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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91화 (91/121)

91화

물론, 프란시스의 돌발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안젤라가 배신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프란시스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또한, 현 상황만을 봤을 때 요한을 구출할 방법은 우로스가 예상하지 못한 기습 즉, 내부의 배신이 필요해 보일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다급하게 아르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아르한! 프란시스는 배신하지 않았다.]

[아르한: 네?]

[이르카: 궁금하면, 지금 진실의 눈으로 확인해봐. 그러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아르한: 흠… 그렇다면 저놈이 왜 저런 행동을……?]

[이르카: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잖아. 쟤는 지금 그렇게 해서 일단 모두를 속이려고 하는 거 같아.]

[아르한: 이해가 가는 말이긴 하군요.]

[이르카: 그래, 일단 속아 넘어가 주는 척해봐.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내가 생각해볼게.]

[아르한: 속아 넘어가 주는 척이요?]

[이르카: 응. 뭐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야. 지금 이쪽에서도 준비 중이니까 시간을 벌 필요는 있거든? 연기 좀 해봐.]

[아르한: 저는 연기 같은 건…….]

[이르카: 이번 기회에 해보는 거지 뭐. 원래 이런 일은 연기력을 좀 필요로 한다?]

[아르한: 흠, 일단 알겠습니다.]

아르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는 프란시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마리에게 말을 건넸다.

“무대는 나쁘지 않은 거 같지? 지금 상황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오히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더 좋을 거 같긴 한데?”

“글쎄, 너무 화려해지는 거 같은데?”

“음, 이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 좋지.”

“뭐, 이르카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래, 이건 위험한 도박이 아니야.”

말을 마치고 아르한의 행동을 지켜봤다.

프란시스를 향해 돌진하는 척하다가 방향을 틀어 옆에서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처리하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몇 처리하고 난 뒤.

마치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프란시스의 이름을 외치는 아르한의 모습은 오로지 프란시스를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라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르카님, 그런데 프란시스가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요한님을 어떻게 구출할 계획이었어요?”

“응?”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저는 프란시스가 저렇게 행동하는 게 이해가 되거든요.”

“아, 사실 지금 공격은 거의 페이크나 마찬가지였어.”

“네?”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안젤라에게 재차 원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원래, 요한의 관이 이동해야 하는 장소가 있잖아?”

“그렇죠?”

“그 장소에 빨리 가게 하려고 공격하라고 했던 거였거든. 요한의 관이 어디로 빠져나오는지 모르는 아르한이 요한을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우로스인지 우루사인지 하는 놈이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동안 우로스의 행동을 봤을 때.

그는 마치 부나방처럼 교황청을 공격해오는 아르한을 비웃으며 요한의 관을 빠르게 이동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위험부담을 안고 쓸데없이 반격을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황청의 방어력을 믿고 요한을 제대로 옮겨두고 와서 아르한의 정신을 흔들려 했을 테니까.

그때 한참 동안 생각하던 안젤라가 뭔가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그러네요. 그렇다면 원래 마리는 그 관이 움직이는 도중에 부활시키려고 했던 건가요?”

“응. 그렇게 해서 요한이 우로스를 처단하고 교황청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계획이었는데…오히려 잘되었지.”

“오히려 많은 사람 앞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다. 이거죠?”

“응, 부활이라는 건 가장 신성한 행동이잖아? 사실, 부활 설화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종교로 발전하는 행동인데… 그걸 태양교의 심장부에서 하는 거니까 타격이 더 크겠지.”

“음…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그런데 손목에 그 빛은 뭐예요? 노란색만 있으면 신호등 같을 거 같은데?”

“…….”

내가 이 빛을 바라보며 했던 신호등 같다는 생각을 똑같이 말한 안젤라를 말없이 바라봤다.

“왜, 왜요?”

“아냐, 나도 이거 신호등 같다고 생각했거든…….”

말을 마치고 손목에서 빛나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게 나한테만 보이는 건 아닌 걸 보면 뭔가 있다는 건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이건 혼자서 고민을 해봐도 알 수 없는 일.

일단, 지금 상황에 집중하자.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낸 뒤 아르한이 나오는 화면을 재차 바라봤다.

* * *

이르카에게 프란시스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받은 아르한은 앞에서 달려드는 성기사를 향해 마치 파리를 쫓듯 해머를 휘둘렀다.

쾅-!

물론, 그 결과는 파리를 쫓는 것과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단 한 방에 투구가 완전히 찌그러진 성기사가 피를 뿌리며 날아가고 난 뒤.

아르한은 그의 앞에 켜켜이 쌓인 성기사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사자후를 내뱉듯 외쳤다.

“저 버러지를 때려죽이러 가는 내 앞길을 막지 마라!”

“괴, 괴물…….”

“크하하하하! 웃기는구나. 아무런 잘못이 없는 자들을 핍박하는 네놈들이 괴물일까? 그놈들을 때려잡는 내가 괴물일까?”

“……?”

“궁금하느냐? 네놈들이 한 짓이 말이다!”

잠시 숨을 고른 아르한이 해머를 들어 멀찍이서 치열한 전투현장을 바라보던 우로스를 가리키며 외쳤다.

“제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생각지도 못한 버러지들은 누군가?”

바싸고의 독에 당해 비적 거리고 있을 때 구해준 일을 꺼내자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던 우로스의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

“게다가 요한님을 함정에 빠트린 이유가 고작 뱀파이어라서? 왜? 네놈들보다 뛰어난 신성력을 가진 자가 그리 무섭더냐?”

