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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08화 (108/121)

108화

창표를 따라 길을 나선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딘가 모르게 기분을 조금 불쾌하게 만드는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 왔다.

창표가 말해 줄 때 운남 지역은 조금 덥다더니 혹시 운남에 벌써 도착한 것일까?

앞에서 땅을 접으며 뛰쳐나가고 있는 창표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창표야.”

“네?”

“혹시 여기가 운남이라는 곳이냐?”

질문을 받은 창표는 잠시 숨을 고르듯 걸음을 멈추더니 주변을 쓱 훑어보고는 곧바로 대답했다.

“확실히 이르카 님은 감이 좋으시네요. 지금 막 운남 지역의 초입에 들어섰어요.”

“오, 그래?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공간을 접을 때보다는 느리죠.”

“공간을 접어?”

공간을 접다니?

신선들이 쓰는 축지법이 공간을 접는 기술 아니던가?

의아한 기분이 들어 창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창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투덜거리듯 말을 마저 이었다.

“쳇, 아무튼 이런 불편한 축지법보다 급이 높은 기술인데… 광철 할아버지가 아직 안 가르쳐 주셨어요.”

“응? 축지법이 불편해?”

“당연하죠! 단순히 땅을 접어서 빨리 가는 거랑 공간을 접어서 한 번에 원하는 위치로 가는 거랑 차원이 다르지 않겠어요?”

“…….”

“에휴, 내 팔자야. 아무튼, 이번 일 끝나면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 좀 드릴 건데 이르카 님도 저를 좀 도와주실 거죠?”

천연덕스럽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창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할 말이 없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녀석도 사람의 나이로 치면 수백에 가까운 나이지만 어찌 되었든 나보다 한참 어리니까 괜찮겠지.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이 녀석도 완전한 신선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세상에는 창표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축지법을 배우고 싶어서 안달인 녀석들도 많으니까.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배우고 싶어 하는 놈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튼, 이곳이 한정룡이 의문의 사내에게 잡혀 있다는 곳에 거의 도착했다는 거지?

과연 누굴까?

회색 머리에 안대를 한 신력을 가진 놈이라…….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올림포스 신들의 정보를 죄다 꺼내 봤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떠오르는 신이 없었다.

그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이런 멍청이 같은… 내가 왜 이 생각을 지금에서야 했을까?

신체(神體)는 무한하게 변형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안대야 실질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위장용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고 모습 또한 변형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신력을 가진 자가 상대를 마주한다면 본질을 꿰뚫어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또 다른 의문도 해결이 된다.

바로, 생기(生氣)를 가진 녀석 즉, 한정룡이 혼자 이곳에 있다는 것 말이다.

아마도 정체를 들키기 싫은 그는 나와 마주하기 전에 이미 이곳을 벗어났다는 건데…….

몇 가지 꼬인 의문을 풀자 또 다른 의문이 머릿속에 똬리를 텄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냥 심심해서 그랬을 리는 없다.

무슨 이유가 있으므로 직접 움직였을 것이고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신들이 위장까지 하고 움직였다는 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자.

일단, 납치하고 살려 뒀다는 것은 직접 찾으러 오라는 뜻이다.

또한, 이천웅의 능력으로는 오래 걸릴 테니 그가 아무리 나와 회귀 계약이 끝났더라도 아직 사망한 것이 아니며, 엄연히 나와 계약했던 회귀자였기에 내게 연락을 할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가?

‘인간 중에서는 너를 이길 자가 없다’라고 말이다.

확실히 무림계에서 그가 손 한번 뻗지 못할 압도적인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신이 아니고서는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니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건 나를 노린 것이다.

다급하게 옆에서 공접법을 말하며 헤벌쭉 웃고 있는 창표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걸려고 했다.

쾅-!

창표가 서 있던 자리에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이 흩날렸다.

이거 일 났구나.

나도 모르게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창표야!”

“쿨럭! 쿨럭!”

“괜찮아?!”

“네! 괜찮아요!”

