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어사 나리
반짝이는 불빛이 세 개고, 그것들이 내 손에 들린 것과 비슷한 횃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슬아슬했다. 그쪽에서도 내 횃불을 본 모양인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나 호랑이의 포효 역시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었다.
‘망할…… 저…… 빌어먹을…… 호랑이…… X끼는…….’
점점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훌륭한 몸이었지만 그래도 산에서 호랑이의 추격을 뿌리치기에 공부와 시묘살이에 시달린 이의 체력은 한참이 모자랐다.
저 사람들이 나를 먼저 돕는가, 호랑이의 발톱이 내 등짝을 먼저 후려치는가.
하지만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이 시합 종료니까!’
이제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숫제 귓가를 덮치기라도 할 것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횃불 세 개는 이제 실루엣 세 개로 변해있었다. 달빛이 밝아서 다행이었다.
갓, 삿갓, 패랭이.
그 와중에도 세 사람 머리에 얹혀있는 모자의 모양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삿갓을 쓴 자의 덩치가 유독 크다는 것도.
***
“엎드려!”
달려오던 덩치 큰 남자가 다짜고짜 소리 지른 말이었다. 영문 모를 지시였지만 덩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 전투력은 나도 모르게 그 지시에 따르게 만들고 있었다.
즉시 철퍼덕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렸다.
‘이거 완전 홈 승부시키는 주루코치…….’
떠오른 잡생각은 머리 위를 빠른 속도로 스치고 지나가는 물체가 쐐애액 소리를 내며 찢어버렸다. 세 사람 쪽으로 미끄러져나가는 몸의 반대 방향을 향해 공기가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아앙!
이런 씹…….
생각보다 목숨이 훨씬 위험했던 모양이었다. 호랑이의 비명은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명중일세, 김 갑사!”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뒤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창을 맞았으니 호랑이 놈은 이제 뒈지려나?
“아, 모가지! 눈이나 옆구리를 찍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요!”
X됐다.
이 망할 고양이 새끼, 이제야 지옥으로 가는 꼴을 보겠구나. 하고 말라붙은 입맛을 다시며 돌아봤건만, 자리에서 눈에 들어온 장면은 기대와는 하필 거리가 먼 것이었다.
호랑이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지X발광을 해대고 있었다. 미쳐 날뛰는 호랑이의 눈깔이 안광을 뿜으며 반쯤 돌아가 있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쫙 끼쳐왔다.
그놈의 목덜미에 정면으로 꽂힌 창은 피를 내뿜으며 덜렁거리고 있었다. 상처에서 일정한 박자를 따라 피분수가 뿜어져 나와 흑황의 줄무늬를 물들이는 모습은 잔혹 그 자체였다.
“히…… 히익!”
“자네! 어서 이쪽으로 오게! 빨리!”
몸이 반사적으로 반대편으로 굴러갔다. 왜 조선인들이 호환을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맨몸으로 마주친 맹수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이런 썅!’
망했다. 한 번 넘어졌을 때 다리가 풀려버린 모양이었다. 꽤 긴 거리를 전속력으로 뛰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애를 써 봤지만 풀려버린 다리에는 좀처럼 다시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으리!”
움직이는 팔로라도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고 기어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시선은 위로 올라왔다. 그 사이로 검은 갓을 쓴 남자가 횃불과 짧은 단창을 휘두르며 내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동공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상처 입은 맹수의 울부짖음이 천지를 흔들었다.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한 죽음의 공포.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로 무장한 맹수가 있었다.
사람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를 겪으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던가.
영겁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호랑이 발톱이 언제 등짝을 내리찍을지 모르는 공포와 맞서는 것은 여간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숨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압박하고 있었다.
우지끈, 깡.
쇳덩이와 나무가 동시에 박살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터졌다. 영문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내 옆으로 사람의 형체가 털썩, 하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아까 나를 향해 달려오던 갓 쓴 사람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원래 빠르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기어가는 방향을 돌려 쓰러진 사람에게 향하는데, 머리 위로 스쳐가는 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호랑이의 비명이 한 번 더 들려왔다.
“망할, 이마라니! 유 서리, 웅얼거리지만 말고 나으리께 가봐!”
“알았당게!”
위기를 벗어났다는 뜻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어가며 고개를 돌려 바라본 시야에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호랑이가 절뚝거리며 덩치 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목덜미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그제서야 느껴졌다. 땀인 줄 알고 닦아낸 손바닥은 온통 시뻘게져 있었다.
