해 얻은 힘이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한다면 절대 그럴 리 없다.

녀석을 신으로 만들어주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면 기울였지 이렇게 방해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때 헤라가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꺼냈다.

“대신 이렇게 하죠. 헤라클레스와 이르카는 관리자의 위치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카르마는 어차피 자동으로 채워지는 것이고 최종시험은 창세 신께서 부르시는 것이니 카르마가 다 채워질 때까지 성배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저희 올림포스에서는 신물을 제물로 삼아 헤라클레스를 이곳으로 역소환하죠.”

“……!”

미친, 이건 온전히 나를 방해하겠다는 심보.

고개를 푹 숙인 제우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헤라에게 혼난 척하고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올림포스의 신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성품이 박살 난 신들밖에 없었지.

처음에는 헤라가 왜 내 편을 들어주는지 의아했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헤라클레스는 엄밀히 말하자면 방치형 관리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회귀자들의 소원을 이뤄준 경우가 극히 드물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태식이 가장 유일한 예외일 정도였으니까.

반면에 나는 관리하는 회귀자의 숫자가 훨씬 적기에 적극적으로 소원을 이뤄줘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리자들에게 회귀자를 고를 권리가 있듯,

회귀자들도 관리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물건 구매할 때도 브랜드의 이름을 보고 꼼꼼하게 고른다.

하물며, 회귀를 시켜줄 관리자를 선택할 때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반신을 고를지, 처음 보는 반신을 고를지 생각해 본다면 너무 자명한 일.

내 출신지는 이미 멸망했고, 헤라클레스의 출신지는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한다.

헤라를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건 내 유일한 강점을 묶어버리려는 계획이었다.

성배 탐색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성진아를 제거하고 헤라클레스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안에서 헤라클레스는 마음 놓고 나를 방해할 것이고 나는 녀석의 방해를 견디면서 성배 탐색을 하게 만들려는 계획을 짠 것.

그런데 지금 이건 성배를 우리 둘 다 못 찾을 경우만 생각한 거 아닌가?

내가 찾아낸다면 애꿎은 신물만 하나 잃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이건 받아줘야지.

올림포스의 신들을 뒤로한 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심판관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건, 어떻게 반박할 수단이 없군요. 저 역시 바싸고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헤라클레스와 경쟁을 하겠단 말인가?”

심판관의 질문에 살짝 미소를 지어주며 마저 말을 이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저는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성배 기사는 3명. 제가 갤러해드, 헤라클레스는… 음, 퍼시벌 경으로 빙의를 하면 되겠군요.”

“반신 헤라클레스도 동의하는가?”

“동의합니다.”

헤라클레스 역시 동의를 하고 난 뒤.

심판관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주어진 여유시간.

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프로메테우스가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곳에 있는 것 중 대부분은 거짓이라네.”

“네?”

“안에 들어가면 알게 될 것이야.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그 누구도 믿지 말게.”

프로메테우스의 조언과도 같은 말에 그가 뭔가 미래를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을 실어주는데 들어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알았다는 대답을 대신에 할 때. 잠시 헤라클레스를 바라본 프로메테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부탁 아닌 부탁의 말을 건넸다.

“힘든 일이 될 게야. 나 역시 모든 것을 보지는 못하니… 허나, 나는 그대도 헤라클레스도 다치는 걸 원치 않네,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도와줄 수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맙네.”

그 안에서 벌어질 일을 예지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헤라클레스를 얼마나 이용할지 예상해서 하는 말일까?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심장한 그의 말을 곰곰이 고민하고 있을 때.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회의를 마친 심판관들이 빙의부의 총관리 신 우즈라토에게 연락을 취했다.

팟-!

심판의 거울에 얼굴을 드러낸 우즈라토가 나와 헤라클레스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을 꺼냈다.

[정말 오랜만에 반신들이 성배 탐색에 나서게 되는구려. 실패의 대가는 모두 알고 있을 터. 심판관들의 회의 결과에 따라 결과를 말하겠소. 반신 이르카와 반신 헤라클레스는 과거의 4 지구에서 갤러해드와 퍼시벌로 빙의해 성배의 탐색에 나서는 것에 동의하나?]

“동의합니다.”

헤라클레스와 동시에 대답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인 우즈라토가 다시 세부 조항에 관한 얘기를 끝마치고 난 뒤.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뒤쪽으로 걸음을 옮겨 촉촉해진 눈망울로 날 불안하게 바라보는 안젤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어깨를 꼭 붙잡아주고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 꼭 돌아올 거야.”

“…안 돌아오면 죽여버릴 거예요.”

“점점 성진아 씨 닮아간다?”

“잔말 말고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해요.”

마치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안젤라에게 머리를 긁으면서 곤란하다는 투로 말을 건넸다.