창표의 목소리를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 한구석을 쓸어내렸다.

기습을 가한 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주변을 계속 훑어보고 있을 때.

온몸에 흙먼지에 잔뜩 뒤집어쓴 창표가 콜록거리며 다가오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르카 님도 아무런 기운을 느끼지 못하셨죠?”

“그래.”

“나 원 참… 이거 쪽팔려서 원…….”

의문의 기습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해 민망했는지 창표가 머리를 긁적이며 재차 말을 건넸다.

“이건 아무리 봐도 상대를 죽이려고 한 공격은 아니었어요.”

“그렇지… 반신과 신선을 상대로 한 공격치고는 너무 약했어.”

“아뇨, 공격할 때 살기가 전혀 없었어요.”

“공격에 살기가 없어?”

공격에 살기가 없다니, 그런 게 가능한가?

죽이기 위한 공격이 아니더라도 남에게 위해를 끼치기 위해 하는 공격에는 조금이라도 살기가 섞이기 마련이다.

최대한 감추고 숨길 수는 있지만,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놈이 그런 말을 하다니…….

아니지, 일단은 적이 있다는 것은 알아차렸다.

그런데 왜일까?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자가 일부러 이런 비효율적인 공격을 한 이유가 뭘까?

옆에 있던 바위 턱에 걸쳐 앉아 공격을 받은 지역을 살폈다.

역시, 아무리 봐도 위해를 가하기 위해 한 공격은 아니다.

그저 경고에 가까운 공격.

또, 약한 공격은 이렇게 살기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아무리 약한 공격이라고 할지라도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하는 것과 방심을 하고 있다 당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옆을 보니 창표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경직된 움직임.

현저히 느려진 보폭.

이런 반응을 유도했다면?

그렇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빠르게 다가온 우리에게 천천히 오게 하는 경고의 의미.

왜?

납치범은 왜 모습을 드러내고 시간을 지체시킬까?

뭔가 큰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아니, 신이라고 할지라도 창조신의 권능에 의해 현세에 간섭한 이상 자기 자신의 힘은 무조건 약화된 상황일 터.

큰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처벌이야 받겠지만, 원인 제공은 저쪽이 했으니 나는 정당방위로 참작될 것이고.

그렇다면 역시 지금 하는 행위들은 모두 시간을 끄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데…….

왜 시간을 끌까?

역시, 그런 것인가?

잔뜩 이맛살을 찌푸린 창표를 잠깐 멈춰 세우며 말을 건넸다.

“창표야 잠깐만.”

“네? 지금 녀석을 뒤쫓아 가지 않으시고요?”

“어차피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저희가 찾아가는 방향에 있겠죠.”

“그래. 그러니까 급할 거 없어.”

“…너무 태평하신 거 같은데요?”

“조금 돌아가자고.”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는 창표를 힐끔 바라본 뒤.

서둘러 안젤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바빠?]

[안젤라: 네? 아뇨, 지금 이르카 님이 계신 곳을 지켜보고 있죠.]

[이르카: 방금 공격을 받았다는 것도 봤겠네?]

[안젤라: 네… 죄송해요. 저도 못 봤어요.]

[이르카: 그걸 물어보려고 연락한 건 아냐.]

[안젤라: 그러면요?]

[이르카: 지금 다른 회귀자들 주변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아?]

[안젤라: 다른 회귀자들…….]

이번 일은 나를 노리는 게 아니다.

내가 없는 사이 다른 회귀자들을 노리는 것이다.

나랑 아직 회귀 계약이 끝나지 않은 자들.

그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바로, 내가 계산해 두었던 카르마가 늦게 들어온다는 뜻.

그사이에 다른 관리자를 내세운다면?

막말로 누군가를 밟아서라도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메르나 같은 녀석이라면?

관리자 시절 헤라클레스가 보유하고 있던 카르마 일부는 올림포스에서 관리하고 있을 터.