목에 난 상처는 없었으니 이 피는 저 맹수의 것. 호랑이 옆구리에 덜렁거리는 창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방금의 급박한 상황이 실감이 나 나갔던 혼이 돌아왔다.
“나으리!”
얌생이처럼 생긴 남자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쓰러진 사람을 존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이 깊은 산골을 다니는 높으신 분?
“으…… 으으…….”
옆에서 그 높으신 분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필사적으로 기어왔던 탓인지 어느새 쓰러진 사람의 바로 옆까지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이 빠졌던 정신과 함께 다리에 힘도 돌아왔지 싶었다. 몸을 일으켜 기절한 사내를 살폈다. 주위엔 흩뿌려진 나무토막이 즐비했다.
“저…… 저기…… 괜찮으십니까?”
나무토막의 정체는 사내가 그 와중까지도 손에 쥐고 있던 창의 자루였다. 갈기갈기 찢긴 사내의 도포 앞섶을 보니 박살난 창 자루로 호랑이 발톱을 막으려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대체 왜……?”
그러다 죽는다는 타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때마침 그놈의 옆구리를 뚫어버린 창이 아니었으면 둘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처음 보는 자를 살리려고 목숨을 건 것이 분명했다.
“어디 사시는 좋은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행히 도포의 고름이 뜯겨나가고 앞섶만 찢겨져 나갔을 뿐, 저고리와 속곳으로 칭칭 감싼 가슴팍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발톱을 맞았는데? 갑옷이라도 껴입지 않은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와중에도 신음과 함께 뱉어지는 남자의 호흡이 고르지 못 해 저고리를 풀어 편하게 해 주려는 찰나였다.
빛나는 무언가가 저고리 사이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반달처럼 생긴 금속판. 아니, 원래대로라면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을 물건이었겠지. 마저 남자의 품에서 흘러내린 나머지 조각 하나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세상에…….”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닮은 그 물건을 쪼개놓은 균열은, 새겨진 말 다섯 마리의 잔등을 갈라놓은 채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히…… 히익? 마…… 마패가……!”
짐작하던 그 물건이 맞았다. 어느새 옆까지 달려온 얌생이를 닮은 남자의 말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어느 양반님네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시기, 한 번만, 한 번만 모른 척 해주믄 안 되겠어라?”
얌생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에, 아마도 그들이 모시는 남자의 정체까지 들켰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 얹은 패랭이가 가늘게 떨리는 이유는 호랑이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겠지.
“알겠소. 그 전에, 상비한 환약이라도 있으면 이분께 드리시오. 어서.”
쓰러진 사람의 정체를 왈가왈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 어사이고 황급히 맥을 재고 있는 얌생이가 방자라면 먼 길을 대비한 구급약 정도는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 원하는 물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얇은 한지에 싸인 엄지만 한 환약이 소매에서 나와 얌생이의 손가락으로 눌러 으깨지더니 물에 섞여 어사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르르르…….
깜짝 놀란 얌생이의 손에서 어사의 입에 대고 있던 사기(沙器) 수통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나와 얌생이의 시선 모두가 으르렁거림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쏠리고 있었다.
‘아차, 급해서인지 호랑이를 잊고 있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구릉 한가운데에서 창을 꼬나든 덩치와 온몸의 털을 빳빳이 곧추세운 호랑이가 마주 선 채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발광을 멈춘 범은 천천히 덩치가 있는 쪽을 노려보며 호를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동물적인 직감이 지금의 사태가 급박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범과 맞상대하고 있는 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리는 모습에 덩치의 시선도 범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저 남자, 저러다 죽는다!’
총을 들고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호랑이 사냥이라고 들었다. 창을 들고 상처 입은 호랑이를 상대하는 덩치의 무장은 허리춤에 달려있는 환도 한 자루가 전부였다. 맹수와 1대1로 싸워서 살아남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방금 얌생이가 떨어뜨린 단창이 손에 잡혔다. 이 상황에서는 나도 뭐든 해야 했다. 조롱박처럼 잘록한 허리를 가진 창끝이 달빛을 받아 빛났다.
지구력과 투척력.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대부분의 신체 능력이 떨어지지만, 이 두 가지 능력은 월등히 뛰어나다. 하나는 방금까지 범에게 쫓기느라 신나게 사용했으니,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나머지 하나뿐이었다.
호랑이의 커다란 머리통이 무릎 높이까지 내려갔다. 마치 스프링이 튀어 오르기 전 잔뜩 움츠러든 상태를 연상케 하는 자세.
