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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05화 (105/121)

105화

현재 4무림계의 광마 이천웅은 확고부동한 무림계의 절대자다.

절대자였던 독고구패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후 수많은 무림 명숙들이 그에게 대결을 청했고,

이천웅은 그 모든 승부에서 승리를 거뒀다.

또한, 독고구패를 제외한다면 그와의 대결에서 사망한 인물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사정을 봐줬다는 것이 명징했기에 모두 광마의 강함을 순순히 인정했다.

세간에서는 광마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정도.

그런데, 그가 일초지적도 안 될 만큼 강한 상대가 나타났다고?

일단 무슨 일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이르카: 그게 무슨 소리야? 무림계에 너보다 강한 무림인이 어디 있어?]

[이천웅: 확실합니다! 소천이… 아니, 정룡이를 납치한 자는 무림인이 아니었습니다! 녀석이 소천이를 어떻게 하기 전에…….]

어렵사리 얻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제자가 위험에 빠졌기 때문일까?

천웅이의 다급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의 계속 이어지는 간절한 메시지를 받고 나도 모르게 살짝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르카: 천웅아.]

[이천웅: 대협께서 말씀해주신 아이입니다! 늘그막에 정을 붙이고…….]

[이르카: 천웅아? 잠깐 조용히 해볼래?]

[이천웅: …알겠습니다. 대협.]

마지못해 입을 다문 것일까?

이천웅은 뒷말을 흐리며 뭔가 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답답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서로 떠들어 봤자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게다가 의외로 이천웅의 제자 한정룡은 위험한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천웅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자가 왜 납치를 하겠는가?

그가 이천웅과 한정룡을 제거하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방법은 납치.

납치는 인질을 잡는 행동이고 그 행동은 뭔가 요구할 것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혹여, 이천웅에게 건네주었던 천무신공(天武神功)을 노린 것일까?

아니, 자신보다 낮은 경지에 있는 인물의 무공을 탐하는 인물은 거의 없다.

예전에 9무림계에서 무광(武狂)이라 불리던 자를 제외한다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일.

재물?

아니, 천웅이는 속된 말로 해서 비렁뱅이다.

개방도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냥 누더기가 되기 직전의 옷만 입고 다니면서, 돈이 생기면 그냥 바로 배불리 음식을 사 먹거나 하면서 써버리는 놈이었으니까.

결국, 이천웅에게서는 얻어낼 것이 없다는 뜻인데…….

흠, 한정룡의 아비가 꽤 부자였지?

역시 재물인가?

그런데, 그런 인물이 뭐가 아쉬워서 광마가 지키고 있어 위험부담이 있는 한정룡을 납치했을까?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벌컥-!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때.

장을 보고 돌아왔는지, 쇼핑하고 왔는지 안젤라와 마리가 양손 가득 짐 보따리를 들고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짐 보따리라…….

뭘 얼마나 산 거야?

자기 몸통만 한 짐 보따리를 힘겹게 내려놓은 그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안젤라가 짐 보따리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응? 표정이 왜 그래요?”

“응? 아! 아니야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음? 표정을 보면 별일이 아닌 게 아닌데? 포인트 많이 썼을까 봐 그러는 거예요?”

“많이 티나?”

“네. 얼굴에 나 심각함! 이렇게 쓰여있어요.”

나도 모르게 얼굴이 심각해졌었나 보구나.

내가 짐 보따리를 보고 당황했다고 안젤라가 오해한 모양.

뭐, 내 걱정을 그녀에게 전가해줄 필요는 없겠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온 거야?”

“에이~벌써 알려드리면 재미없죠.”

“……?”

“그리고! 이르카 님 포인트로 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여튼 짠돌이라니까 진짜.”

“……??”

우리 아직 포인트 많은데……?

성진아와 요한이 벌어온 포인트만 해도 꽤 풍족하게 쓸 수 있는 수준에다가 다른 회귀자들도 나름대로 쏠쏠하게 포인트를 벌어다 주고 있었으니까 예전처럼 포인트가 쪼들릴 일은 없다.

그녀가 고작 저 정도 장을 봐왔다고 한순간 거지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피식 웃으며 안젤라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안 되겠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속이 조금 후련해졌어요?”

“응? 아… 들었구나?”

“뭐, 아무리 요리를 하고 있어도 안 들릴 수가 없는 얘기였으니까요.”

“미안, 내가 안젤라의 허락도 없이…….”

“괜찮아요. 이미 수천 번 넘게 사과하셨잖아요. 또, 그 일은 이르카 님의 잘못이 아닌걸요.”

과거에 용서받기 어려운 실수를 저질렀을 때.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을 안젤라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칫! 그리고 자기 생일은 좀 챙기라고요.”

“응? 생일?”

“어휴, 까먹었죠? 하긴 나이가 나이다 보니… 이제 슬슬 치매가…….”

“드래곤이 치매 걸린다는 소리 들어봤어?”

“드래곤이라고 뭐 다른가? 오래 살면 걸릴 수도 있는 거지, 저 예전에 치매 걸린 엘프는 봤거든요?”

“그, 그래?”

얘가 진짜 언제 이렇게 컸지?

이런 말발로는 당해내기 어려운 존재로 성장해버린 안젤라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릴 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마리가 말을 건넸다.

“아! 부럽다! 나는 이런 선물 해주는 사람 어디 없나?”

“내가 해주면 되잖아?”

“쳇!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무슨 소리야?”