말을 마친 아르한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성기사들과 우로스 그리고 프란시스를 쭉 가리킬 때였다.

성기사들이 모여있는 한 장소에서 누군가 발악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궤변이다!”

“흥! 궤변은 네놈들의 말이 궤변이다!”

“이익……!”

“방금 궤변이라 말한 자! 앞에 나와서 내 주둥이를 닥치게 해보아라!”

“…….”

“뭐야? 설마 그런 자신감도 없이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이더냐? 네놈들 가운데는 내 입을 다물게 할 실력자도 없는 것이더냐?”

아르한이 한껏 성기사들을 도발할 때였다.

“크하하핫! 그 입은 천하제일이구려.”

“우로스….”

“호오,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신다니 영광이구려.”

“크흣, 내가 붕어도 아니고 같이 며칠 동안 움직였는데 모를 리가 있나?”

“훗, 뭐 그대의 힘은 대단하외다. 아무리 정예 신성기사단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정도로 밀어붙일 줄은 몰랐으니까.”

“뭐?”

앞에 있는 신성기사단이 정예가 아니라는 뜬금없는 우로스의 말에 이맛살을 찌푸린 아르한이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이르카: 이쪽은 지금 거의 준비되었거든? 잠깐 상점창 열어줄게.]

[아르한: 상점창이요?]

[이르카: 응.]

[아르한: 상점창은 왜…….]

[이르카: 내가 항상 말했지? 데뷔는 화려해야 한다고.]

[아르한: ……?]

[이르카: 최강의 방패의 데뷔전이야. 이제부터는 네 반쪽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

[아르한: ……!]

최강의 방패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아르한이 다급하게 상점창을 열자 그 안에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십자가가 그려진 방패가 자리 잡고 있었다.

NEW![방어구][십자가의 방패][강화][성유물]: 1P

-행성(지구)에서 최강의 방패로 불린 성물.

-착용자가 입은 상처를 자동으로 회복한다.

-마력을 주입했을 때 보호 결계를 칠 수 있다.(단, 시전자가 공격을 하면 결계가 풀림.)

-마력을 신성력으로 치환할 수 있다.

-저주, 환영에 면역.

-성배의 힘으로 강화됨.

순간 방패를 보고 할 말을 잃은 아르한이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재차 이르카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이르카: 아, 원래는 공짜로 주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 뭐, 1포인트면 공짜나 다름없거든?]

[아르한: …훌륭합니다.]

[이르카: 그래? 마음에 든다니까 다행이네, 그거 중고긴 한데 성물은 원래 다 중고니까 괜찮지?]

[아르한: 훗.]

[이르카: 이제 뛰어!]

십자가의 방패를 든 아르한은 이르카의 외침에 눈빛을 빛내며 온몸에 마력을 끌어 올린 뒤 빠르게 뛰어올랐다.

갑자기 하늘로 뛰어오른 아르한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 우로스가 이내 그의 손에 보이지 않던 방패가 들려 있음을 확인하고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아르한이 쥐고 있던 십자가의 방패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신성력이라는 하얀빛 말이다.

“저, 저건 신성력?”

“오크가 신성력을 사용한다고?”

자신들을 무참히 학살하던 오크에게서 갑작스럽게 나온 신성력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성기사단이 미처 반응하지 못할 때.

두 눈을 부릅뜬 우로스가 발악하듯 외쳤다.

“왜! 저런 놈이 신성력을 쓴다는 말인가!”

“그야, 당신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니까요.”

“……!”

뒤쪽에서 들려온 서늘한 프란시스의 대답에 놀란 우로스가 채 반응을 하기 전.

푹-!

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에 파고든 단검을 바라본 우로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프, 프란시스 네놈이……?”

“당신이 그리 원하시던 태양신의 곁으로 가시길… 물론, 태양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

태양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프란시스의 말은 태양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제야 프란시스가 배신했다는 것을 깨달은 우로스가 핏줄이 돋아난 이맛살을 찌푸리며 크게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런 쓰레기만도 못한 개자식이!”

“생명의 은인을 배신한 당신이 더 개자식 아닌가?”

“뭐라!”

“아, 당신이 항상 말했지? 태양신이 당신의 아버지라고. 주정뱅이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이야. 그런데, 태양신이 아버지라고 말해놓고 그렇게 개만도 못하게 행동하면 애비인 태양신은 뭐가 되는 거지?”

“이런 미친 새끼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우로스가 계속 나불대는 프란시스를 향해 녹색 단검을 휘두를 때였다.

콰아앙-!

갑작스레 어둑어둑했던 하늘에서 하얀 빛줄기가 요한의 관에 떨어져 내린 것.

그 빛줄기는 모두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그만큼 강렬했으며, 그 강렬한 빛이 떨어진 자리에 거대한 불길이 일어났으니.

관의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불타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본 우로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갑자기 우로스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본 프란시스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바로 요한이 들어있던 관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있던 것.

“아, 안돼!”

“봤느냐? 이것이 태양의 힘이다! 사악한 이교도 따위는 태양의 힘에 사라질 뿐!”

“요한 님!”

다급하게 달려간 프란시스가 뜨거운 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피부가 쪼그라들고.

눈썹이 불타고.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혀올 때.

신성한 하얀 빛이 그의 몸을 감싸오며 말을 건넸다.

“이거 오랜만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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