그걸 보고, 내 몸은 의지와 별개로 익숙했던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캐치, 하나, 둘.’
얕은 외야 플라이. 목표는 홈 베이스.
목표가 커다라니 정확할 필요는 없다. 주의만 끌면 된다. 참, 팔꿈치 각도 좁히고.
잔 스텝을 몇 번 밟은 다리를 크게 두 걸음 박차 오른손에 쥐어있던 날붙이를 멀리 쏘아 올렸다.
“아니…… 거시기는 내…….”
창이 쏘아지기 무섭게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얌생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
“……그렇게 된 일입니다요. 그때는 죽는 줄 알았습죠. 원래 범 사냥이라는 것은 적어도 스무 명은 필요한 것인데…….”
사람 넷이 투창 몇 자루로 호랑이를 잡은 것이 천운이라는 단어 말고 어떻게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덩치의 말에 의하면 호랑이가 어린놈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다만.
헌데, 김 갑사라고 불린 덩치와 유 서리라고 불린 얌생이가 그렇게 보고를 하는 도중에도 듣는 이는 바위에 올라앉아 말 한마디가 없었다. 귀는 열려있으되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저분이 없었으면 저희는 그놈 한 끼 식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죠. 창 던지는 태가 남다르셨습니다요.”
“김 갑사가 범 소리를 듣고 미리 단창을 나눠준 것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당게요. 착호갑사 출신이라 매번 떠들더니 그 값을 할 줄은.”
“그 거리에서 창을 던져 맞추는 등패수(藤牌手)도 드물지 말입니다요.”
솔직히 말하면, 악송구를 저질렀다.
그것도 포수가 가장 받기 어려운 가까운 곳에서 튀어 오르는 원 바운드 송구, 아니 송창(送槍)인가. 공 던지는 것과 창 던지는 것은 달랐다는 건 이제 와서 하는 변명이지만 아무튼.
그래도 하늘이 인도하신 탓인지, 운이 좋은 탓인지. 창은 바닥에 꽂히는 대신 물수제비처럼 튀어 올라 잔뜩 수그리고 있던 호랑이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에 깜짝 놀랐는지 한창 도약을 준비하던 놈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거리를 잡은 덩치의 투창이 다시 한번 범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헌데, 창을 세 발이나 맞고 땅을 피로 흥건히 적시면서도 호랑이 눈에서 타오르는 안광은 꺼질 줄을 몰랐다. 그놈이 뛰어올라 칼을 뽑아든 덩치를 위에서 덮쳤을 때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르게, 칼을 겨드랑이에 끼고 누워불 줄은 범이 상상이라도 했겠씨요. 덕분에 범의 피로 미역을 감았당게.”
“야인 사냥꾼들이 곰이 덮칠 때 창대를 세우고 곰의 무게로 염통을 뚫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번개같이 떠올랐지 뭡니까요.”
자루 길이가 유난히 긴 환도를 툭툭 치며 덩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피 칠갑을 하고는 칼을 붙잡고 껄껄거리는 모습에 잠깐 소름이 돋았으나 웃어넘겼다. 김 갑사라 불린 덩치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운이 좋았습죠. 그놈 앞발이 절룩거리지 않았으면 결과는 몰랐을 것입니다요. 아마 어디서 함정이라도 밟은 것이 아닌지…….”
“허긴, 짐승 잡아 묵을 기운 없는 범이 사람 목숨 해친다는 말을 나도 들은 적이 있드라고.”
이제 그 놈은 가죽 한 장이 되어 덩치의 발밑에 얌전히 누워있다. 다시 한번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는 동안, 덩치가 환히 웃으며 단단히 말아 새끼로 묶은 가죽을 등짐에 얹고 일어났다.
헌데 이 와중에도 말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중년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정신이 잃은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고받고 머릿속에서 짜 맞추고 있는 것인가.
또 한 걸음 밝아온 동녘이 이번에는 바위에 걸터앉아 두 조각 난 마패를 손에 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중년 사내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숨이 조금 막혀왔다. 흐르는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고 있었다.
“……자네. 이 물건이 무언지 알고 있겠지.”
“마패……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도 알아챘을 것이고.”
“예.”
말로만 듣던 암행어사가 내 눈앞에 있다.
반대쪽 손으로 부목을 대고 꽁꽁 동여맨 다리를 연신 쓰다듬고 있는 어사의 갓 너머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통성명도 안 한 사이에 조금 미안하긴 하네만…… 자네는 이제 어찌 할 생각인가?”