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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88화 (88/121)

88화

잔뜩 도발적인 언사를 내뱉고는 가드만 올리고 있는 건방진 드래곤 출신 관리자 이르카를 두들기던 바싸고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 성진아가 보이지 않는 거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회귀자 성진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

자신만만하게 나타나서는 덤비지 않고 방어만 하는 이르카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바싸고는 그가 시간을 끄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대한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잔뜩 웅크려 방어만 하고 있던 이르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끌끌, 뭔가 꾸미고 있으시오?”

“왜? 궁금해?”

“그대가 무슨 짓을 꾸미든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할 것이오.”

“내가 원하는 게 뭔데?”

“……?”

이르카의 뜬금없는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은 바싸고가 이맛살을 찌푸릴 때.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이르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건넸다.

“너, 능력을 잃었구나?”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려.”

“아니, 사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넌 과거는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와 미래는 모르는 거 같던데? 만약에 그 모든 걸 읽었다면 날 성배 탐색에 보냈을까?”

“…….”

바싸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이르카를 노려봤다.

바싸고의 유일한 취미는 미래를 지켜볼 수 있는 존재들의 미래를 훔쳐보는 것이었다.

창조신과 같은 최상위 신들과 최상위 대천사, 그리고 대군주들을 제외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존재는 없었다.

처음 이르카를 봤을 때도 그의 과거부터 미래를 살펴보고는 재밌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신 카르나티우스가 그를 소개했을 때 외딴 행성 출신 반신이라고만 했을 때.

이르카의 과거를 살피고는 너무 재밌어서 물개박수를 쳤던 일을 떠올렸다.

그 당시 신계에 떠돌던 유명한 소문이 있었다.

자신이 통치하던 세상을 멸망시키고 그를 심판하러 내려간 대천사와 그의 수하들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린 미친 드래곤이 있다는 소문이었지만 그는 그저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이기지 못하는 존재인 심판의 대천사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는 필멸의 존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르카 아니, 이르카시우스의 과거를 살피고는 그것이 진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너무 재밌어서 그를 지켜봤다.

그리고 의아함을 느꼈다.

세상을 멸망시키고 멸망의 설화를 쌓은 존재가 창조신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창조의 설화를 얻는다?

만약 이 사실이 다른 신들의 귀에 들어가면 이르카의 사기행각은 끝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원래 헤라클레스에 의해 밝혀져 이르카는 신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오히려 파괴신으로 재각성하는 운명이었을 뿐.

그렇기에 바싸고는 성배 탐색에 억지로 헤라클레스를 끌어들였다.

이르카가 성배를 상대하려면 본래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

이것은 헤라클레스에게 이르카의 정체를 미리 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성배를 이르카가 얻더라도 그 모든 것이 흐지부지된다.

게다가 멸망의 설화를 흡수한 성배가 얼마나 더 큰 힘을 보이며 타락할지 궁금했던 것.

허나, 지금에 이르러 원래 정해져 있던 네 미래는 신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성진아 그리고 요한과 아르한이라는 미래를 읽을 수 없는 회귀자와 얽히기 시작한 이후로 이르카의 미래가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내, 미래가 안개처럼 가려진 이르카와 헤라클레스의 변화는 바싸고에게 충격을 가져다줬다.

이르카의 정체를 밝히고 당당히 창조신의 권한을 얻었어야 했던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와 싸우고 사라진 것.

이건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었으니까.

이르카가 성배를 탐색하러 갈 때 프로메테우스가 슬며시 다가와 건넨 말을 떠올린 바싸고는 이를 바스러져라 갈았다.

‘저들의 미래가 참 궁금하지 않소?’

‘호오? 예지의 신인 그대가 그런 말을 하니 재밌구려.’

‘예언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말에 불과하다오. 사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 물론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걸 개척해나가는 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정해져 있는 미래라는 것은 없다?’

‘이제부터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하시길.’

‘그, 그게 무슨 소리요?’

‘그 이상 가시면 그대는 소멸할 것입니다.’

‘……!’

그동안 예언의 신이라고 자처하고 다니던 자들에게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 내비치고 다니던 바싸고에게는 새로운 충격과 굴욕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마지막에 했던 말은 바싸고에게 네가 보는 미래는 정확하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끌끌, 결국은 프로메테우스가 나보다 위였다는 소리인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

“너는 미래를 보지 못하잖아. 프로메테우스 그 양반은 미래를 볼 수 있고.”

“크큭, 나를 재밌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이르카시우스.”

“이제 더 재밌어질 거야.”

“그래, 나를 더 재밌……!”

그 순간 바싸고는 몸 안에서 영혼이 뜯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강태식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몸이 갑자기 잘게 떨리며 무너지기 시작한 것.

‘이, 이건? 설마 성진아를 영혼으로……?’

성진아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강태식의 영혼이 뜯어져 나간 느낌에 몸을 잘게 떨던 바싸고의 앞에 가드를 푼 이르카가 나타나 흉포한 적색 눈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제부터 재밌어진다고 얘기했지?”

“……!”

“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폭풍의 힘이여 몰아쳐라!”

이르카는 성진아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느끼고는 천부령의 힘을 끌어내는 시동어를 외쳤다.

“……?”

“……?”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한 이르카가 재차 주문을 외우려 할 때.

바싸고의 몸이 마치 진흙처럼 변하며 무너져 내렸다.