물론, 자신이 얻은 카르마 즉, 업이 아니므로 메르나가 온전히 얻기는 힘들지만, 헤라클레스 녀석이 올림포스의 힘으로 회귀 계약을 완료시킨 회귀자의 카르마라면?

이것은 올림포스 측이 내세울 수 있는 카르마.

즉,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메르나 녀석이 올림포스에 붙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이거 참… 치사하게 나오시네.

반쪼가리 신도 아닌 신이라는 양반들이 내가 막말 조금 했다고 이렇게까지 쪼잔하게 나오시나?

아니…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내 업보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안젤라: 원래부터 이상했던 분들 몇몇을 제외하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요?]

[이르카: 뭐?]

[안젤라: 네, 아르한 님이 프란시스 씨 머리에 비친 이를 닦는다든가… 로니 님이랑 헤라클레스 님이 이세계의 토르 님이랑 팔씨름하다가 술에 취해서 쌈박질한다든가 하는 일밖에 없는데요?]

응? 이거 너무 평온한 일상들이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생각하는 걸 올림포스 신들이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바꿔 볼까?

그들의 신상에 위해를 가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이르카: 조금 너무 간 거 같기는 한데, 뭔가 위협이 가해지는 것 말고. 회귀자들의 계약서를 다시 살펴봐 줄래?]

[안젤라: 그건 또 왜요?]

[이르카: 의심이 가는 게 있어서 그렇거든?]

[안젤라: 무슨 의심—치직—이…—치직—요?]

[이르카: 응? 이게 왜 이러지? 안젤라 무슨 일이야?]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통신 불량 사태에 안젤라를 애타게 불러봤지만 들려오는 응답은 없었다.

아뿔싸, 혹시 안젤라와 마리를 노린 것인가?

중간계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때였다.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여자 목소리?

“그 가증스러운 면상은 변하지도 않네.”

“누구십니까?”

“킥! 그렇게 물어보면 누가 대답해 준대?”

“아뇨, 대답해 줄 거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르륵-

마치 안개처럼 창표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는 기다란 흑발에 복면을 쓴 여인이었다.

올림포스에 이런 존재가 있던가?

회색 머리에 안대는 역시 변형을 한 모습이었던 인가?

그런데 올림포스에서 이런 기운을 낼 수 있는 신은 한 명밖에 없을 텐데?

그의 본질은 이 모습이 아니잖아?

긴장을 한 채 내 옆에 다가온 창표가 이를 바스러져라 악물며 그녀를 노려봤다.

하긴, 이런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신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반응할 테지.

그녀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하나.

바로, 죽음.

“하데스십니까?”

“이거 왜 이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

“뭐?”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올림포스에서 내 이름을 알아차렸다고?

어떻게?

당황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때 그녀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창표를 바라보고는 말을 건넸다.

“아, 내 실수. 본명은 저 꼬맹이도 모르지?”

“너 실수한 거야.”

“응? 내가 무슨 실수를 했니?”

“네가 어디의 신인지 모르겠지만 무림계에서는 해 볼 만하거든?!”

“그래? 덤벼 보렴. 둘이 같이 덤비렴.”

눈이 위로 휘어진 초승달처럼 변한 그녀가 손을 까딱거리며 나와 창표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너무 뻔한 도발이잖아?

이런 도발에 말려들 녀석이라면 내가 데리고 오지도 않았지.

그때였다.

팟-!

말릴 새도 없이 창표가 비호처럼 그녀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넌 뒤졌어!”

“…….”

쟤 반로환동을 하더니 뇌도 순수해진 거야?

황당한 기분에 창표를 도우려 주문을 외우던 그때.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그녀의 옆을 쏜살같이 벗어난 창표가 내게 메시지, 아니 이곳의 용어로는 전음을 보냈다.

[창표: 저는 한정룡하고 이천웅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날게요. 혹 달고 싸우기엔 불편하잖아요?]

[이르카: …….]

어찌 되었든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마치, 창표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웃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넸다.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으니까 제대로 즐겨 볼까? 못난 제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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