“근데,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안젤라는 더 좋은 거 아냐? 지금 남은 포인트가 얼만데? 그거 다 안젤라가 쓰면…….”

“그 입 진짜!”

“그래, 이렇게 지내고 있으면 되는 거야. 내 걱정만 하고 있지 말고 이렇게 화도 내고 밥도 잘 먹고 카르나 님이랑 놀고 있다 보면 언제나처럼 돌아와 있을 거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을까?

한결 어깨의 떨림이 많이 줄어들었다.

고개를 돌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카르나 님에게 눈빛으로 안젤라를 잘 보살펴 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까지 눈에 담은 뒤. 우즈라토가 열어둔 자색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게이트를 통과하고 난 뒤.

차츰 시야가 암전되어갔다.

헤라클레스 녀석은 퍼시벌로 빙의를 했을 테니 눈을 뜨자마자 바로 조력자인 보어스를 찾아가겠지.

성배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장소는 두 곳으로 압축된다.

성배의 도시 사라스.

성배를 최초로 발견한 장소인 카보넥.

물론, 수많은 반신이 실패한 일인 만큼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헤라클레스 녀석이 보어스를 찾아 나서는 동안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 시간이 충분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동선을 짜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축 늘어져 있던 몸에 점차 감각이 돌아왔다.

이제 눈을 뜨면 빙의부의 트레이드마크인 낯선 천장이 슬슬 등장해야 할…….

“잉?”

예상하지 못한 황당한 장면을 봐서 그런가?

절로 이상한 소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눈을 뜬 곳은 낯선 천장도 아니었고,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도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눈동자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오직, 나만 쳐다보고 있던 것.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때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뭐 하는 것이냐! 어서 그 검을 뽑아 보아라! 그 저주받은 검을 뽑는다면 내 전하에게 말씀드려서 원탁의 기사에 넣어주지!”

“무슨 검?”

“놈! 바위에 꽂힌 저 저주받은 검을 네놈이 뽑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냐?”

사내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진짜로 바위에 박힌 검이 눈앞에 떡하니 있었다.

설마? 고개를 다시 돌려 사내의 손을 바라봤다.

무언가에 크게 베었는지 붉은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바라보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이거 너무 빨리 왔는데?

갤러해드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저주받은 검을 뽑는 이야기가 시작점이라면 조금 골치가 아프다.

하긴, 원하는 시기에 정확하게 오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런데, 저 빡빡이가 가웨인이었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가웨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웨인을 미소년이라고 적어놓은 놈들은 모조리 망상을 적어놓은 거였구나.

가웨인은 누가 봐도 태양의 기사라고 불릴 만했다. 반짝이는 머리에 비친 태양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검이 이렇게 뽑는 거였던가?

바위에 있는 검의 자루를 손에 쥐어보자 살짝 뽑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자신을 비웃었다고 생각했는지 가웨인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시간만 주어진다면 내가 충분히 뽑을 수 있는 검을 네가 뽑는다고…….”

쑤욱-!

자연스럽게 뽑혀 나온 검을 손에 쥐고는 가웨인에게 보여주며 말을 건넸다.

“이 검 말인가요?”

“어, 어 그래. 그 검 말이다. 내, 내가 거의 다 뽑아 놨던 검인데 네놈이 뽑았구나! 축하한다! 하하하핫!”

“……?”

가웨인의 어벙한 모습을 보자 진짜 원탁의 기사 중에 최강을 다투는 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그런데 왜 아서 왕과 랜슬럿이 없는 거지?

전승에 따르면 분명 그들과 가웨인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아서와 랜슬럿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뭔가 어긋나있다.

‘그곳에 있는 것 중 대부분은 거짓이라네.’

프로메테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물론 세세한 내용이 다를 수는 있다.

기록과 실제 모습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주변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모를 이질감은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갔다.

누군가의 음모 혹은 오염된 세계?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재밌네?

솔직히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격을 얻어 반신의 위치에 오른 자들이 이 안에서 사망해 신격을 잃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었으니까.

어색하게 웃고 있는 가웨인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을 건넸다.

“혹시, 찬란한 태양의 기사 가웨인 경입니까?”

“헛! 날 알아보는 게냐?”

“와! 정말 가웨인 경이셨군요! 가웨인 경은 빛나는 태양과 같은 기사라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만나본 기사 중에 가장 빛나는 분이기에 단번에 가웨인 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으허허허허! 아주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로구나!”

태양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가웨인의 머리를 힐끔 바라본 뒤 재차 말을 건넸다.

“그런데, 아서 팬드래곤 전하와 랜슬럿 경은 어디 계십니까?”

“전하? 지금쯤 전선에 계실 텐데? 그런데, 네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

“아, 제 이름은 갤러해드라고 합……!”

말을 채 마치기 전.

목덜미를 향해 섬뜩한 기운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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