“천계 상점에서 안젤라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걸 네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와, 난 안젤라가 그렇게 빠른 거 처음 봤다니까? 막 다른 여신들 제치고 가는데…….”

재밌는 광경을 봤다는 듯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지은 마리가 재잘재잘 떠들어 대는 모습을 지켜본 뒤 턱짓으로 짐 보따리를 가리키며 질문을 건넸다.

“그렇게 말하니까 궁금해지네? 선물이 뭔데?”

“알면 안 돼요!”

“…갑자기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아, 알면 안 되는 거니까요!”

선물이 뭐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마리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기대하라고, 안젤라가 너를 위해서 납치해온 아이니까.”

“마리도 참! 나중에 어련히 마리 것도 챙겨줄 텐데 왜 벌써 말하고 그래요…….”

“뭐, 선물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도망칠 것도 아닌데 어때?”

확실히 마리가 오니 집무실에 더욱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안젤라와의 대화가 끊어졌겠지만, 마리 덕분에 안젤라도 활력이 넘친다고 해야 할까?

이래서 아들이 아니라 딸이 좋다고들 하는구나…….

잠깐만?

안젤라가 나를 위해 납치를 해?

농으로 던진 말이겠지만, 지금의 상황에 대비해보면 절대 농으로 들릴 수 없는 말이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천웅의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던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굳이 납치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녀석들이 원하는 대상을 나라고 바꾼다면?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에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하긴, 이스마엘이야 뤼슈타 녀석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으니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웠을 터.

제우스가 보낸 녀석들은 이스마엘 녀석이 뤼슈타의 곁에서 떨어지는 틈만 노렸을 것이다.

헤스티아는 제우스가 정령계에서 뭘 꾸미나 궁금해서 그의 부하들의 모습을 지켜봤던 것일 테고…….

반면에 이천웅은 어떤가?

4무림계에서 그보다 강한 자는 없다.

그렇기에 일을 쉽게 벌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국, 한정룡을 납치한 이유는…….

바로 나를 불러내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이거 애프터서비스 한번 가야겠는걸?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나로 인해 촉발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계약은 종료가 되었지만, 녀석의 회귀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 * *

힘을 대부분 제약당하는 기분은 언제나 찝찝하다.

물론, 예상되는 상대가 올림포스의 신이라고 해서 찝찝한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인간계에 내려올 때는 똑같이 제약을 당하기 때문에 무력충돌이 벌어지더라도 내가 현저히 밀릴 가능성은 작다.

어차피 서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은 똑같으니까.

그가 상급 신이라고 해도 붙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제약당한 힘 때문이 아니다.

“왠지 쇳덩이를 달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몸이 무겁다.

그것도 매우 무거워진다.

사실, 그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

뭐, 기분이 좋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몸이 무겁다는 것은 평상시와 비교했을 때 그런 것이지 무림인들 입장에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테니 큰 위협은 없겠지만 말이다.

카르나 님에게 허락을 받고 내려온 4무림계.

오악(五岳)이라 불리는 산 중 하나인 태산(泰山).

하늘 위에 올라가 땅을 쭉 둘러보며 또 다른 신의 기운을 살펴봤다.

이질적인 신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주변에는 산신령과 영물들의 신력이 느껴질 뿐.

다른 세계의 신이 내뿜는 신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올림포스의 신이 아니라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처음부터 어긋난 느낌이 드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찌하겠는가?

모르면 몸으로 부딪쳐 봐야지.

때로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해결책이 되는 때도 있으니까.

일단, 천웅이 녀석부터 만나봐야겠네.

룬 주위를 돌고 있는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찌뿌둥한 만큼 마력도 조금 늦게 도는 게 느껴졌다.

곧 맹렬히 몸 안을 돌아다니는 마력의 끈을 붙잡으며 주문을 내뱉었다.

“형태 변환.”

팟-!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무림인의 모습으로 몸이 변한 것을 확인한 뒤.

한정룡을 잃었다는 슬픔에 실의에 빠져있을 이천웅을 찾아 지상으로 내려갔다.

* * *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광마(狂魔) 이천웅은 관리자인 이르카에게 연락을 취한 뒤, 힘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취하고 싶어도 취하지 않는 머리를 원망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의문의 습격자에게 그가 느낀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었다.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파괴적인 공격에 감히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말 그대로 일초지적(一招之敵).

단 한 번의 출수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잘한 긁힌 상처를 제외한다면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진 자신의 모습만 휘영청 밝은 달빛에 비칠 뿐이었다.

차라리 목숨을 빼앗아 갔다면…….

이토록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력이 달려 패배한 무인이 목숨을 잃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강함을 추구하는 무인에게 주어진 숙명이었으니까.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늘그막에 들인 제자 소천. 아니, 한정룡은 그 누구보다 이천웅에게 기쁨을 주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이 아닌 열을 깨우치는 천재를 가르치는 기분은 마치 과거에 잃었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으니까.

‘분명 그자에게 느껴진 힘은 이르카 대협에게 느껴지는 힘과 비슷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신과 같은 존재라는 소리인가?’

사실, 얻어맞는 찰나의 순간 느낀 것이기에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천웅은 자신의 기감을 믿었다.

세상에 무림인보다 기감에 민감한 이는 없지 않은가?

다시금 씁쓸한 기분을 느낀 이천웅이 술잔에 술을 따르기 위해 술병을 들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그의 눈앞에서 술병이 사라졌다.

‘취했나?’

의아한 기분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류 무인의 모습을 한 사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술병을 흔들더니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한 잔 줄까?”

“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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