* * *

강태식의 영혼을 흡수하고 그가 가지고 있던 힘을 모두 가져간 성진아가 넘치는 힘을 느끼며 바싸고의 영혼을 찾아서 달리던 때.

잘게 떨리던 바싸고의 몸이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눈치챈 건가?’

바싸고가 이상을 알아차리고는 뭔가 조치를 한 것일까?

갑작스레 나타난 어두운 공간을 바라본 성진아가 이맛살을 찌푸릴 때.

노인의 모습을 한 바싸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끌끌, 이거 된통 당했구먼.”

“네놈이 바싸고냐?”

“네놈?”

“맞나보네.”

“당돌하군. 감히 인간 주제…….”

“지금 그 인간한테 당한 게 누군지 떠올려보렴.”

“…….”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바싸고를 물끄러미 바라본 성진아가 심호흡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재차 말을 건넸다.

“이곳에 있으려면 간섭력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데 어쩌나? 강태식의 영혼은 내가 먹어버렸는데.”

“끌끌, 그것도 이르카시우스가 말해줬나 보지?”

“이르카시우스?”

“아, 바깥에 있는 저 멍청한 도마뱀 녀석 말이다.”

“관리자님을 욕하지 말렴.”

“끌끌, 내가 그 녀석을 욕하든 말든… 헉!”

이르카를 대놓고 멍청이 취급하며 조롱하던 바싸고는 말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쾅-!

섬전과 같이 날아온 보라색 물체에 급하게 몸을 피한 바싸고가 고개를 돌려 동공에 금을 낸 물체를 바라봤다.

“아론다이트…….”

“경고야.”

“끌끌, 맞힐 재주는 있고?”

“응.”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성진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정신을 뒤흔들 말을 생각하던 바싸고는 이내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

“쳇, 눈치는 빠르네.”

갑작스레 뒤에서 나타난 성진아가 재차 손에 아론다이트를 들고는 바싸고를 향해 검을 찔러갔다.

황급하게 검은 마력을 뽑아낸 바싸고가 성진아의 아론다이트를 쳐내며 그녀를 씹어먹을 듯 외쳤다.

“이런 잔재주를! 네년의 영혼을 씹어먹어 주마!”

“누가 영혼을 씹어먹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 아닌가?”

마치 비호처럼 이리저리 달려드는 성진아를 쳐내던 바싸고는 생각했다.

‘확실히, 기본이 암살자라 그런가? 정면 대결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

그렇기에 이상했다.

‘그런데 왜 정면 대결을 펼치는 걸까? 설마 내가 간섭력이 약해졌기에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를 지켜봤을 때 그녀는 자신의 기본이 암살자라는 것을 알고 강태식과 정면 대결은 꽤 피하는 인상을 주지 않았던가?

소원의 탑에서 벌인 일도 보스를 이용한 공격이었고, 최후의 전투 역시 강태식의 손발을 먼저 자르고 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상해. 왜 나와 정면 대결을 벌이는 거지?’

바싸고는 성진아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다시금 간섭력을 얻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이르카와 루크레시아의 영혼을 모두 빼앗아 버리고는 대군주들도 어찌할 수 없는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허나, 이르카가 이런 무리수를 둘리가 없었다.

이건 성진아의 독단적인 결정이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린 바싸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이르카 네 실수다. 성진아를 혼자 보내서 마지막에 이런 기회를 줄 줄이야.’

바싸고가 성진아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얇은 방어막을 넓게 펼치고는 손에 은밀히 죽음의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타락시킨 성배를 이용해 모은 죽음의 마력은 어둠의 마력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힘.

고작 해봐야 어둠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성진아는 이 힘을 맞으면 영혼까지 잠식당할 터.

그때였다.

팟-!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성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싸고는 눈치채지 못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녀가 달려들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넓게 펼쳐둔 마력의 장막에 성진아가 지척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순간.

바싸고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죽음의 마력을 모아둔 손을 펼치고는 외쳤다.

“끝이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성진아가 있었지만 없어졌다.

어안이 벙벙해진 바싸고가 재차 고개를 돌릴 때.

푸욱-!

찬란한 황금색 검신을 가진 검이 바싸고의 심장 부근을 찔렀다.

“커, 커 헉……!”

“재주 있다고 했잖아?”

“네… 네년이.”

“대악마라는 작자가 왜 이렇게 멍청하대?”

마치 쥐를 앞에 둔 뱀처럼 눈을 빛낸 성진아가 바싸고의 심장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성검 엑스칼리버를 뽑아낸 뒤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자신의 능력인 분신술을 이용해 모습을 감춘 뒤.

강태식이 자랑하던 이기어검술을 이용해 바싸고의 심장을 찌른 것.

영혼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바싸고가 몸을 벌벌 떨어대며 중얼거렸다.

“에, 엑스칼리버 따위가 내 몸에 이런…….”

“마리의 피가 담겼어.”

“……!”

“네가 그녀에게 했던 짓을 참회하며 사라지렴.”

“아, 안 돼!”

촤악-!

지식의 대악마이자, 미래의 탐구자 바싸고의 영혼이 성진아의 몸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히든메시지: 반신 이르카가 관리하는 회귀자 성진아가 ‘복수의 설화: 어둠 속에 빛나는 참회의 성녀’를 획득했습니다.]

[이르카의 창조 신화: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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